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위원1
제4회 로맨스릴러 공모전을 심사하면서, ‘로맨스’ 부문이 약한 글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로맨스 소설은 그 소재와 취향이 어떻든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사랑과 낭만을 기반으로 한 공감을 느끼도록 하여야 하며, 특별히 전복을 의도한 것이 아닐 경우 작가 자신만의 페티시나 추억에 갇혀서 독자에게 성적·정치적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주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와의 낭만적 공감에 실패한 작품이 전반적으로 많았으며,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스릴러 요소 역시 틀에 박혀 있다는 인상이었다. 또한, 로맨스 소설의 주요 독자층을 고려할 때 여성을 모멸화하고 물건화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창백한 달이 지배한다』는 복잡한 궁정 음모를 과감히 다뤄 보려고 시도한 점, 로맨스와 스릴러의 조화를 시도하려고 한 점은 좋았지만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디어, 마이 올디너리 엔딩 씬』은 캐릭터의 헌신, 즉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능력에 대한 핍진성이 부족하여 세계관에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멸종위기종』은 초중반부의 과감한 서사 전개가 좋았으나 후반부에 두 사람의 관계에 지나치게 축소되면서 초중반부와 후반부가 겉돈다는 느낌이었다. 「범의 심장을 쥔 여인」은 제물과 산군의 로맨스, 창귀와의 스릴러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된 작품이었으나 소설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이 부족했다. 「뱀살」은 더 확장된 세계관의 이야기를 짧은 분량에 담아내다 보니 이야기의 깊이가 덜했다.
본심에는 두 작품을 올린다. 「백중에 바다 미역하면 물귀신 된다」는 물귀신의 사랑과 그 마음이 변하는 과정을 스릴러적으로 흥미롭게 다루었다. 「너의 차가운 손길에 나는 눈을 감고」는 후반부에 힘이 덜해진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먹는다’는 행위를 로맨스, 스릴러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였다.
예심위원2
로맨스릴러 공모전이 어느덧 4회에 이르렀다. 매번 꾸준한 수준으로 응모되는 여러 작품을 보며 때론 놀라기도 하고 가끔은 실망하기도 한다. 올해는 특히 장편소설 응모가 많았는데,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장편소설은 중단편소설과 달리 긴 호흡의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입부에서 확실히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확실한 무기를 지녀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큰 그림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독자들도 동일하게 머릿속의 그 재미난 이야기에 감동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독자들에겐 그러기 전에 먼저 ‘재미’라는 달콤한 꿀을 맛보게 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호기심 생기는 사건이든 아니면 확실히 시선을 끌어잡는 유려한 문체든 말이다. 아쉽게도 이번 공모전에 응모된 장편 중에서 이러한 약점을 제대로 극복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둘째로, 공모전이 원하는 바를 단어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 게 필요해 보인다. ‘로맨스릴러’라고 했을 때 심사 의도가 어떤 작품인지는 이전 1-3회 당선작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냥 로맨스 혹은 스릴러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위치한 작품들이 더러 보였다.
고심 끝에 본심에서는 중편 분량의 작품 두 편을 올렸다. 「나랑 도망가자」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흡인력을 잃지 않은 작품이었다. 「피를 흘리는 남자」는 느와르를 잘 살린 작품이었지만 로맨스에서 다소 고개를 갸웃거린 작품이었으나, 기본은 채워줬다고 생각되어 본심에 올렸다.
「인형들」은 흥미로운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극의 전개가 아쉬웠다. 좀더 원하는 바를 강하게 드러낼 순 없었을까? 「나의 마녀를 위하여」는 공모전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작품이지만 흡인력이 아쉬웠다. 추리든 로맨스든 어느 한쪽이라도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불안중독」은 히든카드인 반전이 너무 쉽게 예측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좀더 반전을 숨길 만한 요소를 앞에 잘 깔아두었으면 싶었다. 「밤이 달을 비추어」는 흡인력이 아쉬웠으며, 「아라비안 나이트」는 로맨스에 좀더 공을 많이 들이고 기존 알려진 설정을 더 강하게 비틀었으면 훨씬 재미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본심에 오른 분들께 축하를 보내고, 본심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언급된 작품들은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다음 공모전에서 빛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예심위원3
제4회 로맨스릴러 문학 공모전에서는 로맨스가 부재한 스릴러 작품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다는 설정만으로는 로맨스릴러라고 보기 어려웠다. 등장인물의 언행이나 동기에서 사랑과 로맨스를 느낄 수 없거나 단순히 범죄를 로맨스로 포장한 이야기도 있었다. 시대의 감수성을 역행하는 이야기도 적지 않아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참신한 이야기를 앞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토마토의 나라」는 르포 문학 같은 상세한 배경이 인상적이었으나 전반적으로 로맨스보다는 가상의 부족 문화를 다루는 데에 집중하여 흡인력이 부족했다. 「이름을 위해」는 이해관계가 얽힌 복제 인간과의 로맨스가 위태로운 분위기를 형성하였으나 소설적 재미와 참신함이 부족했다. 「데볼라티오 가문의 저주」는 가문의 독특한 저주를 푸는 과정에서 긴장감은 느낄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로맨스를 찾기 어려웠다. 「나나처럼 입기」는 황당한 설정들을 과감하고 유쾌하게 전개해 나가는 힘이 있었으나 로맨스가 부족하고 코미디 장치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환상의 파티션」은 사내 메신저와 비밀 공간 등 초반의 판타지 설정이 눈길을 끌었으나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스릴러의 요소가 부족했다.
