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좀비(제3회 우수작)

  • 장르: 판타지, 호러 | 태그: #ZA문학공모전 #좀비 #김희진
  • 평점×20 | 분량: 210매
  • 소개: 좀비를 색깔별로 구분해서 산업에 활용하게 된 세상에서, 좀비 사냥을 하던 ‘나’는 기이한 좀비를 만나게 된다. 더보기

여름 좀비(제3회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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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비 중에 짜증나기로는 여름 좀비가 제일이라.

나는 탁자 뒤에 몸을 숨긴 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찰리는 킬킬 웃었다. 녀석은 바로 옆 테이블을 쓰러뜨리고 몸을 막 숨긴 참이다.

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짜릿하거든. 찰리도 입가에서 미소를 걷어내지 못하는 걸 보면 나와 같은 기분인가보다.

“왔다.”

노린내가 확 풍겼다. 몇십 미터 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굉장한 악취다. 우리들은 이미 익숙해진, 좀비의 살 썩는 냄새가 그대로 콧구멍을 직격한다. 누가 모를 수 있겠는가. 보통 좀비가 하수구 냄새를 풍긴다면 저건 정화조 냄새다.

힐끗 테이블 너머를 넘겨다보았다.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검초록색 좀비들 사이로 뚜벅뚜벅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싯누런 녀석이 있다. 말이 ‘뚜벅뚜벅’이지 일반 좀비랑 비교할 때 그렇다는 소리다. 일반적인 사람이 천천히 걷는 정도의 속도다.

“야, 너 모델 해도 되겠다. 워킹이 아주 그냥.”

찰리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어차피 좀비들은 우리가 여기에 몸을 숙이고 있다는 것을 냄새나 아니면 육감이나 그도 아니면 자기들만의 빌어먹을 어떤 감각 같은 것으로 감지하고 있었으므로 목소리를 낮출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우리뿐일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말에 킬킬 웃어주었다.

누런 녀석은 우리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왔다. 다른 좀비들에 비하면 늠름한 자세다. 이 녀석들은 어째선지 등이나 어깨가 그다지 굽지도 않는다. 그래도 본능은 강해서 먹잇감을 잡겠다고 양손을 한껏 뻗은 것이 제식훈련 때 배웠던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움직임은 보는 관점에 따라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좀비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했다. 나를 어떻게든 물어뜯어 보겠다고 어기적거리며 기어 오는 놈보다는,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오는 놈이 더 위협적이지 않은가.

우리가 들어 있는 건물의 실내는 카페테리아로 쓰던 곳이므로 꽤 넓었다. 일반적인 보행속도로 걸어와도 입구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빨리 좀 오시죠.”

나는 답답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악취가 나를 짜증나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

“오늘은 저 놈만?”

“저거하고 몇 놈 더 잡아가야지. 두 명이나 왔잖아. 밥값은 해야지.”

“누런 좀비는 값이 30배라고. 충분히 대목 아냐?”

“거기다가 다섯 놈 더 담아가면 35배네. 계산 좀 해라.”

“노랭이 새끼.”

찰리가 경멸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이윽고 노란 녀석이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테이블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별로 높은 턱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누런 녀석은 그걸 밟고 비틀거렸다. 걷는 속도가 빨라서 다른 좀비보다 더 잘 넘어진다. 그런 걸 보면 더 쉬운 놈이라니까.

찰리가 누런 녀석이 밟은 테이블을 발로 세차게 차 밀었다. 그놈은 이번에는 완전히 중심을 잃고 자빠져 버렸다. 나는 잽싸게 그 가슴을 발로 밟았다. 그는 움직이려고 버둥거렸다. 물론 좀비는 보통 사람보다 힘이 세다. 게다가 이 녀석은 보통 좀비보다도 더 셀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 임기응변이라는 것을 모른다. 아마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은 힘들더라도, 갑자기 넘어진 놈을 발로 밟아서 잠깐 동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놈을 밟고 있는 동안 찰리는 굵은 와이어를 꺼내 먼저 놈의 손을 묶었다. 넘어진 몸을 일으키려면 손으로 바닥을 짚든지 해야 할 텐데 병신 같은 녀석은 내 다리를 잡아 보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래 봐야 두껍고 긴 장화를 신은 내 맨다리에 손도 댈 수 없었다.

