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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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누군가 내 두개골에 안으로 손을 넣어 뇌를 주물럭거리는 기분이었다. 미지근한 밤공기가 몸을 조여왔다. 멈춰 서면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달렸다. 빨간불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자 차들이 급정거하며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양재천으로 내려갔다. 이미 밤처럼 어두웠지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시계를 봤다. 8시 20분이었다. 사람들과 자전거를 피해 달렸다. 숨이 차올랐다. 목구멍 안쪽에서는 녹슨 못을 씹는 맛이 났다. 폐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테니까.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속도를 늦췄다. 사람들이 뒤로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주머니들의 운동법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커플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하나같이 뒤로 걷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의심스럽긴 했지만 뒤로 걷기 행사라도 하나 싶어 슬쩍 길옆으로 비켜서 걸었다.

땀이 배어난 이마를 쌀쌀한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한순간 현기증이 일어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때 내 옆으로 자전거가 지나갔다. 거의 나를 칠 뻔한 빨간 자전거는, 뒤로 달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고개를 돌려 자전거를 쳐다봤다. 열심히 페달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고글과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잠깐, 뒤로 페달을 돌린다고 자전거가 뒤로 가나? 다른 때 같으면 신기한 구경을 했다고 생각하고 웃고 말았을 테지만, 오늘은 신경이 곤두서서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더 달릴 기운도 없어 멍하니 남자의 자전거를 쳐다보고 있는데, 뒤로 가던 자전거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와의 거리를 좁히는 자전거를 피해 미리 길가로 비켜서자, 자전거는 아까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주머니들도, 산책하는 사람들도, 뒤로 걷는 마법이 풀린 것처럼 앞으로 걷고 있었다. 시간에 대해 약간의 강박을 가진 나는 습관처럼 시계를 봤다. 8시 25분이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잠시 눈을 뜬 채 꿈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래.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집에 들어가자.

“어머, 이 시간에 집에 웬일이에요?”

5층 빌라를 힘겹게 올라가 현관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굳어버린 발을 간신히 떼어내 현관문에 등이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집에 들어온 걸 후회하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아내는 분명 죽었는데, 내가 이 두 손으로 목 졸라 죽였는데. 저건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