본심에 올리는 작품은 「데스 데 모나」, 「화경제」 두 작품으로 광의의 로맨스로 해석했다. 「데스 데 모나」는 로맨스보다는 대기업의 비윤리적인 행보가 두드러졌으나 시대상을 반영한 재벌가의 드라마가 냉소적으로 펼쳐져 흥미로웠다. 「화경제」는 뱀 신의 사랑에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으나 이야기에 매료되게 하는 흥미로운 설정과 분위기가 있었다.
예심위원4
로맨스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의 조화로운 접점을 찾기 위한 네 번째 여정이 예상보다 많은 참여로 마무리되었다. 주제에 부합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문학상에 응모했던 원고를 개고 없이 재출품하거나 내레이션의 서술에 캐릭터들이 지시를 받는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소설적 연출이 없는 문장 나열 위주의 응모작들도 더러 눈에 띄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반대로 잘 정돈된 분위기와 안정적 서사가 돋보였지만 공모 주제에 해당된다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응모작들도 있었다. 정당성 없는 가학적 관계를 로맨스로 포장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섣부르게 로맨스로 치유하려는 위험한 시도도 여전했다. 또한 대중 콘텐츠에서 익숙하게 접한 소재와 시대 배경을 차용하고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그 작품만의 고유한 개성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한 주인공과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룬 「그 많던 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는 이성애적 규범의 로맨스를 넘어 장르의 확장을 시도하고 다양한 감수성을 제시하는 훌륭한 이야기였으나, 자칫 소재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탓인지 캐릭터의 활용 등이 자연스럽지 못한 완성도의 아쉬움이 있었다. 「복사꽃과 밤」은 시대를 넘나드는 뱀파이어 로맨스였으나 전반적으로 서스펜스가 부족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불모의 계절」은 정교한 선화를 보는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시각적 감각이 인상적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로맨스 요소가 희박했다.
다음은 본심에 올린 작품이다. 「부서지는 심장」은 전반적으로 거칠게 느껴지긴 하지만 독특한 상황 설정을 배경으로 한 전개와 인물들의 감정선이 비교적 매끄럽게 느껴지며 다양한 감수성을 확장하는 퀴어소설이었다. 중편 분량의 「놋뱀과 푸른 빛」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전개 방식이나 캐릭터들 간의 연결성이 다소 엉성하고 산만한 느낌이었으나, 서양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다크 판타지 로맨스라는 점에서 공모전 주제에는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자력구제금지」는 안정적인 문장력과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특성과 전개 흐름이 돋보이는 장편이었다. 다소 작위적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는 부분도 있으나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결말의 타격감을 위해 곳곳에 뿌려 두었던 설정을 회수하며 스릴러적 면모를 쌓아 올리는 데에도 공을 들인 인상이다. 결말에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으나 공모전의 장르와 주제에는 부합한다고 여겨 본심에 올린다.
예심위원5
로맨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대부분의 응모작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그것들이 과연 ‘장르로서의 로맨스’라는 상대적으로 좁은 범주에 부합했는가 생각해 보자면 썩 긍정하기가 쉽지 않다. 인물의 관계를 점층적으로 쌓아 올려 감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일방적인 감정 발산에 그치거나 혹은 다른 테마를 보여 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을 경우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작품들이 대동소이하다면 결국 끝의 끝에 가서는 ‘어디에나 적당히 부합하는 이야기’보다는 ‘이 공모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예기치 않았던 만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토성의 바다」와 「사거리의 악마」, 「손 흔드는 집」은 각기 전개와 결말에서 호오가 갈릴 만한 부분이 있으나, 로맨스와 스릴러를 적절하게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본심에 올렸다.
「일 분의 삼」은 흡인력이 좋은 호러였지만 로맨스적인 요소가 나오기까지 지나치게 뜸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으며, 「기술복제시대의 사랑」도 죽은 연인의 목소리를 AI로 복제한다는 설정이 돋보였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검은 옷의 아내」는 고딕 소설 같은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으나 설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여신이여 노래하소서 사랑의 노래」는 잘 알려진 신화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읽는 입장에서는 색다른 파격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본심 진출작
백중에 바다 미역하면 물귀신 된다
너의 차가운 손길에 나는 눈을 감고
토성의 바다
손 흔드는 집
사거리의 악마
데스 데 모나
화경제
자력구제금지
부서지는 심장
놋뱀과 푸른 빛
피를 흘리는 남자
나랑 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