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업무 특성만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말을 걸었을텐데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삼호 마네킹 (작가: 황모과, 작품정보)
리뷰어: 담장, 23년 4월, 조회 49

백화점 의류 코너에 갈 때면 잘 차려 입은 마네킹들이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반긴다. 길고 슬림한 체형에 새하얀 그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가늘고 곧게 펼쳐진 손이 각 매장의 분위기와 콘셉트에 맞는 포즈를 취하고 우리는 마네킹이 걸쳐 입은 옷들의 조합을 눈여겨 보다가 “이걸로 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을 뒤로 되돌려 보자. 아주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구경했을 때 조금 더 사람 같은 마네킹들을 보곤 했다. 지금도 그런 마네킹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온통 새하얗고 눈코입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대체되었다. 당시에 마네킹들은 진짜 사람처럼 머리카락과 눈, 코, 입이 있었고 조형물보다는 커다란 인간에 가까웠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마네킹 ‘삼호’다. 말 그대로 3호. 삼호는 남성 의류 브랜드 A사의 강남 매장에서 일하는 모델 마네킹이다. 매장에서 3년차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민정은 괴짜라고 오인받을 정도로 이상한 습관이 있다. 바로 마네킹에게 말을 거는 행동인데, 삼호는 그런 민정의 다정한 말투와 손길이 좋았다.

그저 마네킹인 나에게 이렇게나 친절하게 대해주다니!

매장에 있는 모든 마네킹에게 다정하고 조심스레 대해주는 민정이었지만 삼호는 그 사실이 오히려 자신이 민정을 더 좋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민정의 말에 삼호는 “민정 씨도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마네킹 업무 특성상 그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며칠 후 매장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시작되고 일호라는 마네킹이 삼호의 옆에 나란히 배치된다. 일호는 삼호와 달리 여자 마네킹이었고 그들은 매장의 콘셉트에 맞춰 커플 포즈를 취하게 된다. 민정은 일호와 삼호에게 모두 따스하게 대해주었고 삼호는 이번에도 그에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킨다.

 

그러나 그때 삼호는 일호의 눈동자가 민정에게 살짝 치우친 것을 느낀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았을 때 그 형상이 사람을 닮았으면 호감도가 일정하게 올라가지만,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커다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인 듯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듯한 찝찝함. 인간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 쓴 정체 모를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불쾌함은 우리의 DNA에 각인된 채 줄곧 내려오고 있다. 시체를 구분하기 위해 발달된 것이라 학계에선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 불쾌한 골짜기 효과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체가 문제라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똑같은 인식을 해야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이제 중요한 건 원인보단 우리가 그것을 겪고 있다는 명확한 현상이니 말이다.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것은 오묘하게 인간을 닮다 만 마네킹이 밤마다 매장에서 혼자 돌아다닌다는 도시 괴담을 퍼트렸다.

귀가 닳을 정도로 많이 들어본 흔한 괴담.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매장 내 마네킹을 볼 때마다 커다란 불쾌감을 느끼는 자들은 분명 존재하리라. 결국 마네킹들은 대대로 교체가 되었다. 90년대에는 인간처럼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마네킹들이 서서히 머리카락은 물론 눈코입도 없는 조형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쾌한 골짜기도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성적 대상화같은 문제도 대두되며 이제는 오히려 인간같은 마네킹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마네킹 괴담과 한국의 마네킹의 변천사에게 영감을 얻은 이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삼호가 있는 A 매장은 평판이 점점 나빠졌다. 마네킹에 대한 고객들의 꺼림칙함은 점차 확산되었다.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이니 효과가 있기야 하겠지만 하필 삼호가 있던 의류 매장은 되려 역효과를 맞았다. 결국 삼호와 일호는 교체되었다. 그리고 커다란 반전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비인간을 마치 인간처럼 형상화시키는 의인화 기법을 이용한 듯한 이 소설은 실은 삼호가 마네킹이 아닌 인간이었음을 알림으로 이야기를 뒤집는다. 사실 진짜 사람이었습니다,라는 소재 하나만 가져다 보면 다소 식상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초장부터 비인간의 시점으로 시작한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글에 빨려들게 한다. 살짝 비틀어 꼰 도입부와 민정에 대한 삼호의 두근거림, 민정의 괴짜같은 행적을 뒤따라가며 이 둘의 관계성에 대해 추측하게 만들었기에 독자들은 그 부분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읽다가 예기치 못했던 반전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연막탄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자주 쓰는 기법인데, 이야기 내부에 커다란 반전을 가졌고 그것이 커다란 주축이 되는 소설 같은 경우 독자가 이를 따라가다가 “엥? 뜬금없네.”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에 관한 단서를 곳곳에 고르게 심어두여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개보다 빠르게 추측하여 실제로 반전이 일어났을 때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연막이다. 실제로 있는 작법 단어는 아니고 이 리뷰에서는 편의상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큼지막한 흐름을 크게 두 개에서 세 개 정도로 잡아두고 사람들이 메인 반전을 예상하기 힘들게 만든다. 단순히 힘들게 만드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다른 것들보단 흐릿하게 인식되도록, 그러나 언제나 염두에 두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가 제공하는 복선이 독자에게 제대로 입력이 되면서도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추후 다가올 반전에 대한 예상이 너무 이르게 찾아오지 않도록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냈다. 삼호는 캡슐에 들어가 과거를 회상한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그가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에서 비밀리에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을 말이다. 그들의 프로젝트라는 것은 경제력이 없는 이들을 ‘복지’의 명목하에 계약 기간 동안 마네킹으로 만들어 쓰임성이 있는 노동 현장에 투입하고 마네킹으로서의 근무가 끝나면 다시 인간으로 복귀시킴과 동시에 그간의 급여를 받는 형식이었다.

