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높임말 절대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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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말고, 높임말은 절대 쓰지 마.”

 

호랭이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기린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기린은 예, 라고 대답할 뻔 하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거 하나만 처리하고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하자.”

 

그들은 큰 길을 따라 걸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대기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울렁여서 눈 앞의 풍경, 특히 건물과 가로수가 마치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도로 양 옆으로 자리한 건물들은 대부분 주상복합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1층은 식료품점, 카페, 식당, 의류매장, 미용실 등의 상점들이 있었고, 그 위로는 주거 시설인 듯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영업중인 곳은 없었다. 간혹 지하층에도 상업시설이 보였는데, 지하로 통하는 입구에는 대부분 ‘다크룸’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기린은 저승에도 룸싸롱이 있는 건가 싶어 속이 메스꺼웠다.

 

그때 앞쪽 도로 끝에서 새빨간 바이크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왔다. 기린은 전기 모터가 아닌 엔진이 달린 탈 것이 도로를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오래 되어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바이크 위에는 민소매 차림의 우락부락한 근육남이 타고 있었는데, 호랭이를 보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속도를 줄였다.

 

“여어, 호랭이!”

 

그제야 기린은 호랭이의 이름이 진짜로 호랭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태준이냐.”

 

호랭이는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근육남은 바이크를 돌려서는 나란히 속도를 맞추어 따라왔다. 바이크와 깔맞춤을 한 건지 빨간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목에는 호랭이와 마찬가지로 고글이 걸려 있었다.

 

“명진 사거리에 있는 사낭(死囊), 터지기 직전이던데? 뚜벅이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까나? 킥킥킥.”

 

“내 걱정 말고 네 갈 길이나 가라. 아직 나한테 3점 뒤지고 있지 않나?”

 

호랭이의 핀잔에도 근육남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낄낄거렸다.

 

“응, 이번주 안에 역전시켜 줄테니 안심해. 이번달 최고 산파는 내가 차지할 테니까.”

 

기린은 처음엔 저 근육남이 호랭이에게 호감이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둘은 경쟁관계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지난 다섯 달 동안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과연 이번에는 허풍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근육남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다가 옆에서 걷고 있는 기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구야?”

 

“몰라도 돼.”

 

“응? 수상한데?”

 

“상관 말고 가라. 남의 구역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호랭이는 대화를 끝내려고 했지만 근육남은 끈질겼다.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네가 마고 외에 누구랑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호랭이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조수야.”

 

근육남은 바이크에서 떨어질 지경으로 몸을 들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뭣? 크하하핫, 조수? 왜, 나를 상대로 혼자는 역시 버거웠어? 푸하핫, 천하의 호랭이가 조수를 두다니.”

 

“조수를 둘씩이나 둔 녀석이 할 말인가 싶네.”

 

“크하하하, 그래, 그래. 안녕, 조수? 난 태준이야.”

 

호랭이가 긴장한 눈빛으로 기린을 돌아 보았다. 높임말 절대 금지!

 

“기린입, 이야.”

 

“기린입?”

 

근육남이 볼썽 사납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기린.”

 

“그래. 반가워, 기린. 호랭이를 못 견디겠다 싶으면 언제든 나를 찾아 오라구. 나는 조수들에게도 모터 바이크를 제공하니까. 크하하하!”

 

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이크를 돌려서는 먼지를 풀풀 풍겨두고 멀리 달려갔다. 호랭이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기린처럼 핸드폰이 이식된 손이라면 상대방을 차단하는 동작이지만, 호랭이는 단순히 욕을 하는 의미였다.

 

“재수없는 녀석. 나도 이번 달만 잘 하면 6개월 연속 최고 산파 보상을 받아서 바이크를 살 수 있다고.”

 

호랭이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돌며 시간을 확인하더니 숫제 달려가기 시작했다. 기린도 함께 달리는데 금세 숨이 가빠졌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기린은 산소 농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산파라는 게, 뭐, 예, 야?”

 

호랭이는 숨차하는 기린을 한심한 듯 돌아보며 대답했다.

 

“산파는 사낭에서 사아를 받아내는 직업이야. 갓 죽은 사자를 사아라고 하고, 사아가 싸여 있는 보자기를 사낭이라고 하는 거야. 저 앞 사거리에 있으니까 이따가 보면 무슨 소린지 알 거야.”

 

“왜, 이렇게, 달리는, 거야?”

 

“사아가 사낭에 너무 오래 담겨 있으면 온전치 못한 상태로 나올 가능성이 있거든. 그 타이밍을 제대로 캐치하는 게 산파의 능력이지. 그런데 너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기린은 자기를 쏘아보는 호랭이의 눈빛이 따가워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쫓아 달렸다. 새 구두는 굽이 높진 않았지만 길들지 않아 뻣뻣하게 뒤꿈치를 긁어댔다. 운동화부터 하나 사야겠다. 아, 여기서 모바일 페이가 될리가 없지. 최고 산파가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얼추 보험왕 비슷한 것 같은데, 6개월 연속으로 1등을 해야 바이크를 살 수 있다니. 물가가 높은 편인가.

 

얼마간 더 달리자 앞쪽 사거리 한 귀퉁이에 희미하게 빛나는 덩어리가 보였다. 호랭이는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로 목에 걸려있던 고글을 콧등 위로 올려 썼다.

 

“다행히 늦진 않았네.”

 

가까이서 보니 사람 하나 크기 정도의 그 희미하게 빛나는 덩어리는 삼베 보자기로 싸여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마치 태동을 하는 듯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호랭이의 설명대로라면 그것이 사낭이고 안에는 갓 죽은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린은 무당이 자신을 삼베 보자기에 싸서 여기로 보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많이 밝으니까 가로수 뒤에라도 숨는 게 좋을 거야.”

 

호랭이가 등 뒤로 배낭 안에 손을 넣어 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