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전일도 사건집’ 디자인 작업기 공개!

2019.10.11

김나연 디자이너와 함께 나눈 수다 기록

Q. 그림 천재님 안녕하세요. 회의 때 처음 『탐정 전일도 사건집』 표지를 봤을 때부터 또 깜짝 놀랐습니다.(참고로 김나연 디자이너는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과 『7맛 7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등의 표지 그림을 직접 그린 전적(?)이 있습니다.) 이번 표지도 직접 그림을 그려 작업해 주셨는데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구상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A. 처음 수록된 단편들을 다 읽고 났을 때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와닿았어요. 특히 「헬로-욜로」에서 갭투자 현상을 다룬 걸 보면서 단층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작품들을 읽고 떠올린 구조물 그림 ⓒ김나연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올라가는 단상 이미지와 여러 가지 건물이 결합된 이미지를 쓰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찾기 힘들 것 같아서 그리는 게 최선일 것 같더라고요.( :smile: ) 그래서 피라미드 같은 단층 구조에 집의 형태들을 넣어가면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리면서 점차 아파트 옥상이나 창문 같은 것들이 들어갔고요.

 

Q. 맞아요, 계급에 대한 메시지들이 작품에서 많이 감지되는데 이렇게 건물 구조로 표현이 되니 새롭고 곳곳의 디테일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뿐만 아니라 건물들 위에 다양한 인물들이 다 올라가 있잖아요. 전일도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려 주신 것 같은데, 이런 캐릭터들은 어떻게 작업하게 되셨나요? 표지 곳곳을 뜯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 봐요.

A. 먼저 인물들은 어떻게 그릴지 고민을 하면서 스케치를 해나갔어요.

초기 인물 스케치 ⓒ김나연

처음 스케치했던 그림들은 이런 형태고요. 수록 작품에 나오는 장소나 인물들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하나씩 그리게 되었어요.

이 부분은 그리다 보니 피아노 학원 다니는 아이가 난간 잡고 놀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같은 것도 넣어 보게 되었는데, 제가 어릴 때 실제로 저러고 놀기도 했어요.( :lol: ) 그런 모습들을 담아 봤고, 교복을 입은 ‘나은’이가 서 있는 옥상은 제가 다녔던 학교 건물을 떠올리며 그린 부분이기도 해요.

제가 처음 읽은 전일도 탐정의 이야기가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이에요. 『7맛 7작』에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스테파니 황’에게 약간 내적인 친밀감이 더 쌓여 있었거든요. 작품에서 처음에 스테파니 황이 처음에 ‘라 미아 까사’라는 레스토랑의 셰프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결국엔 꿈을 좇았던 스테파니 황이 자신이 꿈꾸던 가게를 실제로 연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이 부분은 ‘루리’가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방향성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얼굴도 다짐하는 표정으로, 자세도 당당하게 그리려고 했고요.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계급이라는 키워드와 건물 구조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구도를 짰고, 작업하면서 부분 부분의 요소들을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야기가 많다 보니 작품들을 읽으면서 하나씩 키워드 맵을 정리해 나갔고요.

작품을 읽으면서 정리했던 디자이너의 마인드맵. 자세히 보면 각 인물과 모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렇게 정리한 마인드맵을 중심으로 최종적으로 표지 그림에 어떤 걸 넣을지 정하고, 지나치게 디테일해지는 요소들은 빼면서 작업을 했어요. 웨딩카 같은 것도 그리긴 했는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림이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빼게 된 경우예요.

 

Q. 연작 단편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주인공 ‘전일도’잖아요. 신경 많이 쓰셨을 것 같은데, 전일도를 그릴 때 잡았던 기준이나 방향이 있을까요?

A. 일단 전일도는 뛰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탐정이니까, 뭔가 역동적인 모습을 담았으면 했어요. 탐정 같은 느낌을 보여줘야 해서 전형적인 소품인 돋보기나 트렌치코트 같은 것도 넣었고요. 티셔츠 안에 ‘DETECTIVE’라는 글자도 넣었고요. 탐정이다 보니 취재를 하는데 카메라는 요즘 시대에 맞게 휴대폰으로 바꿨습니다.( :grin: ) 주인공이니까 전일도 그림은 다른 인물들보다 크기도 더 키우고, 3명으로 만들고, 박도 넣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Q. 표지에 전일도가 다양한 모습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3명이 다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고민도 드셨나요? 

