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나타났다. 진짜다.
“에이, 핼러윈 맞이 분장이겠죠.”
이렇게 심상하게 말하는 인간은 동업자이자 사기꾼이자 탐정 워너비인 김경찬이다.
“내가 봤다니까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핼러윈은 이미 지났어요. 걸음도 비틀거리고 얼굴도 이렇게 일그러지고 눈도 풀려 있고 이마에 상처도 있는 게…”
답답해하며 때아닌 좀비 흉내를 내고 있는 건 나다.
“어제 회식 4차까지 달린 직장인이겠죠. 취해서 어기적거리다가 어디다가 박아서 이마에 상처났고, 길바닥에서 뻗어 자다가 입 돌아갔고, 술이 덜 깨서 비척거리는 거죠. 자, 이러면 설명이 다 되죠?”
“코로나 때문에 회식들 안 하잖아요.”
“하지 말래도 꼭 말 안 듣는 인간들이 있어요. 아니면 혼술로 달렸나 보죠.”
“으어어억 거리면서 가더라니깐요.”
“숙취 때문에 메슥거려서 그러는 거죠. 그나저나 마스크 안 하면 과태료 10만 원 아닌가?”
그…그런가? 그러기엔 내가 너무 생생하게 봤다. 이렇게 안 믿어줄 줄 알았으면 좀비한테서 명함이라도 받아둘 걸. 이대로 지기는 싫어서 한 마디 했다.
“다음 의뢰인은 그 좀비로 할까요?”
“좀비는 머리를 날려야 죽던데, 무기는 가지고 계시고요?”
“누가 죽인대요? 사연 들어보고 사건을 해결해 주는 거죠.”
김경찬이 얄밉게 깐족거린다.
“좀비가 말하는 거 봤어요? 으어어 거리면서 배회했다면서요? 좀비가 있어야 할 장소는 탐정사무소가 아니라 무덤이죠. 요새는 화장해서 납골당인가?”
말싸움하다가 질 것 같으면 말을 돌려야 한다.
“중요한 건 제가 본 게 좀비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 탐정사무소가 좀비라도 의뢰인으로 받아야할 만큼 형편이 궁하다는 거예요. 렌탈로 들여놓은 안마의자도 위약금 내고 반납해야 될 형편인데…”
‘안마 의자’ 소리에 김경찬이 정신이 번쩍 들었나 보다.
“그 좀비, 어디서 봤다고요?”
“요 앞 횡단보도에서요.”
“좀비가 횡단보도를 건너요?”
“신호도 지키던데요.”
“그럼 역시 좀비 아니네요.”
“좀비든 아니든 명함부터 건넸어야 하는 건데…”
그러고보니 명함은 아직 ‘전일도&김경찬’이 아니라 ‘전일도’만 있다.
“그걸 그렇게 잘 아시는 분께서 좀비인지 숙취에 시달리는 인간인지를 그냥 보내셨어요?”
“좀비를 실제로 만나면 명함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넋을 잃고 보게 된다니까요.”
“좀비 아니고, 숙취에 절은 인간이라니까요. 명함을 받았으면 술김에 탐정 사무소에 한번 들려볼 만 한데 의뢰인 하나 놓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