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인 X 한켠 작가 특별 크로스 인터뷰!

2022.3.7

이연인『듄』과 『눈물을 마시는 새』도 제가 세계관을 구상하는 데 영향을 받은 작품들입니다. 천한의 주신인 수신을 섬기는 교단의 신관들은 베네 게세리트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고, 한편으로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섬기는 수호자들과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켠🕵️‍♀️ 전일도가 맡는 사건이 계속되면서 종종 ‘아, 이건 탐정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해결할 일인데’라는 자각이 찾아옵니다. 아직은 법과 제도가 사회를 따라오지 못하는 틈을 전일도라는 탐정이 메워야 하겠지요.

요즘 브릿G 숏터뷰 콘텐츠로 자주 인사드렸었는데요, 오늘은 서로의 작품을 탐독하며 브릿G와 오랫동안 함께해주고 계신 두 작가님을 한데 모시는 특별 인터뷰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최근 2차 연재를 론칭한 『별리낙원』의 이연인 작가님과 더불어 탐정 전일도 사건집 두 번째 이야기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출간 소식으로 돌아온 한켠 작가님입니다!

방대한 서사와 독창적인 세계관이 매력적인 『별리낙원』이 탄생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세계관 설정에 깊은 영향을 받은 각종 탐독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해주신 이연인 작가님의 이야기는 물론, 한국사회에서 ‘청취자’의 역할을 하며 아직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구석에서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전일도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한켠 작가님의 다양한 고민까지, 두 작가님 특유의 사려깊고 섬세한 답변들이 한데 담겼습니다.

특별 크로스 매거진에 함께해주신 두 작가님께 많은 응답으로 환영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인터뷰 하단에는 특별 제작 선물과 더불어 이벤트도 마련되었으니 역시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lol:

 

 

Q. 『별리낙원』은 브릿G 오픈 초기부터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예요. 당시 『낙원과의 이별』이라는 제목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고, 또 대대적인 개고와 퇴고를 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가 탐독하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쯤은 갖고 싶어서’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별리낙원』이야말로 작가님이 읽고 싶었던 ‘최애’ 요소들이 잔뜩 들어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처음 집필하게 되셨나요?

A. 『별리낙원』의 시작은 몇 년 전 문득 떠올린 딱 한 줄이었습니다. ‘구제 불능의 망나니 같지만 매력 넘치는 여자와 꼿꼿하고 고지식한 성직자 남자가 지지고 볶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왜 하필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였느냐, 그리고 사랑 이야기였느냐 하면 그 무렵 제가 꽤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람과 끝내 잘 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글로나마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가장 강력한 동기였습니다.

만약 제게 용기나 재력, 매력, 권력 가운데 단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현실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말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주인공 진원에게는 그 모든 것을 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사랑이 거부당하거나 사랑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남주인공 선우는 그의 모델이 된 현실의 인물과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나 결국은 진원을 사랑하게 되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진원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워지건 아랑곳하지 않으리라는 부분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제가 마음에 두었던 사람은 저에게 실낱같은 호감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고 저와 함께 있었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극히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와 저는 여러 면에서 ‘급’이 아예 다른 사람이었으니, 그는 아마 저와 엮여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지독한 모욕을 당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순전히 아주 가끔 자신에게 필요할 때, 혹은 기분이 유달리 좋을 때만 적선하듯이 친절을 던져주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여전히 제 마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별리낙원』을 쓰면서 가망 없는 외사랑으로 인한 고통과 구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죽은 이후에까지 단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무덤을 파헤치고 나오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 “죽어서도 그이를 사랑할 텐가?”
  “내 무덤가에 서서 그이 얘기를 해보시오. 내가 어떻게 되살아나는지 지켜보도록.”
  (예전에 트위터에서 보았던 마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의 시 구절입니다. 사실 『별리낙원』을 쓰기 시작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별리낙원』의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출처

 