A. 네, 그래서 후가공으로 박을 넣으면 구분이 좀 될 것 같았어요. 선배 추천으로 홀로그램 박을 썼는데 딱 잘 어울려서 진짜 만족해요.

전일도가 짠짠짠! 하고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일도의 모션도 커집니다.( :grin: )

 

Q. 전일도 삼인방 중에서 맨 위쪽 전일도 머리에 있는 소품은 무엇일까요?

A. 이런 소품을 패시네이터라고 한대요.「우리들의 미래」라는 단편에서 전일도가 쓰고 나오는 장식용 소품이에요.

특히 이 단편은 전편에 등장했던 작중인물들이 모두 나와 서로 연대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피날레 같은 느낌도 받았던 터라, 선물 포장(?) 같은 이 소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일도에게도 이 패시네이터를 꼭 씌우고 싶었어요.

 

Q. 패시네이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자 묘사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각 작품들의 속표제지(속칭 도비라)에도 각기 다른 모자들이 그려져 있고요.

A. 접하는 인물이 달라질 때마다 모자가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소품들을 다양하게 그려봤어요. 작품에도 모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귀여운 느낌도 들어서 표지에 모자를 최대한 많이 쓰고 싶었는데, 만들고 보니까 막상 많이 안 들어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차례’ 페이지에 활용하려고 했는데, 이게 또 질감이 있는 그림들이다 보니 크게 넣는 게 예쁠 것 같아서 아예 속표제지에 쓰게 됐어요.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모자들 그림 ⓒ김나연

 

Q. 모자 그림들이 각 작품하고 내용적으로도 연결이 되는 거죠?

A. 네,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자를 그린 거예요. 저는 이게 너무 귀여워서(ㅠㅠ) 마인드맵을 짜면서도 ‘모자’ 위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작업하면서는 모자 폴더를 만들어서 모자 사진도 수집했고요.( :wink: )

그릴 때 제일 힘들었던 모자 소품은 역시 패시네이터였어요. 리본이나 레이스가 달려 있기도 하고, 검색을 해도 너무 다양한 모양이 나와서 특정 형태를 따라 그리기보다는 제가 그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야 했거든요. 또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어릴 때 선물 받은 패시네이터가 하나 있긴 해서 그걸 떠올리면서 그려봤습니다.

다만, 마지막 작품인 「용꿈이면 면천이라」에는 모자가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시대적 배경이 워낙 달라서 댕기를 그려서 속표제지에 활용했어요.

 

Q. 저희가 나연 님과는 어느덧 세 번째로 표지 작업기 이야기를 매거진으로 전하고 있는데요, 매번 작품들을 다 읽고 그 안에서 직접 키워드를 뽑아서 발전시키는 느낌입니다. 수록 작품들을 다 읽고 하려면 힘들지 않으신가요.

A. 저는 원래 단편을 좋아해요. 호흡이 긴 작품이라면 힘들겠지만 단편은 읽어보고 하는 게 편한 것 같아요. 그래야 전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보이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때는 각 작품의 요소들을 추려서 그렸었는데, 『7맛 7작』 때는 그렇게 하려니 또 답이 안 나와서 선배 조언에 따라 ‘파스타’라는 키워드 하나만 가지고 작업을 한 경우예요.

이번 작품은 작가가 같고 주인공 캐릭터가 뚜렷하니까, 모든 이야기가 다 들어 있지는 않아도 되어서 편하게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었어요.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은 처음부터 작품들을 다 그릴 생각은 없었는데( :smile: ), 하나씩 그리다 보니 과반이 넘은 시점부터는 이건 넣고 저건 빼고 하는 건 또 안될 말이니까요. 그런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grin: )

>>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표지 작업기 >> 

>> 『7맛 7작』 표지 작업기 >> 

 

Q. 확실히 같은 작가의 연작 단편집이라는 점이 작업 특성에도 반영이 되었겠네요. 이쯤에서 또 전형적인 질문 하나 드리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재밌게 읽었던 단편이 있으세요?