내 다리로 손을 뻗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땅을 짚고 일어서려고 할 정도로 똑똑하다면 우리도 훨씬 더 애를 먹을 것이었다. 바로 그 속절없이 내밀고 있는 손을 찰리는 와이어로 감아버린 것이다.

손을 묶은 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찰리와 힘을 합쳐 와이어의 끝을 힘껏 잡아 당겼다. 여름 좀비의 몸이 힘없이 당겨 올라왔다. 우리는 와이어의 각도를 조절하여, 누워 있던 녀석을 엎드리게 하였다. 이제는 몸 전체를 묶을 차례다. 내가 와이어를 다리 쪽에서 당기자 앞으로 나란히 올라와 있던 녀석의 팔뚝도 결국 몸뚱이에 붙어버렸다.

찰리는 다른 와이어로 그 팔을 몸뚱이와 한꺼번에 묶어 버렸다.

나는 뒤를 흘끗 바라보았다. 아직 보통 좀비들은 식당의 반 정도를 어기적어기적 기어 왔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삼십 초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좀비들은 열다섯은 넘어 보였다.

그 정도 숫자의 녀석들이 어기적거리고 다가오는 것은 그런 광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포스러운 광경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물 밖에서 감상하는 피라냐처럼 시답잖은 것이었다. 우리가 여름 좀비를 다리까지 완전히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십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저들은 그저 매우 느려서 제압하기 쉬운 사냥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와이어에 칭칭 감겨 못 움직이게 된 좀비에게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작업은 헬멧을 씌우는 것이다. 고물상에서 구해 온 오토바이 헬멧을 하나 빼 들었다. 우리 작업에서 가장 귀찮은 장비였다. 이 부피가 큰 헬멧을 사냥할 좀비의 숫자만큼 싸들고 다녀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지를 와이어로 제압당한 좀비에게 위협적인 부분이라고는 검푸른 타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아가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법이었다. 아니, 사지가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머리만 헬멧 같은 것으로 감싸 놓으면 별로 위험할 게 없는 존재가 좀비이기도 했다. 좀비는 사람을 때리지도, 발로 차지도 못한다.

지능을 갖춘 존재들은 무궁무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팔과 다리를, 좀비들은 단 한 가지의 용도로 사용할 줄밖에 모른다. 손은 먹잇감을 잡을 때. 발은 걸어 다닐 때 사용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녀석들의 지능은 금붕어보다도 못할 것이다. 헬멧을 씌워 놓으면 사람을 손으로 잡을 수는 있어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손톱으로 할퀴지도 못한다. 이런 절망적인 생물이 어디 있는가. 외모에서 느껴지는 공포감만 극복한다면, 이렇게 귀여워해 줄 수 있는 생물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헬멧을 좀비에게 어렵지 않게 씌울 수 있었다. 이러고 나면 사실상 할 일은 다 끝난 셈이다. 찰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주보고 웃었다. 비싼 녀석을 잡았다. 아까 찰리와 내가 주고받았던 것처럼, 일반 좀비의 삼십 배 가격이다.

보통 좀비보다 운동신경이 좋기 때문에 잡기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녀석이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좀비 무리 속에서 누리끼리한 녀석의 머리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질렀었다. 오늘은 바에 가서 조니워커를 마실 수 있다.

2

“일단 움직여.”

찰리가 칭칭 묶인 노란 좀비를 어깨에 떠멨을 때는 다른 좀비의 무리가 코앞까지 닥친 상황이었다.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좀비란 짐승은 혼자 있을 때는 하나도 두려울 게 없지만, 저렇게 모여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좀비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일단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저쪽으로! 뛰어!”

