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고 고된 삶을 살아내는 다양한 여성들의 서사를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을 기념해 7인의 저자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각 저자 분들께는 서면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 질의서를 보내드리고 원하는 항목에 대한 응답을 요청했는데요, 각자에게 와닿은 랜덤한 질문들에 대한 진솔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내 왔습니다.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들에 보다 긴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지금부터 그 이야기들을 한데 소개합니다!
Q.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비파가 표지에 실려서 매우 감사합니다.
Q. 「황금 비파」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작품 설명에도 이미 있습니다만 「황금 비파」는 러시아/동슬라브 영웅설화 「사드코」를 참고로 하여 동양적으로 각색해 쓴 작품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의 괴담도 참고했으며 2017년도 작품이라 바로 그 전년도에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이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의제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Q.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인공이 오로지 영웅적이기만 하거나 오로지 피해자이기만 하지 않도록, 억압받은 경험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두려움과 용기와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인물로 묘사하려고 신경 썼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므로 그 부분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Q. 「황금 비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과 그 이유가 있을까요?
“황금 비파는 여자가 온 힘을 다해 호수 괴물의 목을 조르는 동안 이제까지 그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꿈결 같은 곡조를 혼자서 연주했다.”
나쁜놈 죽이는 장면이 좋아서요.
Q. 가장 처음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장 처음 쓴 글은 단편 「머리」이며 아작 출판사에서 출간된 『저주토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변기에서 머리가 나와 여주인공을 쫓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브릿G에 공개한 단편 「야간작업」입니다. 본의 아니게 인조인간을 해방시키는 비밀단체에 참가하게 된 주인공이 자신이 과거에 구해 준 인조인간과 함께 ‘작업’을 맡게 된 이야기입니다.
Q. 글을 쓰는 데 동력이 되는 것이 있을까요?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제가 몰랐던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Q. 어떤 이유로 브릿G에 들어오곤 하시나요?
브릿G는 작품을 마음 편하게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라서 작품을 올리거나 좋아하는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브릿G숍에 구경하러 종종 갑니다.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감겨진 눈 아래에』 표제작을 쓰신 전혜진 작가님의 단편 「언인스톨」 추천합니다. 아주 한국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고, 암울한 이야기인데도 전혜진 작가님 특유의 유머감각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매우 뭉클합니다. 올해 초에 출간된 ‘토피아 단편선’ 중에서 디스토피아편 『텅 빈 거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Q. 「황금 비파」를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황금 비파」의 모티브가 된 러시아 영웅설화에서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성 니콜라이 모자이스키(바다의 성자 니콜라스)에게 구원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오고, 여기에 감읍하여 개심한 주인공이 전재산을 바쳐 정교 성당을 세우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성당 지붕도 황금색이고 하여(진짜 황금입니다. 매년 새로 바릅니다.)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정도경
연세 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단편 씨앗으로 제1회 SF 어워드 단편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죽은 자의 꿈』, 『문이 열렸다』, 『저주 토끼』, 『붉은 칼』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안드로메다 성운』, 『거장과 마르가리타』, 『구덩이』, 『유로피아나』, 『일곱 성당 이야기』,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등이 있다.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와 SF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Q.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른 좋은, 훌륭한 작품들 사이에 살짝 끼어 앉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면에 실을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싣게 돼서 정말 행복합니다.
Q.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실감이 있지만, 지나치게 특정한 인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이를테면 독자가 “이건 경험담인가요?”라고 물을 만한 이야기일 때, 특히나 저 자신의 경험담이 되지는 않도록 거리감에 유의합니다.
2번 질문과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인데, 학생 시절에 저 자신이 공부방 교사 활동을 했기 때문에 쓰면서나 고치면서나 고민이 길었습니다. 그저 겉핥기처럼 주워듣고 본 것을 혹 아무렇게나 전시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면이 여전히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초희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인, 전해 듣는 이야기로 구성하고 가능한 한 화자인 ‘나’의 이야기로 끌어오려 했습니다.
