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하지 못하는 자와 복수하지 못하는 자

대상작품: <S에게 보내는 편지> 외 1개 작품
큐레이터: cosy, 3시간 전, 조회 12

너무나 대비되는 두 작품이 있는데, 리뷰를 따로 쓰기보다는 두개를 엮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아서 큐레이션을 해 봅니다.

 

 

[S에게 보내는 편지] 는 ‘S’라는 인물을 향한 편지입니다. 화자는 상대에게 처절하고 잔혹한 죽음을 상상하며 그것을 날것 그대로 쏟아냅니다. 그러나 편지의 후반부에서 스스로 인정합니다. 이것은 꿈일 뿐이라고. 상대는 “빌어먹게 위대한 분”이라 자신은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고.

[속죄하지 못하는 자의 독백] 은 위 작품의 S라는 인물처럼, ‘빌어먹게 위대한 분’인, 왕의 내면 독백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상대가 언젠가 찾아와 복수해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상대는 끝내 오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복수를 받지 못한 왕은 속죄할 기회도, 용서받을 기회도 영원히 잃은 채, 갚을 수 없는 빚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두 작품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누군가에게 깊이 상처입힌 사람과 누군가에게 깊이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복수라는 단어 앞에서 몹시도 잔인한 고문의 형태를 상상하는 사람.

심지어 두 작품의 화자에게 ‘복수’란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며, 현실에서의 화자는 완전히 무력합니다.

 

그러나 두 화자가 서 있는 감정의 위치는 정반대입니다.

[속죄하지 못하는 자]의 왕은 가해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 상대의 복수를 기다리며,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받겠다고 맹세합니다. 역설적으로 그 기다림 안에는 순수한 속죄만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라도 상대와 연결되고 싶다는 뒤틀린 갈망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눈을 파내더라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싶고, 혀가 뽑히더라도 이름을 부르고 싶으며, 사지가 잘라져도 기어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싶어 합니다. 고통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왜곡된 통로입니다.

[S에게 보내는 편지]의 화자는 피해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고문 상상은 정반대입니다. 여기에는 상대와 다시 이어지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존엄을 철저히 파괴하고, 가치와 취향, 사랑하는 것들을 모욕함으로써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는 상대에게 가장 잔혹한 죽음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문장으로 쌓아 올리며, 분노와 혐오를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속죄하지 못하는 자]의 ‘그대’도 그랬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 같지만요.

 

감정의 밀도는 두 작품 모두 극단적입니다. 그러나 방향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하나는 스스로를 낮추며 상대에게 매달리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끌어내리려 하면서도 끝내 닿지 못합니다.

첫 번째 작품의 화자는 “당신이 나를 벌해주길” 기다립니다.
두 번째 작품의 화자는 “내가 당신을 벌하고 싶다”고 외칩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 가장 잔혹한 복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작품에서 가장 잔혹한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두 화자의 태도는 시간에 대해서도 다릅니다.

첫 번째 작품의 화자는 남은 생을 빚진 자로 살아갑니다. 고통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두 번째 작품의 화자는 상상 속에서 죽음의 순간을 극단적으로 연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상상이 단번에 무너집니다.

한쪽에는 속죄하고 싶어도 속죄할 수 없는 자가 있고, 다른 쪽에는 복수하고 싶어도 복수할 수 없는 자가 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고요함과 격렬함이랄까요.

[속죄하지 못하는 자]의 언어는 절제되어 있습니다. 무너지면서도 고어체의 형식을 잃지 않고, 감정을 직접 토하는 대신 에둘러 고백합니다.

반면 [S에게 보내는 편지]의 화자는 완전히 날것입니다. 상상하는 고문의 장면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무력함도 숨기지 않고, 분노와 수치를 동시에 쏟아냅니다. 왕이 형식으로 감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편지의 화자는 형식을 부수며 감정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도달하는 곳은 같습니다.

갖지 못한 것 앞에서의 무력함.

왕은 상대가 죽은 뒤에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편지의 화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왕의 이야기는 너무 늦은 자의 이야기이고, 편지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자의 이야기입니다.

속죄도 복수도 닿지 않을 때, 사람은 그 감정을 어디에 둘까요. 어느쪽이 더 비참할까요.

 

‘가해자’의 속죄하고 싶은 정서와 ‘피해자’의 복수하고 싶은 정서를 거의 비슷한 소재로 완전히 정 반대로 표현한 게 흥미로워서 가져와봤습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