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식인 사건이 벌어지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대에 식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변태성욕자나 싸이코패스의 소행이라 여겨지겠지요.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이 죽고 죽이는 일이 만연한 환경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체제가 무너져 식량 보급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잡아먹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전쟁 상황에서 벌어진 식인 관련 이야기가 괴담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본 기억도 있고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이런 비슷한 사례가 어떤 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예전에 TV에서 방영해 준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고픈 난민들이 사람의 시체를 뜯어가는 에피소드가 나왔던 게 기억나네요. 어떤 나라들은 대놓고 사람을 식량삼아 잡아먹은 역사가 있지만 이것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는데 반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전쟁이나 경신대기근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식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 조상님들이라 다행이라고 할까요.
소설 <돼지가면 놀이>는 자기 재산을 물려받는 손자에게 전쟁 직후 젊었을 적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시점과 누군가(손자)의 의뢰를 받고 전쟁 시기 미군들이 지역적인 특징 때문에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던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는 인물의 편지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늘어질 것이 없이 전환되어 읽기가 편한 편입니다.
극 상에서 상당히 이기적이며 냉혹한 인물로 분류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제대를 하면서 돌아가다 머물게 된 해안면이라는 마을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가 한 집안에 의해 벌어진 식인 사건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전쟁 와중에 벌어진 식인 사건이기 때문에 처음엔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을 잡아먹은 인간들이 나중에 인육에 맛을 들여 사람을 공격하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마을 하나가 한통속일지도 모른다고 예측도 했고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 사이에 끼어드는 탐정의 편지에는 대규모의 식인 사태에 대한 언급은 적은 편이며, 또한 그 사건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조사가 힘들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즉 마을에서 합세하고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이야기는 아니며, 오히려 여기서 사람을 공격하여 잡아먹는 인간들은 기아 때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납니다.
즉 본래 전쟁 전부터 광기를 가진 인간들이 전쟁이라는 북새통을 이용해 자신들의 광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고 해야 야 옳은 말일까요. 소설의 제목인 ‘돼지가면 놀이’는 그들의 그런 광기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돼지는 인간들에게 잡아먹히는 짐승 – 피식자 – 의 위치에 있는데 여기선 포식자에 가까운 인간들이 돼지의 가면을 쓴다는 점입니다.
어딘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 모습을 나름 해석하자면, 과거 사람들은 전쟁을 하거나 사냥을 해서 이기면 진 상대방의 머리나 신체 일부를 물건으로 전락시켜 장식처럼 과시하는 일도 있는데 포식자인 인간이 그와 비슷하게 피식자의 머리(잡아먹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을 돼지와 동일시)를 장식용으로 과시한다거나, 혹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짐승의 모습을 따라하여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으로 해석돼요.
피해자일 뻔한 할아버지 역시 그들에게 동화되어 돼지가면 놀이에 동참할 것을 암시하게 되는데, 그 역시 손자에게 늘어놓는 말을 보면 저택의 교수와 그 딸과 다를 바 없는 광기의 소유자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예상과 달리 할아버지 입장에서 무식한 놈들이니, 못 배운 놈들이니 비난과 비판을 한데 받는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 혹은 방관자에 가까운 포지션이라는 것 또한 반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