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 토크를 함께한 두 번째 게스트는 지구와 우주를 유영하는 여행자들의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여덟 가지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SF 소설집 『떠나가는 관들에게』를 출간한 Mano 작가님입니다.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방주를 향하여」를 비롯해 브릿G에 1년 동안 올려 주신 SF 단편들을 선별하여 엮어 낸 책인데요. 새로운 표지를 입고 출판된 책을 읽으며 다양한 소수자의 서사, 설득력 있는 생생한 세계관, 당대 최고의 이슈인 기후위기 문제 등 작품 전반에서 여러 흥미로운 키워드를 두루 읽어 낼 수 있었기에 작품 안팎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연마노 작가님께 인터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장르 소설부터 만화, 웹소설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시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으며 왕성한 집필 활동과 창작자의 DNA(!)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텀블벅 펀딩 1억 원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던 여성서사 웹툰 프로젝트 참여부터 요즘의 작업 근황까지, 저희가 현장에서 나눈 흥미로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 보고자 합니다.
매거진 하단에는 현장에서 받아 온 따끈따끈한 친필 사인본과 더불어 작가님 필명에서 영감을 얻은 마노석 팔찌, 골드코인을 드리는 이벤트도 작게나마 마련했으니까요, 인터뷰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격려와 응원을 담은 댓글도 많이 남겨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Q. 2021년 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방주를 향해서」를 시작으로 이번 단편집 『떠나가는 관들에게』에 수록된 주요작들을 포함해 여러 단편들을 브릿G에 꾸준히 등록해 주셨어요. 어떻게 처음 브릿G에 작품을 올리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한데요.
A. 사실 처음 브릿G에 글을 올리게 된 계기는 2021년경 즈음 있었던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때문이었어요. 이 공모전을 통해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당선이 되면서 화제를 모았는데, 저도 한창 SF에 관심이 생겼을 때라 해당 공모전에 내려고 SF 작품들을 쓰고 있었어요. 2020년에는 코로나로 공모전이 열리지 않았다가 2021년도에 재개되었는데, 한 사람당 출품할 수 있는 작품 수 제한이 없어서 저로선 더 많은 작품을 쓸 기회가 생겼었어요. 그래서 단편을 계속 쓰면서 쌓아 나갔습니다. 결국 이 공모전에는 한 다섯 작품 정도 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새삼 놀랍긴 해요.(웃음)
당시 단편 「떠나가는 관들에게」가 본선까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수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때는 작품이 본선에 진출한 것만 알고 있었고 어느 작품이 본선에 올라갔는지도 몰랐는데, 공모전이 끝나고 한 1~2년쯤 지나고 나서 당시 공모전 심사위원분께서 본선 때 감명 깊게 읽어서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며 작업 제안 메일을 보내 주셔서 뒤늦게 알게 된 거라서요. 제안은 감사했지만 당시 이미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상태였고 회사 일도 너무 바빠서 일정상 힘들 것 같다고 답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여튼 공모전에서는 떨어졌지만 제게는 남은 단편들이 있었고, 이 작품들을 그저 하드 안에만 묵혀 두기에는 어쩐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본선까지 진출도 해 봤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아예 못 보여 줄 정도의 작품은 아니구나, 하는 조금의 자신감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고요. 어딘가 선보일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 검색해 보던 찰나에 브릿G를 알게 되었고, 이런 이야기들을 썼다는 기록을 남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단편들을 투고하기 시작했어요. 이 작품들의 호흡이 웹소설과는 다르기 때문에 브릿G가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브릿G에 올리기 전에 다른 출판사에도 몇 번 투고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실제 출간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판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기뻤습니다.(!)
Q. 브릿G가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A. 단편들을 올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생각난 여담이 있는데요, 평소 제가 웹소설을 많이 보거든요. 웹소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의 주인공이 편집자라서 초반부에 투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판타지 작품을 투고할 만한 출판사로 황금가지가 나와요. 그런데 브릿G를 통해서 투고를 받는다는 최신 내용까지는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아서 읽으면서 댓글을 남기고 싶었어요.(웃음) 저도 작가로서 출판사에 투고한 경험이 많다 보니 웹소설 속 투고에 대한 내용이 너무 익숙하고 정겹더라고요.
Q. 회사도 다니시고 글도 쓰시고 웹소설도 보시고 몸이 몇 개여도 부족할 것 같은데요!
A. 지금 가장 매진하고 있는 웹소설 작업 특성상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재나 트렌드도 그렇고 아무래도 웹소설을 쓰려면 그 콘텐츠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요. 처음 데뷔할 때는 웹소설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엔 더 열심히 읽는 것 같아요. 웹소설은 키워드나 장르 규칙이 명확해서 잘 파악하고 쓰지 않으면 독자분들께 좋은 반응을 얻기가 어렵더라고요.
더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만, 보통 겸업 작가의 경우 웹소설은 일종의 부업 파이프라인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몰입하지 않고 작품과 조금씩 거리를 두며 비즈니스적인 태도를 갖추려고 저도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열심히 썼는데 플랫폼 심사에서 좋은 프로모션을 받지 못하면 마음이 아프긴 하죠. 코로나 때 웹소설 시장이 호황이었는데요, 저는 코로나 이후에 웹소설 작가로 데뷔를 해서 시장의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던 입장이라 그냥 꾸준히 하고 있을 따름이에요.
Q. 묵묵히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쓰신다는 게 정말 대단하세요.
A. 차기작이 최고의 프로모션이니까요.(웃음)
Q. 브릿G에서는 ‘Mano’라는 영문 필명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텀블벅 펀딩 이후 화제를 모으며 정식 출판으로 이어졌던 여성서사 만화 프로젝트 『여명기』 시리즈에 참여하신 필명 ‘마노’ 외에, 웹소설 작가로는 또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이번 소설 단행본 출판 작업을 하며 만화 작업 시 사용하는 필명과 유사하면서도 다소간의 차이를 두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예전에는 정말로 출간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보다는 일단 묵히기는 아까우니 올리기라도 해 보자! 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작업 마감할 때마다 친구들끼리 서로 ‘머릿속이나 하드 속에만 있는 명작보다 세상에 나온 망작이 낫다’는 마인드로 임하자고 격려하는 일도 많았거든요.(웃음) 진짜 그런 생각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1차 창작 만화 동인 활동의 연장선으로써 만화 작업할 때와 같은 필명으로 작품을 업로드하게 된 거였고요.
