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소릴을 통치하는 거대한 용 란데셀리암이 어느 날 나리메 공주를 납치한다. 무적의 무사로 통하는 더스번 경이 공주를 구하러 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나리메 공주는 용에게 잡아먹히거나 저급한 소문에 휩싸인 기사와 결혼하거나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짜증스럽기만 하다. 나리메 공주는 용의 후식으로 잡혀 온 사슴 인간 남자 조빈과 함께 자신들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에 대해 피력하며 드래곤의 ‘밥맛’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을 꾀한다. 한편, 에소릴 성으로 향하던 더스번 경은 사슴 인간 연인을 구출하러 간다는 늑대 여인 사란디테를 만나고, 이들은 각자의 목표물을 구출하기 위한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2009년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던 단편 「에소릴의 드래곤」은 공주를 납치한 용이라는 클리셰에 합리적 추론과 설득의 대화술을 덧심고, 이질적 기질과 성향을 지닌 존재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흥미로운 모순을 발생시키는 창의적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유가 깊은 용의 화술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특정 인물들에 대한 편견을 전하고 다시 회수하는 과정이 무척 매끄러우며, 기교적 대화가 빈번하게 오가는 와중에도 핵심을 관통하는 명문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어 이야기가 안정감 있게 남는다. 오래전에 발표된 단편이지만 아직 접하지 못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일단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무조건 읽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