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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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빠지는 사람 없지? 있으면 알아서 스케쥴 조정하고.”

 

구 부장의 목소리를 듣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현장에서 성대를 다쳐 말할 수 없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구 부장이 목소리를 내는 일은 적었다.

 

“전체 회식 같은 건 군사 독재 시절의 잔재라니까.”

 

강 대리는 의자 바퀴를 질질 끌며 다진의 옆으로 왔다. 다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양으로 웃었다.

 

전체회식은 탄강 건설 사원이라면 빠질 수 없는 연례 행사다. 시무식, 종무식도 없는 탄강 건설에서 유일하게 참석을 강요하는 행사다. 봄과 가을, 한 해 두 번 열리는 전체 회식에서 빠진다는 건 퇴사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강 대리, 불평은 물 받은 세면대에 코 박고 해. 이러다 윗 분들이 지나가시다가 들으면 기분이 아주 좋으시겠어. 괜히 후배까지도 욕 먹게 하지 말고 자리로 가서 일이나 봐.”

 

김 차장의 말에 강 대리는 의자를 질질 굴려 제자리로 돌아갔다. 강 대리는 입을 옴싹달싹하며 입 한가득 불평을 물었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다진도 전체 회식이 부담스러웠다. 가끔 있는 팀 회식도 불편한데 회사 전체 인원이 모이는 전체 회식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최석태 그 놈을 바로 옆에서 봐야 한다는 게 제일 싫었다. 오며 가며 복도에서 가끔 마주치는 것도 불쾌한데 전체 회식에서는 바로 옆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대표님보다 먼저 가서 자리 잡자고. 텅 빈 가게에 대표님 먼저 들여보낼 수는 없지. 오늘 안으로 해야 하는 일 있으면 회식 끝나고 와서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다들 일어나죠.”

 

구 부장은 옷걸이에 걸어 놓은 넥타이를 목에 걸었다.

 

“오늘 바쁜데. 하, 이것 참 어쩔 수가 없네요. 강 대리, 전다진 씨. 서두르자고.”

 

모든 일에서 내빼기로 유명한 송 과장이 솔선수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배들을 챙기는 척은 덤이다. 강 대리는 전체 회식에 대한 불만을 꽁한 표정에 담았다. 다진은 일어나기 전에 책상을 깔끔히 정리했다. 오늘은 밀린 업무도 없고 회식이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회식은 매번 가는 고깃집이었다. 대표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가게라는 듯하다. 음식값도 비싼데 이곳을 고집하는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표가 오기 전에 각 팀들은 자리를 잡았다. 관리과가 공지한 배치표에 따라 자리를 채웠다. 대표를 시작으로 관리과, 설계 1팀, 2팀, 3팀, 영업 1팀, 2팀, 3팀, 개발 1팀, 2팀 순서로 앉았다. 다진은 설계 1팀과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가 뒤섞인 식당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진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목을 빼 바라보았다. 최석태가 설계 2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멀끔하게 생긴 최석태는 주목하고 싶지 않아도 눈이 간다. 여직원들이 꼽은 남자 직원 호감도 순위에서 상위권을 다툴 정도다. 상위권에 랭크한 이유는 젊고 잘 생겼다는 이유도 있지만 매너가 좋고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이유가 더 컸다. 최석태는 여러 테이블을 전전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가 머물다 간 테이블에는 최석태에 대한 칭찬이 흔적처럼 남았다.

 

“어쩜 예의도 바를까. 잘 생기고 일도 잘하니 예쁨을 받을 수밖에.”

 

“다음 달에 대리를 달을 거란 소문도 돌던데?”

 

다진은 듣고 싶지 않았지만 뚫린 귓구멍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테이블 순회를 마친 최석태는 설계 1팀 테이블이 아닌 설계 2팀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어, 최석태 군. 잘 왔어.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치길래 까먹은 줄 알았잖아. 서운하게.”

 

“원래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잖아요.”

 

송 과장은 최석태의 너스레에 껄껄댔다.

 

“아, 그렇지. 석태 군이랑 전다진 씨랑 친구지? 전다진 씨,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친구한테 인사해. 팀에 또래가 없으니까 소극적이야. 불쌍하다니까.”

 

“하하, 제가 얼굴을 자주 비춰야 겠는데요? 다진아, 오랜만이다?”

 

최석태는 다진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다진은 어버버 거리며 손을 살짝 들었다.

 

“전다진 씨, 지금 뭐하는 거야. 제대로 인사 해야지. 우리들 있어서 그런 거야? 아침인사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해보라고. 당신 전매 특허잖아.”

 

다진은 송 과장의 비아냥에 일그러지는 표정을 참았다.

 

“잘 지내지? 커흠.”

 

새된 목소리가 가게를 갈랐다.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다진에게로 쏠렸다. 다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여간 사람…. 그렇다고 식당이 떠나가도록 소리지르면 어떡해. 쯧. 자네 친구 원래 이런가? 입사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적응을 못 하겠어. 쯧쯧.”