그 후 감사하게도 출간 제안을 받게 되었고 막상 책이 나올 때가 되니, 갑자기 실명을 쓰면 기존에 제 작품을 봐 주셨던 분들이 못 알아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브릿G에서의 필명과 출간 필명에 통일성을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Mano라는 영문 필명 대신 좀 더 무던히 쓸 수 있도록 한글 표기로 바꾸고, 기존에 봐 주셨던 분들도 알 수 있도록 살짝 변형을 가한 뒤 출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출근길에 고민을 좀 많이 했었는데, 어쨌든 성씨를 붙여서 제 이름의 일부나마 섞었으니 나름의 타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Q. ‘마노’는 어감도 좋고 언뜻 사람 이름 같기도 해서 출간 필명도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마노라는 필명은 어떤 의미로 짓게 되셨나요?
A. 맞아요, 너무 이질적이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했어요. ‘마노’는 제가 거의 10년 정도 써 온 닉네임인데 그동안 한 번도 바꾼 적은 없거든요. 광물 중의 하나인데요, 제가 이 닉네임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감사하게도 지인분께서 여행을 갔던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마노석을 직접 사다 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 선물을 받은 마노석을 사진으로 찍어서 지금 제 트위터 프로필 사진으로도 10년째 쓰고 있어요. 사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은 건데, 계속 쓰다 보니까 정체성이 생겨서 바꾸기도 쉽지가 않네요.(웃음)
Q. 만화와 출판 장르소설, 웹소설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이 놀랍게 느껴지는데요, 각각의 작업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동력이 궁금해요. 각 콘텐츠의 소비 방식이 다른 만큼 각각의 작업에도 여러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A. 일단 동력이라고 한다면, 제 경우에는 결국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그 이야기가 어떤 형태를 입고 세상에 나올지는 사실 둘째 문제였고, 어쨌든 말하고 싶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다만 요새는 동력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그냥 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웹소설 데뷔작이 잘되지 않아서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절필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요, ‘중요한 건 꺾여도 하는 마음’이라는 말에 되게 위로를 많이 받았거든요. 세상 모든 일은 마음이 꺾일 수밖에 없어서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는 ‘꺾여도 하는 마음’에 좀 더 공감이 가더라고요.
지금은 어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그 작업과 관련된 책들이나 다른 분들의 작품을 읽고 스위치를 전환한다는 기분으로 돌아가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SF 단편을 쓰기 전에는 SF 작품을 읽고 본다든지, 웹소설을 쓸 때는 웹소설을 읽고 본 후에 작업에 들어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계속 쓰고 출간하려면 계속 보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웹소설을 쓰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림은 그리지 않고 있는데요. 만화 작업을 할 때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글을 쓸 때는 글쓰기에만 집중해야 해서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더라고요. 영화 쪽을 훨씬 좋아하는데 영상은 호흡이 긴 작품들도 많다 보니 요새는 많이 보지는 못하고 있어서 아쉬워요.
Q. 작가님께서 하시는 작업에 따라 작가님의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도 달라진 거네요.
A. 그러게요. 예전에는 영화를 일주일에 두 번씩 보고 그랬었어요. 그래도 「파묘」는 재미있게 봤습니다.(웃음)
Q. 만화 동인 활동을 주로 하시다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A. 지인이 글을 쓸 줄 알면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해서 처음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해서 지인들이 대부분 웹툰 작가들인데, 그중 한 분이 권유해 주셨어요. 요즘은 주변에 웹소설 작가 친구가 없어서 가끔 외롭다고 생각하긴 해요.(웃음)
Q. 만화와 웹소설을 작업할 때 다른 점이 있을까요?
A. 상업적으로 선보여야 한다는 건 똑같아서 그렇게 큰 차이는 못 느꼈어요. 저는 원래 만화 작업을 할 때도 대사를 먼저 다 쓴 다음 모든 페이지에 대사와 내레이션을 배치해 놓고 컷은 거기에 맞춰서 채워 넣는다는 느낌으로 작업했거든요. 원래도 작화를 그렇게 중요시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대사에 더 치중하는 편이었어요. 소설은 일단 그냥 생각나는 대로 쭉 적은 다음에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고치는데, 퇴고할 때 보면 별소리를 다 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기는 해요.(웃음)
Q. 다른 작가님들도 이런 자리를 통해 만나 뵙다 보면 부업으로 작가 활동을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같은 직장인인데도 창작자의 DNA가 있고 없고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네요.(웃음)
A. 본업도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에도 시간을 쏟고 싶다 보니까 어떻게 하게 되는 거 같아요.(웃음) 창작도 결국은 스킬이라고 생각하지만, 만화를 그릴 때부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니 그게 창작자의 DNA라면 DNA일지도 모르겠네요.
Q. 아앗, 스치듯 꺼낸 아무 이야기도 다 받아 주시는……!
A. 그렇지만 에너지가 높지 않은 사람이라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해서 요즘은 만화는 그리지 않고 웹소설만 쓰고 있습니다.
Q. 혹시 웹툰 작업도 고려해 보신 적이 있을까요?
A. 노블코믹스 각색 작가로 제안을 받은 적은 있어요. 하지만 퇴근 후에는 글도 써야 하고 회사 다니면서 각색 일까지 하기에는 작업량이 많아서 거절했었고요. 전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웹툰 쪽 작업은 아마 안 할 것 같아요.
Q. 출판 과정을 되돌아보면 2022년 8월 제4회 황금드래곤문학상 4차 예심을 통해 작가님의 단편 「아틀란티스의 여행자」가 황금드래곤문학상 본심에 올라가게 되면서 그간 작가님의 작품 활동을 고려해 편집부에서 개인 단편집 출간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연작의 특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개별 단편들을 읽다 보면 작품들을 관통하는 어떤 일관성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단편집 출판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작품들을 추려 수록하면 좋을지 작가님께서도 고민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A. 성격이 비슷한 작품끼리 묶으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 교정 및 편집 과정에서 주간님과 논의해서 다른 단편들과는 결이 다른 「순암리에서」는 수록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 작품을 빼면 좋겠다는 주간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는데, 장르가 공포이기도 하고 혼자서 조금 튀더라고요.
Q.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제딧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표지 그림으로 쓰였어요. 『떠나가는 관들에게』 표지를 보고 작가님께서는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A. 추천평에서도 종종 언급되었듯이 수록된 단편들이 워낙에 담담한 이야기들이라서 내심 차분하거나 살짝 어두운 느낌의 표지가 나오지 않을까 홀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제딧 작가님께서 작업해 주신 그림과 완성된 표지 디자인이 예상과는 달리 밝고 서정적인 느낌이라 의외였는데, 보면 볼수록 책과 너무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몽환적이면서도 되게 몽글몽글하고 따뜻하게 나와서 실물을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특히 그림 하단의 검은색 영역을 먹박으로 처리해 주셔서 정말 세심하게 작업해 주셨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이 표지가 아니면 이 책에 어울리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푹 빠진 것 같습니다.
