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itg.kr/community/freeboard/?bac=read&bp=229068
11월의 소일장에서 위수정의 <fin>을 소개했는데요. 빛으로 가득한 무대를 동경했지만 가장자리에만 머무르며 깎여나가는 순간들, 늘 가면을 쓰고 있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리고 어느 순간 터져나오는 욕망의 순간들을 서늘한 문장으로 묘사해 인상적이었어요. 언뜻 보기에 무대는 일상과 가장 먼 공간으로 느껴지는데, 때로는 삶과 연기가 구분할 수 없이 섞이는 듯해요. 함께 읽기 좋은 브릿G의 단편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적사각 작가님의 <세기의 발견>입니다. 아인은 ‘양자 얽힘’과 ‘양자 옭아맴’에 대해 연구하다가 다른 차원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야말로 세기의 발견이라고 할 만하죠. 눈부신 성과를 도둑맞을 걸 걱정한 아인은 몇 번이고 연구를 검토하며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마침내 연구소의 동료들 앞에서 ‘너머’의 존재를 공표합니다. 나중에야 그 비밀이 밝혀지지만 아인의 발표는 다분히 연극적인 측면이 두드러졌지요.
두 번째는 선연 작가님의 <졸업>입니다. 세 개의 공포 테마를 가진 방탈출 카페에 손님이 찾아와요. 살인마를 피해 탈출하거나, 집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형태인데요. 테마의 설정 및 탈출 방법을 보여주기도 하고, 테마를 경험한 블로거의 글을 통해 이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기도 해요. 각각의 글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흥미로우면서 오싹한 글입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이 일종의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세 번째는 석하 작가님의 <세계 속의 세계>입니다. 희곡의 형식을 가져온 만큼, 인물의 행동을 지시하는 문장과 인물들 사이의 대사로만 글이 구성되어 있어요. 오가는 대화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질적인 대사가 등장하는 순간 역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요. 탐정과 조수가 수사 끝에 발견하게 된 비밀이 흥미로웠어요.
마지막은 박윤윤 작가님의 <불, 타오르네>입니다. 취미무용단 소속이었던 ‘나’와 지아는 마지막으로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나’에게 있어 춤은, 무대는 유일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매일매일을 견뎌왔지요. 그러나 욕망과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주변 인물에 의해 이들의 무대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자기 자신과 지아를 위해 타오르는 불 속에서 마지막 춤을 추기로 해요.
무대에 오른다는 건 분명 일상적인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대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일상에 대해, 무대의 의미에 대해 묻게 되는 것 같아요. 무엇이 무대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흘러가는 일상과 어떻게 다른지 묻기 시작하면 어느새 연기와 삶의 구분이 흐릿해지기도 하고요. 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어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