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염려해 왔던 일이 일어났다. 드래곤 란데셀리암이 나리메 공주를 납치한 것이다.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란데셀리암의 통상적인 행동 범위 내에 있는 공주라곤 나리메 공주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리메 공주도 그 상황을 도저히 예상치 못한 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란데셀리암의 성 에소릴에 도착했을 때 나리메 공주는 맹렬히 항의할 수 있을 정도로 침착을 되찾았다.
“제발 날 놓아 줘, 이 바보 드래곤아. 더스번 경이 올 거란 말이야!”
드래곤이었기에 란데셀리암은 먹을거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심각한 파격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그 크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새장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운 모습의 사람장에 갇혀 있는 공주를 보며 란데셀리암은 미심쩍은 어조로 대답했다.
“여가 듣기에 너는 그 사실이 탐탁지 않은 것 같군. 왜지? 자기를 구하러 올 자가 있다는 건 너희들에겐 기쁜 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더스번 칼파랑이 정말로 나를 구하려고 오는 거라면 나도 기쁠 거야. 하지만 만일 더스번 경이 온다면 그건 드래곤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했다는 명성을 얻고 싶어서라고.”
“글쎄. 너는 그 두 개의 사건이 변별적인 것처럼 말했지만 네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의 형태만 놓고 보면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 너는 군거 생물이기에 상대방의 목적 또한 고려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는 여전히 네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판단하라고 권하고 싶은데. 너라는 개체의 유지에 관련된 문제잖아.”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어. 어쨌든 더스번 경이 너를 물리치고 나면 난 그 남자랑 결혼해야 하잖아. 사람 머리를 선물로 보내는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더스번 칼파랑은 무적의 무사다. 물론 갑옷을 잘 갖춰 입고 잘 손질된 무기도 들어야 하며 전날 폭음을 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그런저런 사소한 조건들이 모두 갖춰졌을 경우 그는 틀림없이 무적이다.
더스번 경은 벽을 등지고 있을 경우 세 명의 적수와 동시에 싸울 수 있다. 그런데 벽이 없을 경우엔 여덟 명과 동시에 싸울 수 있다. 더스번 경이 전장에 홀로 서 있을 때 경은 낙오된 것이 아니다. 경이 나머지 아군 전부를 낙오시킨 것이다. 더스번 경을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4년 전부터 비유가 아니게 되었다. 더스번 경이 팔비노교의 성녀를 팔비노교의 성소에서 욕보인 후 팔비노 교도들은 경을 열세 번째 지옥에서 온 악마의 화신으로 규정했다.(이후 팔비노 교도들은 천국에 이르는 길 중 더스번 칼파랑의 암살을 추가하게 되었다.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어렵지만 확실하긴 하다는 주석과 함께.)
란데셀리암은 더스번 칼파랑에 관한 그 모든 평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선물로 수급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기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더스번 경이 반역자 기어립의 머리를 나리메 공주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알고는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나리메 공주는 펑펑 울면서 말했다.
“너한테 잡아먹히거나 그 짐승 같은 사람의 아내가 되거나잖아. 어느 쪽을 더 싫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여는 어째서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우주가 개인에게 거의 허락하지 않는 놀라운 행운이 있어 칼파랑이 여를 굴복시킨다 하더라도 왜 그가 너와 결혼한단 말이지? 너는 칼파랑의 목적이 네가 아니라 너의 구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성이라 주장했다. 어쨌든 여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무슨 말이야? 공주는 원래 드래곤을 물리치고 자기를 구해 준 남자랑 결혼하는 거야. 너도 잘 알면서 그래?”
“여가 안다고?”
“응? 원래 드래곤은 공주를 납치해야 하는 거니까 너도 나를 납치한 것 아니야? 그렇잖으면 아바마마의 성까지 굳이 힘들게 날아올 이유가 없잖아.”
“글쎄. 여가 너를 선택한 것은 연역적 추론의 결과인데.”
“무슨 말이야?”
“여는 네가 가장 좋은 음식을 규칙적으로 공급받으며 충분한 운동과 정서적 안정을 누리면서도 아직 출산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질이 우수하고 식감 또한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가정했다. 여의 생각으로는 다른 드래곤들도 아마……”
란데셀리암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먹을거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는 그였지만 기절한 먹을거리한테 말을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뿔들이 잔뜩 돋아 있는 머리를 긁적거리던 란데셀리암은 사람장의 잠금장치를 점검하고는 장거리 비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리메 공주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쇠창살로 둘러싸인 원통형 상자 바닥에서 깨어나는 일은 난생처음이었으니까. 주변의 쇠창살을 의아한 눈으로 보던 공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상황과 란데셀리암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다시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진짜 공주님이에요?”
명백한 사람 목소리에 나리메 공주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원통형 사람장 안엔 그녀밖에 없었다. 쇠창살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본 나리메 공주는 간이 콩알만 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장은 보통 새장과 같은 위치, 즉 천장에 매달려 있어서 바닥과 15미터는 되는 높이에 있었다.
급히 고개를 들어 올린 공주의 눈에 다른 사람장이 보였다.
두 번째 사람장은 공주의 그것에서 6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역시 바닥에서 15미터는 되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공주는 그 안에 있는 것이 젊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후 공주는 그 판단을 철회해야 하나 의심했다. 남자에겐 여자에게 없는 것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머리에 사슴뿔이 나는 건 너무하지 않아?
“넌 누구야? 사람이야?”
“전 후식입니다.”
나리메 공주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비일상적인 말이니 일상의 방패 뒤에 숨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에 뿔이 난 남자는 공주가 이미 깨달은 사실을 확정해 버렸다.
“그러니까 란데셀리암은 공주님을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 저를 먹기로……”
결국 나리메 공주는 두 번째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