삼호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으니까. 인간을 상품성으로 판단하는 사회 속에서 ‘상품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이 왜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지, 수긍하는지에 관한 건 명백하다.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당함과 불편함은 제기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문제를 문제라 인식하기 전까지 문제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발생하는 효과가 눈에 드러나는데도 왜 그것이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다. 원인불명이라는 용어는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 같은 어떠한 범죄에 한해서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집에서 폭언에 시달리는 아이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시퍼렇게 멍이 든 아이들을 보고 함께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이 겪고 있는 폭력이 폭력인지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사실 이 둘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삼호의 상황도 그렇다. 그건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환경에서 이를 정당화하기에 발생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왜 너만 유난이야? 가스라이팅의 교묘한 점은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표출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게 함에 있다. 그것이 사회 전반이든, 가정 내에서든, 어떠한 범주에서든 말이다.

 

실업자나 부득이 하게 경제적 활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복지 제도와 마네킹 프로젝트의 차이점은 노동의 주체가 정말로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인간보다 돈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그 안에 돌아가는 여러 개의 바퀴들. 마모된 바퀴들은 언제라도 교체될 수 있다. 부품은 쓸모없어지면 버려질 수 있다. 그러므로 바퀴는 객체다. 작중에 나오는 마네킹도 주체가 아니라 그저 사물화된 대상에 가깝다.

최근 최저임금을 내린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들이 내미는 근거 중 하나는 ‘이런 작은 돈마저 필요한 자들이 있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지키기 위해 마지노선으로 존재하는 것이 최저임금인데 이를 폐지하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의 생존권을 부여잡아 질질 끌어오다니 치졸하고 더러운 수작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돈이 없고 경제 활동을 할 능력이 없으면 모든 욕구와 권리를 포기한 채 가만히 마네킹이나 하라고 외치는 이 소설 속의 사회와 뭐가 다를까.

 

작중에서 하나 더 주목할 점은 일호와 삼호를 대체한 마네킹은 우리가 지금 당장 길거리 옷가게에 들어가기만 해도 볼 수 있는 눈코입이 없는 새하얀 마네킹이라는 점이다. 작중에서 삼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번엔 눈 코 입마저 닫아버렸구나…’

 

노동자로 하여금 주위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건 비단 노동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한다. 먹고 사는 것도 바쁘니까.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막아버림으로써 사람들은 부당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패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를 맡지 못하고 그들의 작당을 듣지 못하고 입을 통해 고발할 수 없다. 꽉 막혀 아무런 감각 신호도 받지 못하고 그저 얌전히 존재하기만 하는 마네킹의 모습이 소름끼치게 그려진다.

 

그러나 배경으로 작용하는 섬뜩함에 비해 의외로 이야기의 결말은 활기차게 흘러간다.

캡슐에서 깨어난 삼호는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고 비척비척 건물 밖을 나간다. 앞에 걸어가는 여자는 일호였다. 삼호는 거적데기를 걸치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긴다. 민정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마 민정에게 돌아가면 그는 분명 삼호를 보며 소름끼쳐 할 것이다. 애초에 알아볼 수는 있을까.

그러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뒤를 돌아본 삼호는 그것이 민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당신은 너무 인간적이었어요. 난 정말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마네킹이랑 사랑에 빠지다니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다고요.”

 

예상치 못한 민정의 고백이 이어지고 삼호는 민정과 다음에 같이 캠핑을 가기로 약속하여 나름 로맨틱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낯설지만 그렇기에 흥미로운 마네킹이라는 존재를 화자로 선정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목을 끈다. 달달한 해피엔딩으로 가는 수많은 여정 속에서 은밀하게 드러난 배경 설절을 기반으로 독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현재 사회와의 유사성을 찾게 만든다.

SF의 기능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에 관한 상상력을 돋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사와 혹은 과거까지도 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이 사실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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