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암흑을 뿜어내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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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기린 옷이 왜 그 모양이야?”

 

기린은 여전히 흙투성이 작업복을 입은 채였다.

 

“오전에 수로 공사를 하느라고 흙탕물이 많이 튀었지 뭐야. 마고가 오후에 또 무슨 일을 시킬지 몰라서 옷은 갈아입지 않았어.”

 

“수로 공사를 벌써 시작했어? 다른 인부들은 어디에?”

 

“다른 인부가 어딨어. 나 혼자 했는걸.”

 

기린은 마고를 흘겨봤지만 표정은 밝았다. 혼자 일을 한 덕분에 발견하게 된 자신의 능력을 호랭이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곡괭이를 한 손으로 리본처럼 휘둘러서 땅을 순두부 가르듯 파헤친 일, 볼링공만한 돌을 맨주먹으로 깨트린 일, 몸 안에서 힘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고 집중시킬 수 있는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일 등등.

 

기린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오른손에 힘을 모으고 호랭이를 보았다. 그런데 호랭이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마고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진짜로 얘 혼자 하게 했어?”

 

호랭이의 날카로운 음성에 오히려 기린이 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시킬만하니까 시켰지. 내 집에 있는 동안은 일을 해야 돼. 여기가 호텔도 아니고 손님처럼 모실 생각은 없으니까.”

 

기린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마고가 더 강한 어조로 맞받아쳤다. 마고는 짜증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꼈다.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만데, 만난지 며칠밖에 안 된 세인 하나 때문에 나한테 언성을 높이다니.

 

“낯선 곳에 와서 가뜩이나 힘든 애한테 정말 왜 그래? 나도 그렇게 질리게 해서 결국 떠나게 만들더니, 여전하구나.”

 

“내가 너를 막 부려먹었다고?”

 

“아니, 나는 폭력적일 정도로 과잉보호를 받았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처럼 느꼈을 정도로 말이야. 미로가 내 자존감을 일깨워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여기서 빈둥거리며 마고의 애완동물처럼 살고 있었겠지. 다른 사자를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지 않는 면에서는 같다는 거야.”

 

기린은 호랭이가 화를 낼 정도로 작업이 힘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각성한 능력을 자랑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둘의 과거사가 언급되자 잠자코 들어 보기로 했다. 특히 마고의 과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야 저승 이주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미로는 기린이 비원에 온 첫날 만났던 사아보호소 연구원이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미남 총각이 친절하게 차에 태워 줬는데,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미로의 제안에 호랭이는, 마고가 너를 반기기라도 할까 봐? 라고 대꾸하고 큰길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이제 보니 마고가 끼고 살던 호랭이를 구슬려서 혼자 나가 살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로였던 모양이다. 기린은 그날 차 안에서 미로가 호랭이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하긴, 네가 산파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렇게 활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애가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길래 그러는 걸까.

 

“과잉보호? 존중? 내가 수천 년 동안 너를 얼마나….”

 

울컥해서 언성을 높이던 마고는 말을 중간에 멈췄다. 저녀석은 어차피 기억도 못하는데 옛날 얘기를 해서 무엇하리. 괜히 말을 꺼냈다가 자기 심장에 박힌 용의 이빨을 자각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저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어.

 

“수천 년은 무슨? 내가 여기 온 게 칠십 년도 안 됐는데.”

 

마고는 은연 중에 영력을 시전해서 호랭이의 상태를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케이크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신나서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예전 일까지 들춰내며 화를 내는 것이 단지 기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아이 무언가 상처를 입고 의기소침한 상태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군.

 

“호랭아 진정해. 난 정말 괜찮아.”

 

마고가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고, 당장은 더 이상 정보를 뽑아내기가 어렵겠다고 판단한 기린이 중재에 나섰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수퍼파워가 깨어났거든. 볼래?”

 

기린이 한 손에 힘을 집중시켰다가 팔을 통해 이동시켜 다른 손으로 옮겼다. 하지만 마고와 달리 기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는 호랭이의 눈에는 그저 양팔로 웨이브를 표현하는 비보이의 동작 정도로만 보였다.

 

“이따만한 돌도 맨손으로 깨부술 수 있다니깐!”

 

호랭이의 시큰둥한 반응에 기린은 발을 동동 구르며 돌의 크기를 약간 과장해서 손을 벌렸다.

 

“아니, 뭐, 너 비상하게 힘 쎈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야. 완전 각성 수준이라고.”

 

호랭이는 조금 전에 지나치게 열을 올렸다는 생각에 약간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다. 슬쩍 마고의 표정을 살폈는데 확실히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둘은 어색하게 눈을 마주쳤다가 피했다. 기린은 둘 사이에서 열심히 팔을 움직이며 힘의 이동을 시연하고 있었다. 호랭이는 기린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표정을 밝게 하고 말을 받았다.

 

“각성이라. 땅 파다 밴타리움이라도 캔 거야?”

 

“밴타리움? 그게 뭔데?”

 

“아… 지구에는 없나? 암흑광석인데….”

 

“석탄은 아는데. 과거에 불 때던 화석연료. 석탄이고 석유고 이미 고갈된 지 오래지만.”

 

“그런 게 아니야. 밴타리움은 어둠의 결정체, 암흑을 뿜어내는 보석이야. 생각해보니 너는 세인이어서 아무런 영향이 없겠구나. 우리 사자들이 밴타리움을 몸에 지니면 영력이 증폭되거든.”

 

“아, 그런 게 있구나. 엄청 귀한 거겠네.”

 

“두말하면 눈부시지. 밴타리움 채굴을 주도하고 있는 아키스 그룹의 권력이 어마어마해. 거기는 채굴한 원석을 백배로 압축해서 착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팔거든. 원석 그대로 세공하던 기존 경쟁자들은 힘 없이 나가 떨어지거나 아키스 그룹 밑으로 들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