Q. 『별리낙원』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동의하듯, 이 작품은 독창적이고 정밀한 세계관이 단연 인상적이에요. 이슬람 문화와 조선의 왕실 문화가 고루 생각나는 이색적인 조합이 정말 매력적인데요, 큰 틀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의복이나 시민들의 생활상 등 정말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점이 남다른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은 어떻게 구상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별리낙원』의 세계관 자체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누덕누덕 기운 조각보에 가깝습니다. 평소에 닥치는 대로 읽은 책들과 여러 곳에서 얻은 정보들 가운데 글의 전개에 필요하다 싶은 것과 제 마음에 드는 것들을 대충 그럴싸하게 배치했을 뿐이니 그다지 틀린 표현도 아닐 겁니다. 주 배경인 천한국만 하더라도 조선 왕실이 생각난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명·청·일본·월남 등에서 가져온 것도 많습니다. 천한은 황제국이어서 조선의 의례를 그대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을 구성하면서 참고가 된 책들은 주로 역사나 사회 관련이었지만, 소설 중에서도 제가 영향을 받은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전혜진 작가님의 『황금새의 전설』이 있습니다. 『별리낙원』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예전에 사놓고 잊어버렸던 『황금새의 전설』 1부를 우연히 발굴해 다시 읽었습니다. 여자 황족에게 ‘준왕’이나 ‘대군’으로 봉작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여자 황제의 남편에게 국서(國壻) 같은 호칭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공주나 군주 같은 작위를 전부 지금처럼 고쳤습니다. 작중에 지금 황제의 어머니인 선대 황제가 국법을 경신해서 성별에 관계 없이 관작을 통일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제가 수정했다는 흔적을 남겨두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내용을 넣었습니다.

『별리낙원』의 주인공들이 신력을 사용하는 것도, 신능을 사용하는 신관 외에 마법사가 있는 것도 『황금새의 전설』의 영향입니다. 물론 『황금새의 전설』에서는 개인에 따라 영력의 특성이 다르고 『별리낙원』에서는 신봉하는 신에 따라 신력의 특성이 다르다는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한때 열심히 보았던 선협물 드라마들의 영향도 없지는 않습니다.

『듄』과 『눈물을 마시는 새』도 제가 세계관을 구상하는 데 영향을 받은 작품들입니다. 천한의 주신인 수신을 섬기는 교단의 신관들은 베네 게세리트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고, 한편으로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섬기는 수호자들과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여주인공 진원과 수신 교단 사이의 상황도 폴 아트레이드와 베네 게세리트 사이의 상황과 꽤 흡사합니다. 적어 놓고 보니 너무 많은 부분을 따온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듄』이나 『눈물을 마시는 새』 같은 대작을 예닐곱 번씩 되풀이해서 읽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사족으로 아예 가상의 세계관을 만든 이유는 시대물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꼭 고증에 집착하는 사람이 나오곤 한다는 데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순전히 가상 배경이라면 어떤 요소를 갖다 붙이건 그건 제 마음이라고 우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별리낙원』을 두고 고증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반박을 할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피어클리벤의 금화』에서조차도 시대 배경과 맞지 않는 감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니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닌 듯합니다.

 

