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 닥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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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최대한 차단한 지하실. 매트리스에 누운 호랭이 옆을 기린과 무당이 지키고 있다. 무당은 전신에 부적을 붙인 걸로도 차도가 없자 호랭이 주변에 새끼줄에 이것저것을 끼워 넣은 금줄을 몇 겹으로 둘렀다.

 

자기야 그렇다 쳐도 무당은 호랭이에게 왜 이렇게까지 열심인 걸까 의아해 하던 기린은 호랭이와 마고에게 절을 하던 무당의 모습이 기억났다. 무당에게 있어 천계의 존재였던 호랭이와 마고는 모든 것을 바쳐서 섬겨야 하는 신인 것이다.

 

게다가 호랭이는 사낭에서 무당을 꺼내 준 장본인이 아닌가. 너무 일찍 깨어나는 바람에 상태가 정상이 아닌 무당으로서는 알에서 나온 아기새가 처음 본 존재를 엄마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각인이 호랭이에게 박혀 있었다. 호랭이를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중이었다.

 

오히려 기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비관하는 중이었다. 내 심장을 공유할 수는 없을까. 별의별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비원인데, 왜 그건 안 되는 거야. 기린의 안타까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랭이는 일주일째 눈을 뜨지 못했다. 요요의 말로는 차라리 의식이 없이 심장도 움직이지 않는 지금이 위험도가 낮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서 호랭이와 함께 바이크로 달리고 싶고, 손을 잡고 걷고 싶고, 여기저기를 가 보고 싶다고! 계속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건 싫어!

 

문이 열리고 마고가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 잠깐동안 새어 들어오는 빛에도 기린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호랭이의 안정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암막 커튼을 쳐야겠어.”

 

“이 정도 빛은 아무런 영향 없다니까. 오히려 지나친 암합성이 해롭다고 몇 번 말해?”

 

“그래도….”

 

호랭이도 호랭이지만 눈에 띄게 수척해진 기린이 마고는 더 걱정이었다.

 

“호랭이는 일단 안정적이라니까 이제 네 몸 좀 챙겨.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안 먹고 있잖아. 너는 우리 같은 사자가 아니야. 안 먹으면 죽는다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고가 내민 꾸러미에는 김밥이 들어 있었다. 비록 햄이나 계란은 들어 있지 않았지만, 들기름으로 살짝 볶아낸 쌀밥에 아보카도와 숙주, 파프리카를 넣고 돌김으로 말아 낸 그럴싸한 비건 김밥이었다. 본인들은 먹을 생각도 없으면서 기린을 위해 시내에서 사온 것이리라.

 

“수고스럽게 뭐 이런 걸.”

 

“수고는 무슨. 빨간 두건한테 시킨 거니까 신경 쓰지마. 걔 서색연대 들어오려고 엄청 열심이야.”

 

“태준이 진심인 것 같네.”

 

“그러게. 좀 모자라긴 해도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아. 미로 같은 쓰레기에 비하면야 썩 훌륭한 편이지. 일단 먹어.”

 

“알았어.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네.”

 

“알면 잘 좀 해.”

 

부쩍 다정해진 마고였다. 비록 영혼공명을 하진 않았지만, 이런 게 사자들이 말하는 일족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형식적인 면에 구애받지 않더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한 거 아닐까.

 

기린이 김밥 세 줄을 해치우는 동안 마고는 옆에 앉아 지켜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마고도 좀 먹을래?”

 

“아, 아니야. 그런 거.”

 

기린은 마지막 두 알을 한꺼번에 입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럼 뭔데? 할 말이라도 있어?”

 

“아… 그… 네가 준 명단 말이야.”

 

기린은 마음이 급해져 입 안의 밥을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그래! 언니 찾았대? 어디 있대?”

 

“안타깝지만, 그 중엔 없대. 앞 뒤로 몇 년의 명단을 다 확인했는데, 아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자 중에 이십 대 초반 여자는 없었대.”

 

“왜, 왜? 그 해가 맞는데?”

 

언니와의 재회를 기대했던 기린은 허탈함에 힘이 쭉 빠지고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걸 위해서 움직이다가 호랭이도 이렇게 되었는데.

 

“네 언니 굉장히 똑똑했다고 했지? 아마 그래서 이름 따위는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 중요한 기억들부터 추출했을 거야. 그러다가 칠 일째가 지나버렸겠지. 아린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될 타이밍을 놓친 거야.”

 

“그 바보 멍충이! 살아있을 때도 공부밖에 모르더니.”

 

“다른 방법을 찾아 보자.”

 

“우선은 호랭이부터 살려야 해.”

 

“그래야지.”

 

둘은 한동안 말이 없이 호랭이의 얼굴을 지켜봤다.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애가 탔다. 서색연대 부대원 중에 외과 수술이 가능한 사자들에게 호랭이를 보였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

 

기린이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미로 다리 치료한 방법은 어떨까?”

 

마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혼타르? 안 돼! 혼타르는 사자의 영혼을 추출해서 어둠으로 뭉친 고약한 물질이야. 그런 걸 몸에 주입하면 거기에 달라붙어 있던 영혼들의 영향으로 자아를 잃게 될 거야. 밴타리움도 위험하지만 혼타르는 차원이 달라. 절대 생각도 하지 마. 호랭이가 더 이상 호랭이가 아니어도 된다는 거야?”

 

기린은 소라의 안경을 통해 지켜봤던 미로의 괴이한 다리를 떠올렸다. 검은 지렁이 같은 근육 다발들이 꿈틀거리며 아무렇게나 모양을 바꾸던 게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건 괴물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 난 정말 모르겠어. 그렇게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도 들긴 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내 말 들어. 난 호랭이를 근 이천 년만에 만났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함께 지냈어. 그 동안 내 심정이 어땠을지 넌 짐작도 못할거야. 그건 함께지만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호랭이의 심장이 검은 색으로 꿈틀거리고 전혀 다른 성격이 된다는 상상을 하던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원치 않았으니까.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관계도 없던 일이 되어버리겠지.

 

“그런데 마고는 비원에 와서도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잃지 않은 거야? 죽은 지 칠 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