내가 찰리에게 뒷문을 가리켰다. 찰리는 나보다 덩치가 컸기 때문에 급한 상황에서 좀비를 운반하는 것이 저의 몫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손발이 맞는 콤비다.

찰리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나도 찰리에게 힘을 써야 하는 일을 맡긴 만큼, 위급하지 않을 때는 선선하게 내가 먼저 나서서 궂은일을 맡아서 하려는 편이다. 찰리도 그것을 알고, 나도 그것을 안다. 지금은 그가 힘을 쓰고, 내가 퇴로를 확보해야 할 때다.

좀비의 무리는 이제 우리가 노란 녀석을 제압하던 지점을 지나서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는 중이다. 녀석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히고 있어서 그들의 전진 속도가 더욱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한심한 광경이다.

철로 된 뒷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나왔다. 빛이 들지 않는 이런 곳이 더욱 위험한 법이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손전등을 켰다. 내가 앞장서고, 찰리가 그 뒤를 따랐다. 딱히 좀비가 갑자기 튀어나올 곳은 없는 좁은 복도였기 때문에 정면만 잘 비추면 별로 위험할 게 없어 보였다. 코너를 돌 때만 조심하면 된다.

좀비를 사냥할 때는, 일부러 소란을 피우면서 돌아다니며 그 일대의 좀비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 편이, 역설적으로 더 안전하다. 어차피 좀비는 지능이 없다. 그러니 작전을 짜서 숨어 있을 수도 없고, 자기들끼리 역할을 분담해서 우리를 몰이사냥할 수도 없다.

오히려 무서운 것은, 우리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좀비가, 지금처럼 좁은 통로를 지나고 있을 때 뒤늦게 우리를 발견하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좀비들은 사람을 발견하거나, 혹은 그 냄새를 맡으면, 마치 축구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포메이션을 무시하고 공만 우르르 쫓아가듯이 목표물의 뒤만 쫓기 마련이다. 결국 소란을 피우면서 크게 동선을 그리고 움직이면, 어느새 우리 뒤로만 쫄쫄 따르는 좀비의 무리만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는 원리다.

그렇게 모든 좀비들이 우리를 쫓게 만든 후에,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해서 하나둘 씩 따로 떨어진 좀비를 와이어로 묶고, 헬멧을 씌워 주면 우리의 사냥은 끝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런 식으로 좀비를 사냥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복도를 지나서 우리는 카페테리아의 뒤편으로 나왔다. 이 상가에 있는 모든 좀비들은 우리를 쫓느라고 지금 모두 카페테리아 안에서 어깨를 부딪치고 있는 중이다. 온 동네 좀비를 성공적으로 집합시킨 것이다.

옛날 같으면 좀비 소탕이니 어쩌니 하면서 이 건물을 통째로 불태우고, ‘소탕 끝’이라고 흐뭇해하겠지만,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우리 밥줄이 끊긴다. 하나씩하나씩 사냥을 하는 것이 훨씬 돈이 되는 일이 된 지 오래다.

“이쪽이야.”

그래도 담을 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우리끼리라면 또 모르지만, 좀비 하나를 어깨에 떠메고 담을 넘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그러나 둘러보아도 담이 허물어진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 이렇게 버려진 좀비 마을에서 담이나 벽이 멀쩡히 남아 있는 일이 드문데 말이다.

“아, 제발.”

찰리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나도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왜 이렇게 담들이 멀쩡해.”

찰리에게 맞장구쳐주는 나의 말투에도 역시 짜증이 묻어났다.

내가 먼저 훌쩍 담을 뛰어 넘었다. 단련된 우리에게는 이런 정도 높이의 담을 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찰리는 내가 담을 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깨 위에 있던 좀비를 담 위로 나에게 넘겨주었다.

“영차!”