Q. 이처럼 남다른 세계관은 물론 판타지 액션, 애틋한 로맨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밀당 서사, 호쾌한 여성 서사, 참신한 조어력과 탄탄한 필력 등 『별리낙원』은 읽을수록 그 매력이 껍질을 벗기듯 드러나는데요. 작가님께서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접근하고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계약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지난 1월 말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2차 연재 론칭을 하게 되었는데요. 일러스트 표지부터 서비스 론칭까지 소회가 어떠셨는지 궁금하고(사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앞으로의 남은 작업에 대한 계획을 간략히나마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독자님들께는 그냥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힘들여 읽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브릿G가 오픈하고 얼마 안 있어 한 인터뷰에서는 인내심을 갖고 읽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생각해 보면 저도 읽다가 치운 분량만 모아도 십여 권은 너끈히 나올 만큼 포기한 책이 많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글을 읽고 재미를 느끼신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데도 억지로 꾸역꾸역 읽으실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최근에 카카오페이지에서 『별리낙원』을 읽기 시작하신 저희 어머니조차도 제 글은 너무 읽기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독자들이 많이 붙기는 어렵겠다고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남들 보라고 쓴 글이 아니고 순전히 저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이며, 어머니는 저에 대해서는 늘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시는 분이셨으니 그런 반응이야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표지 작업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부터 론칭 직전까지는 너무 정신없이 흘러가서 감회라는 게 그다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실 그 무렵 생업에서도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어서 정신이 분산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론칭 다음 날 7천 명 남짓 찍힌 구독자를 확인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숫자를 본 시각이 새벽 4시 무렵이어서 제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한 바퀴 걸어 다닌 후에도 숫자가 그대로 있고 심지어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그제야 꿈이 아닌 줄 알아차렸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하면 ‘백화제방’ 멤버 전원에게 골드바를 선물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는데, 머리가 좀 식고 보니 아무래도 10만 명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제 계좌에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작업 계획에 대해서라면, 제가 목표로 하고 있는 완결인 350회까지 쓰려면 아직 1년 남짓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올해 생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듯해서 시일을 지킬 수 있을지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가능하면 지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Q. 그간 여러 브릿G 리뷰어 큐레이션 등을 통해서도 전해주셨지만 동양풍 소설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어요. 또 작가 소개 글을 보면 역사, 판타지, 로맨스, 스페이스오페라를 두루 좋아한다고 해주셨는데, 이 키워드들의 각기 매력은 무엇일까요?

A.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궁극적으로 좋아하는 건 정치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는 정치적인 기록 그 자체이고, 로맨스도 때로는 과대평가되고 때로는 과소평가되는 등 엇갈린 반응을 이끌어 내기는 하지만 정치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판타지 작품 가운데서도 『눈물을 마시는 새』나 『왕좌의 게임』 시리즈, 『나이트 워치』 시리즈 등 정치적인 요소가 상당히 중요한 작품들을 좋아하니 말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도 『듄』, 『보르코시건』 시리즈,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등 마찬가지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이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 관심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건 제가 통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타고나기를 상당히 둔감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편을 선호합니다.

특히나 권력이나 권위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무진장 노력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행동을 그럭저럭 흉내 낼 수는 있어서 큰 곤란을 겪은 적은 없지만 여전히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건 싫고 오로지 책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다 보니 선호하는 키워드 자체가 그런 식으로 굳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사실 브릿G에서 활동하시는 모습만 하더라도 운영자들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수시로 탐독하고 계신 것 같아 늘 놀랍기 그지없습니다만(물론 다른 분들께 브릿G 이용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주고자 노력해주시고 계시단 점 늘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ㅠ_ㅠ)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내어 브릿G를 이용하시는지, 그렇게 한 달 평균 독서량은 어느 정도쯤 되는지도 너무 궁금합니다.

A. 최근에 브릿G에는 다소 소홀해졌습니다. 열심히 댓글을 달고 때로는 골드코인 후원까지 했는데 작품들이 사라지거나 연재가 기약도 없이 중단되는 허망한 경험을 수십 차례 되풀이하고 나니 약간 마음이 식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브릿G 안팎에서 잘된 작가님들도 적지 않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소식도 알 수 없으니 조금은 답답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작품을 찾아다니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게 되고 그냥 읽던 작품만 계속 읽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장편 작품이 10여 편 가량인데, 그 작품들이 올라올 때만 들어가서 잠깐 보고 댓글만 다는 정도라 하루 접속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0분을 넘기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2018년부터는 해마다 책 읽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브릿G에 접속하는 시간 자체가 많이 줄었습니다. 최근에 30여 년 동안 살던 집을 허물어뜨리고 새로 짓게 되어서 임시로 거처를 이전하느라 제가 갖고 있는 책도 옮기게 되었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5천 권이 넘습니다. 1년에 200권을 읽어도 25년이 걸리는지라 당분간은 소장하고 있는 책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브릿G에 대한 애정 자체가 없어진 건 절대 아닙니다!

