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인섭은 몸이 축 쳐져 있었다. 액셀을 밟을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지, 그의 차는 털털거리며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땀으로 푹 젖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그는 더 쳐져보였다.

 

차에서 키를 빼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 하나 없는 조용한 동네로 방을 잡아서 그런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퇴근시간이 되었는데도 사람 하나 없는 것을 보니, 괜시리 쓸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차에 멍하니 앉아서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의 머리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하루의 악몽들이 떠올랐다.

 

두통이 다시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썩어가는 피냄새와 잔뜩 썩어 부풀어 오른 살점, 피로 찌들어있는 텐트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그의 머리속에서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인섭은 허탈하게 상상했다.

 

정신병원 의자에 묶여 눈을 강제로 뜨고는 제대로 감지 못하는 환자의 모습이 자신이랑 다름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여러번 휘저으며 눈을 부비적댔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해야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집에 먹을만한 게 있나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냉장고 속에 있는 물건들이라고는 곰팡이 핀 장아찌와 레토르트 식품들 뿐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 길 건너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맥주 몇캔과 소주 두병을 고른 그는, 안주거리가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다.

 

지갑을 열었다 폈다 하며 곰곰히 떠올리던 그는, 전날 밤 새로 이사온 소녀가 가져온 떡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기억했다.

 

쩝 하며 혀를 찬 그는, 술을 계산하고는 천천히 빌라쪽으로 걸어왔다.

 

빌라의 입구에서,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는 도로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애초에 일곱시정도 되는 시간인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던 동네였던지라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유독 이질감이 드는 얼굴이었다.

 

인섭은 길의 건너편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먼 거리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열심히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꽂힌 곳을 따라가보니, 학생 한명이 가방을 메고는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피곤에 쩔어 흐릿한 눈을 두어번 비빈 그는, 다가오는 학생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 몸을 살짝 기울였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아침에 웃음을 지으며 버스를 타고갔던 소녀의 얼굴이었다.

 

소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의 근처에 오자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족과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섭은 천천히 길을 건넜다.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빌라의 입구에 서있던 세 사람은 사람의 발걸음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엇, 이 아저씨야.”

 

진희가 먼저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침에 감사합니다!”

 

해맑고 순수한 미소를 본 인섭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니… 뭐… 뭘요 뭐… 같은 빌라 사는 주민인데 뭐…”

 

인섭의 미소는 유독 어색해보였다.

 

“이 참, 아침에 너무 자신있게 나가서 걱정을 좀 했는데… 잘 갔다왔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남성이 인섭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인섭은 당황하여 손과 남성을 번갈아 바라봤다.

 

조심스레 손을 잡은 인섭은 목례를 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니 뭐… 알며는 뭐… 가르쳐 줘야죠.”

 

인섭은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경계가 가득한 눈빛을 지울 수 없었다.

 

낯설었다. 퇴근을 하고 올때마다 항상 그는 혼자였다.

 

인기척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주차장과 집 현관. 그곳을 천천히 걸어오며 악몽을 지우려 고개를 젓는 그의 공간이었다.

 

“아직 이사온지 얼마 안되서 동네를 잘 모르는지라… 혹시 기회 되면 주변 살짝 가르쳐주실 기회가 있겠죠?”

 

남성은 자신의 딸과 여성을 집 안으로 배웅하고는 넌지시 물었다.

 

“아… 음…”

 

인섭은 남성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힘이 빠져서인지 피곤해서인지 입꼬리가 좀처럼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 뭐, 언제 비번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겠죠. 아마도.”

 

인섭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본 남성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오늘 감사해요.”

 

남성은 잡은 손을 살짝 흔들고는 딸과 아내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빠 있잖아 있잖아…”

 

진희의 목소리가 계단통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침에 버스를 타며 보였던 웃음이 목소리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인섭은 손에 들고있던 봉지를 살짝 들어올렸다.

 

묵직한 소주병과 맥주캔들이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먼지 몇톨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빨래통에 넣어 둔 빨래들은 바구니 안에서 산을 이루고 있었고, 당장이나마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통으로 손을 뻗어 양을 확인한 그는, 귀찮은 듯 빨래통을 발로 슬쩍 밀어버렸다.

 

상을 가져와서는 떡과 술을 펼쳐놓은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티비를 틀었다.

 

접시로 덮어둔 떡을 슬쩍 열어 눌러본 인섭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도 딱딱하게 굳거나 쉬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떡을 베어물고는 맥주를 마구 들이키기 시작했다.

 

썩어들어가던 속이 맥주와 함께 풀려가는 것 같았다.

 

침대에 기대어서는 천장을 본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티비에서는 아이돌들의 쾌활한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인섭의 귀에는 웅웅대는 소리로만 들릴 뿐, 전혀 머리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해가 천천히 져가면서 인섭의 방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방에 불을 틀지 않고 티비 불빛에 의존하고 있는 그의 방은, 티비에서 비추는 조명들을 따라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술을 연거푸 몸속으로 집어넣던 그는, 침대에 기댄 채로 스르르 잠에 들었다.

 

인섭의 피곤한 몸 위로, 형형색색의 티비 빛이 밤새 쏟아졌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깨어난 인섭의 근처에서 맥주캔이 뒹굴고 있었다.

 

끊어질거 같은 허리를 문지르며 일어난 그는 샤워를 하려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얼굴에는 풀리지 않는 피로가 가득했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확인한 인섭은 피식 웃음을 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