찰리가 아무리 덩치가 좋다지만, 그에게도 남자의 몸뚱이를 담 위로 넘기는 것이 아주 손쉬운 일은 못 되었다. 그리고 담 너머에서 그것을 받아 안는 나로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니까 여자 좀비를 선호하는 건데, 노란 녀석을 발견한 우리로서는 그 성별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냥 가자.”

찰리가 담을 넘어오자, 나는 그에게 말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위급한 순간은 지났으니, 굳이 한 번 어깨에 멘 좀비를 찰리에게 넘겨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대로 차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했다.

차는 카페테리아 정문으로부터 약 오십 미터 떨어진 곳에 대놓았었다. 좀비를 뒤에 충분히 실을 수 있도록 큰 짐칸이 마련되어 있는 픽업트럭이다. 아무래도 좀비랑 같이 실내에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실내에 태웠다가는 그 냄새를 어떻게 뺄 것인가. 그래서 좀비를 싣고 다니는 트럭은 똥차보다도 더 행인들이 기피하는 대상이 되었다.

더 큰 트럭은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망가진 도로를 다니는 데 힘들기 때문에, 저 정도가 가장 이상적인 좀비 사냥용 트럭이다.

나는 짐칸에서 마대를 꺼냈다. 좀비는 버둥거리기는 했지만, 와이어로 솜씨 좋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운반하는 데에도, 그리고 마대에 집어넣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줄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떠메고 있던 좀비를 마대 안에 머리부터 집어넣자, 찰리는 솜씨 좋게 마대의 입구를 원래부터 달려 있던 줄로 묶었다.

이것으로 좀비를 사냥하는 과정이 완전히 완료된 것이다. 참 쉽지?

이게 오늘 사냥하기로 한 마지막 좀비였다면, 좀비가 든 마대를 짐칸에 도로 싣고,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돌아가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찰리와 나는 앞으로 다섯 마리를 더 잡기로 했기 때문에 마대를 짐칸에 싣고 다시 고개를 카페테리아 쪽으로 돌렸다.

좀비들은 하나둘 씩 카페테리아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냄새가 후문 쪽에서 정문 쪽으로 이동했으니,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들이 코로 짧게 숨을 들이 쉬어 가면서 냄새를 맡는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마 후각 말고는 저렇게 효과적으로 목표물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지겨워.”

찰리는 다시 일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루에 좀비를 대여섯 마리 잡는다고 했을 때, 오늘 하루 무려 일주일치 정도의 수입을 올린 것이다.

저게 대륙에서 편안하게 살던 녀석들의 사고방식이다. 땡잡았으니 그걸 빨리 누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 같은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농경사회 마인드로, 벌 수 있으면 최대한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 100만큼 일을 하기로 했는데 아직 20밖에 일을 하지 않았으니 더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고, 찰리는 일을 100을 했든 20을 했든 500을 일한 만큼의 수익을 올렸으니 뭣 하러 일을 더 하느냐는 생각이다. 누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나, 찰리나 서로를 가장 이해 못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에 대한 언쟁을 피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세 마리만 더 잡고 갈까?”

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찰리에게 말을 꺼냈다. 아까 얘기했던 것보다 두 마리 줄인 것이다. 찰리는 내 뜻을 이해하고 껄껄 웃었다.

“노랭이 새끼. 두 마리만 더 잡자.”

나는 찰리의 대답을 들으며 말없이 와이어를 점검했다. 흥정에 응했다는 의미였다. 물론 일부러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속도 모르고 더 흥정을 붙이는 녀석에게 짜증은 났지만.

“헬멧.”

“챙겼다.”

보통 좀비를 잡을 때는 두 마리 씩 한꺼번에 잡는 경우도 많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숙련될수록 쓸 데 없는 움직임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찰리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항상 헬멧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헬멧은 부피가 큰 물건이니 갖고 다니는 수를 최소화해야 했다.

