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을 상대하는 일선 병사들에게 있어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라면, 트롤이 너무 멍청하다는 것이다.”
1) 개요
트롤은 전세계에 분포하는 생물학적 기원이 불분명한 이족보행형 생물체입니다. 평균수명은 약 50년 정도입니다. 서식지역에 따라 생활양식이 어느정도 상이한 모습을 보이지만 지능이 매우 낮다는 특징은 거의 모든 트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트롤들의 사회는 잘 쳐줘야 동물 무리에서 원시적인 씨족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홀로서기로 살거나 다른 지성체들의 사회에 편입되어 가축 역할을 하곤 합니다.
2) 신체적 특징
트롤의 신장은 성체 기준 2-3m까지 자라고, 체중은 350kg 정도 됩니다. 일부 특이개체는 그보다 더 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허리를 쭉 펴고 다니는 경우가 없고 대부분 구부정하게 다니기 때문에 키는 똑바로 섰을 때를 기준으로 한 2-3m보다 더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트롤의 경우는 힘이 매우 강해서 바위를 한손으로 들고, 사람을 맨손으로 내리치면 즉사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그에 비해 세심한 손재주와 지능은 심각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트롤은 짱돌이나 몽둥이가 트롤이 다룰 수 있는 무기의 한계이며, 이마저도 트롤이 자체적으로 쓸 생각을 못해 가축화된 트롤들이나 들고 다니는 정도입니다.
트롤의 뇌에서는 재생을 돕는 세포가 계속 형성되나 이 세포가 뇌세포가 자라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뇌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이 때문에 지능은 매우 떨어져서 눈 앞에 있는 상대를 왜 죽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이 때문에 트롤이 거리낌없이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는 대부분 배가 고파서 잡아먹기 위함일 때가 많습니다.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함정이나 속임수 앞에서는 그 덩치값을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정정당당한 싸움을 좋아하는 기사들보다 약삭빠른 수에 능한 사냥꾼과 도적떼들이 트롤과의 싸움에 더 능한 것으로 증명됩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대놓고 구멍을 파고 위장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으로 떨어져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식하고 덩치가 큰 트롤의 식성은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어, 각 지역에서는 대식가를 인간 트롤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트롤들은 음식을 매우 많이 먹는데, 워낙에 무식하게 먹어서 아가리가 큰 트롤은 심지어 인간도 산채로 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트롤을 보면 어느 때는 불룩 튀어나온 배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트롤의 뱃속에 산채로 삼켜진 먹잇감이 발버둥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싱싱한 먹잇감도 먹지만, 그와 반대로 완전히 썩은 것이나 보편적인 상식에서 먹을 것이 못 되는 것도 삼킵니다. 바위를 잘게 쪼개서 먹거나 흙을 덩어리째로 삼키고, 썩은 것들을 삼킵니다. 인간을 비롯한 여타 동물이라면 얼마 못가 위장질환으로 쓰러질 테지만 트롤은 오히려 쪼개진 바위가 위장 속에 들어가 음식물을 분해하고 위산을 약화시켜 강력한 위산이 위장을 녹여버리는 것을 막고, 썩은 음식물의 미생물들이 소화를 오히려 돕습니다. 이 때문에 트롤은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맞는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트롤의 재생력 역시 특기할 부분입니다. 트롤의 상처는 사람의 눈으로 관측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며, 이는 트롤이 사냥과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해줍니다. 골통이 깨지더라도 치명적이지 않으면 복구되며, 배가 찔려서 내장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트롤은 싸움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재생능력에 있어 유일한 약점은 불과 심장, 머리입니다. 불에 지져진 상처는 재생을 촉진하는 세포를 변성시켜 못쓰게 만들고, 오히려 트롤의 지방에 옮겨붙어 일을 더 크게 만듭니다. 심장은 트롤의 재생세포와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데 심장이 찔려서 피를 분출하기 시작하면 트롤의 재생력으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출혈이 일어나 일격사하지는 않더라도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만약 뇌가 공격에 노출되어 짓이겨진다면 재생세포를 생산하는 기관이 파괴되고 각종 신경중추가 붕괴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3) 트롤과 사회