Q. 「망선요」에 대해 받았던 가장 인상적인 리뷰나 비평이 있을까요?
사실 이 글은 10년 정도 묵은 글입니다. 처음 썼던 시기에나, 브릿G에 공개한 후에도 언제나 “우리 집하고 비슷하다”는 평을 꼭 듣게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서사보다는 모녀관계의 어떤 복잡한 감정의 ‘결’이 그런 감상을 끌어오는 것 같습니다.
Q. 글을 쓰는 데 동력이 되는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댓글 감상 추천 독촉 그리고 입금입니다.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여러분 앤젤라 카터를 읽어 주십시오! 앤절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요 근래에 만화 『재윤의 삶』을 읽었는데 젊은 여성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 생각해요.
김인정
『화조풍월』로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장편 부문 본심상을 수상했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독자 우수 단편에 선정된 후 필진으로 합류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동양적, 서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환상소설 작품집 『홀연』을 출간하였으며, 『아직은 끝이 아니야』 등 다양한 앤솔러지에 단편을 수록했다.
Q.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마존 몰리」가 드디어 책에 실렸네요! 제게도 큰 의미가 있는 단편이니만큼, 뜻깊은 작품집에 함께 수록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Q. 「아마존 몰리」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작중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발상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학 때 황우석 사건의 젠더 이슈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 전까지는 데이터 조작의 측면에서만 생각해 왔던 사안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싶었어요. 이외에도 당시에 배웠던 과학기술계 내의 이런저런 여성 문제를 글에 가능한 한 반영해 보고 싶었습니다. 배운 내용을 참고하면 그래도 아주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란 생각을 했거든요.
Q.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마존 몰리」의 화자는 남성 과학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을 뿐인 인물이잖아요? 심심해지기 쉬운 역할이기 때문에, 한정된 분량 내에서 최대한 개성을 넣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호기심이 강하고 심사가 좀 비틀린 인물이 됐어요. 이 글을 처음 쓸 때가 하필이면 졸업논문 준비 기간이었는데, 그 영향도 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어떤 이유로 브릿G에 들어오곤 하시나요?
최근에는 앤솔러지나 잡지에도 글을 여러 편 실었습니다만, 그런 마땅한 지면이 없이 개인적으로 쓴 단편 작품을 공개하기에는 여전히 브릿G가 가장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편 연재작이 아닌 단편 소설을 공개할 만한 공간은 흔치 않잖아요. 단편을 모아 놓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으니만큼, 화제가 되는 다른 작가들의 단편을 읽기 위해서도 자주 접속합니다.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듀나 작가의 『민트의 세계』요! 고양감이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결말까지 짜릿하게 달리는 맛이 있었어요. 같은 작가의 단편 「구부전」도 최근에 읽었는데,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리얼리티 덕분에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이산화
GIST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물리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단편 「증명된 사실」로 2018년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와 단편집 『증명된 사실』이 있으며,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과 『전쟁은 끝났어요』 등 다양한 앤솔러지에 단편을 수록했다.
Q. 「폐선로의 명숙 씨」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폐선로의 명숙 씨」는 해운대와 송정을 잇는 동해남부선 폐선로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길이 산책로가 되었을 때, 언젠가 이 곳을 무대로 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길에 얽힌 역사(1985년 청사포 앞바다 간첩선 격침사건)를 포함해서요. 명숙 씨와 강이가 해운대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포항으로 갈 때 그 길을 지나는 장면은 저의 아주 어릴 적 경험입니다.
기찻길은 어딜 봐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배경인데, 1985년의 사건으로 인해 그 구간만큼은 오갈 수 있되 오갈 수 없는 닫힌 배경이 되었어요. 거기에 담긴 애환이 분명 있을 테고, 그것을 명숙 씨와 기억이라는 소재로 풀어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명숙 씨가 격침된 간첩선에 타고 있던 간첩이란 설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치우칠 수 있단 조언을 듣고 그 설정을 뺐어요. 그러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Q.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엄마와 딸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가장 신경 썼습니다. 특히 딸인 강이의 엄마를 놓지 못하는 마음이 잘 전달 되기를 바랐어요.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며 어쩌다보니 강이가 저와 똑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그래서 더 이입하며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폐선로의 명숙 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과 그 이유가 있을까요?
