본심 심사위원 김종일(소설가)
좀비 아포칼립스는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을 반영하는 알레고리이자,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엔터테인먼트이며, 호러, 스릴러, 판타지, 멜로, SF 등 그 어떤 장르와도 자유자재로 이종교배가 가능한 매력적인 장르다. 이번 ZA공모전 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편의 작품들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탄탄한 필력으로 좀비 아포칼립스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이 작품들이 평균 이상의 고른 완성도를 보였다는 점은 여전히 척박한 한국 장르소설 시장의 현실을 미루어볼 때 반갑고 흐뭇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반면에 이야기의 완결성을 두고 볼 때 대다수의 작품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결말은 중반부까지 공들여 쌓아온 이야기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자, 이야기를 따라온 독자에게 작가가 선사하는 보상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야기에 걸맞은 결말을 직조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큐, 잿빛 땅을 걷는 자』는 『블레어 위치』나 『클로버필드』,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소설에 도입한 재기와 거침없는 입담이 돋보이는, 흡입력 넘치는 작품이었으나, 좀비의 기원에 설득력이 부족하고 결말이 밋밋했다. 『독감의 계절』은 ‘시체촌’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고독사한 시체를 처리하는 업자라는 직업 설정이 흥미로웠으나 치정에 얽힌 살인과 징벌로 마무리되는 결말이 아쉬웠다. 『되살아난 아버지의 밤』과 『호상』은 죽어서도 혈육과 이어진 끈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정을 섬뜩하도록 설득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으나, 극적 갈등에서 오는 재미는 다소 부족했다. 『뒤엉킨 세상』은 여러 등장인물들과 장소를 종횡무진하는 스케일과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액션으로 기대감을 주었으나, 대사의 처리가 군데군데 어색하거나 안일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잔뜩 벌여놓고 수습하기도 전에 끝내버린 듯한 인상이 짙었다. 『배달의 기수 강필중』은 시치미 뚝 떼고 기록문학의 형식을 취한 문체와 정감 넘치는 캐릭터 형상화가 재미있었지만,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백신을 택배로 배달한다는 설정이 작위적이고 사건이 벌어지는 초중반부에 비해 주인공의 활약상 비중이 부족했다. 『사육장의 개들』은 섬세한 문체와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일품이었으나 서사의 생략과 비약이 심해 이야기가 파편화된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애들한테 무슨 죄가』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촬영으로 밝혀지는 한 가족의 미스터리를 좀비물에 접목한 시도가 신선했으나, 관찰 카메라라는 설정의 효율적인 활용이 아쉽고 미스터리의 얼개가 헐거웠다. 『여름 좀비』는 좀비를 대체 에너지 활용에 이용하려는 과학자와 좀비를 팔아넘기는 사냥꾼, 진화하는 ‘여름 좀비’라는 설정이 기발했고, 간결하면서도 신랄한 대사가 돋보였으나, 초중반부의 박력이 결말에 이르러 흐지부지 사그라졌다. 『왕국의 도래』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형상화가 좋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서사의 힘도 좋았으나 극적 갈등의 해결이 안일했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싫어한다』는 ‘어린이 수용소’라는 설정과 생사를 넘나드는 아이들의 사투가 눈물겨웠으나 절정부와 후일담이 싱거웠다. 『이상현상』은 본심에서 보기 드문 장편이었고 좀비의 근원이 임신부라는 독특한 설정과 고립된 아파트 안에서 얽히고설키는 인간 군상들의 묘사가 좋았으나, 플래시백의 과도한 반복으로 서사의 흐름이 더디고, 인물들의 동기가 약하며, 결말의 설득력이 심히 부족했다.
『장마』는 『애들한테 무슨 죄가』와 마찬가지로 좀비 아포칼립스에 미스터리를 접목한 시도가 돋보이고, ‘물’을 좀비의 기원이자 약점으로 설정해 영리하게 활용한 재기가 발군이었으나 잦은 오타와 오기가 거슬리고 안일한 마무리도 아쉬웠다. 『해피엔드』는 광안리의 대관람차에 갇힌 일행의 생존기를, 고부갈등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려 전개시킨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으나 역시 결말의 고민이 부족해 보였다. 『화성으로부터의 귀환』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SF에 접목시켜 좀비의 기원을 복제인간으로 설정한 기지가 좋았으나, 김 박사의 복제인간이 왜 좀비가 되었는지 일러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디테일이 부족했다.
본심 심사위원 김준혁(황금가지 편집장)
ZA 공모전이 어느덧 3회를 맞이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수가 예년보다 많았고 작품들의 초반 폼이 대부분 좋아서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뒷심이 부족하거나 이야기 흐름을 쫓아가기 바쁜 작품들이었다. 『여름 좀비』는 SF 적 상상력과 독창적인 개성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흡인력이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후반부의 마무리가 많이 아쉬웠다. 이야기의 후반부를 조금 더 다듬었다면 당선이 가능했을 작품이라 생각된다. 『장마』 역시 개성 넘치는 작품이었고 결말까지 무난한 마무리를 보여주었으나, 이야기가 다소 산만한 느낌이 있어 흡인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인물간의 사건이 등을 좀더 명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해피엔드』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질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 흡인력을 높였으나,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이 후반부 들어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밀폐’ 공간이라는 소재까지는 쉽게 만들어내나 그 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왕국의 도래』는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고 흡인력이 있었으나 묵직한 한 방을 찾을 수 없었고, 좀비물의 전형적 결말을 탈피하지 못한 게 아쉬운 작품이었다. 본심에 올라와서 가장 마지막까지 거론된 이 네 작품 중에서 당선작을 뽑으려 하였으나, 딱히 어느 한 작품 특출나게 당선작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여겨져 당선작 없이 우수작으로 네 작품을 선정한다.
이 외에 거론된 작품 중, 『다큐, 잿빛 땅을 걷는 자』는 「디스트릭트9」처럼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어왔는데, 지루할 수 있는 요소를 흥미있게 잘 풀어내는 초반부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이야기의 흥미 요소를 반감할 만큼 산만한 진행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사육장의 개들』은 이야기의 긴박성이나 밀폐성 등 좀비물에서 갖춰야 할 것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나 캐릭터가 약하고 중반부 이후부터의 이야기가 갈피를 못 잡으며 마무리되어 아쉬웠다. 「우리 모두 아이를 싫어한다」는 개성 있는 설정과 긴장감이 좋았으나 역시 중반부부터 이야기가 제 갈길을 못 찾고 헤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세 작품들은 간발의 차이로 안타깝게 우수작에 들지 못하였다.
지면을 할애하여 다른 작품들도 더 언급하면 좋겠으나,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개성이나 완성도 어느 한 부분이든 좋은 면이 있었으나, 또한 ‘개성 부족’, ‘아쉬운 마무리’, ‘흡인력 부족’ 등 꽤 큰 마이너스 요소를 갖고 있었기에 조금 더 많은 습작과 다독을 거친다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보았다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