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로맨스릴러 ‘너는 누구니’ 이희영 작가 인터뷰

2019.8.19

‘너는 누구니’ 이희영 작가를 만나다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대상 수상작 『너는 누구니』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이희영 작가님과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집필 과정, 세세한 설정, 작가로서의 삶, 표지 디자인 등 다채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는 누구니』를 읽기 전후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지금 함께 만나 보세요.

 

너는 누구니 저자 및 작품 소개

Q. 안녕하세요. 이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과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의 말씀부터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이희영이고요. 10대에 대한 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소설가나 작가라는 말은 아직 조금 어색하고요, 스스로는 글쟁이, 글덕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개요를 짜거나 정형화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더 그렇네요. 『너는 누구니』만 하더라도 예전에 습작으로 몇 개를 써둔 단편들 중에서 한 꼭지가 시발점이 돼서 갑자기 쓰기 시작한 작품이에요. 그 단편은 청년 실업에 대한 이야기로, ‘병든 아버지’가 나오는 성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어요. 그걸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주인공인 예진이하고 서하를 만들어내게 됐죠.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수상까지

Q. 『너는 누구니』는 제1회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에 대상을 받으며 출간이 되었죠. 로맨스릴러 공모전에 응모하시게 된 계기나 브릿G를 알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 참!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외에도 수상 경력이 참 화려하신데, 수상 소식을 들으실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도 궁금해요.

A. 수상하게 된 건 운이 좋았습니다. 아직까지 조금 어색해요. 작년 3월부터 4월 말까지 로맨스릴러 공모전이 브릿G에서 진행되었는데, 제가 3월 말쯤에 공모전을 보았어요. 로맨스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로맨스와 스릴러를 결합한 건 감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데 친절하게 공모전 요강에서 로맨스릴러 장르로 『레베카』, 『백야행』, 『렛미인』을 언급해 주셔서 이 장르를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그 책들을 다 읽었어요. 읽어 보고 나서 ‘이런 걸 나도 한번 써 볼까?’라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은 했는데, 솔직히 수상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4월 초쯤에 초고를 빠르게 쓰고 이후에 퇴고를 했어요. 공모전 덕분에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제게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당시 브릿G에 활동하지도 않았고 연재하시는 분들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 『너는 누구니』가 고등학생 이야기라서 장르문학 치고는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기대하지 않았고요. 최종 심사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기했어요. “대박!”

브릿G 공모전은 참 재밌어요. 예전에 엽서시 문학공모에 올라온 테이스티 문학상을 보고 브릿G 공모전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일반 문학상과 달리 테마가 있어서 늘 공부가 많이 되어요. 테마가 있다 보니까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고요. 그래서 가끔 브릿G에 들어와 보는데 브릿G에는 실력이 출중하신 장르소설 작가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청소년 소설 글쓰기와 매력

Q.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출간하신 장편 소설이 전부 청소년 소설이에요. 평범한 고등학생 하준이의 성장기를 다뤘던 『썸머썸머 베케이션』, 육아가 국가사업이 된 환경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독특한 소재의 미래소설 『페인트』, 그리고 불안정한 영혼인 예진이와 서하의 이야기를 그리신 『너는 누구니』까지. 유독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계속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브릿G를 보면 재능이 많은 작가 분들은 판타지를 쓰셨다가 스릴러를 쓰셨다가 하며 다양한 장르를 집필하시는데요. 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듯이 작가에게도 맞는 장르나 작품이 있다면, 저는 성인 소설이나 장르 문학을 떠나서 청소년 소설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전에 가끔 습작으로 청소년 시점에서 10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글쓰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제가 10대 목소리로 글을 쓸 때 제일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글쟁이들에게는 저마다 각자 영혼이 있다고 해요. 남자지만 여자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어른이지만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는 작가도 있죠. 저는 10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글쟁이 영혼에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후로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인연인지 신기하게 지금까지 2권을 썼는데 전부 다 남자아이가 주인공이었어요. 그래서 어디가면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름도 중성적인 편이고요. 『너는 누구니』로 그런 오해도 불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웃음)

 

Q. 글을 쓰실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으실까요? 가령 작가님은 현재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니신데, 청소년 소설을 쓰기가 어렵지 않으신지요.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A. 청소년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기 보단, 엄마이자 작가로서 글을 쓸 때 힘든 부분이 있어요. 『페인트』는 가족 소설인데, 정작 10대의 이야기를 쓰면서 청소년인 아들은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이러니하죠.

