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저승에 보낸 호퍼튜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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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개울쪽에서부터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단순하게 시작 지점에서 끝까지 차근차근 연결할 셈이었다. 그런데 땅을 파는 자리에 곧바로 물이 들어와서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물이며 진흙이 사방으로 튀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옷은 물론 얼굴도 진흙 투성이가 되었고, 장화 속으로도 자꾸만 물이 튀어 들어갔다.

 

기껏 공무원 되어서는 이게 무슨 꼴이람. 팔자에 없는 농사일이라니. 리틀 포레스트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그 만화 원작 영화에서도 채식 요리들만 나왔지. 뭐였더라. 배추전, 삼색팥떡, 감자빵, 수제비, 콩국수,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 마고가 고추 재배에도 성공을 했을까? 한 번 한국인은 죽어도 한국인인데, 매운 맛을 버리진 않았겠지? 기린은 떡볶이 생각에 침을 삼키며 고추가 한국에 소개된 것이 마고가 죽은 지 천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엣퉤퉤.”

 

떡볶이 생각에 벌어져 있던 입에 튀어 들어간 흙탕물을 뱉어내며 기린은 계획을 변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길을 낸다고 해서 굳이 처음부터 물을 끌고 갈 필요는 없지. 양 떼를 목장으로 몰고 가는 것과는 다르니까. 길을 먼저 내놓고 마지막에 물꼬를 터서 물이 흘러 들어가게 하면 될 일이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시험공부처럼 처음부터 그저 꾸준히 하면 되는 일도 있지만, 뭔가를 받아들이기 전에 사전준비를 단단히 해두는 일이 우선인 일들도 많다. 그런데 문화재청장과 무당은 아무 준비도 안 된 나를 저승으로 보내버렸지. 통신망 확보도 안 된 상태면서.

 

“정말 너무했어요!”

 

기린은 손가락 하트에 대고 볼멘 소리를 했다.

 

“생명수당이라도 두둑하게 챙겨주세요. 그거 뭐 생명 걸고 일하는 사람들한테 챙겨준다던데, 저는 실제로 저승에 왔잖아요. 그리고 사십구 일째에는 꼭 소환해 주시고요.”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수신은 될 거라니까 믿는 수 밖에.

 

 

 

 

문화재청장이 골드투스의 연결 가능성을 장담했던 근거는 바로 탐사선 호퍼튜니티였다. 호프와 오퍼튜니티를 합한 이름이다. 호프는 물론 맥주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의미다. 오퍼튜니티는 픽사에서 <굿바이, 오퍼튜니티>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크게 흥행하기도 했던 실제 화성탐사선의 이름이다. 기린도 어릴 때 그 영화를 보고 먼 행성에서 홀로 외롭고 쓸쓸했을 오퍼튜니티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끝내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바람에 ‘기회’라는 이름의 의미가 퇴색하긴 했지만, 기린 세대에겐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사실은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 비밀리에 탐사선을 저승으로 보냈어요. 호퍼튜니티라는 이름인데, 그냥 호프 아니면 우리말로 희망호라고 부르면 충분할 것을 과학자들은 그놈의 오퍼튜니티에 대한 애착인지 미련인지를 버리지 못하더군요.”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청장은 확실히 기린 세대는 아니었다. 아니면 전통문화인지 무속신앙인지만 연구하느라 화성의 거친 지면을 홀로 헤매던 불쌍한 로봇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거나. 꼭 과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지의 지역을 탐사할 로봇의 이름에 오퍼튜니티를 넣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나. 지금 기린 자신이 그 불쌍한 로봇의 입장이 되어 보니 더욱 사무치게 공감이 되었다. 호퍼튜니티도 삼베천으로 감싸서 굿판을 벌여 저승에 보냈으려나. 호랭이가 사낭을 열었는데 사자는 커녕 청소기처럼 생긴 로봇이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니 낄낄 웃음이 났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서는, 산파 평가에서 감점을 받을까 무서워 그것도 나처럼 어디엔가 숨기겠지.

 

여하튼 저승에 보낸 호퍼튜니티로부터 골드투스 통신을 통해 조사자료가 수신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산소 농도가 약간 낮지만 인간이 호흡을 하기에 충분한 대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었다. 사진과 영상도 보내왔는데, 이것은 전송과정에 오류가 생겨 엑스박스로만 수신되었다.

 

“그리고요?”

 

“뭐가요?”

 

기린의 질문에 청장은 질문으로 답했다.

 

“사람도 숨 쉴 수 있는 공기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뭐가 있느냐고요.”

 

“대외비입니다.”

 

어이가 없어서 벌어진 입이 잠깐 멈추었다.

 

“제가 외부인인가요?”

 

“오늘 처음 발령 받았잖아요.”

 

“저승에 가라고 하실 때와는 말씀이 다르네요.”

 

“그것은 윤기린 씨의 사명입니다. 여기 계신 인간문화재 김선정 선생님께서 특별히 추천하신 덕분에 문화재청으로 발령이 나신 걸 모르시겠어요?”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근무할 수도 있었던 사람을 대전까지 불러들인 것이 저 무당이라는 뜻인가. 기린은 무당을 쏘아 봤지만, 상대의 날카로운 눈빛을 대하고는 이내 시선을 내리고 말았다. 저 사람이 어디까지 개입한 걸까. 비교적 쉽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 역시 저 무당 덕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민간인에게 이런 일을 시키긴 힘들었을 텐데, 마침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기린을 발견하고 냉큼 불러들인 것일까.

 

어쨌든 인류멸망이 365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시간이 촉박한 것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준비가 아무 것도 안 된 상태에서 기린을 급하게 출장 보낸 것은 무책임한 처사였다. 그 덕분에 이렇게 곡괭이를 들고 땅이나 파는 신세가 된 거고.

 

 

 

 

물이 있는 곳으로부터 한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물이 안 튀기니 한결 수월했다. 이렇게 목적지까지 연결을 한 뒤에 마지막으로 막혀있는 부분을 열어주면 퀘스트가 깔끔하게 완료될 것이다.

 

기린은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한 일은 이왕이면 제대로 하는 성격이다. 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