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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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지각자들 많지? 선도부 선생님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하시더라. 웃지 마라. 차동식, 니 얘기다.”

 

목구멍까지 보이며 웃던 아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은 킥킥댔다. 담임은 장구채로 교탁을 내리쳤다.

 

“자, 자, 아직 종치려면 일 분 남았다. 내일 종이 치기 전에 안 오는 놈들은 일주일 동안 청소할 줄 알아. 그럼 내일 보….”

 

담임의 마침표는 하교종 소리와 책상과 의자 끄는 소리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방목한 소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반장! 반장은 선생님 좀 보자.”

 

담임은 친구들과 잡담하며 가방을 챙기는 최석태를 붙잡았다. 최석태는 가방을 들쳐 메고 교실 앞으로 갔다. 그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은 교실 뒷문에 옹기종기 모여 친구를 기다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최석태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담임은 교탁에 기댄 엉덩이를 뗐다.

 

“반장은 교무실로 따라와. 방과 후에 미안한데 선생님 좀 돕자.”

 

최석태는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입모양이 일그러졌다.

 

“수행 평가 입력해야 하는데 말야. 선생님도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이 있어. 선생님이 어려울 때 반장이 도와야지. 누가 돕냐.”

 

반장은 가방 끈을 꽉 쥐었다. 교사 생활 10년이면 학생의 작은 반항도 간파할 수 있다. 요즘 것들은 선생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니까. 쯧. 담임은 혀를 차며 장구채로 교탁을 내리쳤다.

 

“반장! 선생님이 도와 달라 했으면 군말 말고 도와야지. 무슨 반응이 미적지근해. 잔말 말고 따라와.”

 

“네….”

 

최석태는 기어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장은 뒷문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니네들 먼저 가.”

 

“야! 오늘 경험치 두 배 이벤트야.”

 

“아, 몰라. 시발, 짜증 나. 저 새끼!”

 

친구를 기다리는 패거리는 한 마음으로 담임을 노려보았다. 담임과 눈이 마주칠까봐 금세 눈을 돌렸지만.

 

“어떻게 안 되겠냐.”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타파해보려 머리를 모았지만 담임의 횡포에 얌전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장! 선생님 먼저 교무실 가있을 테니까 빨리 내려와라.”

 

최석태는 교실을 빠져나가는 담임에게 보이지 않게 입을 달싹거렸다. 씨팔 새끼.

 

“니네들끼리 가서 해. 아, 짜증 나! 개새끼.”

 

최석태는 책상을 걷어찼다. 그리고 교실에 남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최석태는 느릿하게 복도를 걷는 담임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도와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죠? 누구여도 상관없죠?”

 

“뭐, 그렇지. 근데 누가 남아서 도와주겠냐.”

 

“선생님, 잠시만요.”

 

최석태는 교실로 달려갔다.

 

“다진아! 오늘 바빠?”

 

최석태가 능글맞게 웃었다. 최석태가 친한 척해서 다진에게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석태는 말을 쏟아내며 상대의 대답을 막았다.

 

“목요일이니까 학원 안 가지? 급한 일 없으면 좀 도와주라. 나 무지 중요한 일이 있거든. 좀 살려주라.”

 

최석태는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정성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담임 미친 새끼가 갑자기 남으라고 하잖아. 도와 달라고. 경험치 두 배 하는 날인데.”

 

뻔뻔하게 게임 때문에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려 하다니 다진은 기가 찼다. 놀기 위해 남에게 일을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 업보를 쌓기에 딱 좋은 행동이다. 더군다나 최석태는 반장이다. 이런 부탁은 거절해도 업보가 따르지 않는다.

 

“저기, 오늘 말야.”

 

갑자기 최석태가 바짝 붙었다.

 

“이번에 낸 수행평가 점수가 별로였다며. 내가 보기에 그 수행 평가 채점하는 거 같은데…. 어쩌면 담임이 도와줬다고 점수 올려줄 지도 몰라.”

 

놀란 다진은 최석태와 거리를 벌렸다. 최석태는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학원 안 가는 날이긴 한데.”

 

“그럼 됐네! 너한테도 분명 좋을 거라니까?”

 

“아, 알았어. 절대 수행평가 점수 때문에 하는 건 아니고.”

 

“그럼, 그럼. 당연하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업보가 쌓이는데. 알아, 알아.”

 

최석태는 다진의 팔뚝을 두드리고 등을 돌렸다. 창문 너머로 담임의 머리와 반장의 머리가 겹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은 패거리와 함께 교실을 떠났다. 최석태는 다진이 보이지 않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전다진! 니가 반장 대신 돕기로 했다며. 바로 교무실로 따라와라. 늦게 오면 늦게 끝나!”

 

다진은 무거운 가방을 지고 교무실로 향했다.

 

타인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 타인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싫다. 무엇보다 최석태 앞에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동안 담임을 도와준 대가로 수행평가 점수가 올라가지 않을까 고민했다. 어린 다진은 부정했다. 절대로 불순한 마음으로 반장의 일을 도맡은 게 아니다. 사정이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고 바쁜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것일 뿐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탑승자는 호스트의 행동을 보며 카르마가 해소할 ‘보상’을 우선적으로 여기며 행동한 적은 없었는지 되짚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일까? 방금처럼 변명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 다진은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업보가 쌓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다진은 장담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
 

부서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구 부장이 가끔 다진보다 일찍 출근할 때를 제외하면) 사무실에 불을 켠다. 이건 입사할 때 스스로에게 선언한 다짐이었다. 퇴근은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어기기 일쑤였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선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신입 사원은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업무가 몸에 익었을 무렵, 다진은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기로 했다. 빨리 출근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없고 야근한 다음날 일찍 출근하는 건 몸을 지치게 했다.

 

“다진 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강 대리가 의자를 질질 끌어 후배 옆으로 왔다. 회사 동료가 사적으로 시간을 묻는 건 처음이었다.

 

“네,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 긱과 치맥을 약속했었지만 상사의 부름이 우선이다. 친구 사이의 약속을 깨는 건 나중에 사과하면 전부 메워질 아주 작은 업보다.

 

“오케이. 저녁 같이 먹자.”

 

강 대리는 의자를 질질 끌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퇴근할 때까지 강 대리는 업무 지시를 제외하고는 다진에게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혹여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진은 걱정이 앞섰다. 어쩌다 강 대리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만 끄덕일 뿐 무슨 연유인지 힌트를 주지 않았다.

 

“먼저 들어갈게요.”

 

여섯 시 삼십분을 조금 넘기자 구 부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장이 자리를 비우니 과장, 차장 순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갈까?”

 

강 대리는 이미 퇴근 준비를 마친 후였다. 다진은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짧은 정리 시간이었지만 신입 사원은 머리가 복잡했다. 평소 회사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다. 사적으로 시간을 내서 만날 만큼 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녁을 같이 하자는 건 분명히 의도가 있었다.

 

“대리님, 가시죠.”

 

강 대리는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여기 고기가 싸고 맛있어. 몰랐지? 이거 나만 아는 맛집인데.”

 

강 대리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고깃집에 다진을 데리고 갔다. 식당은 평일임에도 퇴근한 직장인들로 붐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