저희 집에는 TV가 없어요, 그 덕분인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런 아들이 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이 제 책이에요. 아들은 엄마가 집필하면서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웠는지 아니까 읽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애초에 저는 청소년 소설을 쓰겠다라든가 청소년 문학의 한 획을 긋겠다 뭐 이런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제 이야기를 썼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가 10대의 목소리로 나온 거죠.

 

Q. 사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꼭 청소년만 읽는 건 아니죠. 『완득이』나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소설들만 봐도 아마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읽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지 않았을까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청소년 소설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A. 청소년 소설을 읽는 분들의 리뷰를 보면 힐링을 하고 싶거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어서 읽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청소년기를 거쳐 왔고, 거쳐 오고 있는 아들딸들이 있으니까 그 나이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전 연령대가 읽는 것 같고요.

 

새로운 도전

사진 김진영

Q. 이번에 출간하신 『너는 누구니』는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에서 조금 벗어난 심리 스릴러입니다. 전작과는 다소 결이 다른 색채의 작품에 도전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순문학과 장르 문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게 문학 트렌드이긴 하죠? 그렇다고 제가 뭐, 청소년 문학에 심리 스릴러를 접목하여 쓰겠다는 거창한 목적의식으로 쓴 건 아니었고……. 다만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어져요.

처음 쓴 작품은 오리지널 청소년 소설이었어요. 그 다음에 쓸 때는 SF나 판타지, 추리 등의 요소를 집어넣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했죠. 이번 브릿G 공모전 덕분에는 스릴러를 가미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게 되었고요. 브릿G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보는 건 참 많은 공부가 돼요. 브릿G에 올라오는 날것의 작품들이나 아이디어들이 특히 좋아요.

 

너는 누구니 구상과 글쓰기

Q. 이야기를 쓰실 때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아까 글을 쓰실 때에 개요를 짜거나 정형화해서 쓰는 타입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예진이와 서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실 때는 어떠셨나요?

A. 네, 저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꼼꼼히 정하기보다는 처음과 끝만 구상해 놓고 가운데를 쓰면서 만들어 가는 스타일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병든 아버지를 가진 성인이 주인공이던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이고, 이 캐릭터를 예진이에 녹였어요.

처음에는 예진이의 아픔을 부각시키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 스릴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스릴을 강하게 만들려고 서하의 비밀을 부각시키고 예진이를 톤 다운 시키는 방향으로 다시 갈아엎었어요.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두 사람 다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죠.

제 글쓰기 방식 때문에, 저는 연재는 잘 못해요. 한번 쭉 쓰고 나서 다시 갈아엎어야 하거든요. 쓰다가 뒤에 무슨 내용이 튀어나오면 앞으로 가서 다시 복선을 깔아야 하기도 하고요. 미리 짜임새를 다 맞춰 두신 후에 쭉쭉 연재하시는 분들 대단해요. 저는 다 써 놓고 한 편씩 올리는 연재 정도라면 가능할까요. (웃음)

저는 글을 쓸 때, 어떤 땐 결말도 생각하지 않고 첫 장면과 주제만 가지고도 쓰기 시작해요. 그러다 보니 쓰고 많이 버려요. 엔딩 폴더를 따로 만들어 두는데, 그렇게 버린 게 또 제 자산이 되고 그렇더라고요. 그중에서 한 부분이 또 씨앗이 돼서 발화하기도 하고요.