 

Q. 한켠 작가님 또한 『별리낙원』의 꾸준한 애독자이기도 하시죠. 작가님 또한 한켠 작가님의 여러 작품을 함께 탐독해주셨고요. 이번에 한켠 작가님의 전일도 단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집이 출간되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전일도 시리즈’의 매력이 무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전일도 시리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근래의 온갖 세태를 가차 없이 파헤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전일도 시리즈’를 지금 이 시대를 파악하는 사료로 활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사실 주인공인 전일도부터 시작해서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제가 결코 좋아할 수가 없는 유형의 캐릭터입니다. 만약 현실에서 만났다면 역병신 대하듯이 멀찍이 피해 다니거나 멱살을 잡고 싸웠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전일도 시리즈’에는 끝까지 글을 읽게 하는, 거의 마력에 가까운 힘이 있습니다.

‘전일도 시리즈’에 깔려 있는 한켠 작가님의 유머 감각도 사랑합니다. 저는 유머라고는 먹고 죽으래도 없는 재미없는 인간이라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한켠 작가님은 남을 깔아뭉개거나 모욕하지 않고도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시고 유머를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데 탁월하십니다. 위에서 언급한 마력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 유머 감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거진 질문지를 받고 한켠 작가님의 작품들을 모조리 다 다시 읽고 이전 인터뷰도 읽어봤습니다. 언젠가 만나 뵙게 된다면 밥도 사드리고 차도 대접하고 작게나마 선물도 드리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Q. 다양한 우리네 일상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전일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전일도 연대기에서도 그렇지만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사회인의 고단함이 많이 엿보이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한국 환상 문학 단편집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에 수록된 「어느 날, 잔멸치」는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되었다고 밝히셨는데, 일의 고단함을 작품에 써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해소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그 작품을 통해 다른 독자들도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되기도 하니까요.

A. 최근 3년간 하던 일이 없어지고, 한배를 타고 있던 팀원들과 저를 비교해 보고, ‘나는 구명정에 태워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각을 하고,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쳐 낯선 섬에 도착했는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절감하고, 번아웃과 우울증이 오는 파란만장하고 다이내믹하고 판타스틱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로가 되는 건 ‘일은 못 해도 글은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글까지 못 썼으면 저 자신이 정말 쓸모도 생산성도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서럽거나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거나 화가 치미는 경험들을 할 때마다 ‘이거 소재로 써야지’ 하면서 버텼습니다. 미운 사람들은 (모델이 된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게) 두세 명씩 이름과 사건을 섞어 가공해서 데스노트 쓰는 기분으로 적어 넣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좀 풀리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분들이 창작의 원천이었네요.

다른 사람도 아침에 눈 뜨면 ‘오늘 출근하지 말까’라는 생각부터 떠오르는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쑤셔보고 알아본 것들이 「돌진, 앞으로!」의 계약직 사원에 담겼고 ‘취업 준비할 땐 뭐든 시켜만 주면 영혼을 팔아서 하겠다더니’ 하고 머리를 두드리면서 일하고 싶어도 취업이 안 되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를 쓴 게 「몽유」입니다.

 

Q. 전일도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이라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시선을 많이 돌리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런 이야기에서 전일도가 충실한 역할은 무엇보다 ‘듣는 일’인 것 같아요. 전일도가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하고 바라거나 의도한 부분이 있으신지요? 또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 등을 소재로 삼는 덕에 시의성 강한 시리즈가 많은데요, 새로운 시리즈 작품을 구상하거나 집필할 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전일도가 새롭게 소환되고 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전일도는 냉철하게 추리해서 사건을 해결해주기보다는 의뢰인에게 ‘든든한 내 편’이 되어서 의뢰인이 사건을 견뎌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지요. 탐정보다는 상담자나 코치에 가까워 보여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미시마야 시리즈』의 기담을 ‘듣고 버리는’ 오치카와도 비슷해 보이네요. 전일도는 의뢰인들에게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냉소적인데요. 사건들마다 ‘다정’과 ‘냉소’가 어떤 비율로 섞였는지 가늠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전일도 시리즈는 ‘지금 현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이슈가 되는 사건 중에 5년 후에도 해결되지 않을 사건’을 고릅니다. ‘5년 후’로 잡은 이유는…… ‘그래도 10년 후면 사회가 발전해서 해결이 되겠지’라는 낙관 덕분입니다.(코로나가 이렇게 길게 갈 줄 알았으면 코로나도 소재로 썼을 텐데요.)

