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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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ONE’은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이야. 너도 잘 알잖아.”

 

다진은 목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억눌렀다.

 

“아니, ‘MIRROR-ONE’은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야.”

 

확신에 찬 T의 눈빛에 다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MIRROR-ONE’이 과거를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었다고?

 

“’MIRROR-ONE’이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고 해도 피험자들한테 숨길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실험을 통제하는 건 닥터고….”

 

“닥터도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거야. 만약에 ‘MIRROR-ONE’을 사용하는 실험자들이 과거를 바꾸면 어떻게 하지? 힘들게 쌓아 올린 결정체가 물거품이 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엄포를 놓은 거야. 허투루 움직이면 죽는다.”

 

“그러면 경고음은 뭐야. 함부로 움직이면 ‘MIRROR-ONE’이 경고를 주잖아. 기차소리든 천둥소리든 열 번 들리면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나, 나도 경고음 들어 봤어. 머리도 엄청 아프고.”

 

“열 세번.”

 

“뭐?”

 

“나 기차 소리 열 세 번까지 들어봤어.”

 

“말도 안돼.”

 

다진은 믿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을 13번이나 버텨 냈을 리가 없다. 그리고 10번 째는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닥터가 말했었다.

 

“직접 실험도 해봤어.”

 

“미쳤어?”

 

T는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샤인머스캣을 집었다.

 

“죽을 각오로 했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실험에 대해 알기 위해선 뭐든 해야 했어. 결과는 보시는 대로 이렇게 살아있고.”

 

T는 십자가에 매달린 성인처럼 양팔을 좌우로 부드럽게 뻗었다. 믿을 수 없었다. 다진은 실수로 들은 기차 소리 세 번도 견디기 힘들었다.

 

“닥터가 강제로 멈추지 않았으면 더 들었을 지도 몰라.”

 

허세 가득한 표정을 지었던 T는 이내 떫은 포도를 먹은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닥터가 강제 사출 시키면서 뭐라고 했는 줄 알아? T의 생명이 위급해서 멈췄다고 하더라. 닥터 입으로 나온 핑계거리가 고작 그런 거라니. 정말 웃겨. 자기 입으로 정식 출시가 되기 전에 어떤 상황이든지 겪어봐야 한다고 했으면서. 닥터는 일급 기밀이 새는 게 두려웠던 거야. 경고음을 무시해도 실험자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 있어?”

 

T는 다진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였다. 그곳에는 숫자 ‘3’ 모양 상처가 있었다. 우연히 생길 수 없는,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새긴 상처였다. T가 설명하지 않았지만 다진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다.

 

다진의 본능이 빨간 등을 깜빡였다. 더 들어도 괜찮아? ‘카르마’를 감당할 수 있겠어?

 

“이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야? 지금까지 혼자서 해왔던 일이잖아. 내가 닥터에게 말해서 못하게 막을 수도 있어. 난… 겁쟁이야.”

 

다진은 두려웠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시도’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 만약 여의치 않은 일이 생기면 닥터는 전부 내 잘못이라고 주장할 거야.”

 

다진은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큰 소리가 났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죄송합니다. 형, 앉아. 주목을 끌면 안돼.”

 

다진은 의자를 세워 거기에 앉았다. 사람들은 눈을 돌렸다.

 

“대체 뭘 믿고 덤비는 거야? 승산은 있어?”

 

“변수가 바뀌는 첫 날은 감시가 느슨해. 첫 날 결과를 보고 미세 조정을 하거든.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시도하기엔 딱 좋아.”

 

“그래, 하기 좋은 시기가 내일이란 건 알겠어. 닥터가 주의를 준 만큼 경고도 강력하지 않다는 것도 알겠어. 그런데 ‘MIRROR-ONE’이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진 않아. 단순히 추측만 가지고 덤비는 거라면 하지 마.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어.”

 

“있어. 증거.”

 

“뭐라고?”

 

“보고서를 봤어. ‘MIRROR-ONE’이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보고서였어.”

 

“말도 안 돼. 그걸 직접 봤다고?”

 

“‘MIRROR-ONE’을 통한 과거 체험과 변화에 대한 가능성.”

 

몇 번이나 연습한 아나운서처럼 T는 딱딱한 이름을 부드럽게 말했다.

 

“닥터한테 뭐 물으러 다시 연구실로 갔었는데 연구진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어. 그리고 몰래 별실에 들어가서 두 눈으로 확인했고. 그리고 빙고.”

 

T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갈 수 있는’ 타임머신에 대한 취급 주의 사항과 탑승자에게 걸리는 부담을 적은 보고서였어. ‘MIRROR-ONE’은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야! 완벽하게 완성된 버전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그래, 니 말대로 과거로 갈 수 있고 바꿀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디로 갈 건데? 진경 씨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했잖아.”

 

“진경 누나를 만났던 날로 갈 거야.”

 

“두 사람 연구소에서 처음 알게 됐다며.”

 

“아니, 나는 진경 누나를 밖에서 만난 적이 있어.”

 

“연구소에서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고?”

 

“친해진 건 여기가 맞아. 하지만 얼굴을 본 건 여기가 처음이 아니야.”

 

“그러면?”

 

“진경 누나는 우리 학교 사이클부였어. 아주,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기한 인연이네. 그래도 이렇게까지 매달릴 이유가 있어? 진경 씨가 너를 구한 업보는 다른 일로 갚을 수 있을 거야. 무리를 할 필요는….”

 

“누나가 사고를 당한 건 순전히 내 탓이야. 내가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누나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야.”

 

T의 느닷없는 고백에 다진은 따라갈 수 없었다. 닥터의 본 모습과 ‘타임머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만으로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누나와 이야기하다가 알게 됐어. 같은 학교에 다녔던 것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