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 근처에는 대한민국 4대 편의점이 모두 있습니다. 그 덕에 새벽에 말라비틀어지겠다 싶으면 주린 배를 감싸고 그때그때 원하는 간식을 파는 편의점으로 마실 나가곤 하죠.
단언컨대 편의점은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 중 한 곳입니다. 옛날의 동네 마트가 담당했던 생필품 공급소부터 식당, 카페, 포차, 가끔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집도 절도 없이 서성이는 이들이 잠시나마 몸을 의탁할 피난처의 역할까지 해내는 편의점이 없는 하루는, 도시인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들 테죠. 이처럼 일상의 조각 같은 순간이 모이는 편의점이 흥미로운 상상의 배경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편의점을 배경으로 자라난 상상력이 결실을 맺은 중단편 몇 편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먼저 보여드리는 소설들은 소소하고 일상적인 색채가 강한 글, 아래로 갈수록 환상성이 짙고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요하는 무거운 글입니다.
한겨울이라도 편의점 아이스크림 2+1 세일은 사람들의 걸음을 한 번쯤 멈추게 하는 힘이 있죠. 편의점 알바인 서술자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들은 그들의 취향과 삶에 대한 썰을 푸는 소설입니다.
심야식당 계열 구르메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로맨스 세계에선 한 번 만난 사이는 우연, 두 번 만난 사이는 인연, 세 번 만난 사이면 그때부터는 운명입니다. 두 사람의 성장 배경, 직업, 라이프 스타일 다 다르더라도 단골 편의점 방문 시간이 겹친다면 이 ‘로맨스의 도식’을 달성 못 할 일도 없죠.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남의 취중진담을 들으러 심야 편의점에 가 봅시다.
얼떨결에 동종업계 종사자를 물리치고 히어로가 되는 빌런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죠. 이상한 책 한 권에 홀려 생애 첫 강도짓을 하러 편의점에 들어간 주인공이 강도를 만나며 겪는 소동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웃음 포인트를 콕콕 집어줘서 글이 더 술술 읽힙니다. 지난 큐레이션 때도 말했지만, 브릿G에는 코메디 카테고리가 필요해요.
알 듯 말 듯 이상한 업무 규칙이 있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주인공은 근무 시간 내내 기이한 손님들과 마주합니다.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이것들은 왜 하필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와서 이러는 걸까요.
브릿G 호러 명가 중 한 분인 배명은 작가님의 소설입니다. 저처럼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겐 더 섬뜩하게 와닿을 이야기예요. 고어에 약한 분은 주의를 요합니다.
위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른 의미에서 남들은 안 할 생고생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연합군과 자위군의 전쟁이 한창인 2120년 전장의 중립 구역으로 워프한 2019년의 편의점(현대인 포함)이라는 신선한 설정과 코믹한 문체, 거기에 마냥 가볍지는 않은 묵직한 주제 의식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편의점 중립구역점에 모인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노인들이 잘 안 늙는 동네에 있는 수상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하드 SF입니다. 시간은 인류 상상력의 근원에 자리 잡은 가장 무거운 주제죠. 불연속적이고 상대적인 시간 속에서 죽음을 늦출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떤 한 시간축에서는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걸까요.
시간 지연(Time dilation)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읽으시길 추천합니다.(아니면 그냥 인터스텔라 한 편 보고 오는 방법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