「안녕 아보카도」는 낙태죄 폐지 운동 시기에 썼는데 아직 후속 입법에 공백이 있네요.

『탐정 전일도 사건집』의 뒷이야기도 있는데요. 동성결혼 법제화를 다룬 「뱀파이어 웨딩」은 『탐정 전일도 사건집』 출간 기념 인터뷰 당시 「나의 비혼식」에 ‘또 축의금을 회수하기 위해 만나는 친구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동성 결혼한 친구’를 언급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 소설입니다.

전일도가 맡는 사건이 계속되면서 종종 ‘아, 이건 탐정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해결할 일인데’라는 자각이 찾아옵니다. 아직은 법과 제도가 사회를 따라오지 못하는 틈을 전일도라는 탐정이 메워야 하겠지요.

미시마야 시리즈

 

Q. 2020년 8월부터 한국에서도 ‘탐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영리 활동이 가능해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어 ‘한국판 셜록’이나 ‘한국판 푸아로’가 나오기까지는 여러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요, 작가님께서도 한국에서 탐정업이 사실상 합법이 된다는 소식을 보고 캐릭터 구상이나 앞으로의 전개에 고민이 된 부분이 있으셨나요? 이런 고민을 시리즈에 녹여낸 부분도 있을까요?

A. 탐정이 합법화되면서 전일도는 이제 당당하게 ‘나는 탐정이다!’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탐정의 어떤 업무가 합법/불법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서(전일도가 자주 하는 잠복근무/미행이 스토킹에 해당하는지 불명확한 상태입니다.) 탐정의 업무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더라고요. 탐정의 직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탐정업 관리에 관한 법률’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데 이 법이 통과되면 그때부터 전개를 고민해 봐야 할 듯합니다.

K-탐정을 상상해 본 적은 있는데요. 왠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각종 법의 보호를 비켜나서 과로하거나, 폰 들고 대기하다가 ‘탐정 앱’에서 알람이 울리면 달려가서 사건 수임하고, 수임료의 대부분을 플랫폼 앱에 뜯겨서 과로하는…… 슬픈 엔딩이 떠오르네요. 생각난 김에 회사에 소속되어 회식도 하고 사건 해결보다는 브리핑을 잘해야 인정받는 ‘K-직장인 탐정’도 언젠가 써 보고 싶네요.

이런 슬픈 엔딩은 아니지만 탐정 합법화 바람을 타고 뭔가 K-탐정스러운 ‘본격 탐정 사무소’를 열기 위해 『탐정 전일도 사건집』에서 탐정이라고 사기 치고 다니던 김경찬과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고 사건을 맡는 「얼마나 일해야 할까」, 「돈,돈,돈」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Q. 전일도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첫 단편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과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던 대표작 「나의 비혼식」 2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우들의 연기와 낭독이 가미된 드라마형 오디오북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처음 결과물을 들어보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예전엔 작가님께서 직접 낭독해보시는 포부도 밝히셨었는데요😁) 실제로 오디오북을 함께 청취하신 분들도 ‘탐정 소설이라 쓰고 코믹북이라 읽는다’, ‘유쾌한 시리즈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등의 반응을 남겨주기도 하셨어요.

A. 직접 낭독하겠다는 포부는 애거서 크리스티 오디오북을 듣고 진작에 버렸습니다. 역시 전문 성우님들이 낭독하시는 오디오북이 최고지요. 오디오북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어, 너무 과분한데…….’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인물 하나하나를 목소리만으로 구별이 가게 연기를 하셨는지 들으면서 내내 황송했습니다…….

