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아래층이다 사후세계다 저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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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주변이 갑작스레 조용해진 것을 깨닫고 자신을 감싸고 있던 삼베 보자기를 뜯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봐도 아무도 없었다. 무당도 청장도 애동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둡고 텅 빈 공간에 자신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저기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어둑한 실내에 눈이 적응해서 찬찬히 둘러보니, 기린이 지금 있는 곳은 조금 전까지 굿판이 벌어졌던 문화재청 지하 소강당이 아니었다. 훨씬 좁고, 연단도 없고, 바닥재 마감도 엉망인, 낡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무당이 장구를 두드리고 방울을 흔들며 노래를 한참 부르는 중에도 반신반의했던 기린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래층이다. 사후세계다. 저승이다.

 

역시 인간문화재! 한국 최고의 무속인이라더니, 진짜로 나를 저승에 보내버렸다. 이렇게 안 고마울 데가 있나!

 

배를 타고 삼도천을 건너거나, 끝이 없어 보이는 나선형 계단을 걷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냥 이렇게 뚝딱 오다니. 조금 전에 저기요, 라고 목소리를 낸 것이 후회됐다. 누군가 대답이라도 하면 그 자리에 까무러칠 것 같았다. 약간 숨이 가쁘게 느껴지는 것은 기린이 겁을 먹은 상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집된 자료에 의하면 그곳은 산소 농도가 한라산 정상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둔감한 사람은 괜찮겠지만 예민한 사람은 호흡이 약간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한라산 가 본 적 있어요?”

 

브리핑 당시 청장은 기린이 둔감한 편일 거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설명했다. 딱 보니 주말에 부하 직원들에게 등산을 종용하는 타입이었다. 직장상사와 주말 등산이라니, 생각만 해도 싫다. 멀리 출장을 온 게 다행이려나. 멀어도 너무 먼 게 문제지만.

 

기린은 오른손을 주먹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서 핸드폰을 켜봤지만 예상대로 서비스 안 됨 표시가 떴다. 이번에는 엄지와 검지의 첫 마디를 겹쳐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청장은 이게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탐사선 보이저 3호와 통신하는 방식이라며 사후세계에서도 연락이 되리라 장담했다. 되기는 개뿔!

 

“어… 도착했어요.”

 

혹시 수신은 안 되더라도 송신은 백프로 되리라는 청장의 말이 떠올라 일단 도착 보고를 하고 손가락을 얼른 뗐다. 작게 말했는데도 텅 빈 공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출발 전에 백 번, 도착해서 벌써 여덟 번째 후회를 했다. 괜히 왔어. 그냥 서울로 올라갈걸. 나사에서 어떻게든 해답을 찾았을 텐데. 항상 그랬던 것처럼. 기린은 청장의 현란한 언변, 특히 가족을 구해야 하는 사명감을 언급한 부분과 무당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넘어가 버린 자신을 책망했다. 어어, 하다가 삼베 보자기에 싸인 채 저승에 와버렸다.

 

앞쪽 벽에 문이 보였다. 일단은 나가야지. 기린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잔뜩 긴장한 탓에 후우 하고 내쉰다는 게 후후후후 하고 웃는 듯한 소리가 났다. 기린은 귀신이 옆에서 웃고 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양 팔을 휘저으며 문 앞으로 달려갔다.

 

사자 얼굴 모양의 손잡이를 향하던 손을 멈추고, 기린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공무원 합격했다고 엄마가 사준 진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기린은 항상 데님 바지 차림이었는데, 처음으로 입은 정장 바지가 약간 어색했다. 새로 산 구두도 뒤꿈치가 불편했다. 아무 것도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재킷과 바지의 주머니를 일일이 확인했다.

 

목에 걸린 공무원증은 그대로였다. 저쪽 세계의 공무원인 게 여기서도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을 수 있으려나. 어떻게 보면 외교사절 비슷한데 그래도 면책 특권 같은 게 있으리란 기대는 버려야겠지. 관점에 따라서는 오히려 간첩 쪽에 가까운 게 사실이니까.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걸 챙겼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십자가라도 하나 들고 올걸. 그나마 고전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같이 알몸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맥켄지 데이비스처럼 멋진 몸도 아닌데.

 

기린은 사자 얼굴 모양의 손잡이를 움켜 쥐었다. 잠겨 있길 바라는 마음이 반 정도는 있었지만, 손잡이는 문제 없이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계단이 있었다. 문화재청 지하의 소강당에서 넘어왔으니, 여기도 지하 1층인가 싶었다. 기린은 귀를 기울이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한 층을 올라가니 예상대로 건물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었다. 정말로 아파트의 위아래 층처럼 큰 구조는 비슷하고 침대의 위치 같이 유동적인 세부 사항만 다른 걸까.

 

커다란 철문을 조금 열고 밖을 빼꼼히 내다 봤다. 해 뜨기 전의 새벽녘처럼 어스름한 거리가 보였다. 저쪽하고 시간대는 같지 않군.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었는데.

 

잠깐 동안 지켜봤는데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나다니는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갑니다.”

 

기린이 다시 손가락 하트에 대고 상황 보고를 했다. 이런 보고를 하는 의미가 있는 건지, 청장이 이 메시지를 받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승과 연결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미끄러지듯이 발을 움직여 건물 밖으로 조용히 나섰다. 거리는 이승의 대전 시내만큼 번화하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뭔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화면에서 봤던 것 같은 이미지. 사후세계로 온 것이 아니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게 아닐까. 어차피 양쪽 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황사나 미세먼지가 가득한 것처럼 시야가 온통 누르스름했다. 기린은 황천(黃泉)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었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주먹을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폈다. 서비스 안 됨.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국어 선생님 만큼이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온 지구가 영어를 선택한다 해도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강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