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 영화 음성 상상하며 읽어주시면 더 좋고…
두 작품 비교 리뷰를 해 보고 싶어서…
여기에 두 칼이 있습니다.
어떤 칼은 자신이 폭력적인 도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죽어있는 것들을 상대하게 된 자신에 대해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다른 칼은 좀 특이합니다. Karl이라는 멋드러진 영어 이름이 붙어 있고, 눈코입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좀 순박한 성격입니다.
이 둘은 무엇을 잘랐을까요?
먼저 [식칼의 고백]입니다. 이분은 말투부터가 칼같습니다. 아주 딱딱하고 예리합니다. 칼이라는 족속의 임무란 자르고 저미고 토막내는 것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세상의 오해를 반박하겠다고 나섭니다. 다행히 이분은 누군가의 배를 찌르는 게 아니라 지느러미를 자르고 살점을 저미고 뿌리를 토막내는 노동을 하는 분입니다.
다음으로 [Karl]입니다. 이쪽의 칼은 훨씬 소박하고 어수룩하게 자신을 내밉니다. 장식품이나 우주선 부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서울 어느 빌라 2층 아들의 방 세 번째 서랍에 사는 주방용 칼이 되었다고. 근데 뭔가 살짝 이상합니다. 왜 주방용 칼이 서랍에 있죠?
다시 [식칼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날이 아니라 손잡이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한 여자의 손을 좋아했다고 고백합니다. 손잡이가 닳고 무뎌진 날을 갈아 벼리도록 해도 그 상실이 아깝지 않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Karl]은 무엇을 잘랐을까요. 아직 자른 건 없습니다. 다만 자를 ‘뻔’ 했죠. 칼을 서랍에 넣은 사람, 칼이 사는 집 아들은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집니다. 고급 아파트에서 허름한 빌라 2층으로 추락하게 된거죠. 이사 오던 날 밤, 아들은 주방 서랍을 뒤져 Karl을 꺼내 자신의 목에 대고 힘을 주다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아들은 칼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Karl 이라고. 그리고 그 이름이 사실은 아들이 타고 다니던 포르쉐 911의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식칼의 고백]입니다. 이분은 자신의 날의 광채가 그 여자에게 바치는 영광이었다고까지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이 일생일대의 각오를 증명하고자 손가락을 끊는 것과, 자신이 여자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도마 위를 질주하며 일을 한 것을 동일한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요.
[Karl]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아들의 방 서랍 속으로, 그리고 작은 스포츠 백 속으로 옮겨갑니다. 아들은 취업에 거듭 실패하면서 히키코모리가 됩니다. 그리고 게임만 하다가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만 들여다봅니다. 칼은 그저 의아합니다. 게임이 훨씬 재밌는데 왜 저 지루한 인터넷 게시판만 보냐고. 그리고 방 벽에는 여성과 약자를 혐오하는 뉴스들이 덕지덕지 붙습니다.
[식칼의 고백]에서 결정적인 날이 찾아옵니다. 오랫동안 주방에 발길을 끊던 여자가 느지막이 들어옵니다. 칼은 몹시 안도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여자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요. 양파를 썰고 있으니 당연히 양파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눈물 한 방울이 손잡이 위로 떨어지는 순간, 칼은 전율합니다. 그 눈물은 지금껏 맡아온 그 무엇과도 달랐으니까요. 그리고 칼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끝내 할 수 없는 것들을요.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는 것. 사랑했지만 칼은 어디까지나 칼이었습니다.
[Karl]에도 결정적인 날이 찾아옵니다. 아들이 갑자기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합니다. 방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뉴스들을 전부 뜯어냅니다. 쓰레기장이던 방도 치웁니다. 이불도 곱게 접습니다. 어젯밤엔 Karl을 정성 들여 닦았습니다. 칼은 좀 당황스럽습니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까요.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아들은 잠든 부모를 한참 바라보다 집을 나섭니다.
결말입니다. [식칼의 고백]의 여자는 그 이후 다시는 주방에 오지 않았습니다. 미역국도, 다진 고기도, 손수건을 삶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칼은 그렇게 홀로 남겨집니다. 자신이 할 수 없었던 것들의 목록만 고스란히 안은 채, 그 여자의 손에 쥐어진 채로 처음 사과를 깎았던 때가 가장 찬란했음을 기억합니다.
[Karl]에서 칼은 뜨겁고 기분 나쁜 느낌에 잠을 깹니다. 앞에는 빨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명소리에 뛰어다니고 난장판입니다. 칼은 외칩니다. 나는 주방칼이라고. 인간을 찌르는 용도가 아니라고. 그러나 칼에게는 입이 없습니다. “입이 있는 당신들이 좀 말려 줘요. 제발.”
두 칼은 모두 사랑했습니다. 한쪽은 한 여자의 손을, 다른 한쪽은… 글쎄요, 아마도 아무렇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을요. 그리고 두 칼은 모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끝을 맞이합니다. 한 칼은 닿고 싶은 손을 잃었고, 다른 칼은 닿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우리가 쥔 칼은… 네, 도마 위에 있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