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 침대는 당연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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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호랭이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무당은 껌딱지 강아지처럼 마고의 곁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마고가 객식구를 둘씩이나 떠맡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호랭이의 집은 복도식으로 설계되어 층마다 다섯 가구가 입주한 삼 층 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다. 이 층과 삼 층 사이 계단에 웬 꼬마가 하나 비스듬히 거꾸로 누워 있었는데 호랭이는 익숙한 듯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지나쳤다. 기린은 왠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서워서 곁눈질만 하면서 꼬마를 밟지 않도록 옆으로 붙어 조심조심 걸었다.

 

삼백일 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밖에서 짐작했던 대로 좁은 원룸이었다. 기린이 대전에서 며칠 지냈던 문화재청 관사하고 비슷했다. 현관 왼쪽으로 욕실이 있고, 방과 욕실 사이의 벽에 붙박이장이 설치 되어 있었다. 맞은 편 통창에는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가구라곤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뿐이었다.

 

“좀 좁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눈을 굴리는 것 만으로 집 구경을 마친 기린에게 호랭이가 다소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오히려 이런 쪽에 익숙하긴 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백 년 넘게 계속 상승 중이거든.”

 

“그렇구나. 여기도 사정은 비슷해. 시내에는 대부분 이런 원룸이 많고, 넓은 주택은 정부 관리나 아키스 임원이 아니면 우물 속의 어둠이지.”

 

‘우물 속의 어둠’은 아마도 ‘그림의 떡’의 비원 버전 표현인 것 같았다. 깊은 곳에 어둠이 보이지만 내려가서 먹을 수는 없는 상황을 말하는 모양이다.

 

“침대는 당연히 하나네.”

 

“더블이라 충분할 거야. 혹시 잠버릇이 험해?”

 

“아니, 나는 누운 그대로 자는 편이야.”

 

“그럼 됐어.”

 

그날밤 호랭이의 팔과 다리가 자신의 몸 위에 자꾸만 올라오는 통에 기린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되긴 뭐가 되냐? 잠버릇이 험한 건 자기 얘기였구만! 아무리 눈을 흘겨봐야 호랭이는 쌔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혹시라도 호랭이가 잠에서 깰까봐 조심스레 팔과 다리를 밀어내는 기린이었다.

 

바깥쪽을 양보하고 벽쪽에 누운 이유가 이거였냐? 이렇게 뒤치락거리면 혼자 자다가도 떨어지겠네! 아주 내가 난간 역할이구만.

 

눈이 말똥말똥해진 기린은 옆으로 누워 호랭이를 보았다. 불은 껐지만 호랭이의 피부가 미세하게 빛이 났기 때문에 충분히 잘 보였다. 속눈썹이 길기도 하다.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사자도 꿈을 꾸나.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굴더니 이렇게 나란히 누워서 쿨쿨 잘도 자네. 기린은 자기만 잠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괜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호랭이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또 다시 기린쪽으로 몸을 굴리며 팔을 뻗어 기린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이불 속에서 무릎이 맞닿았다. 기린은 침을 꼴깍 삼키고 호랭이의 팔을 밀어내며 똑바로 누워 천장을 보았다.

 

“그럼 이제 지구에 돌아갈 방법이 없는 거야?”

 

“아? 안 잤어?”

 

“자다 깨다 해.”

 

언제 자고 언제 깬 거지? 내가 옆에서 계속 쳐다본 것도 알았을까? 기린은 무안한 마음에 눈을 감고 자는 척을 시도했다. 하지만 호랭이의 다음 질문이 정신을 번쩍 깨웠다.

 

“지구… 안 가면 안 돼?”

 

“뭐라고?”

 

고개를 돌리니 옆으로 누운 호랭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조금 슬퍼 보이는 눈이었다.

 

“내가 언니 찾는 것도 도와줄게. 어차피 지구에서는 이제 일 년도 못산다며? 가지 말고 여기 있어.”

 

“하지만… 나는 가족도 직장도 모두 그곳에 있는걸.”

 

“직장이야 새로 구하면 되지. 비원에도 일자리는 널렸단다. 그리고 언니도 가족이잖아. 언니를 찾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더니, 이제는 또 지구에 있는 가족이 더 중요한 거야? 세인들은 항상 가까이에 있는 것보다 멀리 떨어진 것을 더 갈망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이었네.”

 

어두운 방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호랭이의 피부가 살짝 더 밝아졌다. 사자들은 암합성을 해서 어둠을 흡수하고 미량의 빛을 발산하는데, 마고의 말에 따르면 노동을 통해서 발산하는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말하자면, 평상시에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하면서 적당량의 빛을 내보냄으로써 체내에 과도하게 빛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지금 호랭이가 내뿜는 빛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내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기린이 비원에 온 것이 특정 목적을 위한 출장이고, 다시 돌아갈 계획이라는 사실이 호랭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일까.

 

“어차피 당장은 돌아갈 방법도 없는걸. 무당도 바보가 되어버렸고, 지구랑 연락도 안 돼.”

 

기린의 말에 호랭이의 피부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아직 시간은 많다. 우선 언니를 찾아 기린이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작아지도록 해야 겠다. 그 사이에 나를 좀 좋아하게 되면 더 좋고.

 

호랭이는 한 번 기린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자 그 흐름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단순한 성격이라서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원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일은 단 두 번째였다. 처음 호랭이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미로였다.

 

“근데 뭔가 언니를 찾을 좋은 방법이 있어?”

 

“자고 일어나서 사아보호소에 가 보자. 비원에 온 사아들이 처음으로 등록되는 곳이니까. 운이 좋으면 네 언니의 기록도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을 지도 몰라. 이름이 저장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언니 이름은 뭐야?”

 

“윤아린.”

 

“윤씨였구나. 윤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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