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거창한 제목이 붙긴 했지만, 저에겐 당장 계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쓴 작품 수가 적고, 이제야 겨우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브릿G엔 오래 있었지만, 정말 아무 교류 없이 오래만 있었습니다.
음… 이렇게 시작해야 할 거 같네요.
안녕하세요. 낙동강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 알입니다. 거위 알 둥지 위에 은근슬쩍 엉덩이만 얹고 가겠습니다.
얹은 동안 제가 어떤 작가/작품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또한 이 글쟁이가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성의 글을 희망하는지를 위주로, 소심하게나마 말해보고자 합니다.
1) 이 집엔 왜 왔니 왜 왔니. 영도 따라 왔단다 왔단다.
브릿G에 작품을 올리게 된 경위는 간단합니다.
여기서 이영도 작가님이 <오버 더 초이스>를 연재한다길래 찾아왔습니다. 그때부터 계정을 만들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올린 습작을 군대에서 알음알음 써서 완결했던 게 꽤 큰 추억으로 남았죠(지금은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알겠지만, 저는 이영도 작가님을 동경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그분의 그림자 아래에 있다는 뜻이겠죠.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이영도 작가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이 두 작품은 지금도 제 글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소설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피를 마시는 새>는 제 사유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애 작품이죠. 그리고 사실상 저를 고전과 철학, 종교와 신화 서적에도 손을 뻗게 만든 범인(?)입니다.
<피를 마시는 새>를 읽은 기점부터, 저는 저만의 보잘것없는 가치관을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평소에도 잡생각을 자주 했는데, 당시에 스스로가 만든 자가당착적 의문에 괴로워하던 참이었습니다. 그 막힌 부분을 이 <피를 마시는 새>가 뻥, 하고 뚫어줬습니다.
이런 TMI적 과거사를 늘어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저란 인간은, 위의 과정을 거치고 탄생한 이 하찮은 사유의 해답을 글로 공유하고 싶은 놈입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말하고 나서, 읽어준 고마운 분들께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건네 보고 싶은 거죠. ‘다 얘기했어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하고요.
2) 개똥철학
따라서 이영도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시작된 이 시시콜콜한 사유가 곧 제 모든 글의 계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꾸 말이 길어지는군요. 이 부분은 최대한 짧게 써보겠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해답을 얻었길래 제가 이리도 유난일까요?
정말 별거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은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요. 생명이든 무생물이든 관계없습니다.
우린 존재하는 이상 누군가를 상처 입힐 거고,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사람의 손짓 하나에도 아플 겁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수 없고, 타인에 대해선 더욱 알 수 없습니다. 당장 타인이 눈앞에 있어도, 그 사람의 진정한 속마음이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국 관계에 상처를 줍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모든 건 죄가 될 수밖에 없기에, 우린 멀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린 존재해선 안 될까요? 우린 죄만 지으니까 그냥 없는 게 옳을까요?
아뇨. 우린 이미 태어나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야 합니다. 우린 죽어야 하기 때문에, 살아야 합니다.
우린 돌멩이를 손에 쥐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돌멩이로 땅을 파서 텃밭을 가꿀 수 있습니다.
타인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살아 있는 동안 타인을 계속해서 알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현재로선 ‘사랑’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세상의 온갖 것과 관계를 맺어야 살 수 있는 우리는, 보듬고 아낄 줄 알아야 대상을 최대한 많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죄’가 아니라, ‘죄를 이고 가는 태도’인 겁니다.
어때요, 정말 별것 없죠? 어디 가서 인생 다 산 것처럼 폼이나 잡는 놈들이나 할 법한 말입니다.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당연합니다. 우린 서로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상대방과 싸울 필요도, 내가 맞다를 증명할 필요도 없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위처럼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겠죠.
3) 올린 글, 올리고 싶은 글
휴, 이제야 제 글을 말하네요. 이제 아시겠지만 저는 설득력 있는 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독자분들에게 최대한 덜 말하고,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였던가요. 거기 마지막 설정 부록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글과 독자가 만나는 자리에 주책없이 끼어드는 글쟁이는 맞선 자리에서 눈치 없이 물러나지 않는 매파와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또 정신 못 차리고 이러고 자빠졌네요. 고얀 놈.)
