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푸드 프린터가 고장 났다.
두어 달 전부터 음식을 뽑아낼 때마다 음식물 주사기가 자꾸 밑으로 빠지더니, 오늘 결국 작동을 멈추고 만 것이다.
전문 매장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에서 구매한 제품이라 AS센터로 가져가도 견적이 꽤나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깟 수리비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 모든 식생활은 이 3D 푸드 프린터의 기능에 맞춰 좌지우지되어 왔다. 애초에 내가 석 달 치 월급 가격의 신형 푸드 프린터를 온라인 경매까지 해 가면서 구입한 이유가 뭐냔 말이다. 더 이상 냉동 재료로 만들어진 볶음밥(비슷한 고무 맛 나는 쌀 덩어리)과 초콜릿 잼(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팔았던 100원짜리 초코볼을 녹인 맛)을 바른 토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은가. 10년 넘게 썼던 고물 푸드 프린터를 버리고 한식, 중식, 양식 프린팅이 가능한 신형 3D 푸드 프린터를 배송받았을 때 느꼈던 희열이 엊그제 같은데 1년도 되지 않아 이 꼴이라니. 이럴 때마다 어른들이 고장 난 가전 제품을 보면서 제기했던 음모론―전자 제품 회사 놈들은 항상 이랬어. 일부러 제품의 수명을 짧게 만들어서 소비자들이 자꾸만 신상품을 구입하게 만들잖아!―에 손을 들어 주게 된다.
직장 동료가 7월 말부터 8월 초 일주일 동안 모든 전자 제품 서비스 센터는 휴가 기간이라며 빨리 수리를 맡기라고 할 때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지만 나에게도 변명거리는 널려 있다. 5월에는 2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6월에는 과로로 인한 위장 장애로 병원에 입원했고, 7월에는 인터넷 잡지의 증강현실(增强現實)화 프로젝트에 억지로 투입되었고, 8월 초 현재…….
내 서른두 번째 생일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엄마의 생일상’을 주제로 주간 푸드 칼럼을 작성해 같은 날 데스크로 넘겨야 한다.
아니, 도대체 누가 21세기도 중반이 다 되어 가는 이 시대에 엄마의 생일상 같은 아날로그적이고 감상적인 글을 읽고 싶어 하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20대 내내 잡다한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다가 경력도 없이 겨우 취직한 잡지 에디터 나부랭이가 편집장 앞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거나 눈치가 더럽게 없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중 어느 쪽도 아니기 때문에 편집장의 “그러고 보니 민주 씨 이번 달에 생일이지? 그럼 칼럼에 감정 이입하기도 쉽겠네. 이번 특집은 민주 씨가 한번 진행해 봐. 주 메뉴는…… 그래, 소고기 미역국이 좋겠네!”라는 말에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말았다.
편집장은 출판사 대표와 사장을 겸하고 있는데, 처음 출판사를 세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감성 마케팅 이론’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뉴스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요즘 세상에, 기자라는 직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만이 지닌 ‘감성’ 때문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나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어중이들을 쉽게 끌어 모았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신념에 가슴 깊이 감동하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월급이나 감성적으로 넉넉히 올려 줬으면 하는 바람밖에 남지 않았다.
어찌 됐든 3D 푸드 프린터가 고장 난 바람에 모처럼 얻어 낸 재택근무 주간도 쓸모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피자와 치킨 같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었는데, 집집마다 3D 푸드 프린터가 들어선 뒤로는 ‘사람이 직접 오는 배달 서비스’의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인터넷으로 결제하기만 하면 따끈따끈한 음식이 과거의 팩스처럼 3D 푸드 프린터로 곧장 전송되어 오기 때문이다.
저 3D 푸드 프린터가 고장 나지만 않았다면 미역국과 불고기 같은 전통 생일상을 배달시켜 인공지능 문서 작성 프로그램으로 그럴듯한 칼럼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신기술은 언제나 그랬듯이 중요한 순간마다 도움이 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홀로 생일상 차리기에 도전했다. 미역국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직접 미역이니 마늘이니 소고기니 하는 재료들을 사 왔을 때만 해도 일은 간단히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부엌은 음식을 해 먹는 곳이 아니라 식기를 놓아두는 창고에 가까웠다. 냉장고도 남은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국을 끓일 때 필요한 냄비와 국자, 심지어 마늘을 다질 때 써야 할 도마도 없어 새로 구입해야만 했다. 육수용 대파는 집에 있는 과도로 대충 썰어 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소고기 미역국의 맛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미역은 너무 불려 흐물흐물했고 간은 지나치게 센 데다가 덜 익힌 소고기는 입안에서 비린내를 내며 물컹거렸다. 내가 엄마의 미역국을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미역국이 이런 맛은 아니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에 남은 국을 전부 쏟아 버린 다음 미역국과 음식점을 동시에 검색 창에 쳐 보았다. 하지만 ‘3D 푸드 프린터 재료로 일식집 미역국 만드는 법’, ‘제주도 어멍 미역국 프린팅 조합법’ 같은 게시글만 떠오를 뿐 미역국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