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위원1
바야흐로 타임리프 공모전의 시기가 돌아왔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처럼,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적어도 궁금증)이 남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후회되는 선택을 되돌릴 기회를 갖거나, 아니면 미리 선택의 결과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양쪽 모두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갈래 길에서 그 끝으로 건너가거나 시작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타임리프’가 갖는 매력이다. 인생 치트키나 다름없는 소재인 만큼, 여타 공모전보다 대중적인 작품이 많이 기대되는 공모전이었고 실제로도 상상력 가득한 재미있는 결과물들이 많이 보였다. 벌써 5회에 이른 만큼 능숙한 전개의 작품이 많았지만, 예측 불허한 작품보다는 결과가 예상되는 작품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기본적으로 타임리프를 소재로 한 쫄깃한 스릴러물이 많았고, 로맨스 장르가 섞이면 첫사랑에 대한 후회로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스릴러의 경우 시간을 통해 돌아가서 죽을 운명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절반은 되었는데, 물론 같은 소재라도 어떤 요리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요리될 수 있으므로 아주 다양한 방식의 스릴러 전개를 맛볼 수 있었다.
「빛은 당신의 이마로부터」는 이런 흐름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초능력물이었는데, ‘빛을 발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후광을 입히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에게 의문의 소녀가 시간여행을 해 오는 이야기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인생 가치관을 잘 풀어냈다. 이야기가 길고, 초반에 설정을 따라잡는 데 노력이 필요한 점이 아쉽다. 「도도닭강정의 비밀」은 황당무계한 상황 전개나 인물의 행동이 납득이 잘 가지 않지만 유쾌한 내용이 아스트랄 프로젝트에 사뭇 어울릴 법한 작품이었다. 「살인범 VS 스토커X2」는 히키코모리 소녀가 실종된 인터넷 친구를 찾다가 의문의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내용인데, 좀 더 박진감 넘칠 수 있었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황급히 마무리되며 중반이 상실된 느낌을 주었다. 「백번 죽은 용사와 백 한번 죽는 마왕」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무한 루프에 빠진 용사가 마왕을 죽이는 인생이 반복되는 바람에 미치고 팔짝 뛰는 이야기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라서 심사 마지막까지 고심했으나, 용사의 삶의 목표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게 바뀌어 가는 과정의 재미에 비해 ‘어째서’의 설명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사춤」은 시간여행을 반복하며 여학생의 목숨을 구하려는 주인공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고 고통스러운 결과만을 가져오는데, 담담한 서술에도 긴박함이 느껴지는 전개가 좋았다. 「꼬리 삼키는 뱀」은 시간여행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정신적 불안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작품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색채가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 「여름비」는 첫사랑에 대한 후회를 그린 전형적이고 예상 가능한 로맨스였으나 매우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본선에는 다음 두 작품을 올린다. 「라젠카가 우리를 구원한다 했지」는 개성적인 캐릭터들, 진지함과 웃음이 절묘하게 혼합된 묘사로 ‘타임리프를 통해 살인마를 막는다’라는 흔한 전개를 흔치 않게 풀어낸 작품이다. 흥미진진한 초반의 떡밥을 끝까지 잘 회수하고 있는 점도 훌륭하고, 열린 결말도 완성형으로 느껴진다. 「조정자」는 유쾌한 SF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미래인이 과거인들을 착취한다는 이야기를 또렷한 기승전결로 풀어냈다. 결말부에까지 미래인의 속내에 대한 반전이 계속해서 이어져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예심위원2
올해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는 상당히 많은 작품이 참여하였다. 저마다의 특색과 재미를 가진 작품이지만, 본심에 올릴 작품은 다 합쳐서 10여 작품뿐이기에 까다로운 눈으로 작품을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팁을 준다면, 결국 심사위원들도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읽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읽기 편한 작품이 아무래도 메리트가 있다. 행갈이없이 다닥다닥 붙인 문장이나, 그 반대로 지나친 행갈이는 작품성에 집중할 여건을 방해하는 요소라 할 수 있으니, 혹 다음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참고토록 하자.
