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에게 전하는 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최소한의 길잡이가 되거든요. 리뷰어에게 전하는 말을 보고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슬래셔물이며 최대한 잔인한 장면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슬래셔 물인데 잔인한 장면이 없다고요?
호러 등에 조예가 없어서 조심스럽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슬래셔 물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게 그 ‘잔인한 액션신’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없앤 슬래셔 물보다는 더 좋은 표현이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범인과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라거나, 지독한 형사의 추격기라거나요. 전자라면 추리물이고 후자라면 형사물 내지는 하드보일드겠죠?
장르는 일종의 약속입니다. 독자의 기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죠. 작품에 두 남녀가 등장했을 때 이걸 로맨스라고 소개했다면 독자는 두 캐릭터의 관계성에 집중하겠지만 백합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새로운 여자 캐릭터는 언제 등장하냐고 묻겠죠. 잔인함을 적게 넣었다고 어필하는 것보단 슬래셔 물의 다른 속성에 집중했다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더 적합한 장르를 찾아 떠나거나요. SF나 로맨스, 드라마같이 넓은 의미로 쓸 수 있는 장르라면 작품에 집중 할 수 있지만 슬래셔 같은 세부 장르라면 장르와 맞는가 맞지않는가를 따지게 되니까요.
특히 요즘은 장르와 장르가 섞이고 있잖아요? 새롭게 장르에 진입한 독자만큼이나 둘 이상의 장르에 빠삭한 독자들이 늘어가고 있고요. 이런 시점에서 특정 장르에 작가가 자신을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해석은 독자의 몫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해석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문장 때문이에요.
리뷰어에게 남기는 말에 ‘비문이나 오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라고 하셨는데, 저도 문장을 잘 쓰진 못해요. 하지만 첫 문장부터 어색합니다.
남성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에 저녁 열두시라고 띄워져있다.
그는 가누지 못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발과 다리를 지팡이로 삼았다. 집이 있는 방향으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첫 문장은 남성이 보고 있다/저녁 열두시라고 띄워져 있다로 분석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뒤에 띄워져있다의 주어가 없어 어색한 거 같네요. 내딛었다가 아니라 내디뎠다 고요. 이렇게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요?
남성은 저녁 열두시라고 적힌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그는 가누지 못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발과 다리를 지팡이로 삼았다. 집을 향해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저라면 이렇게 쓰겠죠.
열두시.
한 남성이 거리를 걷고 있다. 제 기능을 하는 건 하체뿐이다. 다리는 집을 향해 가고 있지만 다른 부분들은 속에 들어온 술과 싸우는지, 협조하지 못 한 체 휘청거리고 있다.
저도 문장이론은 약해요. 이론이 아닌 감각이기에 잘못됐어! 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거의 모든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대다수의 문장이 복문이고, 또 수동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문장 뒤에 문장을 붙이면서 복문이 되고, 복문이 되면서 주어가 사라지고, 주어가 사라지니까 수동태가 되고 그러면서 문장이 꼬인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단문으로 쭉쭉 치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의 눈에는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꼴시었는지 인상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남성은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사람들의 어깨를 부딪치고 다녔다. 그들에게 꼭 한 마디씩 ‘똑바로 보고 다녀! 골대에 덩크도 못하는 놈들이!’라고 붙였다.
이 부분은 시점의 혼동이 나타나는데요, 추측하는 말투나 작은 따음표를 통한 인용은 3인칭 관찰자적 시점이고 작중 등장인물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건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죠. 이 아래 문장의 전개를 보면 소설의 시점은 전지적 관찰자로 보입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어도 나레이터를 둬서 쭉 이야기하듯이 서술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보이진 않네요. 단순한 실수로 보입니다.
“”로 대사를 표시하고, 눈꼴시었는지 같은 추측성 표현 대신에 확정적인 어조로 등장인물의 속내를 드러내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문장을 제가 손 볼 순 없어요. 큰 실례고, 그걸 실력도 없으니까요.
자기 문장이 이상한지는 자기는 잘 모르더라고요. 일단 한번 인쇄해서 소리내서 읽어보시고, 의도적으로 복문과 수동태를 고치려고 한다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