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진짜 호랑이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이승의 대전과 얼마나 비슷한 지는 기린도 알 수가 없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다가 대학교 2학년때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문화재청에 발령을 받아 대전으로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스카이라인은 이승보다 확실히 낮은 것 같았고, 하나 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 상가의 간판들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날은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기린이 새벽녘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사실은 한낮이었던 것이다. 역시 저승에서는 파란 하늘에 밝은 태양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건가. 그러고 보니 호랭이가 우리말로는 저승인 이곳의 명칭이 비원이라고 했지. 비밀의 정원이라는 뜻인 걸까. 이 낡아빠진 흑백 사진 같은 풍경을 정원이라고 부르기는 힘든데.

 

“근데 못 보던 얼굴이네?”

 

밴의 조수석에서 돌아보며 묻는 미로에게 기린은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막막했다.

 

“산파국에서 파견나왔어. 내가 전에 신청했었거든.”

 

호랭이가 대신 나섰다.

 

“집은 어딘데?”

 

“당분간 나랑 살면서 일을 배우기로 했어.”

 

미로는 의아해 하는 눈동자를 한참 동안 호랭이에게서 떼지 못했다.

 

“네가 집에 누군가를 들인다고?”

 

“당분간만이야.”

 

“너를 안 지 육십년이 넘었는데, 처음 있는 일인걸.”

 

호랭이가 20대 초반이라고만 생각했던 기린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겉모습은 20대지만 저승에 온 지는 60년, 600년이 넘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갓 죽은 70대 노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싶었다. 기린이 이해한대로 저승은 겉모습으로 나이를 판단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누구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사자는 변하는 법이지.”

 

호랭이의 대답에 미로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하긴. 네가 산파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여기서 내려 줘.”

 

“왜? 마고 집까지 데려다 줄게.”

 

“마고가 너를 반기기라도 할까 봐? 됐어. 여기서부턴 걸어가면 돼.”

 

밴은 외곽도로를 달리는 중이었고, 도로 왼쪽으로는 시가지가 자리한 반면, 오른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멀리 정면에는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그 산 중턱에 있는 우중충한 회색의 커다란 건물이 사아들을 위한 보호소였다.

 

“잘 가, 호랭이. 기린도 다음에 또 보자!”

 

미로의 밝은 인사에 호랭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기린은 무심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려다가 호랭이의 눈짓을 받고 깜짝 놀라서 무릎을 숙여 구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척 했다. 큰일 날뻔했다.

 

둘은 벼가 익어가는 논 사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벼를 보며 기린은 마지막으로 김제 외갓집에 놀러 갔던 때를 떠올렸다. 중학생이었던 기린이 추석 즈음에 온가족과 함께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엄마, 아빠, 말썽꾼 쌍둥이 오빠, 그리고…

 

“아직도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

 

“어? 어어.”

 

호랭이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정말 이상하네. 일주일이 넘었다는 건가. 하지만 내 구역에서 생긴 사낭을 내가 놓쳤을리가 없는데.”

 

호랭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적당한 타이밍에 사낭에서 사아를 꺼내고 암력을 주입해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 산파의 주요 업무지만, 이를 위해 요구되는 능력이 또 있다. 바로 사낭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사낭이 생기는 위치는 랜덤인가 싶을 정도로 불규칙하다. 아까처럼 길거리에 생기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다. 건물 내부 지하층이나 누군가의 침대 위에 생기기도 하고, 뜬금없이 나무 위에 걸쳐 있기도 한다. 가능하면 원래 자리에서 72시간을 두는데, 침대 위에 생긴 것처럼 옮길 필요가 있을 경우 이동시키는 것도 산파의 일이다. 그때에도 최대한 원래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어쨌든 기린이 들어있던 사낭이 건물 벽 건너편에 있었든, 지하에 숨겨져 있었든 호랭이가 며칠씩이나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첫 한시간 동안 형체가 희미할 때에도 알아차린 적이 많았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대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니면 너 멀리에서 온 거야? 내 구역에서 나온 게 아닌 거지!”

 

굉장히 멀리에서 왔지. 골드투스도 닿지 않는 곳.

 

“아니, 너 마주친 건물 지하에서 깼어.”

 

“그럴리가 없는데.”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리며 길 가의 돌멩이를 걷어 찼다. 돌멩이는 몇차례 수제비를 뜨더니 논 옆 수로로 퐁 하고 빠졌다. 혼란스럽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기린은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아직 예상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그가 자신을 보호하는 건지, 그저 감추려는 건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곤란한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당분간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계절도 이승과 비슷한 듯 논길을 지나 이어진 과수원에서는 사과가 진한 빛깔로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주 후면 추석인데, 그전에는 돌아갈 수 있으려나. 오랫동안 친척들과 왕래를 끊었던 부모님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