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 카테고리가 필요해

대상작품: <흔한 체스경기 중계방송> 외 6개 작품
큐레이터: 일월명, 21년 5월, 조회 110

공영방송사의 코메디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반대로 각종 SNS의 일반인들은 삶의 기묘하고 멍청한 순간들을 남들 앞에 거리낌없이 전시하며 스스로가 살아있는 밈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남 웃기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하죠.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남을 웃게 만들기 위해선 남들보다 예민하고 똑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코메디는 정말 유서가 깊은 장르입니다. 인류 최초의 농담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수메르 시대 때 사람들도 웃긴 이야기를 하고 살았고 일본 신화에는 동굴 속에 숨은 태양신을 밖으로 불러내려 사람들이 공연과 만담을 보며 껄껄 웃는 웃음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죠. 희곡을 구분하는 가장 큰 두 장르도 희극과 비극입니다.

브릿G는 작품 성향 분석표에 개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작법과 기교 차원에서 부차적으로 유머를 사용하는 걸 넘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웃기고 말겠다는 신념이 가득한 코메디 소설들이 분명 있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아주 어렵고 귀한 재능이에요. 뚜렷한 메세지를 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건 불바다 위에서 자전거로 외줄타기를 하는 수준의 기예에 가깝고요. 저는 코메디를 정말 좋아하고, 세상에 한 명이라도 웃긴 이야기를 읽고 웃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보고 웃었던 작품들을 큐레이션으로 올립니다. 큐레이션인 만큼 간단한 코멘트는 붙이지만, 무시하세요. 농담은 설명이 붙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녹차백만잔님은 클리셰를 비트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 분이십니다.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웃음 좋지요.

DALI님의 리뷰를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이곳의 중단편들 중 당연코 제 최애 소설입니다. 흥미로운 컨셉과 시놉시스에 한 문장 읽고 웃게 만드는 필력까지 완벽한 작품이예요. 다들 따뜻한 커피를 지키는 여대생의 분투를 구경하러 가시죠.

 

정치는 블랙코메디계의 오랜 주제였죠. 미국 대통령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읽어보시면 더욱 의미 깊은 만담극이라 생각됩니다. 사람보다 나은 물개라면 물개보다 못한 정치인들을 제치고 대통령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법이죠 암.

 

솔직히 한국에서는 힘들 것 같죠? 납치당해서 목숨과 재산의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뭐가 중요하냐는 말은 당사자가 아니니 할 수 있는 지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실 거예요. 웃음은 때론 해결 못하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날 지켜줄 방패가 되죠. 직장인들의 아침은 회사 안 가도 되게 누가 납치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지는 순간이라지만, 진짜 납치당하면 직장은 내 상황을 이해해줄까요?

 

마찬가지로 직장 부조리극입니다. 불결 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읽기 힘들 수도 있어요. 납득 안 가는 상황이 가득한 블랙기업에서 두 동료 여성이 문제를 해쳐나가는 활극을 즐겨보세요.

 

n년차 트위터리안이라면 타임라인에 연례행사마냥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몇몇 플로우들을 꿰고 살게 되는데요, ‘백합쓰지 마세요.’ 플로우도 그 중 하나입니다. 현실과 소설의 차이를 찾자면, 이 소설서 백쓰마를 외치는 캐릭터는 서술자 입장에선 귀여운 아기고양이 연하 여자친구일 뿐이라 장르가 로맨스지만, 현실서 이런 사람과의 만남은 도돌이표로 순환하는 밈적 사고의 구렁텅이에 휘말리는 호러블한 경험일 뿐이라는 점 정도겠네요.

 

마찬가지로 요즘 핫하고 골때리는 사안이죠. <백합쓰지마세요>보다 블랙코메디의 느낌이 짙고, 보다 현실적인 갈등과 부조리가 얽혀 나옵니다.

 

[찌찌레이저] 와 [우주 광부는 쿨하다]도 추천작에 넣고 싶었는데, 이 두 작품들은 아쉽게도 지금은 비공개로 돌아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