A. 저는「어벤져스」같은 시리즈물을 좋아해요. 각각 다른 영화에 나왔던 인물들이 한 장면에 모이는 게 정말 재밌거든요. 그 연장에서 전일도 탐정이 만났던 인물들이 거의 다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의 미래」가 참 좋았어요. 마지막 장면도 되게 감동적이었고요.

작중 등장인물인 ‘미래’의 뒷모습과 면접용 목걸이

또 ‘미래’가 취업 때문에 고생하는 인물인데, 제 또래 이야기이기도 해요. 1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자들이 미래한테 가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게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다양한 나이와 성격과 환경의 여자들이 사회에 발 내딛으려는 초년생에게 한마디씩 건네는 게, 그렇게 서로 힘이 되는 장면이 울컥하기도 했고 너무 좋았어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나의 비혼식」이에요. 사실 친구들하고 비슷한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친구들도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경우가 많은데 누구 한 명이 결혼식을 하게 되면 나머지는 식장 비용 안 내고 네 옆에서 축의금 받으면서 비혼식 할 거다, 이런 식으로요.( :lol: ) 무지개색으로 옷 맞춰 입고 가겠다고요. 어차피 축의금도 못 돌려받는데 그거라도 해야겠다며 농담하곤 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재밌게 봤어요.

 

Q. 이렇게 특징적인 구조에 인물들과 여러 요소들을 넣은 그림을 완성한 다음, 표지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더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있으셨나요.

A. 다양한 모습의 여자들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런 모습이 길을 벗어나려는 이루리의 태도에 더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교복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었지만 초등학생 아이에겐 카고바지를 입히는 등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고 했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리면서 한계가 있긴 했지만요.

 

Q. 뒤표지에 있는 ‘젠가’는 어떤 표현을 담은 걸까요?

A. 아, 이건 원래는 그릴 생각이 없었는데요.( :smile: ) 텍스트를 배치하다 보니 전일도 발치 아래로 비는 공간이 있어서 뭘 넣을까 고민하다가 넣게 된 거예요. 일도와 주변의 이야기를 보면 늘 위태로운 이야기 같거든요. 취업도 안 되고. 그런 위태위태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것도 있고, 건물 느낌도 나고, 여러모로 결이 맞아서 그려서 쓰게 되었어요.

 

Q. 지금의 최종 표지 말고도 시안이 몇 개 더 있었지요?

A. 그림 배치랑 배경색 정도만 다르게 해서 만든 시안들이에요. 지금 표지로 최종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글자 배치나 배경색이 좀 더 역동적이고 눈에 잘 띄어서요. 그림이 책등에 살짝 걸쳐진 배치도 재밌었고요.

지금 표지에 쓰인 서체는 둥켈산스예요. 귀여운 느낌이 나는 서체도 써보긴 했는데, 그리다 보니 그림이 귀여운 느낌으로 들어가서 서체까지 귀엽게 가면 포인트가 잘 안 맞을 것 같았어요. 느낌이 서로 다른 서체랑 그림을 붙여 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이걸 골랐습니다.

 

Q. 지금은 산출된 표지가 어느 정도 완충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제목안만 나왔을 때는 내부에서 우려도 좀 있었지요. 정통 추리 장르의 작품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제목으로 인해 표지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그렇지 않아도 그런 우려가 있었다고 해서, 담당 편집자님이 표지를 아기자기한 방향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고요.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작업에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잘 안 그리게 돼요. 뭘 그릴지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럴 때 그려보는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전일도란?(진지)

A.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요.

일도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심각한 일들도 전일도 옆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김나연 디자이너

황금가지에서 책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브릿G 웹이미지와 굿즈도 만듭니다.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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