 

Q. 글을 쓰실 땐 얼마 정도 걸리세요?

A. 『너는 누구니』 초고는 조금 빨리 써서 2주 정도 걸렸어요.

 

Q. 2주요? (일동 놀람)

A. 대부분 초고는 2주 정도 쓰고 그 이후로 계속 퇴고해요. 초고를 쓸 땐 편해요. (웃음) 로맨스릴러 공모전의 경우, 공모전 정보를 늦게 봐서 더 빨리 쓰고 더 짧게 퇴고했더니 할 게 못 된다 싶었지만, 그래도 마감까지 어떻게 맞춰서 넘겼네요.

 

등장인물의 세세한 설정

Q. 『너는 누구니』의 두 주인공 예진이와 서하는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캐릭터들임에도 매우 현실적이기도 해요. 작가님께서 안배하신 세세한 설정을 보며 실제로 이런 친구들이 현실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특히 예진이가 ‘완두’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애니메이션 설정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정말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볼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어떻게 구상해 내시나요?

A. 아, ‘완두’요. 저로서도 쓸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에요. 서하랑 예진이가 만나야 하는데,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계기가 필요했어요. 어떻게 하면 10대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까. 제가 일본에서 살다 온 적도 있어서, 그 계기로 애니메이션을 떠올렸어요. 어른이라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10대 아이들이라면 애니메이션을 닮은 주인공을 보고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죠. 완두라는 캐릭터는 두 사람에게 만남의 계기일 뿐 아니라 트러블이 생기게 만드는 원인으로도 설정했고요, 많이 신경 썼어요.

사실 실제로 있는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제가 게을러서요. (웃음) 이런 부분을 다 조사해서 집필하기엔 시간도 많이 걸릴 듯하고, 만약 실제로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쓰면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맞지 않는다는 등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차라리 직접 만들어 버리자 하고 만들었답니다.

이런 설정뿐 아니라 도시도 가상으로 설정했어요. 제가 서울 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까닭이 제일 커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초동’의 경우, ‘대치동’에서 모티브를 얻은 티가 나죠? 쓸 땐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도 몰랐고 공모전 작품 제출까지 시간이 없어서 일단 수정 없이 대초동으로 했어요. 나중에 다시 고쳐야지 했는데……. 수상하고 나니 에라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아무튼 예진이와 서하가 사는 동네가 대초동에서 반대편에 있는 동네로 묘사되는데, 제가 만약 서울 지리를 잘 알아서 정확히 대치동과 정반대에 있는 지명을 알고 있었다면 작품에 대치동과 그 동네 이름을 쓰면 됐겠죠.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설정에 오류가 생기지 않게 만들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잔머릴 굴려서 정확한 지명은 쓰지 않았어요. 예진이네 학교까지 지하철로 대초동에서 2시간이 걸렸다고 한들, 누구도 오류를 지적할 수가 없게 말이죠. 가상의 도시 S니까요!

정말 부지런한 작가님들은 거리를 다 스케치해 작품에 세세하게 묘사하시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 거리가 유명해지는 일도 생기더라고요. 언젠가 저도 그런 글을 한번 써 보고 싶기는 해요.

 

Q. 특별히 애정하거나 아끼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 이유는?

A. 특별히 애정하는 캐릭터……. 오히려 반대되는 감정은 있어요. 써 놓고 나서 보니 예진이한테 미안하단 느낌이 약간 들더라고요. 사실 쓸 땐 몰라요. 퇴고할 때도 모르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 볼 때야 ‘아, 이 친구한테 가혹한 걸 너무 많이 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쓰고 나면 항상 이렇게 미안한 캐릭터가 생겨요. 『너는 누구니』에서는 예진이가 그랬는데, 가뜩이나 삶도 팍팍한데 서하까지 나타났잖아요. (웃음)

 

Q.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을 품고 살아간다’는 예진이의 대사도 그렇고, 겉으로 드러나는 서하의 불안과는 달리 깊숙이 숨겨둔 예진이의 비밀스러운 불안이 드러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캐릭터인 서하와 온도차가 극명할 정도로 예진은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 버린 이성적이고 침착한 소녀죠. 어떤 면에서는 서투르고 감정적인 접근을 저돌적으로 해 오는 서하와는 극단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작가님께서 이런 예진이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 같은 경우는 예진이에게, 그동안 힘들었지 하고 토닥토닥 해 주며 “우리 누구나 다 그래!” 하고 말해 주고 싶었거든요.

