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 도대체가 남자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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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간단하게 얘기해 볼게. 빛의 재앙은 말 그대로 재앙처럼 밝은 빛이 비원에 쏟아져 사자들이 몰살 당했던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태야. 지금까지의 비원 역사에 두 차례 발생했어.”

 

호랭이는 짐짓 지식을 뽐내는 투로 똘똘이 스머프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1차 빛의 재앙은 약 백오십 년 전에 일어났어. 그때까지는 거의 모든 사자들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둠만 찾아다니며 암합성의 쾌락에 빠져 지냈어. 사아들도 죽은 지 일주일 후에 스스로 사낭을 찢고 나와서 백지 상태로 새 시작을 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지나친 암합성의 결과로 서로 뿜어내는 빛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면서 연쇄 광화가 일어나서 당시 비원에 있던 사자의 칠십 퍼센트 이상이 소멸했어.”

 

그것은 마치 지구인들이 배출하는 탄소 쓰레기가 결과적으로 지구인 자신들을 죽이게 된 것과 닮아있네.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1차 빛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자들은 공생을 위해 빛의 양을 조절하는 방법을 강구했어. 그 결과로 찾아낸 방법이 바로 적당한 수준의 노동으로 평소에 빛을 꾸준히 방출하는 거야. 빛이 체내에 쌓였다가 폭발해서 주변 사자들까지 광화시키는 사태를 막기 위한 거였지.”

 

“우리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사자들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거구나. 적당히 피곤해야 살아갈 수 있다니, 피곤한 삶이다!”

 

“과로사가 넘쳐나는 지구에서 온 네가 할 말인가 싶다.”

 

“그건 그렇네.”

 

킥킥거리는 호랭이를 보며 기린은 조금 약이 올랐다.

 

“그런데 빛의 재앙이 또 발생했다는 거지?”

 

“2차 빛의 재앙은 칠십오 년 전이야. 그때는 비원의 인구가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사자들이 밀집되면서 연쇄 광화가 발생한 거야.”

 

비원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구에서 많은 생명들이 한꺼번에 이동했다는 뜻이 된다. 칠십오 년 전이라. 기린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역사책의 내용을 더듬었다.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돌아서 팬데믹이 선언되고, 여기저기 내전이 들끓던 때였군.

 

“2차 빛의 재앙 이후로 강력한 중앙 정부가 세워졌어. 새로운 직업들도 많이 만들었지. 산파라는 직업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야. 사아를 일주일이 아닌 삼 일만에 꺼내서 기억하고 있는 내용들을 최대한 추출하고 비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어. 그 결과로 이제는 지구와 기술력 차이가 삼십 년 정도로 좁혀졌지.”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발전과 개발만 추구하다가 지구가 저꼴 된 건데.”

 

“중앙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불만을 가진 사자들도 꽤 있어. 서색연대 같은 집단. 정부가 사자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주장하지. 뭐, 나도 지역간 이동 제한은 풀어줬으면 좋겠어. 가 보고 싶은 곳이 많거든.”

 

“이동 제한?”

 

“응. 중앙 정부에서 행정구역별로 인구수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정책으로 이동을 금지하고 있어. 한 지역에 밀집되는 것을 방지하는 거지. 사아들이 사아보호소에 등록이 되면, 얘는 어느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지가 결정돼. 그리고 별도의 지침이 있을 때까지 해당 지역에서만 사는 거야.”

 

“그럼 언니의 기록도 찾아 볼 수 있겠네?”

 

“그래서 오늘 여기 온 거야.”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거야?”

 

기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떤 사아가 네 언니인지 특정할 수 있으면 가능하지.”

 

“사 년 전이고, 사망 장소는 서울이야.”

 

“그래, 이따가 미로랑 한 번 찾아 보자. 운 좋으면 여기 한밭에 왔을 수도 있어. 서울은 포화상태라 서울의 사아들은 무조건 타지역으로 이동하거든.”

 

대전은 한밭인데, 서울은 서울이네. 한양이나 경성이 아니고. 뭐가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

 

“미로는 아직 멀었나?”

 

기린은 언니를 빨리 찾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한 번 올라가 보자.”

 

“올라가? 아래층에 있는 거 아니야?”

 

“뭔가 기밀 어쩌고 하는 곳에 우리가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뜩이나 미로한테 곤란한 부탁을 하러 온 건데.”

 

기린은 아래층에 해체되어 있던 호퍼튜니티가 생각나 다시 불안감이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미로가 나에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진 않을까. 위층에서 온 세인의 생기 넘치는 기운이라든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당의 말마따나 현세와 사후세계를 오가는 기린의 영험함이라든가.

 

제1연구실에 다시 갔을 때는 호랭이가 패드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파란불이 켜지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역시 아까는 그 소라라는 여자가 이중 잠금을 한 거였군.

 

“오, 왔네? 안 그래도 지금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나는 곧 별관에 가 봐야 해서.”

 

반가운 표정을 짓는 미로의 뒤로 가뜩이나 뾰족한 눈꼬리를 더 치켜 올리는 소라가 보였다. 기린도 지지 않고 분노의 눈빛을 발사했지만, 소라의 시선은 오직 호랭이에게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미로의 질문에 호랭이는 소라를 흘끔했다. 소라는 콧방귀를 뀌며 자기 책상으로 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보아하니 아무런 의미 없이 기껏해야 skawkemfdmsekqkqh 따위의 내용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아 데이터베이스에 좀 들어가 봐.”

 

“응? 왜? 누구 찾아 볼 사자라도 있어?”

 

소라는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눈만 움직여서 호랭이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