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 얘 진짜 응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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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저게 뭔데?”

 

눈이 휘둥그래진 기린을 보고 호랭이가 물었다. 기린의 당황한 얼굴이 전날에 무당을 봤을 때의 표정이어서 또 뭔가 비슷한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짐작했다.

 

“저것도 지구에서 온 거야?”

 

“응, 맞아. 한 달쯤 전에 보냈는데 통신이 두절되었다더니, 여기에 분해되어 있었네. 왠지 나의 미래인 것 같아서 무서워.”

 

호랭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린의 어깨를 감싸고 부드럽게 문질렀다. 기린이 사자였다면 암력을 불어넣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뒤쪽에서 문이 열리더니 하얀 연구원 가운을 입은 미로가 나왔다. 그는 호랭이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금세 반가워하는 미소로 바뀌었다. 기린은 왠지 그게 가식으로 느껴졌다.

 

“호랭이? 여기서 뭐해?”

 

“너 보러 왔는데 바쁘다길래. 휴게실 찾아 왔는데 여기가 아니네.”

 

“아, 지하 일 층으로 옮겼어. 원래 구내식당 자리 있잖아. 구내식당을 없애고 암합성실로 바꾸었어.”

 

구내식당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던 기린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놈의 사자들 무슨 짓이야? 구내식당을 없애? 직원 복지가 최악이구만!

 

“그렇구나. 오랜만에 오니까 정말 많이 변했네. 너네 연구실에 비번도 바꿨더라? 내 지문도 삭제하고.”

 

“응? 비번은 그대론데? 등록된 지문 정보도 굳이 삭제하지 않았고. 어, 아무튼 나는 삼십 분 정도 지나야 조금 한가해지니까 휴게실에 가 있을래?”

 

“알겠어. 이따 봐.”

 

“그래. 조수도 이따 보자.”

 

미로는 기린과 호랭이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호퍼튜니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기린은 머릿속에 온갖 걱정과 상상들이 소용돌이 쳤다. 호퍼튜니티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트랜스포머의 범블비처럼 누군가의 창고에 처박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비원보다 수십 년은 앞선 기술력이 담겨 있는 저 탐사로봇의 정체가 지구에서 온 스파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지고도 남았겠지?

 

“소라 그거 뭔가 수상하다 했더니….”

 

호랭이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가?”

 

“미로 스토커짓 아직도 하고 있는 게 틀림 없어. 안 그래도 아까 미로 자리의 의자가 틀어져 있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책상 위에 볼펜 하나도 줄 맞춰서 놓는 애가 의자를 삐뚤게 둔 채로 자리를 비웠다? 말이 안 되지. 소라 그게 미로 책상에서 뭔가를 뒤지고 있었던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집착이 상당하네.”

 

“맞을 거야. 비번도 안 바꿨고, 내 지문도 여전히 등록되어 있다잖아. 미로가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운 틈에 안에서 뭔가 구린 짓을 하느라 문을 이중잠금 설정해 둔 거지.”

 

“그렇구나.”

 

기린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무서운 상상의 나래를 계속 펼쳤다. 수술복을 입은 미로가 메스를 들고 기린을 들여다 봤다. 역시 세인이 맞네. 살아있는 몸뚱이로 비원에는 어쩐 일이실까. 지난 번 탐사로봇처럼 해체를 해 봐야겠네. 으아악!

 

“왜 그래?”

 

“호랭아, 물어 볼 게 있는데, 혹시 사자랑 세인이랑 구분이 돼?”

 

“들킬까 봐 그래? 걱정 마. 겉보기엔 사실 똑같아. 나도 너랑 박치기까지 했는데 전혀 몰랐잖아.”

 

그건 그냥 네가 둔해서 그런 거 아니니?

 

“마고는 알아 봤잖아.”

 

“그거야… 마고는 이천 년 묵은 할멈이라서 그래. 그리고 영력이 공기 속성이라서 좀 더 유리한 측면도 있고. 하지만 마고 외엔 아무도 모르잖아. 누구 눈치챈 사자 있었어?”

 

“그런가….”

 

“미로랑 소라는 매일같이 수없이 많은 사아들을 보는데도 네가 다르다는 점을 느끼지 못했잖아.”

 

“조금 안심이 되네.”

 

휴게실에는 간식거리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딴 게 휴게실? 쉴 휴에 쉴 게, 문자 그대로 쉬고 또 쉬는 방인 거냐! 그러고 보니 쉰내가 풍기는 것 같다.

 

한쪽 벽으로는 코인노래방 처럼 문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문 사이의 거리로 짐작컨대 다른 방 보다 조금 넓은 방도 몇 있는 것 같았다. 저게 암합성실이겠군.

 

“구경해 볼래?”

 

관심을 보이자 호랭이가 기린을 문쪽으로 이끌었다.

 

“당연히 사설 다크룸처럼 쎄지는 않지만 여기서도 쾌속 암합성을 할 수 있어. 커플실이 낫겠지?”

 

“뭐? 커, 커플?”

 

“일인실에 들어가면 둘이 겹쳐 있어야 하는데.”

 

“아, 그, 그래.”

 

참나 누가 겹쳐 있고 싶댔나. 기린은 왠지 자신의 날숨이 뜨겁게 느껴져서 입을 다물고 코로 천천히 내쉬었다.

 

커플용 암합성실에는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웠고, 한쪽에 더블침대 사이즈의 매트가 있었다. 기린은 마치 가 본 적도 없는 핀란드 시골의 건식 사우나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다크룸도 이런 식이야?”

 

“벽면에 밴타리움 도료가 칠해진 건 비슷한데, 다크룸에서는 다들 밴타리움 가루를 코로 흡입하지.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오질 못해. 사자쓰레기 되는 지름길이야.”

 

문을 닫은 호랭이는 기린이 앉아 있는 옆으로 오더니 희미하게 빛나는 파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칠흑같은 어둠이 둘을 덮었다. 감은 눈꺼풀 위에 몇 겹의 눈꺼풀이 또 감긴 듯이 빛이라는 존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전혀 없는 완전한 암흑이었다. 호랭이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숨을 뱉었다. 가득한 어둠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