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감이 좋은 고딕 소설 6선

대상작품: <히긴스 부인의 편지> 외 5개 작품
큐레이터: VVY, 2시간 전, 조회 17

여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고딕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땅히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음산한 폐성과 폭풍우, 유령, 기이한 모험을 말할 것이고,

혹자는 계몽주의에 반발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이해할 것이며,

혹자는 인간 내면의 그림자가 외부로부터 표상되어 점차 뒤섞이는 미스테리 구조를 떠올릴 것입니다.

첫째는 고전 고딕의 외관적 요소, 둘째는 고딕소설의 문학사적 위치, 셋째는 현대가 이어받은 고딕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세 번째는 고전 고딕의 핵심인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인간 심리와 광기로 치환한 결과이죠. (물론 고전 고딕 중에도 이미 이러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 있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를 계승해 발전시킨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 대표적이죠. 정작 헨리 제임스는 자신의 성취를 부각시키려 포의 작품을 폄하하긴 했습니다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만하지요.)

그밖에 현대 고딕이 이어받은 유산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정수란, 바로 이것입니다.

“공포와 더불어 매혹이 존재할 것.”

고딕소설의 유령과 괴물은 그저 추잡한 악이어서는 안 됩니다. 전설을 뒤쫓는 추적기 내지 주인공의 과거와 뒤얽힌 비밀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주 무대인 성과 대저택은 그 자체로 모험을 품고 있었습니다. 현대에서 공간은 변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외형적 모험이든 심리적 모험이든, 독자를 점차 깊은 곳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불안감을 주면서도 결국 끝에 밝혀질 진실에 사로잡혀 앞으로 전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딕 소설에는 항상 불길한 미지가 존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집니다.

이 마력은 때때로 미혹의 수준을 능가합니다. 극적으로 정제된 카리스마는 껍데기마저 시적으로 다시 태어나, 그 자체로 숭배와 찬양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안과 어두움을 그리면서도, 그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고딕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이하 큐레이션에서는 그처럼 미감이 인상적인 고딕소설을 모아봤습니다.

 

히긴스 부인의 편지

고전적인 유령 이야기.

그러나 사악함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휘어잡는 아우라가 있습니다.

‘독버섯이 화려한 갓을 펼치듯 치마를 펼치며 일어서는’ 장면이라든가 ‘여름철 가장 독한 별빛처럼 파랗게 타오르는 눈‘ 같은 표현은 다시 봐도 정말 좋습니다.

결말부의 불쾌한 호러와, 거기까지 나아가는 과정 속 불길한 미감의 대조가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이미지 구현에 충실한 점이 제가 추구하는 고딕의 미와 맞닿는 것 같습니다.

 

눈의 셀키

배경부터 아름답습니다. 눈보라와 파도 치는 마을. 공간에서 이미 독자를 압도합니다.

고딕소설에서 배경은 곧 독자를 사로잡고 속박하는 함정의 구현입니다. 미감의 표현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풍경 묘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고딕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비한 존재의 방문, 몰래 감춘 비밀, 대결하는 악에 부여한 매력적인 소개문까지. 저는 마치 고딕적 요소의 소용돌이 같다고 표현했는데요. 지금 봐도 대적자 귀족에 대한 부분은 정직하게 제 취향을 찌르네요.

 

듀라한

“시인 존 그레이는 자신이 죽인 친구 블룸 백작의 시를 훔쳐 등단했다.” 소개글만으로도 으스스한 심상이 솟습니다.

그레이는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반면 블룸 백작의 묘비에는 꽃이 가득합니다. 밤중에 엄숙히 행해지는 낭독회는 스산하지만, 죽은 이의 <들국화 피어나는 밤에>라는 시는 생과 사를 초월하도록 아름답습니다.

이 큐레이션을 쓰게 만든 범인. 작가님이 재업로드를 해주셨는데요. 혼자 보기 아까운 걸작이라 고민 없이 추천합니다.

듀라한이 무섭게 배덕자 그레이를 단죄할 때, 우리는 오히려 시인에 대한 존중을 어렴풋이 느끼며 전율합니다. 진정 아름다움으로 읽고 나면 가슴이 아린 작품. 애수에 찬 한 편의 밤이야기.

 

전시된 블루와 침략당한 순수

박하 작가님 글은 소설이라기보다 산문시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글도 그처럼 독특한 작품입니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변호하는 화자의 위치. 즉 유령과 대화하는 작중 공간이 독자의 인지부조화를 생성합니다.

스스로 저지른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묻는 목소리는 쓸쓸합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설득의 심상이 기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미지의 침입, 불안정한 자아, 아련한 숭고와 호러의 결합. 의외로 제 기준에서 충실한 고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

 

만화경 눈의 아가씨

매력은 반드시 내적인 카리스마에서 올까요? 물론 아닙니다. 사실은 외적 형태가 사람을 끌어들일 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죠.

그런 점에서 아름답고 황홀한 소재 그 자체를 주제로 가져오는 것은 영리한 전략입니다.

이 소설은 보석에 집착하는 사내가 그에 버금가도록 아름다운 소녀와 마주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쉽게 예상되는 결말에 하이라이트를 주고 있어 상당히 아쉽긴 하지만, 광휘와 불멸에 사로잡힌 작중 묘사는 그 자체로 뛰어난 성취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평면적인 고전 위어드픽션 플롯과 대조되게도, 소녀에 대한 인물 조형은 입체적으로 잘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오래된 장르의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짚을 수 있는 글이랄까요… 그래서 팬으로서는, 좋았던 부분이 아쉬운 만큼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유령열차

스스로 규정한 고딕 장르의 정수를 쏟아부은 글.

‘장르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앞에 깔아둔 만큼, 제가 제 글을 내세우는 것도 사실 당연합니다.

그리고 고딕의 충실한 구현에 있어서는 한 점 부끄럼없는 작품입니다. 편지, 비밀, 실험, 위스키, 광소, 폭우, 집착, 그리고 파멸.

무엇보다 그 숨막히는 웅장한 광산 도시의 공기. 작품 자체가 하나의 정지된 악몽의 구현입니다.

이 작품으로 어반 판타지 공모전 당선의 영예를 누렸는데요. 심사해주신 이영도 작가님께서 먼저번 글과 같은 취지의 지적을 달아주셨습니다. ‘어쩔 수 없게도 전개의 향후가 짐작이 된다’고 말이지요.

저도 예상한 반응이죠. 하여 집필 당시 미리부터 마음먹은 것은, 그렇다면 전개에 변칙을 줄 수도 있겠으나, 공연히 그런 시도로 작품 전체의 공기를 흩뜨리기보다, ‘공기 그 자체’로 눌러버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정된 파멸에서 출발하여 불안을 고조시키면서, 그 사이 매혹적인 질감과 색채, 인간의 광기를 한데 빚은 아우라를 창조하는 것.

그리하여 저는 스스로 추구하는 고딕의 미학을 성취한 것입니다.

 

처음에 큐레이션을 작성할 때, 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길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짧게 얹어놓기만 하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역시 내 새끼 예뻐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고전적인, 귀족적 기품을 지니면서도 숨죽여 전진하게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고딕 장르의 미학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 요소에 부합하는 다른 좋은 작품이 있다면 알려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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