쉽게 말해서 세계관 설정을 세밀하게 짜되,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여 쓰고 싶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극단적인 짧은 문장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이상 간간한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에서 이영도 작가님의 방식은 세련됐습니다. 초반에 이해하지 못한 세계가, 읽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들어와 있죠. 후반으로 갈수록 문장은 간결해지고 전개도 빨라집니다. 여기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는 좋아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만 말한다는 느낌이거든요.
<피를 마시는 새>에서의 길면서도 점점 구성은 간결해지는 문단, 그 사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한 문장으로만 된 짧은 문단. 이것들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아, 나도 언젠가 이런 방식으로 고유의 신화적 세계관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이때쯤엔 거의 뇌리에 정착됐습니다.
그 소망의 첫 시작을 <이룰루양카스의 딸>로 끊었습니다. 1부가 끝났고, 휴재 중입니다. 주제는 음… 생명입니다. 전개된 내용상 지금은 그것밖에 할 말이 없군요. 앞으로 주인공인 ‘나하르’와 ‘얌’은 이 바니아라는 도가니와 같은 세계를 나다니며, 여러 생명을 만날 예정입니다.
리뷰어님께서 캐릭터의 상호작용이 <드래곤 라자>를 닮았다고 했을 때, 좀 놀랐습니다. 글을 쓰면서 <드래곤 라자>의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내 무의식에 이영도 작가님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 건가? 싶었습니다.
사실 이 글의 직접적인 모티프는 한국 이스라엘 협회가 엮은 <구약 성경 문학 탐구>와 서비스 종료한 게임 <소환대전 큐이>입니다.
<소환대전 큐이>는 소환수를 타고 마법을 쏘는 슈팅형 게임이었는데, 그 추억이 지금도 제 마음을 간지럽히곤 합니다. 거기에 <구약 성경 문학 탐구>에 적힌 중동 신화들, 특히 히타이트 신화에 영감을 받아 세계관을 제작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신화/전설 요소를 리뷰어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아예 키친 싱크 방식으로 섞었습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겪고 있습니다. ‘세계관 설명을 하지 않고 진행해 보자!’라는 포부는 저 스스로가 설정을 올림으로써 진작 실패했습니다. 읽은 지인들 왈 설정집이 없으니 뭔 말인지 못 알아먹겠답니다. 눈물을 머금었죠.
문장도 아직 힘을 빼는 법이 익숙치 않아서, 간결함과 먼 부분이 있어 몇 번인가 수정했습니다. 현재 휴재를 하고 있는 이유도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의 어림잡은 분량과, 실분량의 차이가 많이 나서입니다. <이룰루양카스의 딸>은 쓰려면 훨씬 더 많이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얼른 준비를 끝내고 올해 안에 재개하고 싶네요. 잘 안되더라도 올해엔 꼭 재개해야겠습니다.
이어서 다른 글들을 조금 더 말해보겠습니다.
이건 팬픽입니다. 제가 좋아하던 버츄얼 유튜버 아이리 칸나 님이 졸업한다길래 후다닥 썼습니다. 본래 짬 날 때 느긋하게 끼적거릴 계획이었는데 말이죠ㅠ
어린 용이 별 조각을 만나 찬란히 빛나는 이야기입니다.
모티프는 아이리 칸나의 노래 ‘푸른 보석과 어린 용’입니다.
https://youtu.be/gq3gzxPBOK0?feature=shared
그 분에게 드리려고 쓴 걸 왜 여기 올렸냐면, 이 글도 덜 말하기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브릿G 작품 소개란에 이 소설의 세계관을 써 놓았습니다. 그 세상에 있던 과거를 암시하는 느낌으로 말이죠. 다른 곳에는 세계관을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짧은 엽편입니다. 뭐라 소개할 말도 없을 만큼이요. 이 아이는 계보가 있다기보단, 계기를 하나 마련해줬습니다. 지인이 이걸 보더니 스릴러 쓸 거냐고 물어봤죠. 내가 쫄보인데 그걸 어떻게 쓰냐고 하니, 그 사람은 편독하지 말고 저변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액귀야화>를 봤습니다. 저는 보고 나서 다짐했습니다. 공포물은 절대 안 쓰겠다고. 스릴러 쓰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도 <액귀야화>를 추천합니다. 나만 무섭기 싫ㅇ…
<연금목>은 원래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순찰꾼과 기사와 골렘의 묘지기>를 보고 문득 ‘아, 하나의 사건을 에피소드로 판타지 단편을 써보자’하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관련 없는 결과물이 나왔지만요.