글이 목소리로 옮겨지니까 더 재미있더라고요. 듣는 내내 웃고 있었습니다. 제가 썼는데도 다음 대사가 막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마법……! 특히 「나의 비혼식」에서 3페이지에 달하는 대사를 감정의 고저를 살려 연기하신 부분은 다 듣자마자 물개박수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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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일도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되나요? 아니면 전일도를 필두로 한 장편화 계획 등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전일도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요. 전일도가 지금 20대라서 앞으로 더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도 되니까요.(더 굴리겠다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전일도 탐정을 많이 좋아해서요. 그리고 평화로울 날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전 탐정이 해결할 사건도 쉬지 않고 터지고 있죠.

전일도 탐정은 처음 구상할 때 셜록 홈즈 시리즈처럼 단편 연작으로 계획했는데 그러다 보니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는 느낌이 가끔 들어서요. 「몽유」는 언젠가 장편으로 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그러고 보니 전일도 탐정도 셜록 홈즈처럼 몇십 년 연재하면 좋겠네요. 죽여도 독자들의 항의로 다시 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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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께서도 『별리낙원』의 꾸준한 애독자이신데요, 어떤 감상으로 『별리낙원』을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또 이연인 작가님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질문 전해주시면 대신 물어보고 매거진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A. 『별리낙원』은 주인공 진원―선우 부부의 로맨스가 한창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침실을 기웃거리며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19금을 넘나드는 씬을 너무 잘 쓰십니다. 진원은 과연 황제가 될 것인가, 진원이 선우에게 술탄 시켜 주겠다는 말이 가벼운 말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선우는 술탄이 될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마음속에 품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별리낙원』의 음식 묘사가 나올 때마다 황홀해요. 『별리낙원』에서는 누군가가 오면 음식부터 차려 내오는데 각종 과자부터 한상차림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글 속으로 들어가서 인물들 옆에서 주워 먹고 싶어집니다.

이연인 작가님께 궁금한 점은…… 『별리낙원』에는 주인공 진원―선우 부부 말고도 매력적인 조연들이 많은데요. 혹시 조연들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를 쓰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예를 들면 귀여운 규원이라든지요.) 예전 인터뷰에서 주인공과 줄거리를 잡아 놓은 게 있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원이 임신·출산·육아라는 로맨스물의 공식을 따라갈진 모르겠으나 진원의 후손들이 나오는 후속편도 나올까요? 『별리낙원』이 네버엔딩이었으면 좋겠어서요.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 이벤트 기간 동안 인터뷰에 대한 감상이나 이연인 작가 & 한켠 작가님께 전하는 응원의 한마디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골드코인 10개를 적립해드립니다.(10명)

☑️ 이벤트 기간 동안 각각 『별리낙원』 및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수록작을 함께 구독해 주신 분들께 대표작 특별 제작 선물을 드립니다. (각 작품별 구독자 4명씩, 총 8명) 

🔮 『별리낙원』 구독자 – 책벌레 부부와 잘 어울리는 ‘별리낙원’ 반구 투명 문진(4명)
🥤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수록작 구독자 – 세상만사 고달픔을 덜어내는 ‘일도처럼’ 소주잔(4명)

 

⚠️ 이벤트 안내 사항 ⚠️
  • 이벤트 기간: 2022년 3월 7일(월) ~ 2022년 3월 22일(화) / 당첨자 발표: 2022년 3월 23일(수)
  • 『별리낙원』은 이벤트 기간 동안 3화 이상 유료 구매 이력 필수입니다.(이벤트 기간 내 3회 이상 구매 시 자동 응모, 마일리지 구매 건도 포함)
  •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수록작 15편 중 1편 이상 유료 구매 이력 필수입니다.(이벤트 기간 내 대상작 1편 이상 구매 시 자동 응모, 마일리지 구매 건도 포함)
  • 『별리낙원』 및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수록작 구독 이벤트 중 하나만 참여해도 각 작품별 경품 이벤트에 정상 응모됩니다.
  • 많은 회차를 구매하거나 단문응원을 남길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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