“더 이상 기차는 오가지 않는 철길 위에서, 단지 엄마는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을 것처럼 내 손을 꼭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엄마와 딸은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폭력을 대물림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어요. 작내에 두 사람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받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종국에는 화해와 이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이후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긴 세월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더는 놓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Q. 「폐선로의 명숙 씨」에 대해 받았던 가장 인상적인 리뷰나 비평이 있을까요?
강이가 명숙 씨를 보내 주었다면 어땠을까요, 라는 댓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보내준다는 전제를 생각하지 않고 쓴 글입니다만, 그 때 한 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됐을 거란 예감이 드는데,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Q. 「폐선로의 명숙 씨」를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근 SNS등을 통해 여성서사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여성서사란 무엇일까요? 제 글, 그리고 이 작품집에 모인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각자의 여성서사 기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연대하고, 따듯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해후합시다.
양원영
나우누리,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SF 단편집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를 출간했으며, 앤솔러지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2』, 『아빠의 우주 여행』, 『여성작가 SF 단편 모음집』 등에 단편을 수록했다. 현재 항구 도시에 살며,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Q.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정도겠네요. 정말로 제가 적은 글이 이름 모를 많은 분들에게 팔리는 날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출간 제의가 처음 온 날은 굉장히 흥분되었죠.
이렇게나 반응이 정직(?)한 건 역시 처음이기 때문이겠죠. 편집부에서 프로필을 달라고 하셨을 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다른 여섯 분의 작가님들의 프로필을 보니 모두들 ‘경력’을 하나 이상은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탓인지 다른 작가님들에 비해 글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이 큽니다. 하지만 그런 글이라 해도 세상에 드러날 가치가 있기에 드러난 것이라 여기고, 제 첫 글과 첫 책에 얽힌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Q.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가정폭력 사건과 처벌 수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답답해집니다. 남편이 아내를 습관적으로 폭행하다가 ‘실수로, 어쩌다가’ 죽여 버리면 ‘고의성이 없었으므로’ 가벼운 형을 받고, 반대로 상습적으로 폭행당하던 아내가 버티지 못하고 남편에게 반격하면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살인이므로’ 중형이 선고되는 일을 우리는 정말 자주 봅니다.
짧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간단히 압축한 도식으로 ‘우리가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이러한 양형이, 전근대 유럽에나 있을 법한 작중의 사형 판결에서 얼마나 발전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Q.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 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과 그 이유가 있을까요?
이건 빠르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겠네요.
“그들은 모두 못난 부인을 정당한 이유로 때리는 남편이지, 남편의 짜증을 해소하기 위해 얻어맞는 아내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앞뒤의 내용을 모조리 지우고 이 한 문장만 남겨 두어도 제 수록작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전부 전해질 것 같습니다.
작중이든 현실이든 법을 만드는 사람, 판결하는 사람이 모조리 가정폭력의 가해자에게 공감을 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죠.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과 입장을 잘 반영하려면 그만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이 권력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Q. 가장 처음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짐작이지만, 아마 많은 작가님들은 작가를 꿈꾸던 시절에 쓴 ‘부끄러운’ 옛 글을 하드디스크 깊숙한 곳에 (이왕이면 숨김 처리해 두고) 봉인해 두고 계시거나, 진작 휴지통 속으로 밀어 넣어 폐기하셨을 겁니다.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말이죠.
적어도 제게는 그런 글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보고 먼지 쌓인 폴더 안에서 발굴해 냈는데, 가장 오래 된 건 2015년 1월 6일이네요. 제목은 「어느 날 길에서 권총을 주웠다」인데요, 이 제목은 3년 뒤 제가 브릿G에 처음 올린 글로 부활합니다. 물론 내용은 아예 딴판이지요.
최근에는 몇 달 동안 작품 활동을 전면 중지했습니다만, 어쨌든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마찬가지로 브릿G에 연재한 「브랜디쉬」네요. 장르가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이 대충 망한 뒤를 배경으로 한 백합 로맨스판타지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1부를 연재해 둔 이후로 무기한 휴재 상태인데, 뒷내용은 전부 구상해 두었습니다만 도무지 글로 옮길 자신감도, 기력도 모조리 사라졌지 뭐예요. 휴재한 지 석 달은 된 것 같은데, 막상 확인해 보니 아직 두 달도 안 지났네요.