A. 질문을 들으니 뜨끔하네요. 마지막에 예진이가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면 서하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서하는 여전히 자신의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Q. 아까 예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죠? 자, 지금 사과하셔도 됩니다! (웃음)

A. 하하, 미안한 예진이에게 하고 싶은 말……. 음, 예진이가 시험이 끝나고 서하랑 영화를 보러 가는 내용 있잖아요. 그때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예진이에게 그런 하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공부나 집안 환경 등에서 벗어나는 그런 하루가 앞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고요.

 

소재와 배경을 통해 엿보는 저자의 취향

Q. 완두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반면에 작품에 등장하는 시 「한 피스를 잃어버린 피스 퍼즐」이나 소설 『개선문』, 『리스본의 밤』은 실제로 있는 작품들이었는데요. 망명자들의 삶을 통해서 주인공들을 드러내고 주요 설정이나 결말을 암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작품인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그와 같은 작품들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A. 『너는 누구니』를 써 놓고 보니, 이야기만 쭉 이어지면 임팩트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가끔씩 글을 쓰다가 습관적으로 시집을 넘겨보거나 다른 책을 봐요. 본문 속에 등장하는 시는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를 보다가 우연하게 발견했어요. ‘이거다!’ 했죠. (웃음)

『개선문』이나 『리스본의 밤』은 제가 개인적으로 레마르크 작가를 좋아해서요. 『개선문』에서 루드비히는 자신을 숨기고 있는데, 서하를 보니 루드비히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Q. 음식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를 통해 서하의 비밀이나 불온한 분위기도 드러내시고요. 매운 할라페뇨, 크림 스파게티,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은 기호를 반영하신 걸까요?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입맛을 통해서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냈어요. 개인적인 기호로 저는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은 명확해요. 저는 매운 거나 드라이한 걸 좋아하는데, 크림 스파게티나 초콜릿은 아예 싫어하거든요.


제가 크림 스파게티를 싫어하는데 만약 먹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할라페뇨를 계속 먹게 될 것 같아요. 음식 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데, 『너는 누구니』 출간 전 연재 이벤트가 정말 너무 아이디어가 신박하고 좋았습니다.

 

Q. 지엽적인 공간인 학교가 넓게 느껴졌어요. 도서관이 주요 장소로, 도서관 데이트 장면이 정말 디테일하고 낭만적인 이벤트더라고요. 소품으로 활용된 책 『데모니움의 별』도 검색해 봤는데, 없는 책이라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해요. 학창 시절에 도서관을 좋아하셨나요?

A. 학창 시절에는 도서관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단호) 소설 속에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데모니움의 별』은 우연히 검색하다가 ‘데모니움’이 라틴어로 ‘악마’라는 의미여서 지은 제목이에요. 도서관 데이트 장면은 장르가 로맨스릴러이다 보니 이쯤에서 로맨스가 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로맨스가 들어가면 좋을까라는 고민 끝에 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제 로망이었어요. 그래서 글 쓰는 게 참 재밌어요. 제 이상을 다 투영할 수 있어서요. (웃음)

 

페르소나와 열린 결말 

Q. 『너는 누구니』는 어느 정도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죠. 결말에서 모든 진실이 최종적으로 다 드러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결말을 생각하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A. 미스터리 스릴러라서 과장이 없잖아 있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꾸미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거죠. 사회 생활하면서 그런 게 없을 수 없잖아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을 다 오픈할 수도 없고요. 누구나 사람을 만날 때는 어느 정도 가면을 쓴다고 생각해요.

사건이 있고 진실이 밝혀지는 게 소설의 구조이지만, 『너는 누구니』를 읽는 분들이 “아, 맞아. 나도 누군가에게 다 오픈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라고 생각하며 그 가면을 아주 가끔이나마 벗어던지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훌쩍 여행을 간다든지, 여러 방법을 통해서요.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들 나름대로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서하나 예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결말로 했어요.