「한 걸음에 삼백리」는 이야기의 분위기나 흡인력이 상당히 좋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타임리프’ 본연의 재미를 잘 살렸는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역행개조우주」는 ‘타임리프’라는 개념을 잘 활용한 작품이지만, 긴 분량에 흡인력까지 다 잡아내기엔 다소 역부족으로 보였다. 「서가 너머의 그대」는 차분한 읽기와 나름의 반전이 매력적이었지만, 본심까지 올리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황월영전」은 제갈공명의 부인이 미래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팩션 장르로 재미있게 풀었지만, 다듬새가 다소 거칠었다. 고심 끝에 문장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가 남달랐던 「히트 바이 피치」를 본심에 올렸다. 데드볼을 맞을 때마다 타임리프를 통해 안타를 때리게 된 2군 야구선수의 이야기로서, 계속된 피격으로 고통이 축적됨에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 주인공과 예상 외의 빌런과 조직 등, 타임리프가 선사할 만한 다양한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예심위원3
먼저 타임리프 공모전에 작품을 보내 준 많은 작가들에게 감사드린다. 글을 시작하여 완결까지 책임감 있게 써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간을 뛰어 넘어 과거 혹은 미래를 바꾼다는 ‘타임리프’라는 공모전 소재와 내용이 어우러지는지 중점으로 보았다. 또한, 독자를 글 안으로 흡입할 수 있으며, 결말이 뻔하지 않은 동시에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를 살폈다. 많은 응모작들이 후회되는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썼는데, 바꾸고 싶은 과거의 사건이 색다르거나 주인공의 선택이 독특하게 전개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한,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이 2021년의 독자도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되지 못한 글도 다소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공모전에 응모했던 글을 재응모할 경우에는 이전에는 없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수정을 거쳐주길 부탁드린다.
「천년의 사랑은 강화쑥비엔나라떼와 함께」는 작가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각 세계의 신을 바다사자와 물개 등으로 표현한 재치가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물개는 세상을 구원한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국의 역사를 같은 소재로 풀이한 점도 크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타임리프라는 공모전 소재와는 다소 비껴나간 감이 없잖아 있다. 「로터리」는 오버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힘 있는 문체로 풀어 나갔다. 작품 결말부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되는 스토리와 과거를 바꾸려는 행동을 할 때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만 흑막으로 추정되는 박사의 행동이 잘 납득되지 않고, 결말부가 중간부와 이어지지 않아 다듬새가 아쉬웠다.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는 타임리프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펼쳤으나, 신선함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겟 백」은 100초라는 시간 제한을 조금 더 살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너와 명탐정의 교차점』은 발랄한 분위기로 방대한 분량을 끝까지 마무리지은 점이 돋보이지만, 캐릭터 설정이 만화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웠다.
본심에는 「814만의 1」과 「디센더─달에서 내려온 로봇」을 올린다. 「814만의 1」은 로또 5등 당첨번호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1등을 역산하는 두 명의 이야기다. 복권을 구매하고 1등 당첨을 노리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고통이 느껴졌다. 「디센더─달에서 내려온 로봇」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자 두 명이 우연히 로봇을 줍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타임리프와 잘 결합한 호러가 매력적이었다.
예심위원4
어느덧 타임리프 공모전도 5회를 맞이했다. 특히 이번에는 예년에 비해 장편 응모작의 수가 괄목할 만하게 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 면에서 미흡하거나, 혹은 준수한 글임에도 시간여행의 설정을 나중에 무리하게 덧댄 듯이 플롯과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 상당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탑돌이라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체험하면서 배우자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고 운명을 바꾸는 시도를 그린 「꼬리명주나비」는 정갈하고 유려한 문체로 옛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했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여 미행했던 날이 반복된다는 「열다섯 번의 오늘」는 ‘시간의 기포’라 불리는 루프에서 탈출하기 위해 겪는 혼란이 흡인력 있게 그려졌다. 두 작품 모두 전형성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균형 잡힌 단편으로 보였다.
아쉽게 본심에 올리지 못한 작품 중 「플라이, 플라이어」는 위기에 몰린 정권이 제시한 ‘플라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연인을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여정이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다만, 작중의 세계와 SF적 설정이 그다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상이어서 배경에 대하여 좀 더 분량을 할애하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과거의 전쟁을 연구하기 위해 타임슬립한 미래 인간의 독백을 그린 「시간 여행자의 고해」는 다소 단조롭기는 하였으나 인과에 개입하고 만 시간여행자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이 후반부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G물체」는 청소기의 먼지 주머니에 연결된 블랙홀에서 시공간이 비틀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그날 밤의 강가에서 너와 걷다」는 흡인력이 좋고 현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인물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하게 그려 냈지만, 근본적으로 시간여행을 다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순환」은 공원 벤치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눈을 뜨는 인물이 시간을 돌리는 게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 깔끔하게 그려졌다.