Q. 작품집에 수록된 총 여덟 편의 작품 중 「떠나가는 관들에게」가 표제작이 되었는데 혹시 작가님께서 염두에 둔 표제작이 있었나요?
A. 「떠나가는 관들에게」가 표제작이 되고 주목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떠나가는 관들에게」를 집필하면서 김초엽 작가님의 「관내분실」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워낙에 또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관내분실」처럼 모성을 소재로 한 좋은 작품이 이미 많으니까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조금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는 많이 했었거든요. 브릿G에 「아틀란티스의 여행자」를 올리고 편집부의 추천을 받은 후 단편집 제안이 오기도 해서 어쩌면 「아틀란티스의 여행자」가 표제작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제 예상과는 달라져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Q. 단행본 말미에 브릿G에 올라와 있는 리뷰 두 편도 함께 수록이 되었어요. 브릿G 리뷰어분들이 올려 주신 리뷰를 원고화한 건데, 작품들을 다 읽고 곧바로 리뷰를 읽고 나니 개인적인 감상도 더 다채로워지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 너무 뻔한 말이려나요.(웃음) 하지만 정말이긴 한데, 작품뿐만 아니라 리뷰도 수록된 구성이라든지 이번 작품집의 출판 과정에 대한 작가님의 전반적인 소회가 궁금하네요.
A. 리뷰의 경우에는 감사한 부분들이 많죠. 매번 이런 리뷰를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양질의 리뷰를 적어 주시는 분들이 많고, 그런 리뷰를 통해 저도 제 작품을 다시 보게 되거든요. 이렇게 읽힐 수도 있구나, 이런 의도로도 읽히는구나 싶어서요. 저는 제 작품을 독자분들의 시선으로 볼 수 없어서 그런 차이점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요. 특히 유은 님의 리뷰를 보면 제 만화를 거의 다 보신 것이 명확하게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는데, 그래서 브릿G 리뷰 수록을 논의할 때 추천하기도 했어요. 유은
아무래도 1차 창작 만화 동인 활동을 해 왔고 이전에도 『여명기』를 정식 출간한 경험이 있다 보니 종이책을 결과물로 만져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참 감회가 새롭고 벅차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엇보다 상업 출간작인 만큼 많은 분의 노고가 들어갔다는 점이, 표지와 편집, 교정, 홍보에 이르기까지 이 책 하나를 위해 이렇게나 많은 분의 노력이 필요하구나 싶어 더더욱 뜻깊게 와닿고는 합니다. 여러 작업을 거듭할수록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혼자서 일하는 직업은 아니구나를 더 많이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Q. 『떠나가는 관들에게』 표제작을 비롯해 수록작의 제목들이 작품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고 흥미를 자극한다고 느껴졌어요. 작가님께서는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이야기를 만드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이야기를 먼저 쓴 후에 제목으로 마무리하시는 편인가요? 특히 표제작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어떻게 제목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A. 사실 정말 막 짓거든요.(웃음) 저는 늘 작품 제목 짓는 것을 어려워해요. 장르문학뿐 아니라 웹소설이나 단편 만화를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목 요정이 있어서 알아서 착착 제목을 지어 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늘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그 뒤에 어떻게든 우격다짐으로 제목을 붙이는 식입니다만, 흥미를 자극하는 제목이라 말씀해 주시니 끙끙댄 보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쁘네요.(!)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마지막 화자의 꿈에서 관들이 떠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직관적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Q. 앗, 말씀하셔서 상시 저장이 습관화된 직장인으로서 너무 쓸데없는 궁금증이 떠올랐는데…… 내용 집필을 마무리하신 뒤에 제목을 짓는다면, 제목 없이 쓰고 계신 원고는 어떤 파일명으로 저장하시는 걸까요.
A. 저는 글을 쓸 땐 한글 프로그램만 쓰는데, 일단 저장은 해야 하니까 가제를 정해 놔요. 보통 그 가제가 끝까지 가긴 하죠. 제목 짓는 게 힘들어서 지금도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웃음)
Q.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SF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라 주로 SF 작품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브릿G에 올려 주신 작품들을 살펴보면 SF, 판타지, 공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물론 SF 장르 비중이 크긴 합니다만! 평소 좋아하시는 장르가 SF 쪽에 가까운 편인가요?
A. 원래 장르문학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SF 작품들을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다만 ‘이 장르를 써 보면 어떨까?’, ‘다른 장르는 어떨까?’ 하는 식으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도전해 보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호러와 판타지, SF를 비슷한 비중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그래도 SF 쪽이 아주 조금 더 우세하긴 한 것 같습니다.
브릿G에는 추리, 호러, 스릴러 장르 작품들이 많이 올라와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요. 특히 일월명 작가님의 「내 유튜브 알고리즘 좀 이상해」처럼 다른 작가님들이 올려 주신 호러 소설을 재미있게 봐서 저도 한번 써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역시 그때그때 읽는 장르에 영향을 좀 받는 편인 거 같아요.(웃음)
Q. 이번 작품집에서 기후위기를 소재로 한 클라이파이(Cli-Fi)부터 타임리프, 디스토피아, 신체 강탈자까지 SF 분야의 다양한 하위장르를 다룬 작품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멸망해 가는 지구나 사라져 가는 고향, 끝나 버린 별 등 어느 곳의 ‘끝’을 그린다는 점에서 종말 문학의 성격도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요, 쓰고 났더니 각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걸까요.
A. 평소 좋아하거나 자주 생각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 취향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계획을 확실하게 잡고 썼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관심이 있는 주제로 엮인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디스토피아는 특히 제 취향이긴 해요.(!)
「태엽의 끝」은 당시에 브릿G에서 진행했던 타임리프 공모전에 내려고 쓴 작품이기는 해요. 본선까지는 갔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상복이 별로 없구나 하면서 받아들였죠.(웃음)
Q. (편집자 일동 크흡……!)
A. 요새는 수상과 별개로 작가 활동을 계속할 수 있어서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웃음)
#외계인
Q. 인형 속에 갇힌 외계인의 존재를 다룬 「저주 인형의 노래」는 대상을 정신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체 강탈자의 요소도 있어 흥미로웠는데요, 유쾌한 설정도 그렇고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드라마 「닭강정」도 떠올랐어요. 혹시 작가님께서도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저주 인형의 노래」와 분위기는 또 사뭇 다르지만 「현신(現身)」도 외계인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각각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나 배경이 있을까요?
A. 신체 강탈자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사실 「저주 인형의 노래」는 확실히 모티브가 된 작품이 존재하기는 해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인데요, 국내에서 「우주 소리」라는 창극으로도 상연된 적이 있어요. 이 단편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확실히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바로 아실 듯해요. 많은 부분이 닮아 있고 소재적으로 차용해 온 부분들도 있거든요. 결말은 ‘이런 이야기로 끝나면 좋겠다’고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 좀 다르게 마무리가 되었지만요.
