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는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대화이자, 언어와 존재에 대한 서사이며,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성장담이다. 브릿G를 통해 이 작품을 다시 접하면서 나는 단순히 추억을 되새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이영도 작가의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1. 후치 네드발, 말 많은 소년의 성장담
이 소설의 매력은 첫 문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후치는 유쾌하고, 똑똑하며, 무엇보다도 ‘말’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단지 사건을 전달하는 화자가 아니라, 독자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 지에 대한 렌즈이자 기준을 제공한다. 그의 언어는 유머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예민하며, 때로는 절망과 공포를 숨기기도 한다.
이영도 작가가 후치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말의 힘’은 이 소설의 핵심이다. 말은 사람을 이어주는 수단이자, 진실을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후치는 자신의 말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결국은 변화시킨다.
2. 드래곤과 라자 –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들
드래곤은 인간보다 오래 살아왔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감정의 언어가 아닌 논리와 이성, 관찰과 예측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그런 그들이 왜 인간을 관찰하고, 라자라는 존재를 통해 그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가? 이영도 작가는 ‘라자’라는 중간 존재를 통해 인간과 드래곤 사이의 소통, 혹은 불가능한 이해에 대한 담론을 펼쳐 보인다.
라자는 단순히 ‘통역자’가 아니다. 그들은 두 세계 사이에서 중재자이자 관찰자이며, 때로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외로이 떠도는 존재다. 이들이 상징하는 건 타자성, 경계에 선 존재, 그리고 언어가 얼마나 모호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3. 이영도의 작가의 세계관 – 논리와 감정의 경계에서
『드래곤 라자』는 엄밀히 말해 전통적인 판타지의 틀에서 벗어난다. 엘프, 드워프, 마법사, 드래곤 등 익숙한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엘프는 고귀하지만 인간적이고, 드래곤은 신적이지만 인간보다도 더 차가운 이성의 존재다. 무엇보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과 전형적인 판타지 문법을 교묘하게 비틀며, 익숙한 듯 낯선 이야기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특히 이영도 특유의 ‘말장난’과 ‘사유의 흐름’은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장대한 전투보다 중요한 건 대화이고, 마법보다 인상적인 건 논쟁이며, 세계의 운명을 가르는 건 칼이 아니라 말이다. 말로 웃기고, 말로 철학하고, 말로 감동을 주는 작품. 그런 점에서 『드래곤 라자』는 문학적 실험이자 언어의 축제다.
4.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실수하는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왜 싸우고, 또 사랑하는가? 드래곤의 눈으로 본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통해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끄집어낸다.
후치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선택의 책임을 감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이 소설이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는 이유다.
『드래곤 라자』는 말 그대로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있다’고 표현하기엔 그 속에 담긴 철학적 무게, 인물 간의 유기적인 관계, 세계관의 정교함이 너무도 풍부하다. 한 번 읽고 끝낼 수 없는, 읽을수록 더 많은 의미가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
브릿G에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지금 처음 읽는 독자라면 부럽고, 다시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후치의 말처럼 어느새 그들의 여정을 다시 따라 걷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