 

작가로서의 삶, 집필

Q. 다른 책 소개에서 작가님 경력을 본 적이 있는데,(스토킹 죄송합니다.) 간단히 소개해 볼게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일러스트를 전공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대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인생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호주에서 몇 년간 살았는데 영어 대신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이하 생략).’ 이런 작가님의 다양한 경험들이 분명히 글에 녹아들어 양분이 되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가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시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A. 저는 서른 중반 정도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늦게 시작했죠. 그때 약간 경미한 우울증이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림을 다시 시작하는 건 더 스트레스가 될 듯했어요. 운동을 하자니 귀찮았고요.

고백하자면, 그 당시엔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던 거죠. 한글도 알고 있고 자판도 칠 줄 알고 컴퓨터도 있으니까, 이것만 있으면 글은 쓸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에 맨땅에 헤딩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지금도 대단한 목표는 없고요. 운이 좋아서 수상도 하고 책도 출간하게 되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취미예요. 작가나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들으면 아직까지는 어울리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듯해요. 그래서 ‘글 쓰는 평범한 아줌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곤 해요. (웃음)

장편 소설을 몇 권 써냈지만 아직 제 주변에는 제가 글 쓰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시어머니는 얼마 전에 아셨어요. 글을 쓰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원래도 인싸는 아니었지만 더 아싸가 된 것 같아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좋은 점은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는 것? 책을 읽으니까 사람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다고, 백 권을 읽어야 한 권이 나올 수 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확실히 글쓰기 전후의 가장 큰 변화는 독서를 많이 하게 된 거죠. 쓰려면 읽지 않을 수 없어요.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에 응모하기 전에 『레베카』, 『백야행』, 『렛미인』을 읽지 않았더라면 『너는 누구니』를 쓸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정말로요.

 

Q. 집필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이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글은 매일 써요. 매일 웬만하면 정해진 분량을 쓰려고 해요. 글쓰기 선생님이 항상 “시작을 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맺어라”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그 말을 듣고도 만약 내가 쓰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고 새로운 걸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다 생각해서 다른 걸 쓰면 또 그 부분에서 막히더라고요. 계속 같은 부분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거죠. 그제야 그 충고를 따르게 됐죠. 앞에 죽은 사람이 뒤에서 다시 살아나오든 어쨌든 끝을 맺어라,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래서 글은 매일매일 쓰고 있어요. 선생님이 버려도 다 쓰고 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버린 작품도 많아요.

요즘은 백 세 시대라서 시작이 늦었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글쓰기를 늦게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계속 트레이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운동선수들이 매일 운동하듯이 글쟁이들도 매일 글을 써야지만 계속 감각이 남아 있고 글 근육이 키워진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특별한 일 없으면 아침 9시에 노트북 앞에 앉아요. 저는 글쓰기에 재능이 전혀 없어요. 학창 시절 내내 국어, 독후감, 레포트 등 글 쓰는 모든 것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더욱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써야지 따라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논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화백이 화실에 다음과 같이 썼대요.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못 이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하는 사람 못 이긴다.”

계속하려면 좋아해야 할 듯해요. 책을 내고 나니,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게 물어들 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제 소설에 엄청난 사회적 이슈를 담는다거나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제가 재밌어서 쓰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물으면 곤란해요. 이렇게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쓰죠. 그럼에도 주제가 전혀 없으면 안 되니까 주제는 정하지만, 그렇다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진 않아요. 그래서 아직 작가, 소설가라는 칭호가 부담스러운 듯해요. 작가라는 게 자격증 시험 같은 게 아니잖아요. 하나를 하면 그 뒤로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언제 스러져 잊힐지 모르고요. 작가의 기준은 등단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면을 구현한 표지 일러스트

Q. 작가님이 생각하신 캐릭터가 표지 일러스트에 잘 구현되었나요?

A. 네! 까만 곱슬머리의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성숙하고 철이 일찍 든 예진이의 내면을 정말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요. 일러스트 작가님께서 그림을 그리실 때 예진이의 내면을 많이 표현하려고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한 표정이 잘 드러나서 정말 좋았어요. 이전에 저도 그림을 그려 봐서 알지만, 책 한 권을 읽고 핵심을 뽑아내 그림과 디자인에 담아내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표지를 보는 순간 그림 작가님께서 제 책을 정독하고 이해해 주셨구나 싶었어요.