좀비를 하나 잡아넣으면 가방에 헬멧을 하나 더 챙겨 넣는 식이다. 내가 갖고 다니는 가방에는 와이어와 쇠파이프, 그리고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총기가 들어 있다. 와이어야 가볍기 때문에, 항상 충분하게 챙겨 넣는 식이었다.

우리는 좀비를 유인하기 위해 카페테리아 정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우리의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대신 일상적인 권태로움이 묻어났다. 좀비의 무리들은 딱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 우리를 향해 어기적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떠난 지 오래된 곳이기 때문에, 좀비들이 걸치고 있는 옷가지도 제대로 남아난 것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의 나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옷이 벗겨진 좀비를 보았을 때 충격은 컸다. 좀비가 실제로 생기기 이전에 영화를 통해 형상화되었던 모습과 같은 듯하면서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썩어 문드러진 부분을 옷이 가려주지 못하니 그 역겨움은 더 심했다.

여성 좀비의 경우, 그래도 옷가지 중 가장 내구성이 강한 브래지어만이 가슴이 제대로 달려 있을 때가 많았으므로, 그 광경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모습을 보아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게 되었다. 아직 그 냄새만은 참을 수가 없었지만.

좀비와 우리의 사이가 10미터 이하가 될 때까지 걸어갔다. 좀비들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팔을 앞으로 엉거주춤 뻗은 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뜯어 먹으러 오는 중이다.

그들의 끝없는 굶주림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차피 굶는다고 죽지도 않는 놈들이.

우리는 카페테리아 옆 건물을 살폈다. 그곳은 잡화점이었던 곳으로 보였다. 찰리가 그쪽으로 뛰어갔다 와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을 하기 괜찮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쪽으로 좀비를 몰기로 했다.

우리는 나란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좀비를 보고 말이다. 물론 힐끗힐끗 뒤를 돌아 볼 때도 있었지만, 온 동네 좀비들을 모조리 유인해서 우리 시야 앞에다가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뒤에서 좀비가 우리를 급습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응?”

좀비의 숫자는 오십 마리가 넘어 보였다. 꾸물꾸물 우리를 위해 기어오는 벌레 같은 녀석들을 곱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게 뭐야.”

나는 찰리에게 슬쩍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뭐?”

“저거.”

나는 턱으로 좀비의 무리 안쪽을 가리켰다. 획일적인 좀비들의 움직임 속에 무언가 이질적인 움직임이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찰리도 그걸 발견한 것 같았다.

“파이프.”

찰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내 가방에 있던 파이프를 꺼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누런 녀석이 하나 더 있나?”

“그럴지도.”

“야. 그러면 우리 오늘 정말 횡재하는 날이다.”

“그러게.”

그렇게 말을 하면서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좀비의 무리를 응시했다.

무리 속에 이질적인 움직임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물체는, 좀비의 무리 속에서 조금씩 앞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리 속에서 다른 좀비들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서로 어깨가 부딪혀서 그럴 여유 공간도 제대로 없을 텐데. 그냥 그들보다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쉽게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밀도가 아니다. 우리가 완전히 한 덩어리로 만든 무리는 그만큼 밀도가 높은 것이다.

“저거 뭐야?”

그 녀석은 노란 머리통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는 몸집이 작은 여성 좀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시야에 들어오자 그 움직임을 절대로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녀석들과는 구별되는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좀비의 머리칼은 회색으로 변해 있기 마련인데, 이 녀석의 머리칼은 까만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런 녀석이다!”

“가만. 저거 좀 다른데?”

찰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단 검은 윤기를 발하고 있는 머리칼도 눈에 띄었지만, 노란색이라도 우리가 아까 잡았던 녀석과는 분명히 다른 색이었다.

“저런 색 본 적 있어?“

“아니.”

사실 찰리나 나나 노란 좀비를 본 적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우리가 노란 좀비를 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을 뿐이다. 어차피 내가 본 노란 좀비가 녀석이 본 노란 좀비니, 둘이 본 걸 합하든 안 합하든 그게 그거인 것이다.