「현신(現身)」은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중력파에 관한 TED 강연 영상을 보고 난 후 쓰기 시작했는데, 「버드 박스」 같은 코스믹호러가 가미된 외계 존재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집필했었어요. 옥타비아 버틀러 단편집 『블러드 차일드』에 수록된 단편 「마사의 책」에서 영향을 받았는데요, 마사라는 흑인 여성에게 신이 갑자기 꿈에 나타나 소원을 하나 말해 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요. 그 신의 모습이 처음에는 백인 예수로 나오다가 대화를 거듭할수록 점차 흑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네가 보는 대로 나는 나타난다’고 신이 이야기하거든요. 이 지점이 「현신(現身)」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드라마 「닭강정」은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조만간 짬이 나는 대로 볼까 해요.
Q.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저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끼워 넣었을 따름이어요…! 그런데 「현신(現身)」에서는 삼차원에 사는 인류보다 다차원에 사는 존재들이 더 고차원적인 존재들로 그려지더라고요. 역시 또 최근에 본 것을 빌려 말하자면(…)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서도 외계 존재를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보고 신처럼 받들어 모시고 추종하는 세력이 등장하는데요. 이처럼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가 실제로 나타난다면, 작가님은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하게 될 것 같으세요?
A. 음, 일반적인 반응과 크게 다를 거 같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고 당황하고, 흥분하겠죠? 다만 「현신(現身)」의 주인공처럼 최대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 볼 것 같아요. ‘그래, 저런 게 있을 수도 있지’, ‘이런 것도 가능하지.’ 하면서요. 나이 먹을수록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웃음)
Q. 스쳐가듯 잠깐 언급되긴 하지만, 「현신(現身)」에 나오는 다리 여러 개 달린 오징어는 혹시 크툴루가 맞을까요?
A. 네, 크툴루가 맞습니다.(웃음)
오컬트 단체는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거대 오징어 따위를 내세웠고, 인터넷엔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주는 신에 대한 온갖 외설적인 이야기들이 돌아다녔죠.” ―「현신(現身)」 중에서
Q. 작가님이 만약 지구를 떠도는 외계 정신체라면 어떤 그릇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A. 수명이 길고, 가진 게 많은 그릇을 택하고 싶을 거 같아요. 인간 부자일 수도 있지만, 만약 외계에 비슷하게 수명이 길어서 오래 살고 그 외계 행성에서 가진 자원이 많은 존재라면 한번 들어가 볼 만할 것 같아요.(웃음)
#기후위기
Q.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키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담긴 「방주를 향해서」, 해수면 상승으로 고향이 사라져 가는 「아틀란티스의 여행자」, 인간들의 생활 반경과 겹치고 온난화로 인한 바다 생태계 변화가 심해지면서 멸종이 가속화된 종을 그린 「마지막 인어」까지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읽어 낼 수 있었어요. 기후위기는 이제 당면한 현실이 되었는데요,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의식하고 소설로도 쓰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작품 집필을 위해 특별히 자료를 찾아본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A.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2021년에 준비했던 공모전에서 환영받을 만한 소재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어요. 기후위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장에 올라오던 시기이기도 해서 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자연스럽게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산불의 횟수가 잦아진 경향성을 지적한 KBS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 시리즈라든지, 수온이 높아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산호초들이 끓어올라 죽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특히나 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산호들이 수온이 올라간 바다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끝내 형광색으로 발광하다 죽어 가는 장면은 도무지 잊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제 작품에도 많이 섞이지 않았나 싶어요. 특별히 자료를 찾아봤다기보단,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 덕에 언급한 다큐멘터리들을 보거나 관련 기사나 강연 들을 찾아보게 된 것 같아요.
#과학적 모티브
Q. 「태엽의 끝」과 「75분의 1」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의 개수가 한정이라 영혼을 재활용하여 윤회해야 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어요. 읽다 보니 열역학이나 우주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등각 순환 우주론도 떠올랐는데, 이 가설이 영혼을 재활용하여 윤회한다는 내용과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집필할 때 염두에 둔 물리학 이론이라든지…… 자료 조사를 통해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부분이 있을까요?
A. 사실 저는 이과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특히나 물리학은 몹시도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웃음) 전공 역시 예체능이라 이과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편이어서 아마 제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교과서나 일반교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서브컬처에 익숙한 사람들이 ‘오타쿠적 표현으로’ 곧잘 아는 엔트로피나 평행 우주 이론, 다중 우주 이론 정도에서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해도 기초 과학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영혼 재활용이나 윤회에 관한 부분도 딱 교양 정도의 과학 지식에서 가져온 이야기예요. 실제로 우주의 원자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재활용되니까요. 빅뱅 당시의 원자들이 지금의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 거야 워낙 유명하잖아요.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 부분을 제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필요한 때가 있으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관련한 글들을 읽어 본다든지 주변의 과학도분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인어」의 경우 주변 생물학도분께 이것저것 조언을 구해 나온 글이기도 한데, 이 자리를 빌려 늘 조언에 도움을 주시는 B님께 큰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 인어」는 어떤 조언을 받으셨던 걸까요? 감수를 해 주셨나요?
A. 제가 쓴 글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 조금 걱정이 될 때 과학 전문 지식이 있으신 분들께 가끔 여쭤보거든요. 감수까지는 아니고, 어차피 소설이니까 아주 간단하게 물어보는 정도긴 해요. 실제론 인어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런 부분은 제외하고, 이를테면 작중에 등장하는 ‘생태종 보호 및 복원 센터’에는 어떤 부서가 있을 법한지 짚어 주시는 식이죠. 과학 지식보다는 연구소의 구조 같은 현장의 구체적인 풍경에 대해 조언해 주셨어요.
#세계관과 가치관?!
Q. 「75분의 1」에서 우주 전체 시스템이 불교 사상을 벤치마킹해서 윤회한다는 발상이 재밌어서 평소 작가님의 사후세계관도 궁금해졌습니다. 실제로 저승이나 윤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A. ‘과학적인 의미’의 윤회는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얘기한 빅뱅 때의 원자 같은 것처럼, 우리 몸의 원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재구성되어 다른 물질을 구성하는 데에 쓰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윤회가 존재한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정신적 자아의 윤회가 아니라 원자 자체의 윤회라서 물리적 윤회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요. 원자는 재활용되기 때문에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들의 원자가 우리 몸에 있는 건 불가능하지만, 다빈치처럼 이미 죽은 지 몇 천 년은 된 사람들의 원자는 우리 몸에 있을 수 있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물리적으로 원자가 순환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어 있으니까, 과학적으로는 윤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승에 관해서는 글쎄요……. 이야깃거리로는 정말 흥미롭긴 하죠. 『신과 함께』나 이산화 작가님의 단편 「증명된 사실」 같은 얘기는 너무 재미있잖아요. 실제로는 사후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승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살아가는 동안 일종의 교훈으로 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요.