현재 목표는 판타지 요소가 전혀 없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두 권 정도 분량의 글을 쓰는 것입니다.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타케요시 미노루라는 작가의 여섯 권짜리 만화 『고성소의 슈베스터』가 인상 깊었습니다. 처절하고 집념 넘치는 밑바닥의 주인공의 모습을 한 번쯤은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Q.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를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 가장 처음에 말해야겠죠.
제 작품에 눈길을 주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고, 어딘가에 감상 올려 주시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제 짤막한 글이 몇몇 화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죠.
유월
미숙한 20대. 괴팍하고 괴이하고 괴상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내세울 만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1등의 영광에 가려진 2등, 승자의 그늘 뒤편의 패자를 사랑한다. 남들이 안 하는 것만 굳이 골라 하면서 튀어 보이려 하는 것도 좋아한다. 모든 종류의 치즈를 매우 좋아하며, 프로필에 적으면 누군가가 사 줄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한다.
Q. 「애귀」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제목인 ‘애귀(哀鬼)’는 제가 만들어 낸 어휘가 아니에요. 대만 역사 칼럼 사이트에서 진나라 죽간에 새겨진 귀(鬼)들을 구분해 놓은 칼럼을 읽었는데, 거기서 애귀라는 귀에 관한 설명을 봤죠. 애귀가 붙은 사람은 깨끗한 걸 좋아하고 얼굴이 창백하며 식욕을 잃었다고 하는데, 저는 선후관계가 반대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애귀가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애귀가 붙는 거라구요. 가슴이 아파서, 안타까워서,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거죠. 소설을 읽어보면 애귀가 붙은 사람이 지녔다는 특징을 ‘너’가 모두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애귀’가 슬퍼하고요.
애귀가 누구에게 붙었을까, 어떤 사람이 저런 유형에 속할까라고 고민을 하다 탈북 여성이 생각났어요. 사실 제 가족의 절반이 북한 이탈 주민이거든요.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 같아요. 실제로 글을 쓸 때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선족 집과 다르게 한족 집은 담이 너무 높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 한국에 온 뒤 중국에 남은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 아버지와 다시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였어요. 특히 후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 한동안 충격에 빠졌어요. ‘애귀’라는 존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최대한 현실을 반영해서 쓰려고 했는데, 저 결말만큼은 그려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이뤄 낼 가능성이 있는, 희망적인 결말을 보고 싶었어요. 고혼을 위로하는 공연처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 것 같아요.
Q.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래 「애귀」는 딸인 연주의 시점에서 쓰려고 했던 글이에요. 어느 날, 엄마 옆에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보게 된 연주가 귀신을 쫓으려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찾는 게 원래 이야기였어요. 사실상 엄마 곁을 배회하는 애귀를 보게 된 건데, 엄마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진행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아무리 간접적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어린 연주 캐릭터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화자를 애귀로 바꿨어요. 소설 속 ‘애귀’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들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했어요. 함께 공명하며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애귀도 탈북 여성도, 사실 상당수의 독자들에게는 이질적인 존재잖아요. 하지만 그 이질감에서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어요. ‘너’의 곁을 배회하던 ‘애귀’처럼요. 언젠가는 ‘너’도 자신과 함께하는 ‘애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연주가 엄마 곁을 배회하는 ‘애귀’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요.
Q. 「애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과 그 이유가 있을까요?
“네가 세워 놓은 다리를 지나 네 얼굴을 보고 네 목소리를 들으러. 바다를 건너 너를 보러 왔다.”
저는 탈북 여성이 겪은 일들이 바다에 다리를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바다를 지나는 다리는 개인이 세울 수 없어요. 이건 사회가, 정부가, 나라가 나서야 하는 일이죠. 탈북자들은 사실상 난민이에요. 이들을 지켜 줄 수 있는 사회도, 정부도, 나라도 없죠. 그중 가장 약자인 여성은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수단이 되었어요. 돈 벌이의 수단,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 심지어는 북한 정부나 중국 정부를 비판할 때만 쓰이는 정치적 수단이 되기도 했죠.