예심위원5
제5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서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나 미래를 바꾸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작품 대부분이 클리셰를 답습하며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주로 소중한 사람을 구하거나 후회스러운 과거를 바꾸기 위해 타임리프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냉동 인간, 평행 세계, 미래 예지 능력, 공간 이동 등 타임리프의 개념을 다소 혼동하거나 타임리프 설정 자체에만 골몰해 캐릭터의 매력 및 이야기의 재미를 찾기 어려워 아쉬웠다. 타임리프 소설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이후에는 공모전 성격에 부합하는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범죄자를 과거로 보내 형을 두 번 살게 하는 이야기 「넛크랙커 – 망치를 내려치니 잡놈들이 번쩍」은 시의성 있는 유쾌한 활극이지만, 단일한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한 인상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머지않아 죽는다는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 번민하는 이야기 「속박된 시공간의 틈새에서」는 서정적 분위기와 미래를 바꾸는 결말이 나름 인상적이었으나 대화나 등장인물 등에서 큰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 역전 물리학을 연구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이야기 「[기고] 시간 여행의 본질과 그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소소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더러 있어 흥미롭게 읽기는 했으나 실제로 타임리프를 하지는 않고 시간 여행의 연구적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 집중하여 소설적 재미는 간과한 인상이었다. 사고로부터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일상의 하루를 반복하는 이야기 「2022년 2월 22일 2시 22분 22초」는 반전이 있는 결말로 나름의 흡인력은 있었으나, 날짜를 통해 친구에게 사고와 관련된 암시를 준다는 설정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타임리프 능력이 있는 친구가 동생을 살해한 일에 관해 변론하는 「어느 궤변론자를 위한 세 가지 궤변」은 변론을 빙자한 궤변이 일견 흥미로웠으나 친구의 타임리프 능력과 동생의 죽음이 맥거핀으로만 작용하고 사건이나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려는 의지 없이 확정된 미래만 이야기하여 아쉬웠다.
본심에 올리는 작품은 「하얀색 음모」와 「캐트닙 네트워크」 두 작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과 잔잔한 감동이 여운을 남겼다. 「하얀색 음모」는 반복되는 금요일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다양한 생명을 구하며 타임루프를 견뎌내는 이야기로, 같은 하루가 반복됨에도 매끄러운 전개로 피로도가 적게 느껴졌다. 「캐트닙 네트워크」 는 시간 여행을 하는 고양이를 따라 경성으로 타임리프 한 사람이 역사적 인물의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로, 비장미가 넘치는 여타 작품들 가운데 발랄한 분위기로 시선을 끄는 작품이었다.
예심위원6
5회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타임리프 문학상은 주변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진 덕에 응모된 작품 수 자체는 적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익숙한 방식의 소재 활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이 남아 아쉬웠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반복적인 행위만을 나열하거나, 타임리프의 매개로 작동하는 특정 물건이나 타임머신이라는 기계장치를 단순히 등장시키는 데에 그쳐 이야기의 개연성이 충족되지 못한 작품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 본 문학상이 소설을 공모받는다는 점을 주지하여 시나리오나 그 외 형식으로 된 작품을 응모하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소설화 작업을 거쳐 투고해 주기를 바란다.
「그때, 곰인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는 비극적 사연이 있는 주인공의 곰 인형에 대한 반전 장치가 뒷받침되면서 시간여행이 펼쳐지는 과정을 다루는데, 반복적 행위가 주로 묘사되며 파편적인 이야기로 남았다는 인상이 강했다. 「20202000」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큰 반전이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 허술한 이야기의 짜임새를 보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휘핑 없는 카페모카」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해 커피라는 소재가 과잉 사용되어 주제 선정이 적절했는지 의문이었으며, 「트루 러브」는 개중 SF적 설정이 매끄럽고 반전이 돋보였으나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메시지보다는 일말의 결말을 위해 과정의 전시성이 지나쳐 다소 불쾌한 인상이었다.
다음은 본심에 올린 작품이다. 「시간이 금이라던데」는 타임리프 문학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복권을 소재로 한 설정 자체는 크게 신선하진 않았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강렬한 기시감을 장르적 장치와 연결시켜 시대의 씁쓸한 일면을 담아낸 점이 돋보였다. 「태엽의 끝」은 다소 감성적이고 뻔하게 느껴진 초반부를 지나 영혼 탈곡과 재활용이라는 과정에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접목한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본심 진출작]
라젠카가 우리를 구원한다 했지
조정자
히트 바이 피치
814만의 1
디센더─달에서 내려온 로봇
꼬리명주나비
열다섯 번의 오늘
하얀색 음모
캐트닙 네트워크
시간이 금이라던데
태엽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