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마음에 한 순간 미묘한 파문이 일었다. 일 주년 기념 케이크에 초가 두 개나 올라와 있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다독여보지만 그것은 좋든 싫든 과거의 연인들과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싱숭생숭한 기억의 편린에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며 애써 감정을 죽여보려 하지만 결국 그녀가 택한 것은 ‘복구’라는 미련이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실로 원하는 사랑은 도대체 누구인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미련과 혼란은 그녀를 최초의 어느 순간으로 초대한다. 막 사랑에 빠졌을 때의, 작중 묘사에 따르자면 첫 번째 단계라고 표현하는 그 상황으로 말이다.
통상적으로 시간 이동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타임머신이나 타임리프 등의 존재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등장인물의 미련(未練)을 해소하는 소재로 통용된다. 그것이 놀랄만한 미래 예지가 되었건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되었건 간에 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잉크가 가득 찬 펜으로 어느 순간에 점을 찍은 뒤 그대로 선을 죽 그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현실의 토대를 세우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등장인물이 원하는 것은 미련의 해소를 통한 변화의 추구이다. 그리고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관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라고 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아직까지 타임머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련은 지나간 과거의 부산물에 불과한 쓸모없는 감정일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시간은 일직선으로 곧게 흐른다. 우리는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보내왔고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추억을, 미련을 쌓아왔다. 그리고 얽히고 얽혀 무엇 하나 멋대로 버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의 집합체가 바로 현재의 우리라는 사실을.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미련은 경험을 남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가? 그렇다면 잠시 쉼표를 찍어라. 화를 내도 좋다. 눈물 흘려도 좋다. 술에 진탕 취한 채 고성방가를 질러도 보고 이성을 잃지 않는 선이라면 집기들을 다 때려부숴도 좋다. 그리고 언젠가 그 모든 미련을 다 쏟아붓고 허전한 느낌,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온다면 당신은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길 바라겠다. 단언컨대 살아 있다면 잉크는 아직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