모든 걸 이겨내고 한국에 오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간 분들은 홀로 바다에 다리를 세운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힘들게 한국에 오고 나서도, 차별과 억압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다리를 세우지 못해 바다를 표류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도요. 소설 속 ‘너’는 바다에 다리를 세웠지만, 아직 많은 ‘너’들이 남아 있어요. ‘애귀’는 귀라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아니잖아요.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가장 처음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에 포기한 걸 제외하고, 처음으로 완성해 본 글은 브릿G에 올렸던 「피오니 호스텔」이라는 단편 글이에요. 타이난 여행을 갔다 온 뒤 저만의 여행 후기를 남기고 싶어서 처음으로 써 본 단편 소설인데 예상치도 못한 좋은 반응을 얻어서 계속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그때 독자분이 댓글을 남겨 주지 않았더라면, 편집장의 시선에 뽑히지 않았더라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마 5년 전부터 쓰고 있던 희곡 한 편을 아직도 붙잡고 있었을 거예요.
요즘에는 본업이 되어 버린 번역 일이 너무 바빠 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쓰고 싶은 글은 정말 많은데…… 만력제 때 있던 대기근을 배경으로 치우와 발, 태자와 무협 고수의 이야기를 좀비물로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기간 안에는 못 쓸 것 같아요. 올해 안에는 쓰겠지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려고요. 조급한 마음을 덜어내고 좀 더 차근히 글을 쓰면 더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고 있어요. (근데 제 경우엔 차근차근 쓴다고 해서 더 나은 글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헝거 게임』이요. 사실 영화로 먼저 봤는데, 얼마 전부터 소설로 읽고 있어요. 영화 너무 ‘갓작’이고 저는 OST인 「The Hanging Tree」를 들을 때마다 울어요. 요즘 부쩍 이런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특히 여성 청소년이 읽을 만한 글을 쓰고 싶어요. 생각해 놓은 소재는 있는데 아직은 좀 더 숙성시켜야 할 것 같아요. 내년 여름까지 청소년 소설로 장편 한 권 써 보는 게 목표예요.
김이삭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사료를 탐독하며 소설과 희곡을 사랑한다. 황금가지 제1회 어반 판타지 문학 공모전에서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홍콩 영화와 대륙 드라마, 대만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전공했고 동대학원에서는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Q. 작품집 『감겨진 눈 아래에』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2015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상해서 태어나고 좀 지났을 때 쓰기 시작한 소설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구상했던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도 올해 『280일』이라는 새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구상한 소설들이 몇 년이 지나 나란히 출간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특히 이번에 이 단편프로젝트 앤솔러지에 함께하시는 작가님들이 모두 쟁쟁한 분들이셔서,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요.
Q. 「감겨진 눈 아래에」를 쓸 때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되었던 경험이나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 키워드, 사건, 이미지 등이 있을까요?
2015년 처음 이 이야기를 쓸 무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물론 당시의 정치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여성이 얼마나 ‘아이를 낳는 도구’처럼 취급받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도 있고요.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정치인들이 이와 관련해 막말을 하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그 무렵 여자들도 징병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웹툰을 보면서 당황한 게 있었습니다. 이건 이 한 가지의 큰 변수가 달라지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을지를 다룰 수 있는데, 어째서 이 배경으로 지금과 차이가 없는 세계만을 이야기하는가. 그 무렵의 상황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개선되지 않은 채 징병의 대상이 된다면, 그리고 그 상태로 10년, 20년이 지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희망편’과 ‘절망편’, 이렇게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는 그 중 절망편입니다. 한 나라, 한 사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사회가 성장하면서 생기는 문제와 이전 시대의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는데, 이 둘을 여전히 유지한 채로 인권의식이 사라질 경우, 약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부분에 매달려서 썼습니다. 정확히는 이 문제의식은 그 전에 만화 『리베르떼』를 작업하면서 고민하던 부분인데, 이 부분을 ‘절망편 한국’의 20년 뒤에 대입하니까 이야기가 풀려 나왔죠. 그러다가 2016년 무렵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이 있었고, 또 대통령 퇴진운동, 탄핵,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다시 두 번 더 고쳤고, 브릿G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Q. 「감겨진 눈 아래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과 그 이유가 있을까요?
