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암리에서

  • 장르: 호러 | 태그: #괴담 #공포
  • 평점×55 | 분량: 93매
  • 소개: “나왔어?” 유명한 괴담 명소인 순암리 폐수련장으로 납량 특집 브이로그를 찍으러 간 ‘나’ 윤주안과 정민, 재연, 해솔. 갑자기 해솔이 ... 더보기
작가

순암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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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로 들어가는 거 맞아? 왜 자꾸 헛도는 기분이지?”

앞쪽에서 간헐적으로 터지는 정민의 욕설을 들으며 나는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어젯밤에 온 비로 산길이 젖어 질퍽거렸고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였다.

우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선두에 선 정민이 무어라 꿍얼댈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도 짜증이 솟았다. 그래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여기서 짜증을 내봤자 바뀌는 것도 없었으니까.

이제 와 되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다. 안쪽까지 들어가 인증샷이라도 하나 찍고 나와야 맞았다. 기대감에 부푼 건지 아까부터 나머지 우리 셋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던 해솔이 재잘댔다.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뭔 소리야 진짜. 너 자꾸 그런 소리 할래?”

“왜? 해솔이 말이 맞아. 뭐라도 나와야 그거 찍고 대박 나지. 아무것도 못 건지는 거보다 그편이 백배는 낫잖아.”

정민의 타박을 재연이 받아쳤다. 재연은 요즘 해솔에게 이런저런 수작을 거느라 바빴으므로 그 말은 해솔을 감싸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었겠으나, 나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올 거면 진짜로 뭐 하나가 나와야지. 아주 제대로 나와야지. 조회수로 또 대박이라도 쳐봐야지.

우리 넷은 묵묵히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현장 주변은 아직도 녹슨 철망이 둘러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려면 뒤에 있는 산을 쭉 돌아 담장이 없는 곳을 찾아 넘어야 했다.

한 시간째 플래시 라이트와 핸드폰 카메라의 조명에 의지해 산을 타자니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운동화를 고쳐 신고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반쯤 무너진 순암리 수련장을 바라보았다.

* * *

순암리 괴담. 자유로 귀신이나 곤지암 병원, 빨간 마스크처럼 최근 국내 괴담 이슈로 불타오른 이 괴담은 K도 순암리에 있는, 오래전 폐쇄된 청소년 수련장을 무대로 한 괴담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미디어 콘텐츠 동아리가 제대로 히트시킨 괴담이었고.

한 달 전쯤 강변에서 한참 술을 마시다 누군가가 거기 폐수련장 있는 거 아냐는 말을 꺼낸 게 시작이었다. 아마 정민이었을 것이다.

한창 비대면 강의가 진행될 시기라 영 만날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우리가 회포를 푼 것은 오프라인 기말고사를 치기 위해 다들 학교로 모였을 즈음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 중인 해솔과 재연을 같은 교양 시험을 치고 나온 정민과 내가 불러내 강변에 돗자리를 깔고 밤바람과 함께 맥주캔을 연거푸 따댔던 것이다.

그러다 나온 게 그 얘기였다. 정민은 또 시작이냐는 듯한 우리 사이에서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순암리면 되게 가까워.”

“자가용으로 편도 2시간이 가까운 거냐?”

“다른 데에 비하면 양반이지. 자유로 이런 데는 진즉 거품 다 빠졌고. 어디 제대로 된 거 없나 검색하던 차에 찾았다니까. 완전 블루오션.”

“블루오션까진 아니지. ‘순암리 그거’ 말하는 거면 뉴스에도 나왔던 거잖아.”

나의 냉정한 한마디에 옆에서 재연이 끄덕였고 원체 술이 약했던 해솔은 취해 있었는지 반쯤 고개를 박고 졸고 있었다. 재연은 은근슬쩍 해솔에게 자기 어깨를 빌려주고 있었다.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오는 기회주의자 같으니.

사실 순암리의 그 폐수련장은 우리 또래라면 몰라도 바로 윗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이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많은 중고등학교가 그곳으로 수학여행이니 수련회를 갔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쯤 많은 내 사촌들이 수련회를 다녀왔던 곳도 거기였다.

그렇게 유명한 곳이 단박에 폐쇄된 것은 많은 사람이 사망한 안전사고 때문이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사고가 난 건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책임자들이 모두 도망쳐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온갖 음모론이 판을 쳤다. 누군가는 건물이 무너졌다고 했고 누군가는 불이 났다고 했다. 실제로 당시 뉴스 영상에 밤하늘 사이로 연기와 불이 치솟는 장면이 보였는데, 조사도 흐지부지되고 진상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유야무야 종결되었다. 아마 앞뒤로 다른 대형 사고와 재난들이 터졌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유난히 안전 불감으로 사건 사고가 잦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대부분 사건 사고가 제대로 된 조사며 마무리도 없이 잊히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나마 유가족들의 노력으로 당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보고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몇몇 학생들이 대학 입학에 가산점을 받는 등의 일로 논란이 있었다고는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순암리 사고가 있었을 때 아주 어린 꼬마였고, 어렴풋하게나마 뉴스에서 사고를 본 기억이 있었다.

구조되어 들것에 실려 가는, 어느 학교인지 모를 교복을 뒤집어쓴 학생들이나 어린아이라던지(당시 수련장에는 자기 언니나 오빠를 따라온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들. 옷가지로 얼굴을 가린 채 모여드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 사이를 뚫고 지나가던 생존자와 구조자들, 서로에게 소리를 치고 있는 정치인들.

어쨌든 단편적인 기억만 남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나에겐 좀 먼일이긴 했다. 정민은 여전히 흥분해있었다.

“한번 구경이나 하고 오자고. 우리 브이로그도 찍어 올려야지.”

그 말에 재연이 움찔했다. 브이로그는 재연의 담당이었는데, 한동안 업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미디어 콘텐츠 동아리였다. 이런저런 대중 콘텐츠를 생산해 이력서에 이런 활동을 했다고 적어 넣고 스펙을 만드는 것이 주된 활동인 동아리. 그런 업데이트 공백은 모두에게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정민이 다시금 말했다.

“종강하면 시기가 딱 심령이나 납량 특집 유행할 때야. 작년에 기획한 거 반응이 영 별로여서 올해는 제대로 해보자 했잖아. 그거만 기다리면서 사전 조사를 얼마나 많이 하고 다녔냐? 우리도 하나 건지자.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가서 하나 찍고 오자고.”

재연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그러마 했고 나는 둘만 보내기엔 영 탐탁지가 않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건 내 쪽이 더 잘하기도 했고.

해솔이 문제였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해솔의 고개는 이미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재연과 나는 해솔의 룸메이트에게 연락해 해솔을 귀가시켰다. 그렇게 나와 재연, 정민 셋이서 순암리 폐수련장 체험 브이로그를 찍고 돌아왔다.

동영상은 예상외로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