Q. 사후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처럼 「75분의 1」 속 내용을 현실에 대입해 생각하니, 지금의 제 일상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방주를 향해서」나 「아틀란티스의 여행자」 주인공들도 특별한 대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저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당면한 일들을 피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처럼 현실에 발붙이고 선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포착하여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게 하는 메시지를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요, 작가님의 평소 가치관이나 어떤 태도가 투영된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했어요.
A. 전부 다 제가 한창 희망에 가득 차 있을 때 쓴 내용들이에요.(웃음)
원래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할 때 되도록 절망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는 의무감 내지 저만의 불문율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 ‘메리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 한 편을 썼어요. 브릿G에 올린 「워터파크의 해파리」라는 작품인데요, 그 작품을 보고 일월명 작가님께서 리뷰어의 큐레이션을 통해 “이런 끝으로만 줄 수 있는 위안도 분명 있습니다.”라고 리뷰를 남겨 주셨는데, 정확히 그런 생각으로 썼던 거거든요.
그렇지만 지금 다시 『떠나가는 관들에게』 수록작들을 쓰라고 해도 희망찬 방향으로 쓸 것 같기는 해요. 창작물이라면 일단은 희망을 줘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서요. 물론 모든 작품이 희망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내 작품에서는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만을 다루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비극은 현실에 너무 많고, 이미 현실의 모든 순간이 비극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비극을 굳이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찰나를 연이어 순간으로 만들고 순간을 연이어 삶으로 만들면서 있는 힘껏 존재하는 것.
그 일 외에는 딱히 도리가 없죠.” ―「75분의 1」 중에서
Q. 「저주 인형의 노래」는 버려진 인형을 주워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집 안에 들어온 인형에 저주가 깃들어 가정의 화목을 망치고 나가는 이야기는 지구에서 대륙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유명한 얘기인가.’라는 대목에서 공포 영화 「사탄의 인형」의 처키가 떠올라 잠시 무서웠다가 작품의 장르를 다시 확인하며 안심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밖에서 주워 온 물건이 불행을 끌고 들어온다는 세간의 속설도 있는데, 작가님도 이와 같은 미신이나 무속을 믿는 편이신가요?(브릿G 토크 인터뷰를 통해 미신을 믿는 편이냐고 작가님들께 대놓고 연달아 물어보는 중임을 뒤늦게 자각하며……)
A. 주워 온 물건은 위생적인 문제가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요즘에는 주워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쓸 만한 중고 상품이 정말 많아서요. 최근 트위터에서도 떠들썩하게 돌았던 내용처럼, 중고로 구입해서 귀신 들린 옷보다도 버려진 옷을 먹는 코끼리가 더 무서운 게 현실이니까요.
무속이나 미신 역시 저승을 대하는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요. 실제로 크게 믿지는 않지만, 생활에서는 재미로 종종 찾아볼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인터넷 무료 타로 창을 켜서 상업 작가로서 과연 이번 작품은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선인세(MG)는 깔 수 있을지 점을 쳐 보는 거죠.(웃음) 작품이 잘 되고 아니고가 워낙에 진인사대천명으로 느껴질 때가 잦다 보니…… 가끔은 그렇게라도 찾아봐야 위안이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타로를 보고 결과가 나쁘면 미신이라 생각하고 결과가 좋으면 잘 맞았다고 생각하고요.(웃음)
최근 흥행한 영화 「파묘」처럼 이야기로서의 무속은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 영화 「만신」을 보다가 무당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병사들의 혼을 내림 받아 한풀이하듯 하소연하고 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어요. 실제로 무당이 빙의를 했다고 느껴진다기보다는 무속이 공동체를 치유하는 문화 인류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의 한을 내 것처럼 여기고 공감하고 받아들이며, 연극적 행위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를 다른 이들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요. 「파묘」 역시도 식민지를 겪었다는 특수성을 치유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치유 기능 외에도 「만신」에서 풍어제를 치를 때 나오는 무당의 연극은 그 자체의 문화 예술 공연으로서 감탄하면서 보기도 했고요.
Q. 「파묘」도 재미있게 보셨나요.
A.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공동체를 치유하는 목적을 지닌 작품이라서 오컬트 영화라는 장르적으로 호불호를 논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파묘」를 보고 인도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가 떠올랐는데요, 신화 속의 힘을 이어받은 두 남자 영웅이 인도 식민지 시대의 영국 총독부를 폭파하며 독립운동을 하는 내용이거든요. 또 발리우드 작품답게 춤도 추면서 굉장히 유쾌하고 스펙터클하게 전개되어서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그런 허구성을 지적하려고 영화를 보는 건 아니니까 「파묘」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여성 서사
Q. 「떠나가는 관들에게」와 「마지막 인어」에서 아이를 둔 엄마의 삶이 무척 생생하게 그려져 읽으면서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런 관계성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독자 각자의 경험에 따라 수용 정도가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고 자칫 신파로도 흐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텐데, 집필하시면서 신경을 쓴 부분들도 있을까요?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중 이야기가 신파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모녀의 관계를 표백시켜 대상화하거나 미화하는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한 엄마의 분투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거든요.
A. 「떠나가는 관들에게」를 집필하면서 저는 사실 제가 서진보다는 인서에 가깝지 않나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언제나 엄마보다는 딸에 가까운 입장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딸의 입장에서 엄마가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는 것은 나름대로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사회에서 여성이 부딪히는 벽들을 생각하면 크게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잖아요. 또 각자의 경험이 다를지라도 ‘엄마를 향한 딸들의 애증’이라는 코드는 공유를 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에 ‘(레이디 버드)나는 그냥 엄마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 (엄마)너를 항상 사랑한다는 거 알잖니. / (레이디 버드)그런데 나를 좋아하냐고.’라는 뉘앙스의 대화 장면이 있는데요, 그 대사의 느낌으로 쓰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은 실제로 겪어 보지 않아서 전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마지막 인어」에 나오는 언니가 ‘아이들을 가지면서 내 꿈을 포기했다’는 대사는 실제로 저희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기도 해요. 생일에 대한 소회를 얘기하다가 그 이야기가 은연중에 나오고 말았던 거죠.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부모가 그 말을 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딸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저런 경험을 떠올리며 썼지만 어쨌든 주인공인 ‘서진’보다는 딸인 ‘인서’의 입장에 가까웠던 덕에 신파가 조금 줄어들고 이들의 관계가 미화되지만은 않았던 게 아닐까 해요. 아무래도 주인공이 당사자로서 한풀이하다 보면 신파적인 면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고 마니까요. 또 신파로 흘러가지 않도록 견제하려 노력하기도 했어요. 영향을 받은 「관내분실」의 마지막 대사도 ‘엄마를 용서해’가 아니라 ‘엄마를 이해해’라고 하거든요. 용서는 조금 힘들지만 이해는 한다는 느낌으로 썼어요.