어찌 되었든, 좀비가 되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피부색은 거의 비슷해진다. 얼굴의 생김새로 그 좀비가 생전에 어떤 인종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좀비의 무리 속에서 존재감을 발산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녀석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노란 녀석들과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잔데?”

찰리가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따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근데 움직임이…….”

“나도 알아.”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긴장이 되었다. 그는 무리를 이루고 있는 다른 좀비들을 헤치고 전진하고 있었다. 워낙 좀비의 어깨들이 밀착되어 있는 터라 쉽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 사이를 비집고 있었다.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리를 헤치려면, 무조건 전진하는 것 말고 분명히 다른, 복잡하고도 계산에 의한 동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좀비가 일반적인 파충류나 포유류보다도 훨씬 덜 무서운 존재가 된 것은 그들의 낮은 지능 때문이다. 그들은 전진밖에 모른다. 목표물이 보이면 그것을 향해 전진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장애물을 만나서 몸을 틀지도 못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옆이나 뒤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저 녀석은 분명히 몸을 틀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하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야, 쟤 팔도 쓴다.”

이게 우리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찰리의 말대로 녀석은 손을 들어 다른 녀석의 어깨를 짚고, 그 추진력을 이용해서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야, 저거 잡자!”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저건 분명히 우리가 본 노란 좀비와는 또 다른 변종이다. 노란 좀비가 금덩어리라면 저건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저런 게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으니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어떤 놈이 어차피 같은 노란 좀비 아니냐며 그 가격을 제시하면 아구창부터 돌려놓으리라.

“저거 하나 잡으면 다른 놈들은 쳐다볼 필요도 없겠다!”

“그러게! 네 말 듣고 다시 오길 잘 했다.”

“그거 봐, 친구. 기회는 잡는 거라고. 로또는 긁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찰리도 긴장과 흥분으로 억양이 높아진 걸 느꼈다. 일확천금을 얻게 됐다는 흥분. 지능과 운동신경이 발달한 좀비와 싸워야 한다는 긴장.

“나온다.”

어느새 녀석은 무리의 틈을 거의 다 비집고 나온 참이다. 그 녀석의 전신이 시야에 들어왔다. 몸뚱이에 걸치고 있는 옷도 다른 녀석들보다 멀쩡한 편이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움직여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면 죽은 지 얼마 안 됐든가.

키가 150대 후반쯤 되는 자그마한 여자였다. 여느 노란 좀비들이 똥색에 가까웠다면, 이 여자의 색깔은 한층 화사한 노란색이었다. 초록색이나, 노란색이나 지금까지의 좀비들은 누가 봐도 썩어빠진 색깔들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싱싱한 파스텔의 색감이다. ‘그녀’라고 지칭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식탁보로 써도 되겠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악의 섞인 농담을 했다. 어차피 저건 사냥감인 것이다. 찰리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또 킬킬 웃어준다.

“가죽 벗겨 가면 되겠네.”

그게 아니잖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삼킨 다음 파이프를 앞으로 향하게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무리를 뚫고 나와서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지 예측하는 것이 힘들었다.

“야, 저거 뛴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뛰어 오기 시작했다.

어이쿠. 보통이 아니다.

“어, 어.”

사실 뛰는 속도는 별로 빠른 것도 아니었다. 운동 못 하는 여자들이 백 미터를 뛰는 정도의 속도. 저게 일반적인 여성이라면 전혀 두렵게 느껴질 만한 것도 아니었다. 저 좀비가 뚱뚱한 여자였다면 가슴이 못 봐줄 정도로 심하게 덜렁거렸을 것이다.

“어, 어.”

찰리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벌써 흐느적거리는 좀비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것이다. 한때는 곰 사냥을 했던 적도 있는 우리 아닌가. 역시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태해지고 퇴화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겨우 몸집 작은 여자 하나가 뛰어온다고 이렇게 긴장하니 말이다.

