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 귓속이 간질간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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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알려준 주소는 후미진 곳에 위치한 낡은 폐건물이었다. 차에서 내린 소라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이런 장소라면 아무도 모르게 해치울 수 있겠군. 태준이 말로는 정장 차림 조수는 함께 있지 않다지만 조심은 해야겠지. 힘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어.

 

소라는 암영전선의 검은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뒤집어 쓰며 라이트건을 움켜 쥐었다. 간혹 통제가 어려운 사아들을 제압하기 위해 산파들이 쓰는 라이트건과는 출력의 수준이 다른 살상용이다. 태준이에겐 안됐지만 호랭이는 오늘 빛이 되어 사라진다.

 

녹슨 철문을 열자 어두운 실내에 태준이가 있었다. 안녕? 방해하면 너도 함께 보내줄게. 안녕!

 

“어디 있어?”

 

“저기 안쪽에. 진통제랑 약은 가져왔어?”

 

“그래, 걱정 마. 곧 통증을 전혀 못 느끼게 될 거야.”

 

“다행이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이해 못한 태준이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소라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희미한 조명 아래 빈 선반들과 상자 더미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버려진 창고 건물인 듯 했다. 선반과 선반 사이의 통로를 지나 앞서가던 태준이 옆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두어 걸음 뒤에서 따라가던 소라가 통로 끝에서 왼쪽으로 틀자 코 앞에 검은 피부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함정이었나?!

 

소라는 왼발로 바닥을 차고 옆으로 피하며 라이트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응축된 빛의 탄환이 연속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오는 어느새 선반장 위에 올라가 소라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선반과 벽에 닿은 광탄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터졌다. 쌓여 있던 먼지가 흩어지며 빛을 반사해 마치 불꽃놀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소라가 다시 총구를 위로 향하려는 순간, 눈 앞에 검은 그림자가 쏟아져 내렸다.

 

공격을 포기하고 팔을 교차해 머리 위로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한 소라의 양팔을 오의 쌍검이 묵직하게 찍어 눌렀다. 소라의 무릎이 버티지 못하고 풀썩 꺾였다. 제 아무리 방어력이 좋은 암영전선의 로브라지만 광자무기가 아닌 칼날을 받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내 팔이 왜 잘리지 않고 아직 붙어있는 거지? 소라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팔을 올려다 보았다. 칼등? 다음 순간 복부에 오의 발이 꽂히면서 소라는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배에 얼얼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뜬 소라는 자신이 의자에 결박당한 채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까짓 밧줄로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나를 너무 우습게 봤군. 소라는 공기 중의 수분에 서서히 냉기를 불어 넣어 등 뒤에 얼음 칼을 만들었다.

 

딸깍. 순간 머리 위에 핀 조명이 켜졌다. 밝은 빛에 얼굴을 찌푸리며 영력이 흐트러지자 얼음 칼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딸깍. 조명이 꺼졌다. 눈 앞이 여전히 하얗게 밝은 것이 시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날 어쩌려는 거야?”

 

소라가 허공에 대고 짜증섞인 질문을 던졌다.

 

“왜 미래형으로 질문을 하지?”

 

뒤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뭐?”

 

“우리가 뭔가를 이미 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너 한참동안 정신을 잃었는데. 왜 다들 아직은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호랭이 조수지? 가만 안 둬!”

 

여자의 목소리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요요였다.

 

“걔는 데려올 수가 없었어. 너를 보자마자 팔다리를 뽑아버렸을걸. 우리가 너를 보호해준 셈이지.”

 

소라는 과장된 협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철문을 날려버리고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 넘던 정장차림 여자의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내, 내가 뭘 어쨌다고?”

 

“호랭이 괴롭히는 데 일조했잖아. 빨간 두건한테 다 들었어.”

 

“태준이 이 배신자 자식!”

 

“애초에 믿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배신자야. 배신이란 건 앞으로 네가 하게 될 행동을 가리키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내가 누굴 배신한다는 거지?”

 

소라는 아까부터 왼쪽 귓속이 가려웠는데, 손이 의자에 묶여 있어서 긁을 수가 없었다 새끼손가락을 넣어서 한 번 긁적이고 싶은데, 할 수 없이 어깨에 비벼댔다.

 

“귓속이 간질간질하지?”

 

요요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 왼쪽 귀에 폭탄지렁이를 넣었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놈이 네 귓속을 헤집고 다닐 거야. 달팽이관을 특히 좋아한다던데. 그 전에 반고리관을 지날 때쯤엔 자꾸 넘어지게 될 거야. 너무 당황하지 마.”

 

“포, 폭탄지렁이?”

 

“그래. 원격으로 스위치만 누르면 네 머리가 저 조명처럼 밝게 빛나게 될 거야.”

 

딸깍. 정수리로 다시 핀조명이 내리꽂혔다. 소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귓속이 간지러웠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마지막으로 이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세요.”

 

출장 전 브리핑이 끝나고 지하 소강당으로 향하려던 때 최숙 문화재청장이 기린에게 링크를 건넸다.

 

“이게 뭔데요?”

 

링크를 클릭하자 인증서가 없는 어플리케이션이라는 경고가 떴기 때문에, 기린은 바로 설치를 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핸드폰이 해킹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인생이 피곤해지니까 조심해야 한다.

 

“호퍼튜니티를 모니터 할 수 있는 앱입니다. 어렵게 소스를 구해서 비밀리에 만들었어요. 짐작했겠지만 호퍼튜니티 때는 우리도 공조를 하긴 했어도, 과기부와 국방부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했어요. 그래서 우리쪽으로 정보가 넘어 오질 않아요.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저승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 차이도 있고요.”

 

저승에 대한 입장 차이라니, 코딱지를 파는 손가락에 대해서도 정치가 개입하면 반목이 생길 것이다. 기린은 콧김을 뿜으며 앱을 설치했다.

 

“제어는 안 되고 단순 모니터링만 가능해요. 그래도 윤기린 씨가 정보 수집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겁니다.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다고 나오는데, 아마 거리 탓인 것 같아요.”

 

 

 

 

 

아뇨, 청장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