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내가 직접 증명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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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연락처를 갖고 있던 의사가 환자의 상태 설명을 메시지로 보내자, 아니나 다를까 닥터윤으로부터 바로 답신이 왔다.

 

– 수술을 집도할테니 당장 병원으로 데려 와.

 

– 정식으로 입원하기 곤란한 상황이래.

 

– 쓸데없는 걱정 말고 구급차를 보낼 위치나 말해.

 

알고 보니, 한밭종합병원측에서 닥터윤 팀을 위한 전용 수술 공간을 따로 마련해 주었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수술에 미친 여자가 마음껏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 다른 병원들이 물밑 접촉을 시도해도 별 성과가 없을 수밖에.

 

납치되었던 의사 셋에게는 사과와 감사를 표하고 돌려 보냈다. 물론 비밀을 발설할 시에 어떤 결과가 따를 지에 대해서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기린이 표정을 일그러뜨릴 정도였다.

 

호랭이는 미리 일층으로 옮겼다. 닥터윤이 업신여기거나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온몸에 붙어 있던 부적은 다 떼어냈다. 무당은 못마땅한 얼굴로 주변을 빙빙 돌다가 마고의 눈총을 받고 시무룩해서 벽에 기대 앉아 복숭아나무 가지로 바닥에 낙서를 했다.

 

김밥을 세 줄이나 먹어 치운 기린은 시원한 탄산수 한 컵이 그리웠다. 아니면 미소 장국. 슬프지만 지하수뿐이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연락 한 번 해봐.”

 

창밖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태준이가 기린을 닦달했다.

 

“해봐….”

 

무당도 잔뜩 나온 입으로 거들었다.

 

“참나, 너희가 보채지 않아도 이미 연락했거든. 호랭이는 내가 알아서 챙길게. 걱정들… 어, 답장 왔다.”

 

기린이 단말기도 없이 빈 손을 움직이며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다들 신기하게 쳐다봤다. 기린은 미래에서 온 것처럼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후후, 나는 첨단미래인간이다, 이 과거에 죽은 자들아.

 

구급차는 진입로를 들어오지 않고 큰 도로변에 서 있다고 했다. 무인주행차량인데 성능이 그리 정교하지 않은 모양이다. 기린은 다시 한 번 비원의 낙후된 기술 수준에 혀를 찼다. 이렇게 엉성한 테크놀로지는 내가 살던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구!

 

“저건가 보다. 고준 노준 들것 들어라.”

 

창밖을 보던 태준이가 서둘러 지시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저 멀리 있는 차가 보인다고? 기린은 태준의 능력에 감탄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전에 운전하던 서색연대 멤버처럼 박쥐 출신인 건가? 이쪽 저쪽에 잘 붙는 성격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준 트리오가 앞장 서고 요요와 기린이 뒤따랐다. 오는 마고와 함께 남기로 했다. 마고를 옭아 맬 안전핀이었던 호랭이의 역할이 사라졌으니, 적들이 마고를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은 누구인가? 암영전선? 중앙정부?

 

호랭이가 실린 들것을 든 고준과 노준이 잰걸음으로 커다란 바위와 고목 옆을 지났다. 어? 이 길에 저런 바위와 고목이 있었던가? 기린은 눈썹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요요에게 고개를 돌렸다. 요요도 수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바위와 나무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고준과 노준은 비명을 지르며 들것을 놓치고 옆으로 넘어졌다.

 

“몽달이다!”

 

요요가 외치며 라이트건을 뽑아 들었다.

 

“몽달이? 총각귀신?”

 

“아니.”

 

요요의 라이트건이 빛을 내뿜고 광탄들이 어두운 덩치들을 향해 날아갔다.

 

“바위 같은 지형지물로 위장한 것들을 몽달이라고 해. 암영전선 사제들의 특기야.”

 

출력을 최대로 높인 라이트건의 광탄에 맞은 사제들은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호랭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은 물론 어둠까지 흡수하는 암영전선의 로브는 가히 그 방어력이 대단했다. 어둑한 길 위에 끝 없이 깊은 구멍처럼 검은 덩어리들이 호랭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에도 기린은 공포심은 커녕 분노가 치밀었다.

 

“니네 거기 가만히 안 있어?!”

 

주먹을 쥐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빠, 르, 게… 뭐야?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기린의 몸이 어째선지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였다. 그것도 마치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에서처럼 적들은 제 속도로 움직이는 와중에 기린만 느려진 상태였다. 그 사이에 시커먼 암영전선 사제들이 준 트리오를 날려 버리고 호랭이에게 향했다.

 

“요요! 나 왜 이러는 거야?”

 

“토템 박혀있나 찾아 봐! 감속 주술이 걸려서 그래. 토템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나야 해!”

 

요요는 라이트건을 계속 발사해서 놈들의 움직임을 늦추었지만, 이제 적들과 호랭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조심스러웠다.

 

“토템? 그건 또 뭔데?”

 

그때 길 옆 풀숲에 박혀 있는 돼지 족발처럼 생긴 검은 막대가 기린의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두손으로 막대를 움켜 쥐었다. 그러자 풀밭에 엎드려 숨어 있던 사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킬킬킬, 내 토템을 그렇게 손으로 뽑아낼 수 있을… 으악?”

 

보통 사자들은 주술사의 토템을 뽑아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기린은 보통 사자가 아닌 괴력의 세인이었다. 검은 막대를 무처럼 뽑아 주술을 무효화하고, 엎드려 있던 사제를 걷어참과 동시에 호랭이에게 다가가는 놈을 향해 막대를 던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날아갔는데, 던져진 막대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적들의 코앞에 도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으로 다가온 기린을 맞닥뜨린 적들은 광탄에 맞았을 때보다도 더 심하게 경직되었다. 빛과 어둠을 모두 흡수하는 로브의 방어력도 기린의 주먹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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