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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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은 남은 주말을 소식 없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며 허비했다.

 

일어나선 안될 일을 기대하는 자신이 실망스러운 것인지,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게 실망스러운 것인지 좀처럼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월요일이 다가오자 잠자리에 들기가 두려워진다.

 

또다시 알 수 없는 꿈을 꿀 것이라는, 그 꿈이 세일이 깨어나는걸 방해할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든다.

 

‘또 지각할 수는 없지.. 아예 밤을 새울까?’

 

밤을 새우고 출근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그 항공 점퍼 남자가 여전히 나 감시하고 있다면 늦잠자면 또 깨워 주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코웃음을 치며 몸을 누이니 잠이 쏟아져 내려온다.

 

뒤따라온 꿈속에서 세일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다.

 

춥고, 어둡다.

 

세일을 둘러싼 어둠의 장막 너머에서 누군가 다가온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꿈을 꾸고 있음을 인지 못 하는 와중에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심장 역시 빠르게 뛰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그녀가 날 찾아오는 거야.’

 

“무슨 일이시죠? 저 찾아오신 건가요?”

 

낯익은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온다.

 

낮에 느꼈던 설렘 대신 두려움이 세일의 몸을 가득 메운다.

 

‘불을 줘.. 여긴 너무 어둡고 추워..’

 

“어려울거 없죠.”

 

마법의 불이 피어오른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포식자들과 밤의 세상이다.

 

밤과 어둠과 거인이 꿈에서 깨어난다.

 

세상이,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거인을 바라보는 세일을 거인이 바라본다.

 

‘난 원숭이 왕국의 왕이다.. 문명의 파수꾼이다.. 찬탈자의 불을 지키는 이다..’

 

“아니요. 세일 씨는 종복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 세일은 무릎을 꿇는다.

 

‘어머니..’

 

세일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충성을 다짐한다.

 

‘어둡고 무서워요. 불이 필요해요!’

 

거인의 손길이 세일을 어루만진다.

 

공포에 떠는 종복을 위로하는 연민과 자애의 손길이다.

 

“빛과 온기를 조금 더 누리도록 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종복에게 내준것을 ..”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커튼을 치지 않은 오피스텔의 창문으로 들이치는 해를 바라보며 세일은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또 꿈을 꿨나?’

 

진저리를 치며 머리맡의 핸드폰을 켜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오전 9시다. 시침은 움직이지 않았다.

 

 

출근 시간 직전까지도 세일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피스텔의 현관문을 나서 개활지 도로에 접어 들기 전 까지 어떤 감시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세일은 사무실의 철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핸드폰을 확인하고 전원을 껐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퇴근하는 이 노인에게 몇 마디 대꾸를 하고 의자에 앉으니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세일의 침울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박 노인은 한동안 말없이 세일을 바라본다.

 

“주말에 자네 어머니 찾아뵈었나?”

“네. 찾아뵙고 왔습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네. 아직..”

 

열의 없는 세일의 대답에도 별말 없이 박 노인은 벽면의 시계로 시선을 가져간다.

 

곧 사무실 안은 익숙한 박 노인의 시계 소리로 가득 찬다.

 

“저 영감님.”

 

뜨개질바늘을 잡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박 노인의 손이 멈추어 선다.

 

“그 시계 말입니다. 여기선 전기로 움직이는 건 다 동작 안 한다고 이 영감님이 그러셨는데..”

“이건 전기가 아니라 태엽장치로 작동하는 시계일세. 봐 보겠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박 노인은 시계를 풀러 세일에게 건넨다.

 

예상 못 한 박 노인의 반응에 당황해하며 세일은 시계를 건네어 받았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