Q. 지구 생명체의 DNA 표본을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맡은 연구원(「방주를 향해서」)부터, 고차원 존재를 삼차원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연구원(「현신(現身)」), 멸종 위기 생태종 보호 및 복원 센터의 연구원(「마지막 인어」)까지 작중에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하지요. 과학 얘긴 아니지만, 최근 한 칼럼에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경력 10년 미만의 여성 개발자들이 자신들이 만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경향성이 눈에 띈다고 짚은 대목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처럼 여성 과학자를 비롯해 여성 서사를 창작할 때, 집필 동기나 모티브를 얻은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A.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관해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이유가 컸어요. 만약 남성 과학자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을 것 같아요. 남성 과학자가 주인공인 연작엔 사람들이 ‘왜 남자만 나오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처럼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그렇다고 또 여성 주인공이라는 점을 너무 강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특별히 내세우지 않더라도 공기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세상에 존재하는 거죠. 요즘 북미 쪽에서 만드는 콘텐츠에도 다인종이 많은데 실제로 그들 주변에 다인종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콘텐츠에 반영되는 것처럼 제 작품에도 그렇게 넣으려고 많이 노력했죠.
『여명기』 등의 여성 서사 앤솔러지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그 이전부터 1차 만화 동인 활동에서 여성 주인공 위주의 이야기를 하면서 생긴 오랜 습관이기도 해요. 여성 서사는 한 발만 삐끗하면 프로파간다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촌스러워지기 쉽거든요.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그 선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여성 서사 만화를 그리던 초기 시절에 그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여성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셨다니 정말 다행인데, 그간 분투했던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네요.(웃음) 별개로 제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과학도분들이 대체로 여성이신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하고요.
Q. 한편으론 「아틀란티스의 여행자」, 「75분의 1」에서 나오는 먼 미래 후손의 존재라든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딸에게 다시 물려주는 설정 등은 여성 서사가 승계되는 과정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A. 딱히 의식하진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틀란티스의 여행자」에 나오는 주인공이 입양한 자식의 먼 후손은, 만약 직계 후손이 등장한다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혈통주의에 관한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신경 쓴 부분이기는 하거든요.
Q. 등장인물을 여성으로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작업이 만화에서 소설로도 이어졌군요.
A. 네, 그렇죠. 어지간해선 거의 다 여성 주인공이에요. 또 등장인물의 이름을 되도록 중성적으로 지으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남자로도 쓸 수 있고 여자로도 쓸 수 있는 이름은 독자분들께서도 다양하게 해석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 연장에서 ‘그녀’ 같은 인칭대명사도 되도록 안 쓰려고 하고요.
#소수자의 이야기, SF라는 도구
Q. 「현신(現身)」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경기장 근처의 판자촌들이 강제로 철거되었던 일을 화자가 회고하면서 작품 속 현재 사건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때문에 작중 사건이 좀 더 가깝게 느껴져 좋았어요. 작품의 배경은 유럽이 연상되는 곳인데 서울올림픽 당시의 이야기를 소설에 녹여내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A.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다행이네요. 사실 저는 조금 어색하지 않나 싶었는데요.(웃음) 제가 서울올림픽 이후 출생자라서 자세하게는 모르기 때문에 주인공도 누군가에게 들은 과거를 회상하듯 떠올리는 식으로 반영된 것 같아요.
서울올림픽을 소환하긴 했지만, 당시 유럽의 난민 문제에 관한 뉴스를 많이 접했던 것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작중에 나오는 ‘난민들은 바다에 나가 있으라고 하면 안 되냐’는 말 역시 실제로 유럽의 한 정치인이 해서 비판받았던 말이거든요. 또 수백 명이 탄 난민선이 습격당하는 바람에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남은 여성에 대한 TED 강연을 우연히 보게 되기도 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거듭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이런 일들이 굳이 유럽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되더라고요. 한국도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잖아요. 인천공항에 1년이 넘게 억류되어 있었던 난민의 이야기도 있었고, 하물며 강제 철거는 자국민에게조차 국가와 사회의 이름으로 여러 번 자행된 적이 있으니까요. 사회적 참사가 한국에서도 많이 일어났는데 그 일들을 다루지 않는 게 위선처럼 다가왔어요.
Q. 그 외에도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1인 가정부터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해요. 다양한 형태의 인적 구성, 이종 간 소통 과정을 드러내는 데에 SF라는 장르가 적합한 도구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A. 다른 장르에서도 설득력만 있으면 다 가능하겠지만, 유독 외계인 이론 자체가 SF에서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등장해도 장르 규칙상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수용이 되니까요. 전혀 다른 세계의 인종이나 존재가 나와도 그러려니 하며 편입되고, 그 존재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나와도 괜찮잖아요. 그러니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뛰어넘는 도구로서 SF가 가장 적합한 장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SF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긴 하지만 일상과 비일상이 조화로운 작품으로 『던전밥』 작가 쿠이 료코의 작품집 『용의 학교는 산 위에』와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를 추천하고 싶어요. 단편 중에 켄타우로스가 정장을 입고 출근해서 일하고 그 고충을 이야기하면서 권리 운동을 하는 사람도 등장하는데요. SF는 이런 비일상에 현대인들이 겪는 일상적인 문제를 끼워 넣는 게 용이한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이종 간 소통에 관해서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Arrival, 2017)」,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1997)」도 아주 좋아합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들
Q. 「태엽의 끝」에서 끝없이 타임루프가 반복되는 장면들은 영상적인 이미지들이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비주얼적으로 서사를 구성하시는 데 친숙하신 걸까요.
A. 영상적인 이미지를 독자가 떠올릴 수 있도록 일부러 많이 신경을 썼는데, 그렇게 느껴진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에요.(!) 작품을 쓸 때 영상적인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도 하고, 원래 기본적으로 비주얼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거든요.
Q. 「떠나가는 관들에게」에서 인서는 서진과 닮아 의기소침해 보이면서도 무던하고, 그러면서도 무덤덤한 표정이라는 묘사가 종종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실은,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셨던 인서의 얼굴을 간단히 그려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했거든요.(웃음) 말하면서도 역시 무리인 것 같습니다만…….
A. 앗, 사실 저는 인물들의 얼굴 같은 외형에 대해서는 자세히 정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그래서 처음에 웹소설 표지 관련해 제안을 드릴 때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SF 웹소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를 쓴 연산호 작가님께서도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생겼냐는 독자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안 정해 놓는다고 답변하신 것을 보고 너무 공감했었어요.(웃음) 비주얼에 많이 의지한다고 했지만, 그게 인물의 외형이라기보다는 어떤 장면 속 순간순간들의 미장센에 의지한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Q. 『떠나가는 관들에게』에는 수록작마다 굉장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종을 떠나 작가님께서 특히 마음이 가거나 애정하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A. 「저주 인형의 노래」에 나오는 ‘나’와 「방주를 향해서」의 ‘이진영 연구원’이 생각나네요.
