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마셔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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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알콩달콩 분위기 좋네?”

 

마고의 솜사탕 헤어가 불쑥 끼어들자 기린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마지막 눈알떡을 입에 넣어주던 호랭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마침 모든 부품의 조립을 마친 기린도 엉덩이를 털고 뒤집혀 있던 자전거를 번쩍 들어 똑바로 세웠다.

 

“마고, 이 바보가 의외로 재주가 많네!”

 

“그래서 눈알떡 내 몫은 없는 거냐?”

 

“에이, 마고는 안 먹어도 안 죽잖아.”

 

“흥, 그거 사려면 네 구역 밖으로 꽤 멀리 다녀왔어야 했을 텐데?”

 

“마침 그쪽에 볼 일이 있어서.”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기린은 자전거에 올라 앞마당을 몇 바퀴 돌며 변속 기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뺨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헤집는 바람결에 예전 생각도 나고 해서 진입로까지 한 번 달려 나가 보기로 했다.

 

“저 아이, 힘이 아주 좋더라고. 이 기회에 수로 정비를 대대적으로 한 번 해야겠어.”

 

“불쌍한 애를 너무 심하게 부려먹는 거 아니야? 게다가 일단은 내 조수인데.”

 

“지금 네가 데리고 나갔다가는 쟤 정체 바로 들켜서 너까지 끌려 들어갈걸. 네가 아까 쟤 뛰어다니는 걸 봤어야 하는데.”

 

“그렇긴 해도.”

 

“그리고 저 아이, 꽤나 수상한 구석이 있어. 우선 기억을 잃었다는 건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 아니라, 꿍꿍이가 뭔지 모르니 경계를 해야 한다고! 너처럼 어리바리하게 굴다가는 앞통수 뒤통수 더블로 얻어맞기 십상이지.”

 

“뭘 또 그렇게까지.”

 

“암튼 지금으로선 쟤도 쉽사리 여길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나는 숙박비를 톡톡히 받아 내야겠어.”

 

“거참 놀고있는 방에 재워 주는 거 뿐이면서.”

 

“쉿, 온다.”

 

신나는 표정으로 페달을 밟으며 돌아오는 기린을 보고 둘은 대화를 멈추었다.

 

“고구마 캐기 싫어서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더니?”

 

마고가 기린에게 씌워진 보이지 않는 굴레를 확인하듯이 이죽거렸다.

 

“그럴까 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네.”

 

기린이 풀이 죽어 대답하자 호랭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섰다.

 

“너 여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우리집으로 가자. 주변에 다른 놈들도 많이 사는 시내라서 지금 상태로 가긴 좀 위험해. 여기보다는 재미있을 거야.”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는 호랭이를 보며 가슴이 훈훈해지던 기린은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시감? 전생의 기억? 죽은 것도 아닌데 전생은 아니지!

 

 

 

 

기린이 열 살쯤이었나. 명절 연휴 끝자락이었다. 상당히 추웠던 기억으로 짐작컨대 추석은 아니고 설이었던 것 같다. 안동 큰집에서 차례를 지낸 다음, 아빠는 일 때문에 서울에 먼저 가시고, 네 식구가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아빠가 차를 가져간 바람에 버스를 탔고, 정류장에서 외갓집까지 겨울 바람을 뚫고 걸어야 했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앞장 서서 걷던 세 사람. 엄마와 쌍둥이 오빠, 그리고….

 

그때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은 계속 걸음을 재촉했기 때문에 바람 소리를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 또 희미하게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기린의 눈에 조그만 크림색 털뭉치가 보였다. 길 잃은 강아지가 추위 속에 오들오들 떨며 식어가고 있었다.

 

“엄마아!”

 

기린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가족들의 뒷모습은 계속 멀어져 갔다. 기린은 강아지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는 서둘러 쫓아 갔다.

 

“엄마아!”

 

“어? 개새끼다.”

 

“못 써. 정민이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아니, 개의 새끼라고. 맞잖아!”

 

엄마의 지적에도 쌍둥이 오빠 윤정민은 제 저급한 말장난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히죽거렸다. 그때부터 커서 뭐가 되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런 놈이 되었지. 엄마는 오빠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기린에게 말했다.

 

“그거 내려 놔.”

 

그거라니. 기린은 고개를 도리질하며 강아지를 외투 안으로 품 속 깊이 안았다. 바들바들 떨던 조그만 아이가 제 몸을 밀착시키던 느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엄마는 기린과 한참 눈싸움을 하다가 에휴, 하고는 길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얘, 같이 가야지!”

 

멀어지는 엄마를 쫓아, 쿡쿡 찔러대는 정민의 손가락을 밀쳐내며, 기린도 발걸음을 서둘렀다.

 

기린은 강아지를 서울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절대 반대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싸는 꼴은 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배변 훈련을 하는 동안 외갓집에 맡겨두기로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매리라고 이름 붙인 그 강아지를 내내 마당에서 길렀고, 배변 훈련이 될 리가 없었다. 끝내 매리는 서울에 데려가지 못하고 김제 외갓집에서 십여년을 살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지금 왜 이 기억이 재생되었을까? 여기가 외갓집이고, 내가 배변 훈련이 필요한 매리라는 건가? 호랭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