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 기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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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범은 처음부터 민석의 작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암영전선의 본거지인 계족산 닭발 모양 세 갈래 능선에서 오르락내리락 밀당을 하는 동안 소수정예로 사아보호소의 가인을 노린다. 듣기엔 그럴싸한데 계족산 전투의 진행이 기범의 성격에는 통 맞지 않았다.

 

그냥 끝까지 올라가서 밟아버리면 되지 방어병력이 조금 몰린다고 굳이 뒤로 뺄 필요가 있나? 하지만 기범이 약속된 지점을 지나 공격을 이어가면 민석이쪽 능선에서 파랗게 타오르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무리하지 말고 빠지라는 뜻이었다. 글쎄 무리가 아니라니까 짜증나게 하네. 무시하고 조금 더 올라가려고 하면 공중으로 쏘던 신호탄을 아예 직선으로 기범을 겨냥해 날렸다.

 

알았다, 알았어. 내려가면 되잖아. 아오, 눈속임이나 쓰는 사이비들한테 쫓기는 모양새를 연출해야 한다니! 기범은 성질을 부리며 괜히 나무를 마구 두드려 팼다. 실제로 암영전선 사제들의 공격은 꽤 날카로운 면이 있었지만, 기범은 물리력 위주의 영력이 아니면 눈속임이라고 무시하곤 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아군의 피해도 속속 발생했다. 부대장 기범 입장에서는 그저 거슬리는 정도라도 일반 부대원들은 꽤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던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칸자들이었다. 칸자들은 비탈길을 구르며 뛰어 내려오기도 했지만, 산꼭대기 쪽에서 투석기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새가 없는 비원에서 무언가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고, 나무에 걸렸다가 뛰어 내리고 하는 광경은 위협적이기에 앞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칸자와의 전투가 이중으로 부담되는 것은 단지 아군 병력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전사자가 잠시 후 칸자가 되어 또 아군을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칸자에게 당한 사자는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칸자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사자의 육체는 칸자가 되는 동시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버려서 동료애로 인한 망설임이 공격을 막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사후에도 변함없이 육체를 유지하던 영력이 사라지면서 그 동안 멈춰져 있던 시간이 한순간에 몸의 세포들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공격 본능만 남은 이 죽지도 살지도 않은 존재를 암영전선 놈들은 어떻게 수하로 부릴 수가 있는 걸까? 기범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뭐, 그런 건 민석이와 똑똑이들이 밝혀내겠지. 기범은 질문들을 칸자의 몸뚱이와 함께 땅 속에 묻고, 어둠의 사제들의 얼굴에 광탄을 날렸다. 빛에 대한 방어력이 최상인 로브를 입은 사제들을 처치하려면 얼굴을 정확히 겨냥해야 했다.

 

십여 차례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한 끝에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기범이 대장 팔왕과 민석에게 그룹 통화를 걸었다. 평소엔 하루 종일 단 한 마디의 말도 안 하는 날이 있을 정도로 말이 없는 기범이지만, 일단 둑이 터지면 말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주변의 일부 병사들은 부대장의 낯선 모습에 전투를 멈추고 신기한 듯 구경을 했다.

 

“대체 이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사아보호소 쪽은 어떻게 되고 있대? 요요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어? 오는? 빨간 두건은? 너무 오래 걸리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듣고 있는 거야? 왜 대답이 없어? 설마 칸자 따위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질문이 끝이 없길래 아직 남은 줄 알고 기다렸지.”

 

민석은 늘 이렇게 기범의 급한 성격을 나무랐다. 기범은 치솟는 짜증을 누르고 부드럽게 대꾸했다.

 

“알았어. 차분하게 기다릴 테니 대답을 시작해.”

 

“지금 상황으로는 적의 본진까지 쓸어버릴 수 있어 보이긴 하지만, 퇴각한 적들이 사아보호소로 몰려갈 경우 특공대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

 

“알겠어.”

 

“모든 일에는 적절한 순서와 정도가 있어. 사자들의 눈을 가리는 어둠을 밀어내고 세상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긴 하지만, 은은한 새벽의 빛을 통해 서서히 적셔야지 다짜고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들이밀면 더 큰 재앙을 가져올 뿐이라니까.”

 

“알았다고!”

 

기범이 언성을 높이자 팔왕이 나섰다.

 

“새벽의 빛.”

 

“생명의 나무.”

 

기범과 민석이 동시에 대꾸를 하고, 민석이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요요한테 몇 번 연락을 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네.”

 

“아, 그래? 그 사실을 언제쯤 우리랑 공유할 생각이었는데?”

 

“긴박한 전투 상황이거나 전화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겠거니 했지. 상황이 종료되면 어련히 알아서 보고를 하지 않을까?”

 

기범은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기범 주변의 땅이 지뢰라도 터진 듯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오, 대장! 솔직히 저렇게 대책 없이 태평한 것 보다는 차라리 나처럼 조금 급한 성격이 낫지 않아?”

 

“조그음?”

 

“너 말고 대장한테 물었거든!”

 

팔왕은 둘의 다툼이 멈출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지시를 내렸다.

 

“그쪽 인원들에게 지금 다시 연락을 취해라.”

 

“오케이.”

 

“그룹 통화는 유지하고.”

 

민석이가 옆의 통신병에게 지시를 전달했다. 그러나 요요와 오는 물론 호랭이도 기린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근육 바보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해.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연결이 안 되는 거야?”

 

민석의 질문에 전생에 비둘기였으리라고 생각되는 통신병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통신 가능 범위를 벗어난 것 같은데….”

 

“말이 안 되잖아.”

 

비원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지역 통제에 따라 행정구역을 벗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