요즘 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로맨스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이전 작품에는 로맨스가 없었는데, 다음 작품은 로맨스라고 홍보하고 다녔거든요. 표지를 보자마자 10대들이 엄청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10대 청소년들에게

Q. 『너는 누구니』를 읽다 보면 현재 10대 학생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을 종종 느낄 수 있었어요. 입시에 치여 숨 가쁘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어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충고가 있으시다면?

A. 10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다 보니, 강연 요청을 종종 받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런 이야길 종종 해요.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라.” 저는 10대 때 저 스스로에게 불친절했거든요. 무언가 하다가 안 되면 스스로에게 ‘네가 그럴 줄 알았지. 너는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제가 자신에게 제일 심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힘들어 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위로해 주잖아요.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나를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도 큰 힘이 되어요. 저도 공모전 떨어질 때마다 “괜찮아.” 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고요. (웃음)

참, 현장에서 만나는 10대 학생들이 가끔 “저도 글 써요.” 하고 슥 와서 이야기하고 그러거든요. 어떤 친구가 “장편이에요.” 하기에 원고지 몇 매까지 써 봤냐고 물어봤더니 원고지는 모르겠고 글자 수가 얼마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시대가 달라졌구나!’ 하고 체감했죠. 원고지는 구시대적이구나, 이제 글자 수로 분량 이야기를 해야 하는구나. (웃음)

 

너는 누구니 가상 캐스팅

Q. 『너는 누구니』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되었습니다. 미디어화에 따른 가상 캐스팅을 요즘 많이 하는데요. 작가님께서 염두에 둔 배우가 있으실까요?

A. 요즘 애들은 영상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읽어도 영화나 드라마화 하면 누가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곤 해요. 대부분 10대라 아이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아이돌을 잘 몰라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배우는 주인공보단 주인공들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어야 할 나이대거든요. (웃음)

주변에서 책 표지를 보고 서강준 배우가 떠오른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갈색 눈동자에 잘생긴 배우분이더라고요. 서하랑 이미지가 잘 어울릴 듯했어요. 여하튼 영상화와 관련한 일은 업계 전문가분들이 해 주시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차기작

Q. 『페인트』에 이어 『너는 누구니』 출간, 그리고 여러 지역으로 강연 활동도 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작품 활동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이미 집필에 들어가신 작품이 있으신가요?

A. 강연 가면 친구들이 “영감이나 소재는 어떻게 떠올리세요?”라고 물어봐요. 저도 글을 쓰기 전에는 작가들은 영감을 받아 갑자기 확 글을 쓰고 여행지에 가서 술술 쓰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영감 절대 안 와요. “영감은 네가 나중에 나이 들면 되는 거야.”라고 우스갯소릴 하죠. (웃음)

그냥 매일 쓰고, 그러면 10편 중에서 한두 편 정도 건져요. 아, 내년에 차기작으로 한 편이 나올 예정이에요. 이것도 청소년 소설인데 장르를 규정하기가 어렵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 『너는 누구니』의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남겨 주세요.

A. 표지부터가 즐길 수 있는 요소네요. (웃음) 표지만 봐도 벌써 즐거우실 듯해요.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을 크게 가지기보단, 글을 읽고 나서 나중에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 못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신의 가면이나 비밀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거나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야.’라고 위로를 받으실 수 있다면 제일 좋겠어요.

 

이희영 작가

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너는 누구니』로 제1회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페인트』로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썸머썸머 베케이션』, 『페인트』, 『너는 누구니』가 있다. 그 밖에 제10회 5ㆍ18문학상 소설 부문, 제3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KB 창작동화제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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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 일러스트+표지 작업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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