연금술사의 커피 교반 도전기입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봐주세요(?)
결과물이 생뚱맞은 건, 아마 반동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나니 씁쓸해서, 피식 웃음이 터지는 걸 찾았거든요.
<순찰꾼과 기사와 골렘의 묘지기>. 덤덤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여러분께도 추천합니다.
하지만 <허물 끓이기>야말로 <연금목>을 웃도는 무계보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이 두 작품 보고 쓴 겁니다. 어떻게든 큐레이션 쓰려고 끼워 맞추는 거 아니냐고요? 워 워, 진정하세요. 일단 앉아 보시죠.
두 작품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다 보면 일본 라이트 노벨 혹은 애니메이션이 연상됩니다. <외나무다리의 노예>는 브릿G에선 드물게 일러스트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고퀄리티라 보고 ‘와, 이거 돈 좀 쓰셨겠는데.’ 싶었습니다.
<청춘 환상 검무곡>은 일러스트를 쓰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묘사 방식과 캐릭터 간의 티키타카가 학창 시절 보았던 라이트노벨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두 작품 다 등장인물이 열심히 싸웁니다. 투탁투탁. 암, 싸워야죠. 그렇고 말고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좋은 애니메이션 회사를 만나, 두 작품에 나오는 전투씬이 멋지게 탄생하는 것이요. 그런데 여기서 라노벨풍 로맨스 코미디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의무감으로 <허물 끓이기>를 썼습니ㄷ……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이룰루양카스의 딸>과는 다른 느낌으로 여러 신화를 접목한 세계입니다. 항상 고유의 신화 체계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덜 말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눈마새와 피마새의 구성을 따온 전형적인 장편 소설로 쓸까?
위의 두 글처럼 여러 단편을 기재해 정보를 숙지시킨 다음, 서사시에 도전해 볼까?
그럼 시를 읽지 않는 사람에게 너무 난해할 수 있으니, 반대로 정보를 시로 풀고 이야기는 소설로 풀어나갈까?
시간순으로 시, 시/소설, 소설 순으로 배치할까?
등등등….
오랜 시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내놓지도 않은 글을 왈가왈부해봤자 의미 없겠군요.
<이룰루양카스의 딸>을 완결한 이후 부디 이 세계의 이야기도 쓸 수 있길 바랍니다.
현재 쓴 글 중 가장 제 방향성에 부합하는 글이 아닐까 합니다. 문장을 최대한 짧게, 그리고 이야기의 세계도 설명 없이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내용 자체가 크지 않아 잘 된 거 같습니다. 지금 와서 아쉬운 건 ‘차갑고 딱딱했다.’라는 문장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 후반에 한 번 정도 뺄 걸 그랬습니다.
이 아이의 모티프는 카드 게임 유희왕에 있습니다.
원시 생명체 니비루라는 카드인데… 대충 운석처럼 꽝! 충돌해서 다 부수는 친구입니다. 운석 안에서 튀어나온 본체의 모습을 보고 <대화>를 쓰기로 결정했죠. ‘이거다!’하면서요.
4) 앞으로의 방향성
이상이 제가 브릿G에 남긴 흔적입니다. 어떠한 전환점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위에서 말한 방향성으로 글을 쓸 거 같습니다. 딱히 목숨을 걸고 관철할 원대한 포부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가능한 한 앞으로도 덜 말하고 많이 보여주기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잘 안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혹시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비롯된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를 아실까요. 이 장르엔 특징이 있습니다. 스토리의 설명은 불친절하되, 볼거리를 극대화합니다. 그렇게 하여 플레이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최대한 보여줍니다.
저는 글에서도 이를 지향하고 싶습니다. 물론 <다크 소울>은 실시간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죠.
브릿G에서도 소울 시리즈 특유의 세계관 느낌을 차용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언젠간 세계관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 방식도 글로 재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봅니다.
브릿G에서 이 정도로 제 속마음을 밝힐 줄은 몰랐네요. 이 부분은 언제나 고민되는 거 같습니다. 창작자가 자기 생각을 어디까지 직접적으로 밝히는 게 좋은지…
일단 저의 수다 본능이 만족했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만큼이나 떠벌렸으니 앞으로 몇 년은 입 꾹 닫을 수 있겠죠?
한 편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리 알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퐁당퐁당
아 참, 여러분.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