“퍽.”

그 녀석이 가까이 다가오자 찰리가 파이프를 휘둘렀고, 그게 어깨를 내리쳐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역시 일반적인 사람을 내리쳤을 때의 소리와는 다르다. 마치 나무 밑동을 내리치는 듯한 소리다. 이미 그 좀비의 피부도 딱딱하게 굳은 것이다.

“좀비는 좀빈데.”

의아한 일이었다. 피부가 굳어서 평소와 같은 움직임을 내려면 인간일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었다. 그런데 저런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니.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센 녀석인 것이 틀림없었다.

“야, 그렇다고 때리냐.”

나는 찰리를 책망했다. 상품성이 떨어지잖아. 그러나 만약 녀석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나도 그렇게 파이프를 휘둘렀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난이 아닌데.”

우리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이 팔을 휘둘렀다.

“어?”

녀석은 분명히 우리를 때리려고 했다. 이게 뭐야.

“야, 이거 때린다.”

“때릴 줄도 알아?”

더 이상 놀라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넘겨.”

나는 그 녀석의 시야가 찰리를 향한 순간, 자세를 낮추고 녀석의 종아리 위쪽 관절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또 한 번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 녀석은 넘어지지 않았다.

“안 넘어졌어!”

녀석의 시선은 자신을 때린 자, 즉 나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내 쪽으로 몸을 틀어 팔을 날렸다. 주먹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손톱을 세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얼굴을 가격당하면 뇌에 충격이 직통으로 올 것이었다.

나는 다시 뒷걸음질쳤다. 좀 더 센 충격이 있어야 이 녀석을 넘어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안으로 유인해!”

우리는 원래 사냥을 하기로 계획했던 장소인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있는 넘어진 가구들을 이용해서 아까처럼 이 녀석을 넘어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잡화점은 아까 그 카페테리아만큼 사냥에 유리한 장소는 아니었다. 좀비를 넘어뜨리는 데는 테이블만 한 것이 없는데, 잡화점에서는 쉽게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자 찾아!”

내가 찰리에게 소리쳤다. 좀비는 계속 나를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분명히 머리를 손보다도 앞으로 내밀고 나를 뜯어 먹고 싶을 텐데, 용케도 그 충동을 이겨내고 나름의 전략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찰리와 나는 둘로 갈라졌다. 찰리는 잠깐이나마 좀비의 시야로부터 벗어났다. 그는 카운터 뒤로 넘어 가서 점원이 앉는 의자를 가져왔다. 카운터의 높이에 맞춰 설계된 다리가 긴 의자였다.

“그걸로 쳐!”

좀비가 다른 녀석들보다 지능이 높기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의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었다. 내가 찰리에게 명령을 하는데도 녀석은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서 달려들 뿐이었다.

“퍽!”

또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관절이 꺾인 게 아니라, 의자의 충격에 발이 바닥에서 밀리는 바람에 중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좀비의 몸이 공중에 뜨는가 싶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마 사람이라면 심한 뇌진탕이 올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곧바로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하기야, 그러니까 좀비지.

내가 그 녀석의 가슴을 아까 사냥 때처럼 찍어 누르는 데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기회를 놓치게 되면 더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될 것이었다.

“야, 야!”

내가 가슴을 찍어 누르자, 녀석은 두 손으로 내 발을 잡아서 떼어 내려 했다. 그 힘이 강한 것은 둘째치고, 이 녀석은 보기보다도 훨씬 똑똑한 것 같았기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땅을 딛고 있던 발을 들어 올려서 온 체중이 녀석을 밟고 있는 발에 실리도록 했다. 순간적으로 찍어 누르는 힘이 강해졌고, 나는 좀 더 탄탄하게 그 녀석의 위에서 버틸 수가 있었다.

“빨리!”

