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 코끼리는 못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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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어떤 곳이야?”

 

말똥말똥한 눈을 눈까풀로 덮고 억지로 잠을 청하던 기린을 호랭이가 다시 방해했다. 가뜩이나 낮잠을 많이 잔데다 예쁜 애랑 한 침대에 누워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자꾸 말까지 시키니 곱게 자긴 글렀구나.

 

“푸른 별이라는 게 사실이야?”

 

“그건 옛날 말이지. 지금은 여기 비원이나 마찬가지로 우중충해. 오히려 공기랑 물은 여기 사정이 훨씬 나은걸? 사실 여긴 해가 안 떠서 그렇지 환경이 오염된 것 같지는 않던데.”

 

이제 스물한 살밖에 안 된 기린이 옛날 운운하는 게 자신도 우스웠지만, 실제로 지구는 최근 오 년 사이에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멸망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너무 종류가 많아서 이젠 무슨 약자인지도 모르게 된 지표의 빨간 숫자들은 할증 붙은 택시 미터기처럼 빠르게 증가했다.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은 손익 계산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고, 맨발로 하얀 모래사장을 걷다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했다.

 

“그래도 동물은 있지?”

 

“많이 멸종되긴 했지만….”

 

“고양이랑 개는 주변에 많다던데?”

 

“그렇지.”

 

“와, 부럽다. 직접 만져 보기도 했어? 보들보들한 털이랑 말랑말랑한 젤리랑?”

 

“그거야 뭐….”

 

네 볼도 만만치 않게 보들보들 말랑말랑하던데.

 

“새도 많이 봤어? 진짜로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해?”

 

“으응. 맞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에 호들갑을 떨며 부러워하는 호랭이의 모습에 기린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인류도 이제 더 이상 그런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렸지.

 

“좋겠다. 그런 동물들을 직접 다 봤다니. 다람쥐, 토끼, 금붕어, 까마귀, 고래, 코끼리, 유니콘, 용….”

 

“잠깐! 뒤쪽에 이상한 게 섞였는데?”

 

“유니콘?”

 

“용도! 그런 건 지구에서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하늘을 나는 기린도 마찬가지고.”

 

“그렇구나. 희한하네. 코끼리에 비하면 오히려 현실적인 디자인인데. 귀로 날개짓해서 날아다니는 건 역시 좀 이상해.”

 

“엥? 어디서 뭘 본 거야? 코끼리는 못 날아!”

 

기린은 핸드폰을 켜고 갤러리를 뒤적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그러니까 언니가 화재사고로 죽은 이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지만, 중학교 삼학년 봄에 가족 모두와 함께 동물원에 소풍을 갔었다. 코끼리 사진을 찾은 기린은 계란을 쥐듯이 손을 살짝 오무려 빈 벽에 화면을 띄웠다. 호랭이는 가뜩이나 큰 눈이 동그래져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우와! 뭐야? 마법이야?”

 

“그냥 핸드폰 빔 프로젝터 앱이야.”

 

“신기하다.”

 

“별 거 아니야. 암튼 저게 코끼리야. 저 귀를 펄럭여 봐야 저 덩치를 공중에 띄울 수는 없다고.”

 

“진짜 코끼리는 조금 다르구나. 내가 아는 코끼리는 귀가 훨씬 큰데다 상아도 엄청나게 길고 멋진데.”

 

“인간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상아가 긴 코끼리는 진작에 멸종되어 버려서 나도 실제로는 못 봤어.”

 

“그렇게 멋진 생명체를 왜 죽여? 혹시 유니콘도 그랬던 거 아니야?”

 

“글쎄, 그런가?”

 

“다른 사진도 보여 줘. 호랑이도 있어?”

 

기린은 엄지를 좌우로 살짝 움직이며 사진을 넘겼다. 사자, 얼룩말, 코뿔소, 악어, 공작새, 흰머리독수리, 침팬지…. 호랭이는 입을 헤 벌린 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호랭이는 그림이나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촬영한 동물의 사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린은 그의 표정이 어린 아이처럼 귀엽다고 생각하며, 화면은 보지도 않고 계속 엄지만 움직였다.

 

“가족이야?”

 

고개를 돌려 사진을 보았다. 츄러스를 파는 가판대 앞에서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 세워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진이었다. 온가족이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 밝은 노란색의 원피스를 입고 즐거워 보이는 엄마, 어깨동무를 한 아들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아빠, 장난칠 궁리를 하는 게 분명한 오빠, 여지없이 눈을 감은 교복 차림의 기린이 있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언니야?”

 

“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언니가 좀 더 예쁘지. 공부도 잘 하고 얼굴도 예뻤어.”

 

“기린도 예뻐.”

 

“너는 참 표정도 안 변하고 그런 말을 잘도 한다.”

 

기린은 태연한 척 말을 받아 넘겼지만, 놀라서 손을 꽉 쥐는 바람에 빔 프로젝터 앱이 꺼져버렸다. 방 안은 어두워졌다.

 

“아니 정말이야. 비록 네 언니가 너보다 눈이 좀 더 크고, 얼굴이 좀 더 갸름하고, 코가 좀 더….”

 

“거기까지만 해라.”

 

“응.”

 

“…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언니랑 같은 나이가 되었네. 만날 수 있을까? 꼭 찾고 싶어. 지구의 가족들도 이곳으로 데려오고 다시 다섯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근데 기린아, 언니를 찾아도….”

 

“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기억을 잃은 사자가 생전에 알던 세인을 만난 적은 없을 거 아냐? 그게 기억을 되찾는 열쇠일 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당은 너를 못….”

 

“무당은 미성숙 사아잖아!”

 

뭔가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조각만 억지로 꿰맞추는 것 같았지만 호랭이는 더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우선은 기린의 언니를 찾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기억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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