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 심연의 지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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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얏! 따꼼따꼼해!”

 

창밖을 보겠다고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던 태준이가 위산을 뒤집어 쓰고 울상을 지었다. 바보라 얼굴이 두꺼워서 따끔한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양쪽으로 열린 열 개의 구멍에서 위산이 졸졸 흘러 나왔다. 시큼한 향에 코가 저릿했다. 그나마 처음 열렸을 때처럼 콸콸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점차 차올라서 곧 신발이 잠길 것 같았다.

 

“이러다 우리 다 소화돼서 혼타르 신세를 면하기 힘들겠는데?”

 

“구멍을 막아야 해!”

 

소라의 진단에 기린이 외치자 태준이는 구멍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막지? 머리를 끼울까?”

 

“오, 태준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네 머리가 처음으로 유용하게 쓰일 기회인 듯?”

 

“그러다 진짜로 머리로 막을라. 아서.”

 

옷을 벗어서 구멍을 막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호랭이는 점프수트를 벗으면 바로 속옷 차림이어서 기린이 만류했고, 기린은 엄마가 모처럼 사 준 정장을 먹보 귀신의 내장 속에 버리기가 싫었다. 태준이가 민소매 셔츠를 벗었지만 구멍을 막기엔 너무 얇았고, 보기 흉하니 다시 입으라는 핀잔만 들었다. 자랑거리라곤 벌크업한 근육밖에 없는 태준은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무당이 이를 딱딱딱 부딪치고 ‘문’자가 적힌 부적을 여러 장 겹쳐서 막았지만 소화액에 젖어서 금세 찢어져 버렸다.

 

발 밑이 찰박찰박할 정도로 소화액이 차오르고 기린의 구두 밑창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녹기 시작했다. 게거품 같네. 게거품, 게, 소라게, 소라, 소라!

 

“소라야! 액체니까 네가 얼리면 되잖아!”

 

“나 지금 영력이….”

 

“요요, 헬프!”

 

기린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한 손을 들어 뒤쪽에 있던 요요를 가리켰다. 요요의 손등에 그려진 만다라 문양의 색이 더 진해지더니 검은 구름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요요가 두 손을 소라의 어깨에 얹으니 소라의 영력이 쾌속으로 충전이 되었다.

 

소라는 정신을 집중해서 하나씩 차근차근 구멍을 얼려 막고 마지막으로 바닥도 얼려버렸다.

 

“어때? 내 말이 맞지? 나 유용하다니깐!”

 

“그래, 쟤 보단 낫다.”

 

소라의 생색에 기린이 대꾸하며 태준이를 가리켰다. 태준이는 신이 나서 미끄럼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 중이었다. 피겨스케이팅이라도 하는 듯이 한 발로 활강을 하다가 꽈당하고 넘어졌다. 나머지 일행들도 휘청했다.

 

폐례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착지한 듯 했다.

 

“이제 어떻게 나가지?”

 

“연기를 피워서 재채기라도 하게 해야 하나?”

 

기린의 아이디어에 호랭이가 아는 척을 했다.

 

“나 그거 알아! 거짓말쟁이 키높이요 얘기잖아.”

 

“으음, 이름이 조금 다르지만….”

 

“아쉽게도 불 속성 영력을 가진 사자가 없네.”

 

“그리고 지금 불 피우면 소화액 다시 터져. 기껏 얼려놨더니.”

 

“끄응.”

 

오의 칼날도 먹히지 않아서 걱정이 깊어지던 순간, 문제는 의외의 방향에서 저절로 풀렸다.

 

꾸르르륵 꾸르르륵.

 

“이게 무슨 소리지?”

 

폐례다의 위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라가 만든 얼음 때문에 배가 차가워진 폐례다가 배탈이 난 것이었다.

 

좌우로 밀리고 넘어지던 일곱 명은 갑자기 열린 바닥으로 떨어져 좁은 통로를 빠르게 지나 출구를 통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뿌직 뿌직 뿌지직.

 

찐득한 액체와 함께 바닥에 굴러 떨어져 불평을 늘어놓으려던 태준의 입을 오가 틀어막았다. 폐례다는 가인을 등에 태운 채 자신의 배설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괜히 주의를 끌어 다시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폐례다가 어디론가 걸어서 이동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자 일행들은 바로 옆에 보이는 큰 호수에 들어가 몸을 헹구었다. 느낌은 몹시 찝찝했으나 악취가 나거나 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근데 여기가 어디지?”

 

눈 앞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호수를 둘러싼 산 능선 너머로는 하늘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요요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주변을 살폈다. 호랭이는 어렴풋한 기억속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런 누리끼리한 색이 아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광경이었는데….

 

확인을 마친 요요가 눈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여기 탐라였어.”

 

“그럼 이 호수가 백록담?”

 

“가인은 여길 왜 온 거지?”

 

“그러게. 계족산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질문에 대한 답은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조용히 가인의 뒤를 밟았다.

 

땅으로 내려선 가인은 귓속말로 폐례다에게 한라산 아래 먹을 것이 많은 장소를 일러 주었다. 이제 멀리 보내야지 이 먹보 귀신이 사제들을 먹어치우겠다고 덤비면 곤란하다. 사제들을 먹이로 제공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으니까. 신이 나서 산을 내려가는 폐례다를 확인한 후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백록담 한켠에 세워진 제단은 4층 높이의 목조물로 계단을 올라가면 백록담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제단 아래에는 백여 명의 사제들이 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