찰리에게 소리쳤으나 그는 이미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다리를 잡고 있는 양팔을 와이어로 감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힘껏 그 와이어의 양 끝을 잡아당겼다. 나도 그 녀석을 밟고 있던 발을 떼고 찰리를 도왔다. 찰리는 팔을 묶은 줄을 그대로 몸통으로 감았다. 몸통과 팔을 한꺼번에 묶은 것이다.

원래는 팔과 몸통을 따로 묶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지금 같은 비상사태에는 그런 매뉴얼을 따를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녀석을 무력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퍽!”

또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찰리와 나나 아무도 그런 소리를 낼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윽!”

찰리가 비명을 질렀다. 머리를 가격당한 것이다. 나는 찰리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색깔의 좀비가 서 있었다. 녀석이 팔로 찰리를 내리친 것이다.

“괜찮아?”

이렇게 물었지만 찰리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후두부를 강타 당했으니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뇌진탕을 겪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지금 우리가 사냥을 하던 녀석에 집중할 수 없었다. 녀석을 놔두고 찰리에게 달려갔다. 상반신이 통째로 와이어에 묶여 있으니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으나, 저 녀석이 보여준 지능으로 보아서는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발길질로 찰리를 공격한 녀석의 복부를 내질렀다. 녀석도 몸집이 작은 여성이었다. 화사한 노란색 피부에 윤기 있는 흑발을 가진 녀석이었다.

“괜찮아?”

좀비가 뒤로 나뒹굴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찰리를 부축했다. 눈이 뒤로 뒤집혀 있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정신 차려!”

나는 그의 뺨을 강하게 두 차례 때렸다.

“으, 으음…….”

찰리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의 뇌는 아직 완전히 그의 몸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평범한 좀비였다면 그를 가격하는 대신 물어뜯었을 것이다. 넘어뜨린 녀석을 묶느라고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던 참이니 만약 그랬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고, 나는 찰리를 포기해야 했을 것이었다.

지금은 누가 보아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나는 찰리를 부축했다. 그도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두 번째 녀석은 다시 다가와서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팔을 휘두르는 패턴은 다양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나도 같이 쇠파이프를 휘둘렀으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전진하는 녀석을 무력화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신 차려!”

찰리에게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의 다리에도 슬슬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앞으로 몇 초만 버티면 완전히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어떻게 해.”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든 정신이 들기는 한 것 같았다.

“오늘은 포기하자.”

내가 이를 악물면서 얘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사냥이고 뭐고 우리가 먼저 당할 판이었다. 나는 달려드는 좀비의 배를 다시 한 번 발로 내질렀다. 이번 공격도 유효했다. 그 녀석은 또 한 번 뒤로 나가떨어졌다. 나는 그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 것 같아 약간 안심이 되었다.

다른 녀석은 팔이 묶인 상태로 몸을 일으키려고 바둥거리다가, 간신히 한쪽 다리로 땅을 짚고 선 참이었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나는 정문을 퇴로로 선택했다. 매우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바깥에서 우리를 쫓던 좀비들이 얼마나 정문에 접근해 있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가다가 그 무리와 정면으로 마주친다면 끝장을 맞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건물의 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란 녀석 두 마리를 다시 한 번 지나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찰리를 정문으로 이끌었다.

불과 몇 초의 차이였다. 좀비들의 무리는 정문의 바로 코앞까지 닥쳐 있었다. 아마 몇 초만 늦었어도 뛰어 나가다가 이 녀석들의 선두와 머리를 부딪쳤을 것이다.

“뛰어!”

나는 찰리의 등을 치고 뛰기 시작했다. 찰리도 그 말을 듣고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몸에 힘이 점점 돌아오는 것이 동작에서 느껴졌다.

“뛰어! 뛰어!”

나는 다시 한 번 찰리에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나타난 노란 녀석이 정문을 나와서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포로 등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녀석은 어디에 숨었던 것일까. 우리는 녀석의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습격을 당한 것이었다.

이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냥을 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우리가 사냥을 당하는 입장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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