「저주 인형의 노래」에서 ‘나’가 구질구질하게 이전 일에 집착하는 면모는 저에게서도 일부 빌려왔어요. 예전에는 지난 일에 후회와 집착을 정말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몹시 받았는데요. 요새는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묻어 버리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넘기는 게 잘 안 되어서 작품을 쓸 때 많이 반영이 됐던 것 같아요.
「방주를 향해서」의 ‘이진영 연구원’은 저를 닮았다기보다는 제가 추구하고 싶은 모습이에요. 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하잖아요? 저벅저벅 그냥 걸어가면서요. 늘 그런 태도를 갖고 싶었어요.
Q. 집필하면서 또는 집필하고 나서 기억에 깊게 남아 있는 단편이 있나요?
A. 개인적으로 「현신(現身)」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다른 이유는 아니고, 집필할 때 중력파 누수라든가 이런저런 과학적 요소를 녹여내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차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교양 수준에서 찾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관련 자료 찾는 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감정적으로 이거 너무 잘 썼다고 느낀 작품보다는 구상하느라 너무 힘들었거나 자료를 찾는데 잘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던 작품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웃음)
Q. 「떠나가는 관들에게」에 나오는 미래상 중 하나인데, 댓글 창을 안 보이게 하는 유료 플러그인이라는 설정에 굉장히 혹했습니다. 작가님이 설계한 미래상 중 실제로도 이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아이템이 있을까요.
A. 댓글 창을 안 보이게 하는 프로그램은 제가 웹소설 쓸 때마다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에요.(웃음)
저는 사실 웹소설 데뷔작을 쓰고 제 작품의 댓글 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멘탈 관리를 위해서 댓글이나 서평을 찾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선플이 100개가 달려 있어도 악플 하나가 달리는 순간 그게 영원히 기억에 남거든요. 사실 이게 상업 작가로서는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웹소설 작가분들 중에 생각보다 댓글을 안 보신다는 분들이 제법 있으셔서 위안이 되더라고요. 다른 작품에 달린 댓글은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종종 보기도 합니다.
Q. 브릿G 단문응원은 보시는 것 같았는데요!
A. 모두 상냥하게 단문응원을 남겨 주셔서 감사히 보고 있어요. 초반엔 단문응원에 답글도 달아드렸는데 어느 순간 너무 바빠져서 못 달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은 공평하게 모든 단문응원과 리뷰에 답변을 남기기보단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브릿G에선 별다른 답은 못 드려도 트위터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거나 리뷰를 따로 소개해 드리고 있어요.
Q. 혹시 일전에 작업하신 단편 만화 중에 브릿G 독자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A. 만화 중에서 『떠나가는 관들에게』에 수록된 작품들과 결이 비슷한 작품이라면 「산호의 노래」가 있어요. 그 외에 「마지막 인어」, 「75분의 1」 같은 경우도 원래 만화에서 시작한 아이디어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라, 동명의 만화들이 개인 블로그에 올라와 있습니다.
또 「단절된 아이」라는 만화를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었는데요.
어릴 때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던 주인공이 우주 탐사를 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한 여자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알게 돼요. 그 여자는 주인공과 똑같은 외형이었는데 자신이 주인공의 가족이라며 고향에 초대하겠다고 하죠. 초대에 응해 고향으로 갔더니 그 행성의 모든 구성원이 주인공과 똑같이 생겨서 주인공은 겁을 먹어요. 알고 보니 그 행성에 있는 어느 한 거대한 나무의 고치에서 클론들이 태어나서 외형이 똑같았던 거고, 그 클론들을 하나씩 주기적으로 행성 밖 우주로 내보내고 있었던 거죠. 나무에 매달린 고치에서 사람이 태어난다는 설정을 배명은 작가님의 단편 「아까시나무」에서도 보고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봤어요.(배명은 작가님 작품을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여튼, 유료로 공개된 작품이다 보니 스포일러는 살짝 넘기고, 개인적으로는 호러, 스릴러, SF 다 섞여 있어서 작업이 굉장히 재밌었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반응은 좀 없던 편이라 추천해 보고 싶어요. 다만 다소 옛날 작품인 점은 감안해서 봐 주세요.(웃음)
Q. 만화 속 아이디어를 소설로 각색하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을까요?
A. 『떠나가는 관들에게』에게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대신의 삶」을 각색하면서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이 작품도 만화에서 시작한 이야기인데 소설로 쓰면서 휴먼드라마에서 호러스릴러로 장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그린 만화의 소재를 차용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장르로 바꾼 다음 소설을 쓸 때가 있는데, 「대신의 삶」은 장르가 아예 바뀌었는데 훨씬 재미있었어요.
Q. 스릴러와 호러 모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A. 정말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호러를 써 보려고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 그 시도 중 하나가 「순암리에서」입니다. 호러를 도전했으나 결말은 호러로 끝나지 않았죠.(웃음)
Q. 호러 작품도 많이 써서 올려 주십시오! (편집자 일동 외침)
A. 네, 「순암리에서」와 「대신의 삶」에 이어 최근에 「수귀(水鬼)」까지 추천작으로 올려 주셨더라고요.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웃음)
Q. SF 장르의 국내 영상화 제작도 예전보다는 많아진 추세인데, 혹시 작가님의 작품 중 영상화를 상상해 본 작품이 있을까요?
A. 사실 거의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떠나가는 관들에게」가 가장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어요. 다른 작품과 달리 CG 처리가 덜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멸망한 세계도 아니고 외계인도 나올 필요도 없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 배경이기도 하니까요.
필요한 CG라고는 냉동 캡슐 정도일 텐데요, 작중 냉동 캡슐 이미지는 냉동인간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에서 따 왔어요. 불교가 거의 국교인 태국에서 어린 딸이 희소병으로 사망하자 부모와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아이를 냉동 캡슐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이 되었다고 해요. 태국에서는 아이가 윤회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동이라며 비난했던 거죠. 그 다큐멘터리에 실제로 냉동하는 과정이나 냉동 튜브가 나와서 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작품을 썼는데, 아무래도 영상화가 된다면 냉동 튜브도 실제로 있는 거니까 무난하지 않을까 싶네요.
Q. 작가님마다 즉흥적으로 쓰시는 분, 시놉시스를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후에야 집필하시는 분 등 집필 스타일이 다양하신데요, 작가님께선 단편을 집필하기 전에 보통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구체화를 하시는지 궁금해요.