트롤에게는 자체적인 문명이랄 것이 없습니다. 트롤들의 왕국이 대륙 너머 어딘가에 존재한다, 몇천년 전에는 트롤들의 왕국이 있었다는 구전 설화가 존재하나 역사가들은 그 설화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오우거 문명이나 엘레니트 왕국의 여왕으로 재위한 맨오거 클라리사의 일화가 와전되어 그런 설화로 이어져내려온 게 아닌지 추측할 뿐 트롤 문명에 관한 믿을만한 증거는 문헌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몇백년 걸러 한번씩 트롤 중 똑똑하고 힘센 개체가 트롤들의 부족을 조직한 사례는 관측되나 그 이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트롤은 야만과 문명을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계곡의 바위틈에서, 컴컴한 동굴 속에는 트롤들이 항상 도사리고, 이런 곳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삶이 끝장나니 말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면 몰라, 트롤들은 바깥으로 나와 민가나 유랑 무리를 습격해 잡아먹습니다. 대여섯마리 정도는 한두명의 장정으로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고블린과는 달리 트롤은 전문 사냥꾼이나 정규군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 못 당해내고, 전문 인력이 오더라도 서너명 정도로는 답이 없기에 더욱 위협적입니다. 일례로 하이머 남작령의 프레데릭 원사는 몇십년간 고블린들과 싸워오다 어느 순간 고블린들과 암묵적인 휴전을 맺고 암묵적인 상호불간섭 상태를 몇년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롤들의 경우에는 보고가 들어오는 즉시 살해하고, 만약 변이체나 고블린 부족이 트롤을 보유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상호불간섭을 깨고 그 부족들을 남김없이 청소했습니다.
하지만 트롤이 힘이 매우 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트롤을 길들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트롤 아기를 훔쳐오거나 뺏어서 기르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여러 번 있었고, 몇몇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인간의 말을 자세히 들어먹을 정도로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고, 세밀한 무언가를 할 손재주도 없기 때문에 들고 끌고 하는 게 전부지만 트롤의 체격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지능으로 통제가 어렵고, 배가 고프면 자기 주인도 잡아먹으려 드는 습성 때문에 대부분 트롤이나 주인 중 한 쪽이 죽는 결과로 끝났습니다. 인간보다는 고블린과 변이체들이 인간 정주민족들과의 전력 차이를 메꾸기 위해 트롤들을 많이 사육하며, 이 과정에서 고블린들이나 변이체가 잡아먹히지만 어떻게든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트롤들은 약탈에 있어 큰 우군이 되어줍니다. 멍때리고 가만히 바위를 씹어먹는다던지, 그런 멍청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요.
4) 불운한 트롤들
트롤 중에는 바다 트롤, 얼음 트롤, 강 트롤, 바위 트롤처럼 다양한 종이 존재하나, 일부는 불운이나 파멸의 권능으로 인해 끔찍한 형태로 변이하기도 합니다. 하나는 몸에 화살이나 총알이 박혀들어갔는데 박힌 것을 뺄 틈도 없이 재생해서 움직일 때마다 뱃속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항상 화나있는 트롤이고, 더 불운한 트롤은 파멸의 권능에 절여진 트롤입니다. 트롤들은 그 바위같은 몸뚱아리 때문에 선천적으로 변이에 저항력이 있고, 타락할 지능도 없어 심리적으로도 타락에 강하지만, 파멸의 권능에 타락해버린 변이체 같은 것들을 잘못 주워먹은 트롤들은 끔찍한 모습이 됩니다. 트롤의 강한 위장이 강철은 녹이더라도 파멸의 권능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변이체의 살점은 트롤의 위장에 달라붙어 종양이 된 뒤 혈관을 통해 온몸에 끔찍한 변이의 씨앗을 뿌리고, 트롤의 온 몸에는 변이가 일어나서 못생기기만 한 트롤이 보기 싫은 형태로 변해버립니다.