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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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아?”

“뭐가?”

“왜 새로 도시를 지으면 전부 다 역과 대형 마트와 쇼핑몰과 극장을 중심으로 네모반듯하게 아파트를 세워 올리는건지.. 꼭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아두려고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해본 적 없어?”

“그거야.. 편하잖아. 사람들은 모여 있는 것도 좋아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데서 편리함을 느끼고, 그런걸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누군가는 한적함을 즐길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자연환경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을텐데..”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직장의 위치..”

“그래 그래.. 그리고 비슷한 소득 계층끼리 뭉쳐 살고 싶고.. 학군이고.. 뻔하고 설득력 있는 대답이긴 한데 왜 모든 사람의 욕망이 비슷한가? 에 대한 대답은 안 되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때론 말이지.. 문명사회에서 대중의 욕망이란 건 어떤 의지가 만든 지침을 따르는 것 같단 말이지? 당신들은 이걸 좋아해야 한다. 당신들은 이걸 싫어해야 한다. 이런 삶이 당신들에게는 최선이다…”

 

 

“어디.. 면접 보러 가시나 봐요. 손님?”

 

갑작스러운 택시 기사의 질문에 세일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주무시고 계셨나 봐요? 눈뜨고 계시길래 깨어계신 줄 알았는데..”

 

백일몽 이었던 것 같다. 대화를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아..아니요. 그런데 면접 보러 가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얼굴을 아직 앳된 얼굴인데 양복 제대로 차려입고 택시 타고 가시는 게 딱 이제 막 졸업할 무렵의 사회 초년생이 면접 보러 가나 보다 하고 생각해서 물어봤죠.”

 

택시 기사는 감탄이나 칭찬을 원했던 걸까?

 

세일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경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과천청사역에서 올라탄 택시는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텅 빈 개활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군부대와 나지막한 야산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괜스레 신경이 곤두섰다.

 

‘주변도 황량하고 위치도 너무 외딴곳이잖아.. 출퇴근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어우.. 그런데 진짜 외딴데 있는 회산가 봐요? 그래도 손님이 다부지게 생각 잘하셨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다들 겉멋이 잔뜩 들어서 대기업이나 이름 들어본 회사만 가려 하고 말이죠… 그러니 청년 실업이다 뭐다 하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회사들은 다 똑같아! 그냥 이제부터 죽었다 생각하고 성실하게 회사 다니면 어디에서든 인정받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네?”

 

택시 기사의 장광설을 들으니 이미 취직이 확정된 회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구직자 커뮤니티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임플란트 회사였다.

 

아직 체 40도 되지 않은 젊은 사장이 임원부터 말단 사원까지 아무나 골라 자기 기분 내키는 시간에 전화를 걸고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에 받지 않으면 온갖 구실을 들어 자르기가 일수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면접관이 뭐라 했더라?’

 

[세일씨. 일단 우리 회사는 노동법 따라 9시 출근 6시 퇴근인데, 밤 12시 전에 집에 갈 생각은 하지 마시고.. 혹시라도 사정 있으면 오후 9시 넘어서 팀장 허락받고 퇴근하도록 하세요.]

 

그다지 자랑스러워 할만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도 당당하게 불합리한 근무 여건을 이야기하는 면접관의 떳떳한 표정을 세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회사들이 거기랑 다 똑같으면 진짜로 곤란한 거잖아? 주말에도 사장이 부르면 집 이사하는데도 끌려가야 하고, 등산도 따라가야 하고, 자전거 타는데도 끌려간다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의 병간호도 문제였다. 9시에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퇴근해 보겠다 한들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 시간이면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면회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거기는 정말로 갈 곳이 없을 때나 생각해 봐야지… 우리나라 회사들이 설마 다 그 모양은 아니겠지..’

 

문제는 세일의 구직 시장 성적이 회사를 가리고 말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50번 면접 봐서 개중 낫다 싶은 회사 합격한 곳이 거기 딱 한곳이니..’

 

누구에게도 자랑스럽게 이름을 밝히기 힘든 대학교를 나오고 그나마도 졸업 학점이 형편 없었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고만고만한 회사 몇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기도 했다. 개중 한 곳은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조그마한 회사였는데 사장부터 임원까지 핵심 인물들은 말 그대로 가족들로 채워져 있고 직원들을 집에 들인 종처럼 부려먹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아니 그리고.. 컴퓨터 공학과 나온 나를 총무로 써먹겠다는 회사는 도대체..’

 

교통편도 마땅치 않은 수원 변두리에 위치한 회사에서 한 달에 120만 원을 받으며 총무직을 해봐야 다달이 월세 내고 생활비 내고 나면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삶을 견뎌내기만 하며 경력도 쌓지 못하고 늙어 갈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학생한테 뭐 하나 이야기해줄까?”

 

택시기사는 어느새 세일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세일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면접 시간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다.

 

“회사들은 말이지.. 말로는 직원들이 회사의 주인이고 어쩌고 하는데.. 결국, 회사 다닌다는 건 남들 밑에서 종놈 짓 하려고 다니는 거거든? 아무리 좋은 회사라 해도 직원들은 자유가 없어! 그냥 월급만 후하게 받는 종놈이랑 다를 게 없다고!”

 

세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회사 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 들려주기엔 부적절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이미 학비 대출을 갚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2건 이상의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세일에게는 꽤 그럴듯하게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몸이 아프거나, 무슨 사정이 있거나, 아니 아무런 사정이 없어도 자유로운 사람이면 자기가 쉬고 싶거나 회사를 가기 싫으면 그럴 수 있어야지! 그걸 일 년에 딱 몇 번만 할 수 있고 또 그때마다 위에 놈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그게 바로 종놈 생활이라고! 종놈 생활!”

 

택시기사는 룸미러로 세일의 눈치를 살폈다. 말없이 앉아 있는 세일의 자조적인 미소가 긍정의 뜻이라 생각했는지 조금 더 흥분한 말투로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고 염병할 놈의 복지가 좋고 해봐야 사람이 종놈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얼마 전에 태운 병신들 이야기해줄까요? 아니 자기 회사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다쉬는데 사장이 주말도 없이 새벽까지 일하는 게 너무 불쌍하고 대단해 보인대! 씨펄.. 그 새끼들 대가리엔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아니 회사가 잘되면 사장이니 이사니 하는 작자들은 직원들 받는 거에 몇십, 몇백 배를 당연하다는 듯이 챙겨가요! 그거 몇 시간 더해서 몇백 배 받아 갈 수 있으면 누구라도 다 그러겠다! 염병.. 보리밥에 간장 찍어 먹는 종놈들이 ‘우리 마나님이 요새 고되셔서 그 좋아하시던 고기반찬도 잘 안 드신다’고 걱정하는 꼬라지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