A. 단편의 경우는 아이디어가 될 만한 대사나 상황에서 시작해 살을 붙이는 방법으로 쓰고 있어요. SF를 자주 쓸 때는 주로 짤막한 TED 강연 같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그 외에는 정말 ‘꽂힌다’는 느낌으로 생각 외의 타이밍에 뜬금없이 얻게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어떤 주제를 계속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결론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결론만 나오면 살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다만 최근에는 SF에 관한 아이디어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신내림이 좀 끊겼어요.(웃음) 제 SF 장군신이 일을 안 하시죠. 아니, 못 하신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Q. (일동 웃음) 그렇게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글로 바로 옮길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A. 저는 딱히 메모용 툴을 따로 쓰진 않아서,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기능으로 메모를 남겨 두곤 해요. 떠오른 아이디어를 날리기에 너무 아까워서 가끔 카톡으로 저한테 대화하듯이 대사를 계속 보내요. 그렇게 대사들을 카톡으로 계속 보내다 보면 그게 한 편의 단편으로 발전하기도 하더라고요. 가끔 써 둔 내용을 백업해야겠다 싶을 때는 저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요.
Q. ‘나와의 채팅’과 ‘나에게 메일 쓰기’ 신공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웹소설 작업에 전념하신다고 하셨지만, 기회가 된다면 출판 단행본용 장편에도 도전하실 생각도 있으실까요?
A. 사실 웹소설에서는 100화 이상(45만 자~75만 자)의 장편을 여러 번 작업했고, 현재 막 계약하여 작업 중인 작품 역시 비슷한 분량으로 쓸 예정이에요. 그 기준으로 보면 사실 장편 소설은 도전해 본 적이 있다고 해야겠네요. 물론 매번 해도 매번 어려운 도전이라는 기분이 들지만요…….
문윤성 SF 문학상 공모전에 낼까 잠깐 고민한 적도 있는데, 쓰고 보니 좀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사실 웹소설을 매일 쓰느라 모든 아이디어가 소진되고 있어서, SF 장편을 쓸 에너지를 못 얻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언젠가 아이디어가 찾아오는 날이 있다면, 장르문학으로도 장편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습니다. 브릿G에도 마찬가지로 종종 SF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든지, 상업에서는 비주류인 장르의 이야기들이 쓰고 싶을 때마다 찾아뵐 생각입니다.
Q. 작가님께서 평소 즐겨 듣는 노래나 추천곡이 있을까요? 집필하면서 음악을 듣는지, 집필하는 환경이 궁금합니다. 작품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A. 평소 집필할 때는 음악을 듣는 것을 꺼리는 편이라 귀마개를 많이 끼고 작업해요. 꼭 들어야 할 때는 클래식같이 가사가 없는 편을 선호하고요. 작품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아틀란티스의 여행자」의 모티브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BoA의 「아틀란티스 소녀」입니다.
Q. 아니, 정말이신가요? 저희 질문에 대한 너무 완벽한 선곡이 아닌지 의심되는데요.(웃음)
A. 정말이에요.(웃음) 글 쓸 때 음악이 방해되어서 거의 잘 안 듣는데, 「아틀란티스 소녀」를 들은 이후로는 집필하면서도 음악을 잘 듣게 됐어요. 원래 많이 좋아하던 곡이라서 반복해서 듣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웃음)
여담이지만, 「아틀란티스의 여행자」에서 주인공이 학급 서고에 있는 세계 7대 미스터리 같은 느낌의 책에 푹 빠진 타입으로 묘사되는데, 딱 제가 그런 스타일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현대 고등학생이라 저와 세대가 안 맞는데 이런 취향을 그대로 쓰면 너무 올드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유튜브를 찾아보니까 요즘도 이런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즐기더라고요. 그래서 안심했습니다.(웃음)
냉동 캡슐을 타고 먼 행성으로 이주하기 vs 지구에서 외계인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 지구에서 외계인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저는 낯선 환경을 무서워하는 I 사람인지라.(웃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보다는 낯선 인물 한 사람에게만 적응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T 지구인 vs F 인공지능 (MBTI 이야기)
✅ F 인공지능이요. 제가 F라서 공감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
T 지구인에게 매번 칼같이 ‘아니야’ 하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F 인공지능이 저를 학습해서 응답해 주는 쪽이 좋습니다.
제가 둘 중 하나가 된다고 해도 F 인공지능을 선택할 거예요. 성향은 바뀌기 힘드니까요.
사후 세계에서 미로 찾기 vs 윤회하여 사후 세계 탈출하기
✅ 윤회하여 사후 세계 탈출하기. 저는 퍼즐 게임도 힘들어하는 편입니다.
콘솔 게임 마니아인데 그런 게임에서조차 퍼즐 요소가 나오면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미로 헤매지 않고 그냥 탈출하겠습니다.(웃음)
곰 인형에 빙의하기 vs 인어에 빙의하기
✅ 인어가 나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아무리 운동을 싫어해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곰 인형에 빙의하는 건 힘들 것 같네요.(웃음)
우주 비행사 vs 과학자
✅ 우주 비행사요. 개인적인 로망이 있거든요.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 비행사분 중에 ‘크리스 해드필드’라고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이 계신데요. 그분이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노래를 부른 영상이 있어요. 우주 비행사 노래를 우주 정거장에서 노래하는 우주 비행사라니,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아틀란티스 여행하기 vs 고차원 여행하기(시간 여행자)
✅ 하하. 너무 좋은데 어렵네요. 둘 다 해 보고 싶어요. 너무 재밌을 것 같거든요.
트로이 전쟁도 결국에는 신화가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아틀란티스는 유적 발굴 느낌일 것 같으니 고차원을 고르겠습니다. 고차원이라 형태가 달라져도 아예 미지의 세계니까 궁금해요.
Q. 평소 가방 속에 휴대하고 다니는 작가님만의 일상템을 직접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물건이나 가방에는 없지만 추천하고 싶은 다른 인생템이 있을까요?
A. 3M 귀마개요. 아무래도 소음에 민감해서 종종 들고 다닙니다. 순식간에 집중력을 높여 주는 데도 많이 도움이 돼요.
Q. 아악, 완전 새 제품인데 오늘 인터뷰 때문에 괜히……!
A. 케이스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새로 사야지 했는데, 인터뷰 사진도 찍어야 해서 겸사겸사 샀어요.(웃음)
☑️ 이벤트 기간 동안 인터뷰에 대한 감상을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골드코인 10개(10명)
*유효 기간 적립일로부터 30일
📿 마노석 팔찌(1명)
📚 『떠나가는 관들에게』 친필 사인본 도서 (3명)
이벤트 기간: 2024년 4월 22일(월) ~ 2024년 5월 6일(월) / 당첨자 발표: 2024년 5월 7일(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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