“바로 그들이 그 정책을 지지했다. 그저 자신들의 아주 작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층의 큰 기득권에 기생하면서.”
『감겨진 눈 아래에』가 온라인 서점에 올라왔고, 제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바로 오늘(2019.8.13.) 그런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모 명문대에서 필수로 인권 관련 학점을 수강하게 했더니,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인권 교육”이라든가 “강제적 인권 교육으로 학생의 교육 선택권 침해”, “건학 이념에 반하는 젠더교육 의무화”같은 말을 하면서 반대 시위가 열렸다고 해요. 예, 바로 그들이 그 정책을 지지할 겁니다. 작은 기득권 때문에 타인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인권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요.
Q. 가장 처음 쓴 글과, 가장 최근에 쓴 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장 처음에 쓴 글은 역시 중고등학교 때 그리고 쓰던 연습장 만화, 몇몇 순정만화의 2차 창작, 셜록 홈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 마이크로프트를 주인공으로 해서 쓴 소설들(이것들은 나중에 만화 『레이디 디텍티브』가 되었습니다.)이었습니다. 학교 문예 대회에 냈던, 언젠가 제대로 된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SF물도 있고요.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겠다고 썼던 것은 소녀 황제가 주인공인 꽤 긴 동양풍 판타지 소설이었는데,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도 도전했다가 떨어졌어요.(그러고 보니 김인정 작가님은 그때 상 받으셨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써보고 싶은데 당분간은 그럴 틈이 없겠네요. 데뷔는 뜻밖에 라이트노블 쪽(『월하의 동사무소』)에서 했습니다. 순정만화 잡지 쪽에서 주관한 공모전이어서, 그 일을 인연으로 만화와 웹툰 일도 하게 되었고요.
게릴라 식이라고 해야 하나. 한 장르를 깊게 파지 않고 이 장르에서 몇 종, 저 장르에서 몇 종,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쓰면서 옮겨 다니다 보니 꾸준히 한 우물을 파시는 분들이나 꾸준한 매체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은 오늘 새벽에 마무리해서 점심 먹고서 문장 웹진에 보낸 단편 소설입니다. 제목은 「우주멀미와 함께 살아가는 법」입니다.
Q. 글을 쓰는 데 동력이 되는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농담 아니라 진짠데, “성실한 입금 확실한 원고”라고 명함에 새기고 다닙니다.
Q. 평소 또는 최근에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소설로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과 『운명의 딸』을 좋아합니다. 파이스트의 『제국의 딸』도 인상적이고, 어렸을 때 본 것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면 『제인 에어』나 『빨강머리 앤』이나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 같은 것도 나올 것 같은데요. 하지만 국내작으로 한정한다면, 멀리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여성 서사도, 한국 SF의 계보도 “순정만화”라 불리는 장르로 연결되니까요. 일본 만화에서 벗어난 80년대의 한국 순정만화들, 그리고 80년대에 순정만화를 보고 자라다가, 90년대에 대학에서 접했을 페미니즘의 조류를 만나 확장되었을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세계들. 이 맥은 온전히 웹툰으로만 다 넘어간 것이 아니라, 잡지 시장에서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로맨스판타지 웹소설 쪽으로 분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잡지들이 나오고 있으니 봐주시면 좋겠어요.(특히 80년대에 『북해의 별』을 내놓으셨던 거장 김혜린 선생님께서 잡지 《ISSUE》에서 현재 『인월』을 연재하고 계십니다.)
Q. 「감겨진 눈 아래에」를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황금가지는 십수 년 전부터 ‘언젠가 저기서 책을 내고 말 거야.’라고 다짐하던 곳인데 마침내 위시리스트에서 한 줄을 지우게 되었네요. 브릿G에서 성원해 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괴로워도 끝까지 쓰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괴로워도 끝까지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께는 다른 작품의 독자님들보다 좀 더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혜진
라이트노블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했다. 『다행히 졸업』, 『텅 빈 거품』 등의 앤솔러지에 단편을 수록하였으며, 작품으로는 SF인 『홍등의 골목』, 스릴러 『족쇄-두 남매 이야기』와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인 『280일: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등이 있다. 『레이디 디텍티브』와 「펌잇」 등 만화․웹툰 스토리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