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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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고 비포장도로라 생각했던 것은 황무지를 차들이 지나다니며 다져놓은 자국이었다.

 

‘여기는 당장 출퇴근도 문제 일거에 같은데..’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단 회사의 위치뿐만 아니라 면접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인터넷 사이트가 아닌 유력 일간지 한 면을 꽉 채운 채용 공고는 세일에게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신문 한 면을 다 써서 기껏 채용 공고 4줄이랑 이력서 보낼 주소 하나 달랑 적어둘 정도로 사치 부릴만한 회사라면 돈이야 많지 않겠어?’

 

문제는 지원 자격이었다.

 

[성별,학력,자격,나이 무관]

 

어찌 보면 오히려 칭찬받아야 마땅할 조건 같지만 근래의 구직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에 비추어보면 충분히 수상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3교대 근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3교대 방식이라면 지금처럼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세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근무환경이다.

 

[정년 보장]

[업계 최고 대우]

 

세일의 이목을 잡아 끈 건 채용공고의 마지막 두 문구였다.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낼 정도의 재력을 보유한 회사가 ‘업계 최고 대우’를 자부한다면 나름대로 기대를 걸어 봐도 좋지 않은가?

 

도대체 어떤 ‘업계’의 회사에서 어떤 직군의 사람을 채용하는지도 설명이 없다는 게 또 문제였지만..

 

회사명도, 전화번호도, 홈페이지도 나와 있지 않은 채용공고에서 제공하는 회사에 관한 유일한 정보라고는 이력서를 보낼 주소지 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회사가 과천에 있는 일반 아파트에서 이력서를 받냐고…’

 

어떤 이끌림이 없었더라면 별난 회사도 다 있다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을 터였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채용공고의 주소지로 발송하고 5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세일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세일씨?”

“네 맞는데요.”

“서류 통과하셨으니 금요일 오전 8시까지 면접 보러오세요.”

“아… 금요일이면..”

“오전 8시까지예요. 이세일씨 처지에 과분할 정도로 좋은 직장이니 늦지 말게 오시고요.”

“네? 아..네 알겠습니다.. 회사 위치가?”

“주소로 찾기 힘들 테니 지금 불러 주는 숫자 잘 받아적으세요. 위도랑 경도가 3…”

 

 

전화로 서류합격을 통보하는 사람의 무례함은 그렇다 쳐도 세일의 처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영 꺼림칙했다.

 

‘그런데 요새 세상에 위도랑 경도로 회사 위치 알려주는 데가 어디 있나 했더니만.. 여긴 진짜 필요 했겠네.. 기사님이 지도 앱 화면만 보고 잘 찾아주신 게 다행이다.’

 

택시 안에서 볼 때는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는데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건물은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겨울이었지만 가림막이 없이 내리쬐는 태양 빛은 금세 세일의 싸구려 오리털 파카 안을 땀범벅으로 만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3개의 군부대가 마치 건물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혹시 무슨 군사 관련 회사인가? 그래서 보안이나 그런 것 땜에..’

 

군수 업체라면 오히려 세일로서는 환영할만했다. 대부분 급여도 좋고 직장도 탄탄하다 하지 않았던가?

 

금세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20분쯤을 걸어 도착한 단층의 콘크리트 건물 주위에는 커다란 자동차 3대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의도적으로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했던 세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고급 수입차 브랜드의 SUV 차량들이었다.

 

‘저 차들 다 수억하는 차 아닌가? 직원들이 이렇게 비싼 차 타고 다니는 거라면 진짜 업계 최고 대우 맞나 보네.. 무슨 군사 관련 업체 출장 파견 사무소 같은데 인가 봐?’

 

조금씩 이 미지의 직장에 호의가 싹트고 있는 세일의 마음을 다시 부정의 늪으로 잡아끄는 건 수상할 정도로 단조로운 건물의 외관이었다.

 

직사각형의 단층 건물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지붕 위의 연통 말고는 별다른 외부 배관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하다.

 

건물의 정면에 보이는 칙칙한 철문은 바라보기만 해도 섬뜻한 기분이 들었다.

 

세일은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건물의 외벽에는 다른 출입문도 창문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세일은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면접 시간까지 10여 분이 넘게 남아 있는걸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의 배터리 잔량과 안테나 게이지가 요동치더니 전원이 꺼져버렸다.

 

‘이 고물 핸드폰 같으니라고..’

 

이미 예전에 배터리 수명이 다한걸 억지로 쓰고 있는 핸드폰이었던지라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하필 지금이라니..

 

‘취직하면 일단 핸드폰부터 바꿔야 하나..’

 

세일은 한숨을 내쉬며 철문 앞으로 걸어갔다.

 

철문의 중앙을 가로질러 길게 놓인 굵은 손잡이를 한참 바라보다 세일은 작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세일은 잠시 고민하다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면접 보러 왔습니다!”

 

철문 안에서는 여전히 어떤 반응도 들려오지 않는다.

 

세일은 조금 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철문은 예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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