 

송 과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최석태는 오른손을 입에 가까이 대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눈치가 좀 없는 친구긴 해요.”

 

두 사람은 같이 껄껄댔다. 죽이 잘 맞는 한 쌍의 바퀴벌레였다. 얼굴이 벌게진 다진은 얼음물을 들이켰다.

 

“시간도 많은데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하고 가. 저 친구 어릴 때는 어땠어? 초등학교부터 동창이라며.”

 

송 과장은 엉덩이를 안쪽으로 빼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앉지 말고 니네 테이블로 꺼져. 다진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그의 바람이 이뤄질 리 없었다. 최석태는 염치없는 표정을 지으며 송 과장의 온기로 데워진 자리에 앉았다.

 

“초등학교 뿐만 아니죠.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동창인데요.”

 

“완전 소울 메이트구만. 어떻게 회사까지 같은 데를 들어왔어. 누가 먼저 들어온거야?”

 

“동기에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둘이 생각하는 게 비슷했나 봐요. 둘 중 한 명이 이성이었으면 천생연분이라고 로맨틱한 착각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하하.”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니 새끼랑은 절대 그럴 일 없었을 걸. 다진은 얼음을 씹어 먹었다.

 

“둘 다 남자인 게 다행이야. 자네들 얼굴을 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후. 농담이야. 하하하.”

 

최석태와 송 과장은 대화의 방점을 찍을 때마다 러핑 캔(laughing can)을 달고 있는 것처럼 동시에 웃었다. 대표의 훈사가 시작에도 최석태와 송 과장은 연인처럼 달라붙어서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쉿! 조용!”

 

구 부장이 홀을 돌며 옐로 카드를 나눠주었지만 최석태와 송 과장은 뭐가 좋은지 낄낄 댔다.

 

대표의 훈사가 끝나고 맥주가 나오고 고기가 나와도 최석태가 설계 1팀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 대리가 설계 1팀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테이블 자릿수는 딱 맞게 되었다.

 

송 과장은 술이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다진과 최석태의 학창 시절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사람이 얼마나 착한 지 몰라요. 친구들이 부탁하는 건 전부 들어줍니다.”

 

“뭐, 빵셔틀. 그런 거 돌려 말하는 건가?”

 

“하하하, 송 과장님. 빵셔틀이 아니에요. 해결사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다진이한테 말하면 수퍼히어로처럼 해결해주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친구인데요.”

 

최석태가 친구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지만 다진은 가만히 있었다.

 

“전다진 씨, 뭐해. 친구 손 부끄럽게. 사람 왜 그러나 몰라. 거참, 내가 해줄 게.”

 

송 과장의 잔이 최석태의 잔에 부딪쳤다.

 

“감사합니다.”

 

석태는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잔을 재빨리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쑥스러워서 그러는 겁니다. 원체 부끄럼이 많은 친구라서요.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년 지기의 부탁입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내가 석태 군을 봐서라도 자네 친구를 자알 돌봐주겠네.”

 

“과장님도 어려운 일 있으면 저 친구한테 부탁하세요. 수퍼맨처럼 전부 해결해줄 겁니다. 저 친구 가훈이던가 좌우명이던가. 하여튼 그게 아주 특이해요.”

 

“특이하다 말할 정도야?”

 

송 과장은 노릇하게 구운 고기를 상추와 깻잎을 포갠 그 위에 얹어 마늘과 쌈장을 넣었다.

 

“초등학교 때 들은 걸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해요. 혹시 ‘카르마’ 아세요?”

 

“무슨 종교의 교리 아닌가?”

 

송 과장은 자기 입보다 큰 쌈을 입에 욱여넣었다.

 

“깊이 들어가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 친구 말로는 ‘업보’라고 하더군요. ‘업보’는 과거나 현재에 지은 죄인데요. 저 친구는 ‘업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그래서 부탁받은 일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죠. 끝까지 붙들고 반드시 해결해요. 얼마나 멋져요. 어릴 때부터 지켜온 신념인데 존경할 만하죠. 포기가 빠른 저로서는 정말 본받고 싶어요.”

 

송 과장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진을 쳐다보았다. 다진은 최석태를 쏘아보며 애꿎은 물만 들이켰다.

 

“아니, 전다진 씨. 그 표정은 뭔가?”

 

송 과장은 인상을 잔뜩 쓰고 다진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불만 가득한 부하에게 한 마디 할 셈이었다. 다진은 잔뜩 긴장했지만 송 과장의 훈계는 불쑥 나타난 강 대리 덕분에 들을 수 없었다.

 

“최석태 씨. 이제 자기 테이블로 돌아가.”

 

술기운이 살짝 오른 강 대리가 설계 1팀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설계 1팀 팀원들이 최석태에게 손짓했다.

 

“죄송합니다. 송 과장님이 저를 팀원처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